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괴 품은 퇴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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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31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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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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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9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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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사람은 스승 뿐

DUMMY

핏빛의 붉은 하늘.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검은 늪.

그 위를 수놓은 수많은 요괴들.

전이안이 본인의 퇴마술식(退魔術式)을 깨닳았을 때 본 광경.


그 광경이 다시금 그의 시야에 아지랑이처럼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왜 이러지.’


처음과는 달리, 더 격렬하게 울부짖는 지옥도 속의 요괴들.

처음과는 달리, 머리뼈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두통과 어지러움.

전이안은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며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하아···. 하아···.’


애써 심호흡하며 갑작스러운 혼란으로부터 안정을 되찾고자 하는 전이안.

그러나, 아무리 발버둥 쳐보아도 시야에 비친 지옥도와 저주 섞인 소리는 그칠 기세가 보이지 않았다.


‘뭐지? 퇴마술식(退魔術式)을 사용했을 때 이런 리스크는 느껴지지 않았었는데. 갑자기 어째서-’


숨이 점점 막히고, 정신이 거의 날아갈 정도의 공황에 봉착한 전이안.

전신이 마비되며 떨리는 감각이 느껴지던 와중, 엄청난 통각이 복부에서 느껴졌다.


- 풀썩


외마디의 비명도 지르지 못하며 쓰러진 전이안.

그러나, 그 통각 덕에 그의 시야는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오? 눈빛이 돌아온 걸 보니 정신 차린 모양이군.”


익숙한 목소리와 코를 찌르는 담배 냄새.

지옥도가 사라진 전이안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관묘안(貫妙眼)의 이재욱 특급이었다.


“교관. 도대체 뭘 하면 대련장이 아닌 수련장에서 상급 퇴마사 둘이 퇴마술식(退魔術式)을 사용하며 치고받는 상황이 나오는 거지?”


심드렁한 태도로 교관에게 눈치를 주는 이재욱 특급.

교관은 그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쭈뼛거리며 주변의 퇴마사들에게 물러가라는 손짓을 하였다.

“······이재욱 선배님. 녀석은-”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아. 하지만, 다 쓸데없는 걱정이니까 그리 신경 쓰지 마라.”


배민기 상급의 말을 일절 차단하는 이재욱 특급.

그 기가 세던 배민기 상급마저 이재욱의 한마디에 짧은 한숨을 쉬며 자리를 떴다.


순식간에 전이안과 이재욱 특급만 남은 야외 수련장.

이재욱 특급은 천천히 전이안을 일으켜 세우더니, 이야기 좀 나누자며 자리를 옮겼다.




***





“지금은 괜찮은 모양이네.”


“어떻게 딱 좋은 타이밍에 왔네요.”


이재욱 특급의 별실에서 찻잔을 나누는 둘.

이재욱은 별실 안에서도 다리를 꼰 채 담배를 태웠고, 전이안은 손으로 부채질하며 자신에게로 날아오는 담배 연기를 진압했다.


“야외 수련장에서 퇴마술식(退魔術式)을 사용하면서 겨루기나 하고 있다니, 신입 신분인데도 깡이 대단하네.”


이재욱 특급의 말에, 전이안은 조목조목 전후 상황을 전달하고자 했으나 이미 관묘안(貫妙眼)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읽은 그에게는 이미 알고 있는 정보였다.

손을 흔들며 전이안의 말을 끊은 이재욱 특급은 상황의 발달이 아닌, 자신이 간파할 수 없는 정보에 관해 전이안에게 질문했다.


“다시 보았지? 그 지옥도.”


“···네.”


“네가 퇴마술식(退魔術式)의 이름을 깨달았을 때, 나도 그 지옥도를 보았다. 그런데, 이번에 본 지옥도는 그때보다 더 기괴하고 잔혹해 보였는데···. 갑자기 왜 그렇게 된 건지 의심되는 건 없나?”


이재욱 특급의 의문은 전이안 또한 품고있었다.

전이안은 당시의 상황을 다시 회상하며, 무엇이 자신을 요괴조술(妖怪操術)의 지옥도로 끌고 갔는지 유심히 생각했다.


‘먼저 이명이···.’


주위 사람들의 질타.

저주 섞인 말들.

그 말들이 점점 울리면서 들리기 시작하더니, 시야가 붉어지기 시작했었다.

그러나, 전이안은 그 둘 사이의 연결고리를 쉽사리 찾지 못했다.

그렇기에, 이재욱 특급의 힘을 빌리고자 하였으나,


“그런 눈으로 바라보지 마라. 그때는 말 안 했지만, 내 관묘안(貫妙眼)은 너에게 먹히지 않아. 너를 꿰뚫어 보고자 하면 네가 본 그 지옥도만 보일 뿐이야. 뭔가 설명을 좀 덧붙여봐. 그럼 내가 유추를 해볼 테니.”


당시의 상황을 더 자세하게 전달하는 전이안.

이재욱 특급은 조용히 그의 말을 듣더니, 창밖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밖에는 고택의 시중 중 하나로 보이는 어린 소녀가 물웅덩이에 돌을 던지고 있었다.


