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괴 품은 퇴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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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31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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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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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3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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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형식

DUMMY

전이안의 가슴팍에 붙어있는, 막대한 양의 마력(魔力)을 품은 순백의 꽃잎.

꽃잎의 출처는 특급 퇴마사 여자였다.

전이안이 자신을 안은 틈에 몰래 붙여놓은 것이다.


“···뭐 하자는 거야?”


“도망가지 말고 얌전히 따라와. 폭사하고 싶지 않으면.”


전이안의 질문에 차가운 말투로 답하는 여자.

잠시 하늘을 뒤덮던 구름이 흩어지며, 차가운 달빛이 지면을 비췄다.

그리고, 달빛 아래에 당당하게 서 있는 특급 퇴마사 여자는 그에 걸맞은 아우라를 뿜어냈다.


검은 단발과 이에 대조되는 붉은 빛의 눈동자.

가느다란 허리춤에 자리 잡은 단검.

가히 암살자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비주얼과 포스였다.


그리고, 그러한 그녀의 모습은 전이안의 도주 계획을 저지하기에는 충분했다.


‘[폭사]라···. 폭발과 관련된 능력의 소유자인가. 그렇다면, 그 매개체는 내 가슴에 있는 꽃잎이겠지.’


전이안의 생각이 맞는다면, 전이안의 몸에는 이미 상대방이 원할 때 터뜨릴 수 있는 시한폭탄이 달린 셈이다.

옴짝달싹 못 하고, 상대의 말을 고분고분 들을 수밖에 없는 입장에 선 것이다.


“네가 멍청한 사람은 아니길 바라. 자, 잠자코 조용히 따라와.”


특급 퇴마사 여자가 손가락을 튕기자 결계가 해제되더니, 웬 검은 색 밴 한 대가 소리소문 없이 튀어나왔다.

여자는 차 문을 열고 뒷자리에 타면서, 경계심 가득한 전이안에게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전이안은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도망갈 길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순순히 여자의 부름에 응했다.


‘···오늘 밤은 길어지겠네. 팀원들아, 미안하다. 그냥 내 이름 빼줘.’




***




야심한 새벽, 밴이 도착한 장소는 경복궁 근처에 위치한 어느 거대한 빌딩이었다.

건물 외벽에 ‘문화센터’라고 명시되어 있었으나, 마력(魔力)을 지닌 자들의 눈에는 다른 글자가 보였다.

바로 ‘퇴마 협회(退魔協會)’라는 글자가.


“여긴-”


“퇴마 협회(退魔協會). 퇴마사들을 위한 비밀 조직이야. 네가 지금 있는 이곳이 본부고.”


먼저 앞서가는 여자를 따라, 전이안도 건물 내부로 들어갔다.

내부 구조 또한 그냥 일반적인 빌딩이었다.

전이안이 여자를 따라 지하 3층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수많은 부적으로 뒤덮인 복도가 전이안을 맞이했다.

그리고, 복도의 끝에는 께름칙해 보이는 정승들이 대문의 양옆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무슨 조선시대 공포 테마 귀신의 집이냐고.”


“딴말 그만하고 어서 대실로 들어가기나 해.”


전이안의 감상을 가볍게 묵살해버리는 여자.

전이안은 내심 시무룩하며 터벅터벅 복도의 끝까지 걸어 커다란 문 앞에 도달했다.

그러자, 여자는 전이안의 가슴팍에 있던 꽃잎을 회수하고, 그에게 직접 문을 열라고 손짓했다.


“···그보다, 왜 날 여기로 끌고 와서 어떡할 생각인데. 너 이름은 뭐고. 그 정도는 말해줄 수 있잖아.”


“지금 말해줘봤자 의미 없어.”


전이안의 스몰 토크를 다시 한번 박살 내며, 그의 등을 떠밀며 문을 열도록 하는 여자.

대문이 열리자, 마치 거대한 재판소와도 같은 비주얼의 대강당이 전이안의 눈에 들어왔다.

이미 수많은 사람이 각자의 자리에 앉아 전이안을 기다리고 있었다.


“너의 처분에 따라 내 소개가 너에게 닿을지, 안 닿을지 정해지겠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여자는 전이안의 곁을 떠나 자신의 자리를 찾아갔다.


‘처분?’


- 쿵


저절로 닫히는 대문.

한층 더 밝아지는 조명.

그리고, 쥐도 새도 모르게 바닥에서 솟아나 전이안 몸을 포박하는 의문의 포승줄.


갑작스러운 상황에 순간 당황할 법 한 전이안.

그러나 그는 침착하게 곧바로 머리를 굴리며 현 상황을 파악했다.


‘[처분]이라고 했다.’


요괴를 ‘흡수’하는 능력을 지닌 본인이 퇴마사들의 조직인 퇴마 협회(退魔協會)로 그들의 거물급 전력에 의해 끌려왔다.

심지어 자신에 대한 모든 정보를 이미 퇴마사 측은 지니고 있었다.


‘아마, 퇴마사들의 위에서 진작에 나를 두고 논쟁을 펼친 모양이네.’


