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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엽의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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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0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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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셉은 회사원(1)

DUMMY

그 후로 30분.

벌써 30분이나 지났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바보처럼 멍하니 모니터 앞에 앉아있는 것이었다.


도희씨가 말했던 프로그램은 진즉에 다 깔았다.

회사 메신저, 엑셀 파일.

고작 두 개였으니까.


그 동안.

사수였던 한책임은 나를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회사 생활이 원래 이런 거냐···.’


[대게, 많은 직장인들이 상사 때문에 고충을 겪고 있어. 때때로 좋은 사람을 만나면 직장 생활이 쾌적하겠지만··· 운이 나쁘게도 은호의 사수는 그렇지 않은 것 같네.]


[하지만 문제는 없어. DB 코드를 정리하는 건 단순 업무고, 지금부터 내 지시에 따르기만 하면 되니까]

[먼저, SBN을 설치해. SBN은 ‘Shared Business Network’의 약자로, 의진 IT에서 사용하고 있는 파일 공유와 협업을 위해 사용되고 있는 프로그램이야.]


[참고로, 바탕 화면에 ‘인수인계’라는 제목에 메모장이 하나 보일 거야. 쓰레기에 가까운 설명이지만, 뼈대는 대충 참고 할만 해.]


‘왜 쓰레기에 가까운 설명이라는 거지?’


바탕 화면에 있던 인수인계 메모장 파일을 찾았다. 파일을 오픈 하자, 스크롤을 내리지 않아도 될 정도로 짧은 문장이 보였다.


레피가 했던 말을 바로 이해했다.


‘이건, 혼자 볼려고 써놓은 내용 아냐?’


[과거 데이터를 분석해봤을 때, 은호 너의 전임에 의해 작성된 문서야. 참고로, 그는 3개월을 채우지 못하고 빤스런을 한 것 같아.]


문장 마지막에 일부러 줄여놓은 글씨가 미세하게 보였다. 크기를 키우자 ‘도망쳐’라는 간결한 세 글자 나타났다.



*****



오후 11시 55분.


“신입, 이름이 뭐라고 그랬지?”


약 3시간이 지나서, 본인의 개인적 볼일을 끝냈던 한책임이 스멀스멀 내 자리로 찾아왔다.


“도은호입니다.”

“지금까지 아무것도 안 하고 있던 거야?”

“···네?”

“아니, 아무리 인수인계를 못 받아도 그렇지. 하물며 탕비실 청소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여태 가만히 있는 게 말이 돼?”


[책임을 전가하기 위해 가스라이팅을 시전 하고 있어. 한부용 책임은, 오전 내내 메신저로 밀회를 즐기느라 신입인 은호를 챙겨주지 못했거든. 이렇게 큰 소리로 떠들면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할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이 듣기에도 너의 책임인 것처럼 느끼게 할 거야.]


“모르면 물어봐, 주변에 뭘 해야 하는지라도.”

“저, 책임님.”

“아, 왜!”

“오전에 해야 할 일은 이미 다 끝냈습니다.”

“······뭐?”


내 말 한 마디에, 열심히 타자를 치는 척 했던 팀원들의 시선이 일순 몰리고 있었다.


“다 했다고요, L코드 정리.”

“······뭘 다했다는 거야? 그렇게 맘대로 건드리면···!”


모니터에 엑셀 파일이 떠 있었다.

한책임은 대충 훑어보더니 믿지 못하겠다는 듯 눈이 휘둥그레 졌다.

그는 시종일관 함구무언이었고 사무실 안은 깊은 정적이 흘렀다.


“이걸, 혼자서 다 했다고?”

“전임이 바탕 화면에 남겨놓은 인수인계 메모장이 있더라고요. 업무 파악은 그걸로 다 끝났어요.”


“어, 어··· 이, 일단 완성한 파일 내 메신저로 전송 해.”

“네, 알겠습니다.”



*****



점심시간.

팀원들과 함께 구내식당으로 이동했다.

구내식당은 사내 직원 할인으로 5천원 정도에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었다.

반찬의 퀄리티는 썩 부실했지만 말이다.


-정말 그 메모장에 적혀있는 내용만으로, 혼자 업무를 다 하신 거예요?

-책임님한테 ‘오전 업무 끝났습니다.’ 라고 말하는데, 진짜 멋있더라니까?

-경력 없는 신입이라고 들었는데, 예전에 비슷한 일 해본 적 있어요?


팀장님과 책임님이 빠진 식사 자리.

팀원들의 질문세레가 이어지고 있었다.


팀원들의 질문을 요약하자면.

한책임은 오래전부터 꼰대 기질이 강했고, 한책임 아래서 가장 오래 버텼던 신입이 1년이라고 들었다.


-일 잘하는 것도 좀 힘들 수도···

-맞아. 예전에 가장 오래 버텼던 직원이 정규직 되고도 1년 안에 퇴사한 이유가, 성과를 빼앗겨서···.