“···돌에 맞은 건가.”


“돌이요?”

이재욱 특급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전이안.

이재욱은 그런 그에게 천천히 설명을 시작했다.


“일전에, 퇴마술식(退魔術式)의 이름을 깨닫기 전에, 욕 같은 말들을 들었을 때 같은 반응을 보인 적 있냐?”


“나름 좋게 살아와서 앞담을 당한 적은 없는데요. 퇴마계(退魔界)에서 당한 거 빼곤.”


“······그럼 아무런···, 뭐···, 부정적인 말이나 그런 거. 굳이 너에 대한 비난이 아니더라도.”


“없었는데요.”


“그렇군. 착하게 잘 살아왔구나.”


이재욱 특급은 자신이 세운 가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관묘안(貫妙眼)이 전이안에게 통하지 않기 시작한 것은, 전이안이 지옥도를 보게 된 것은, 모두 그가 자신의 퇴마술식(退魔術式)인 요괴조술(妖怪操術)을 깨달았을 때이다.

그리고, 요괴조술(妖怪操術)은 다른 퇴마사들의 퇴마술식(退魔術式)과 다르게, 퇴마사의 마력(魔力)이 아닌 요괴의 마력(魔力)을 지녔으며, 그 농도가 잔인하리만치 짙어 이재욱 특급의 관묘안(貫妙眼)도 통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대놓고 ‘요괴의 것’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그런데, 만약 그 낙인이 단순 오해가 아니라 진짜라면.


‘만약, 이안이 저 녀석의 술식(術式)이 요괴의 것의 성질을 띤다면···.’


위의 내용만으로 이미 전이안의 퇴마술식(退魔術式)이 이질적인 것은 증명되었다.

그렇다면 그 이질적인 것이, 요괴의 것과 같다고 가정해보자.

요괴들은 퇴마사와 같이 본래 본인만의 선천적인 마력(魔力) 양을 지니고 태어난다.

그러나, 2등급 안에서도 특유의 강함을 지닌 요괴들은 다른 경로를 통해서도 마력(魔力)을 얻고 늘린다.

그 경로가 바로 인간의 부정적인 감정이다.

저주, 공포, 절망, 좌절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일정 이상의 강함을 지닌 요괴들은 이러한 감정들이 격하게 느껴질 시, 마력(魔力)을 얻으며 강함을 키우게 된다.


전이안은 일전에 다수의 사람에게 둘러싸인 채, 저주의 말들을 온몸으로 받았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시야에 지옥도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고, 정신이 혼미해졌다.

전이안의 퇴마술식(退魔術式)이 요괴의 것과 같다면, 전이안이 겪은 일은 일정 이상의 강함을 지닌 요괴가 마력(魔力)을 얻는 현상과 비슷하다.

전이안 안의 요괴들이 외부에서 들려온 수많은 저주에 반응했던 것.

그러나, 그 요괴들을 품고 있는 전이안은 인간이기에 별도의 마력(魔力)이나 강함은 얻지 못하고, 도리어 안에서 저주에 반응하며 날뛰는 요괴들에 의해 내부적으로 정신 공격을 당한 격이다.


이상이 이재욱 특급이 세운 가설, 사실상 그가 정답이라고 생각한 답이었다.

전이안은 집중해서 그의 설명을 들은 후, 멍해진 두 눈과 함께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럼 나 유리멘탈 된 거야?”


“···그게 그렇게 되나?”


전이안의 반응에 역으로 두 눈이 멍해지는 이재욱 특급.

그런 그의 반응에도, 전이안은 계속해서 이해할 수 없는 넋두리를 이어갔다.


“인생 나름 개썅 마이웨이로 살아왔었는데···. 성수동 벌꿀오소리였는데···. 누가 뭐라던 내 마음 가는 대로 스껄하며 살았는데···.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는 오뚜기 삼분 카레였는데···. ”


전이안의 의미 모를 중얼거림이 지속되었고, 그것을 듣기 싫었던 이재욱 특급은 고개 숙인 그의 뒤통수를 한 대 내리치며 입을 닫게 했다.


“이상한 소리는 그만하고, 어쨌든 지금의 너는 일반적인 인간과는 속이 다르다는 말이다. 인간의 몸으로 수많은 요괴를 품은 꼴이라고. 그러니 알아서 셀프케어 잘해.”


“뭘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 명상이라도 해볼까요?”


“임무를 나가게 될 때, 되도록 단독으로 나가거나 너의 퇴마술식(退魔術式)을 알고 있는 이들과 행동해. 나나 송민지 특급 같은. 나머지는 너의 술식(術式)을 보자마자 오늘과 같은 반응을 보일 게 뻔하니까.”


“···송민지 선배, 아니 특급은 뭔가 같이 있기 불편하던데.”


“뭔지 알아. 그 특유의 차가움.”


“맞다. 임무 이야기가 나와서 갑자기 생각났는데, 송민지 특급이 오늘부터 엄청 바빠진다고 했는데 뭐 별다른 스케줄이 없던데요?”