그리고, 오늘이 바로 그 논쟁의 마지막.

논쟁의 요점인 본인을 직접 데려와 누가 옳은지 그른지를 논하는 자리.

‘요괴 흡수’라는 능력을 지닌 전이안은 살려둬도 될지, 처리해야 할지 논하는 자리리라고, 전이안은 생각했다.


“어서 오게, 소년.”


재판소에서 판사들이 앉을 법한 자리에 앉아있던 한 노인이 입을 뗐다.


“다소 거친 방법으로 그대를 데려온 점, 그리고 이렇게 잡아두고 있는 점은 미안하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이 아니라면 그대가 절대 응하지 않을 거로 생각했네. 무례를 용서하게.”


‘이미 충분히 무례를 범하고 계십니다, 어르신.’


전이안은 최대한 말을 아끼며 고개만 끄덕였다.

괜히 입을 놀렸다가 본심이 튀어나와 상대의 심기를 건들면 뼈도 못 추스르라 여겼기에.

애초에, 입을 조심해야 하는 자리이다.

이 자리에서 바로 죽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자, 그럼 찬반 의견을 던져보게. 전이안이라는 이질적인 존재의 처분에 대해.”


노인의 말이 끝나자, 모두가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각자의 목소리를 높였다.


[저 자에게서는 퇴마사의 마력(魔力)보다 요괴의 마력(魔力)이 더 강렬하게 느껴진다.]


[인간보다는 요괴에 가까운 존재일 것이다. 후환이 되지 않게 지금 죽여야 한다.]


[요괴를 흡수하는 것은 소년의 퇴마술식(退魔術式)일 것이다.]


[그를 퇴마사로서 인정해주고 그의 힘을 빌려야 한다.]


‘잠깐만. 퇴마술식(退魔術式)은 또 뭐야?’


처음 들어보는 단어로 인해 잠시나마 멍에서 깬 전이안.


‘아니지. 지금은 호기심을 부릴 때가 아니지.’


전이안은 눈을 열심히 굴리며 자신을 직접 끌고 온 여자가 어디에 앉아있는지 찾아보았다.

정확히는, 어느 방향에 앉아있는지.


전체적으로, 전이안은 기준으로 오른편에 전이안을 죽이자는 의견을 지닌 사람들이 앉아있었고, 반대로 그를 살리자는 의견을 지닌 사람들은 왼편에 앉아있었다.

그리고, 전이안을 끌고 온 여자는 왼편에 앉아있었다.


‘좀 쉽게 갈 수 있었는데···. 뭐, 지금도 괜찮아 보이지만.’


특급 퇴마사.

퇴마계(退魔界)에 단 세 명만 존재한다는 거물이자 최강자.

그중 한 명이 자신의 목숨을 보전하자는 의견을 지닌 측에 있다는 사실에, 전이안은 안도했다.

동시에, ‘차 안에서 조금은 아부를 떨 걸 그랬나.’라는 생각도 스쳐 지나가긴 했다.


“지금 죽여야 합니다. 저 존재는 여러모로 위험합니다.”


수많은 목소리를 뚫고 나오는 잔잔하고 근엄한 목소리.

그 목소리가 조용히 존재감을 드러내자, 그동안 시끄러웠던 다른 목소리들이 바로 숨죽이듯 사라졌다.


‘누구지?’


전이안 기준 오른쪽.

짧은 머리에 군인처럼 각지고 건장해 보이는 근육질의 사내.

사내는 정중하게 논쟁을 진행하는 노인에게 자신의 의견을 내비쳤다.


“지금이야 저 소년은 세상 물정 모르는 코흘리개지만, 만약 미륵지영(彌勒之影)이 우리보다 먼저 저 자에게 접촉했더라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졌을 것입니다. 설령 저 소년이 퇴마사 측에 선다고 해도, 소년이 지닌 이질적인 능력을 탐낸 미륵지영(彌勒之影)이 계속해서 노릴 가능성이 큽니다.”


“너무 가능성에만 사로잡혀 사람 목숨을 함부로 대하면 안 되지 않나요, 백승훈 특급.”


남자의 말을, 또 다른 특급 퇴마사인 백승훈의 말을 가로막는 전이안을 끌고 온 특급 여자.


“선배가 염두하고 있는 부분이 뭔지는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확실히 미륵지영(彌勒之影)이 침을 흘리며 탐낼 능력인 것은 분명하나, 저자의 의지만 분명하다면 그 걱정은 의미 없는 것이 됩니다.”


“잘 알고 있으면서 그런 말을 하는 건가, 송민지 특급. 너도 잘 알고 있을 거다. 녀석들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본인들이 원하는 바를 이루고자 한다. 어쩌면, 지금 죽는 것이 저 남자에게도 가장 평온하게 갈 수 있는 좋은 기회일 수 있어. 퇴마사가 돼서 고생하다 죽거나, 미륵지영(彌勒之影)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것 보다는···. 아니, 오히려 죽음을 피하고자 미륵지영(彌勒之影)의 편에 설 수도 있지.”