툭.


눈치 없이 재잘거리던 직원의 옆구리를 옆에 있던 다른 직원이 찔렀다.

더 이상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시그널인 듯 했다.


시끌벅적했던 점심은 단 10분 만에 끝이 났다.

모두가 입을 모아 얘기했다.

빨리 점심을 먹어야 더 많이 쉴 수 있다고 말이다.


구내식당에서 나오자, 누군가 내게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건넸다.

오늘 아침, 유일하게 나를 맞이해주었던 도희씨였다.


“아, 감사해요.”

“오전 내내 무언가 하시는 것 같더니, 인수인계도 안 받고 일 하셨던 거예요?”

“그리 어렵진 않던데요.”

“······.”


내 말을 듣고 당황한 듯 도희씨가 억지 미소를 지었다.


“적성에 맞는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네, 재밌는 것 같아요.”


물론 거짓말이었다.

어디까지나 유능한 신입 사원의 연기를 하던 것 뿐이다.


“이전에 입사했던 신입분들은 너무 빨리 퇴사해서 골치가 많이 아팠는데, 은호씨 덕분에 한시름 놓네요.”

“아까 점심 먹을 때, 팀원분들이 비슷한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아, 그래요?”


도희씨와 나는 별거 아닌 대화를 하며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사무실 불이 모두 소등 되어 있다.


“놀라지 마세요. 점심 시간엔 낮잠을 잘 수 있는 분위기를 형성하기 위해 항상 소등 해요.”


그 때.

회의실 안에서 꿈틀거리는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


“아··· 그, 그게 전 커피 좀 사러 갔다 올 게요. 은호씨도 같이 가실래요?”

“···저도요?”


도희씨는 다급하게 나를 사무실 밖으로 불러냈다. 회의실 안에 있던 사람의 정체가 누구인지 알고 있던 모양이다.


[한부용 책임이야. 점심시간 동안 짧은 밀회를 즐기고 있지. 저 사람이 왜 저렇게 당당하냐면, 디자인 팀장과 대학 선후배 사이라서 그래. 또, 디자인 팀장은 사장님 라인이거든. 믿을 빽이 있다고 착각하는 모양이지.]


뒤늦게 나가려 발걸음을 돌리자 타이밍 나쁘게 회의실 문이 열렸다. 이윽고,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칼 단발에 짙은 화장을 하고 있는 매우 수려한 이목구비의 여자였다.


[최솔지, 의진 IT의 경리. 신장은 167cm에 나이는 27살.]


기다렸다는 듯 레피가 그녀의 인물 정보를 읊었다.

나를 발견한 최솔지 주임은 언짢은 듯 미간을 구기더니, 팔짱을 끼고 이렇게 말했다.


“뭘 봐요?”

“······아, 죄송합니다.”


급히 몸을 돌렸을 때, 갑자기 뒤에서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최솔지 주임이 나를 불러 세우던 것이다.


“거기, 오늘 디자인팀에 새로 입사한 신입이죠?”

“······네? 아, 그런데요?”

“입구에 복사 용지 6박스가 도착해 있는데, 그것 좀 프린트 옆으로 옮겨 놓으세요.”


태연하게 명령하는 말투.

순간, 스마트한 신입 사원이라는 컨셉은 빠르게 무너져 내렸다.

사실, 나는 그리 착하고 매너 있는 사람은 아닌 것 같다.


“그런 건, 직접 하시는 게 어떨까요?”

“······뭐요?”

“팔뚝을 보니까 힘이 장사실 거 같은데.”

“···무, 무슨 말을 그렇게 함부로 해요?”

“보이는 사실을 그대로 말씀드린 것 뿐인데요.”


약간의 기 싸움이 벌어지자, 숨어있던 한부용 책임이 헐레벌떡 회의실 밖으로 나왔다.

다급히 옷을 정돈한 모습이 역력했다.


“야, 신입. 지금 뭐 하는 거야?”

“아, 책임님. 거기 계셨구나.”

“우리 솔지씨가 시키면 해야지. 어디서 따박 따박 말대꾸야?”


[은호, 회사 생활을 하는 동안 눈에 뛰는 행동은 위험해. 특히, 상사에게 밉보였다간 골치 아파 질 거야.]


‘저런 걸 보고도, 저런 말을 듣고도 다 참아야 한다고?’

‘아니, 난 못해. 절대로.’


[네가 못하겠다면, 나도 강요는 하지 않아.]


“책임님이 하시면 되겠네요. 저보다 체격이 좋으시잖아요.”

“···야, 너 짤리고 싶어?! 인턴 주제에 말 꼬락서니가 그 따위야!!!”

“맘대로 하시든가요.”


툭, 말을 뱉고 그대로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뒤에서 여전히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한부용 책임의 육성이 들리고 있었다.



*****



12시 55분.

옥상.


선선한 바람이 불고 있는 옥상은, 뙤약볕에 달궈져 생각 이상으로 뜨거웠다.