“너, 오늘 아침 수련 안 나갔냐?”


의식의 흐름대로 대화를 이어가던 전이안의 제정신이 돌아왔다.

그는 알람을 못 들었다는 등의 변명을 늘어놓으며 자기방어를 시도했지만, 이재욱의 주먹은 다시금 전이안의 뒤통수를 후렸다.

같은 곳을 두 대나 맞은 전이안은 뒤통수를 손으로 비비며 입으로는 물 끓는 소리를 내었다.


‘뭐, 솔직히 녀석에게 일반 퇴마사들과 같은 레벨의 수련은 필요 없어 보이긴 하다만.’


겉으로는 뭔가 모자란 듯 행동하는 전이안을 응시하는 이재욱 특급.

남들이 볼 때에는 정말로 뭔가 요상하게 보일 수 있는 그의 언행이지만, 적어도 이재욱의 눈에는 달랐다.


인간의 몸으로 요괴를 품은 자.

전이안은 전례 없는 존재이니까.


‘때마침 오늘 한가하긴 한데···.’




***




“오···. 경치 예술이다.”


이재욱 특급을 따라 나와 전이안이 향한 곳은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 삼은 대련장.

앞서 설렘 가득 담긴 발걸음으로 대련장 곳곳을 누비는 전이안과 달리, 이재욱 특급은 뒤에서 묵묵히 무언가를 준비했다.

그가 준비하던 것은 바로 퇴마구(退魔具).

한국을 대표하는 검, 환도의 형태를 띤 검이었다.

뒤에서 서늘한 날붙이의 감각이 느껴지자, 전이안의 설렘 또한 서서히 사라지며, 천천히 고개를 뒤로 돌렸다.


“···뭐 하시게요, 아저씨?”


“뭐긴 뭐야. 아침 수련 빼먹은 놈 보강 수업이지.”


“근데 그걸 특급인 아저씨가 진검을 뽑은 채로 한다고요?”


“거기다가 퇴마술식(退魔術式)도 사용할 거야. 뭐, 어차피 너한테 통하지는 않지만.”


맑은 하늘에 날벼락처럼 떨어진 보강 수업.

대학교에서도 들으면 멘탈이 나가는 소식을 산속에 와서도 들어버렸다.

게다가, 그 보강 수업을 진행하는 이는 현 퇴마계(退魔界) 최강의 남자다.

일전에 단순 체술(體術)로도 이기지 못한 상대가 이번에는 퇴마구(退魔具)로 무장까지 했다.


갑작스러운 전개로 인해 귀차니즘에 빠져 의욕을 상실한 전이안.

그런 전이안의 마음을 알았는지, 이재욱 특급은 검의 끝으로 어딘가를 가리켜 그의 시선이 향하도록 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조선 시대 사람들이 입었을 법한, 흑백색의 도사복 한 벌이 나뭇가지에 걸려있었다.


“마음가짐을 달리하기 위해서는 복장부터 바뀌어야 하는 법이다. 네 것이니 어서 갈아입어. 뭐, 끽해봤자 임무 때나 입겠지만.”


“와! 나 이런 옷 엄청나게 입어보고 싶었-. 근데 여기서 갈아입으라고요?”


“어차피 너랑 나 둘뿐이잖아. 사내자식이···. 혹시 자신이 없나?”


‘아저씨 주제에···. 난 지금이 전성기인데···.’


혈기 왕성한 나이대인 자신보다 팍 시들었을 아저씨의 도발에 당당하게 그 자리에서 옷을 갈아입는 전이안.

확실히, 복장이 달라지니 새삼, 퇴마사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 실감 되었다.

그리고, 이재욱 특급의 서슬 퍼런 칼날이 자기 목을 겨냥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목뼈가 시리도록 잘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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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괴 품은 퇴마사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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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벽화마을 전투 (5) NEW 10시간 전 2 0 12쪽
17 벽화마을 전투 (4) 24.09.17 3 0 12쪽
16 벽화마을 전투 (3) 24.09.16 3 0 12쪽
15 벽화마을 전투 (2) 24.09.15 5 0 12쪽
14 벽화마을 전투 24.09.14 6 0 12쪽
13 다시 혼돈 속으로 24.09.13 7 0 12쪽
12 스승과 제자 24.09.12 6 0 12쪽
11 끊이지 않는 위협 24.09.11 8 0 13쪽
10 새로운 애제자 24.09.10 8 0 12쪽
» 믿을 사람은 스승 뿐 24.09.09 8 0 12쪽
8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 24.09.08 8 0 12쪽
7 이상한 신입생 24.09.07 8 0 11쪽
6 첫 번째 날 24.09.06 10 0 12쪽
5 퇴마술식(退魔術式) 24.09.05 10 0 12쪽
4 퇴마사 24.09.04 10 0 13쪽
3 처형식 24.09.03 10 0 12쪽
2 잘못된 만남 24.09.02 15 0 12쪽
1 혼돈과 퇴마사 24.09.01 25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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