백승훈 특급 퇴마사의 말에 입술을 앙다무는, 전이안을 끌고 온 여자인 송민지 특급 퇴마사.

둘의 설전으로 인해 장내가 잠시 엄숙해졌다.

전이안을 두고 죽이냐 살리냐를 논하던 자리.

그러나 그 실상은, 이곳에 있는 모두는 어떻게 하면 전이안의 미래를 고통스럽지 않게 끝낼 수 있는지를 논하는 자리였다.

그들 또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이안이 지닌 능력은, ‘축복’이 아닌 ‘저주’라는 것을.


반면에 전이안은 그저 태연했다.

어차피 자신에겐 선택권이 없다.

정보는 다 팔렸고, 몸은 포박되어 있다.

저들의 말을 따르는 수밖에 없다.

심지어 특급 퇴마사가 두 명이나 있으니, 도망가지도 못 할 노릇이다.

그저, 모든 것을 하늘에 맡기고 멍이나 때리자는 것이 전이안의 태도였다.


“···소년.”


논쟁을 진행하던 노인은 전이안에게 조심히 말을 걸었다.


“지금 상황이 여러모로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우리는 해가 뜨기 전에 그대에 대한 처분을 마무리 지어야만 하네. 그대가 말해보게. 우리 퇴마사 측에 서서 목숨을 부지하고 싶은가, 아니면 지금 평온하게 죽고 싶은가.”


이제는 방아쇠가 전이안에게로 넘어갔다.


‘그냥 안 죽고 평온하게 살고 싶은데. 근데 이거, 애초에 나한테 선택권이 있기는 한 거야?’


전이안은 잠시 고민하다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어차피 이대로는 평온한 삶 따위야 얻기 힘드니까, 냅다 죽어버리는 게 나을 수도 있지만···.”


전이안의 말에 송민지 특급 퇴마사를 비롯해 그의 목숨을 보전하고자 했던 이들이 순간 흠칫했다.


“···벌써 죽기에는 아쉬운 게 너무나도 많아요. 가족도 보고 싶고, 친구들이랑 뇌 빼고 술이나 마시고 싶고. 그리고-”


진부한 답변만 늘어놓는 전이안.

그러나, 자신이 방아쇠를 당길 수 있는 상황이 오자, 그는 조금은 과감한 수를 놓기로 결심했다.


“만약 제가 여기서 죽는다면, 제가 4년 동안 ‘흡수’한 요괴들은 어떻게 될까요···?”


전이안의 말에, 장내에 앉아있던 퇴마사들은 모두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경계 태세를 갖췄다.

전이안은 한순간에 바뀐 장내의 공기를 들이마시며 실실 웃었다.


“다들 갑자기 분주하시네~.”


“전이안! 괜히 도발적인 발언을 했다간 여기서 즉결 처형될 수도 있다고!”


송민지 특급 퇴마사는 이전과는 다르게 격양된 목소리로 전이안을 일갈했다.

그러나, 전이안은 계속해서 별일 아니라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사람 하나 납치해서 남의 목숨을 주제로 논쟁하는 자리를 제가 쉽게 수긍할 리가 없잖아요? 당신들이 정확히 뭘 하는 사람들인지,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지는 몰라도, 저도 할 말은 해야죠~.”


“너······!”


“흠···.”


전이안의 도발에 이를 악무는 송민지와 백승훈 특급 퇴마사.

어떻게 보면 무모한 도발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전이안은 자신이 비록 능력을 지녔으나 ‘민간인’에 지나지 않는 신분이라는 점과 자신이 ‘흡수’한 요괴들의 뒤처리를 이용하고자 했다.

아무리 퇴마사라 해도 민간인의 목숨을 함부로 대할 수 없으며, 전이안이 그동안 흡수해 온 요괴들이 그가 죽고 어떻게 되는지는 전이안을 포함해 아무도 모른다.


단 한 명만 빼고는.


- 끼익


그리고 그 한 명이 뒤늦게 대문을 열고 재판소로 들어왔다.

담배를 문 입에서 옅은 미소를 띠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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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벽화마을 전투 (5) NEW 10시간 전 2 0 12쪽
17 벽화마을 전투 (4) 24.09.17 3 0 12쪽
16 벽화마을 전투 (3) 24.09.16 3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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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벽화마을 전투 24.09.14 6 0 12쪽
13 다시 혼돈 속으로 24.09.13 7 0 12쪽
12 스승과 제자 24.09.12 6 0 12쪽
11 끊이지 않는 위협 24.09.11 7 0 13쪽
10 새로운 애제자 24.09.10 7 0 12쪽
9 믿을 사람은 스승 뿐 24.09.09 7 0 12쪽
8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 24.09.08 8 0 12쪽
7 이상한 신입생 24.09.07 8 0 11쪽
6 첫 번째 날 24.09.06 10 0 12쪽
5 퇴마술식(退魔術式) 24.09.05 9 0 12쪽
4 퇴마사 24.09.04 9 0 13쪽
» 처형식 24.09.03 10 0 12쪽
2 잘못된 만남 24.09.02 15 0 12쪽
1 혼돈과 퇴마사 24.09.01 2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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