[걱정 마. 저런 일 하나로 잘릴 확률은 10% 미만이니까. 지금 디자인팀이 무척 바빠. 새로운 신입을 뽑기에 업무량이 많이 밀려있지. 게다가, 은호가 오늘 아침 보여 준 역량 덕분에 최소 한 달은 버틸 수 있을 거야.]


“잘리면 아래층으로 면접 가면 되지.”


15층 정도 되는 건물 하나에 몇 개의 회사들이 입점해 있었다.

그 중 6층과 7층은 외주 회사였던 의진IT였고, 5층은 영상 회사 그리고 4층은 애니메이션 회사였다.


[영상 회사에 입사하면 업무를 수행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어. 게다가, 기본적인 영상 편집 능력이나 포트폴리오가 없으면 면접을 아무리 잘 봐도 합격은 보장 받기 어렵다고.]


[그나마 네가 버틸 수 있는 가장 쉬운 회사가, 이 건물 안에선 의진IT 밖에 없어.]


버그가 창궐하는 순간 대응이 늦으면 한 지역이 괴멸 수준에 다다를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렇게, 한 국가의 멸망을 시작으로 전 세계가 멸망하는 건 순식간일 것이다.

마물을 잡아야만 능력치를 올릴 수 있던 내게, 아무것도 남지 않고 파괴된 지구는 유리하지 않은 선택이었다.


애써 번 돈도 모조리 똥값이 될 테고, 더 이상 맛있는 음식도 먹을 수 없을 것이다. 그냥 흑마법사 따위에 지고 싶지 않았다.


어느 덧 이 싸움은, 그와 나의 심리전이 되어버린 것 같다.


“아무리 뿔테 안경을 썼다지만, 흑마법사가 날 못 알아볼까?”


[일부러 방송에 정보를 뿌려 널 유인했을 수도 있어. 그러나, 그 가설의 신빙성은 38%. 반면, 아직까지 방송의 재미만을 위해서 객기를 부리고 있다는 신빙성은 62%나 돼.]


“여전히 내 등장이 우연이라 믿는 거네.”


그러나, 38프로도 꽤 높은 수치였다.

흑마법사에겐 내 정령의 존재 여부가 진짜인지 아닌지 시험해볼 의도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처럼 들렸다.


“도은호씨.”


그 때, 옥상문이 열리며 도희씨가 들어왔다. 바람이 꽤 많이 불었던 탓인지, 그녀의 긴 생머리가 거칠게 휘날렸다.


“업무 시작했는데 여기서 뭐하세요? 전화는 왜 안 받으시고요.”


앗.

공상에 잠겨있다 보니 사무실로 돌아가야 한단 걸 깜빡했다.


“죄송해요.”


평소에 귀신같이 알려주던 레피가, 어째서 잠잠했는진 모르겠다.



*****



“아니, 그러니까 팀장님······.”

“안된다고, 지금 업무량 많은 거 몰라? 일정을 벌써 2번이나 미뤘어. 6월까지 못 끝내면 그쪽에서 소송까지 생각하고 있다는데, 지금 신입이 싸가지 없는 게 문제냐고?”


팀장님과 한부용 책임은 오픈 회의실에서, 나의 재직 여부를 논의하고 있던 모양이다.


“신입 자르면, 자네가 야근에 철야에 주말 근무까지 다 할 거야?”

“···아니, 그건 아니고요.”

“할 자신도 없잖아? 인수인계나 똑바로 해. 이번에 일 그르치면 너도 나도 찍히니까! 원청업체가 사장님 인맥인 거 알잖아!”


아무래도, 한부용 책임이 날 자르자고 건의했다가 팀장에게 호되게 잔소리를 듣고 있던 모양이다.


‘같은 대학 선배라고 하더니, 꼭 편들어 주는 건 아니었네.’


[업무 능력 없는 후배를 인맥으로 꽂아주고, 한부용은 신입들 성과 뺏어서 야금야금 승진을 하고. 팀장은 그저 눈을 감아 주는 것 뿐이지, 멍청한 게 아니라고.]


‘능력 없는 후배를 왜 감싸줄까?’


[한부용이 겉으론 저래도, 꽤나 의리파에 팀장 말이라면 껌뻑 죽거든.]


호오, 한부용 책임을 제대로 엿 먹일 방법을 찾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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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컨셉은 회사원(1) 24.09.10 27 2 12쪽
8 악마의 개(2) 24.09.09 30 2 12쪽
7 악마의 개(1) 24.09.08 33 2 11쪽
6 독 파리 떼 24.09.07 31 2 12쪽
5 컨셉은 고등학생(3) 24.09.06 36 3 12쪽
4 컨셉은 고등학생(2) 24.09.05 44 3 12쪽
3 컨셉은 고등학생(1) 24.09.04 75 3 12쪽
2 사역마 24.09.04 106 3 11쪽
1 프롤로그 - 음지 방송 24.09.04 119 2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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