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괴 품은 퇴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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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31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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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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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2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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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과 제자

DUMMY

“감상은?”


짙은 연기를 내뿜으며 전이안의 답을 기다리는 이재욱 특급.

전이안은 천천히 자신의 처형에 관한 내용이 담긴 종이를 훑어본 후, 이재욱 특급의 질문에 본인의 질문으로 맞받아쳤다.


“역으로 아저씨의 감상은 어떤데요?”


“음?”


“이런 거, 분명 저에게는 알려지면 안 될 사실인데 보여준 의도가 있으실 거 아니에요.”


전이안의 질문에, 이재욱 특급은 지루한 답변만을 늘어놓았다.


특급 퇴마사를 제외해서는 외부 발설 정보라는 것, 앞으로 많은 퇴마사가 지금보다도 전이안을 좋게 대하지 않게 될 것, 끈끈한 유대감이 형성된 퇴마계(退魔界) 속에서 전이안은 철저하게 혼자가 되게 될 것, 결국 전이안의 존재는 퇴마계(退魔界)의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 등.


이미 전이안이 알고 있거나, 전이안이 질문한 내용에 확답하는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어쩌라는 거에요?”


답답했던 나머지, 이재욱 특급의 말을 끊는 전이안.


“퇴마계(退魔界) 쪽에서 저를 그렇게 보고 있다면 전 지금 당장이라도 이곳에서 벗어나야 하는 신분이잖아요. 아저씨를 비롯해 다른 특급 퇴마사들까지 모조리 죽이는 건 불가능하다 할 지라도 도망치는 것만큼은 가능해요. 아저씨도 이 사실을 모를 일 없을 테고요. 근데도 저에게 이 내용을 알려준 데에는 이유가 있을 거 아니에요, 진짜 이유가.”


“···웬일로 말을 길게 하네.”


“빨리 아저씨가 원하는 게 뭔지나 알려주세요. 후딱 도망가기 전에.”


이재욱 특급은 잠시 말없이 전이안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중년의 그윽한 눈빛이 부담스러웠던 전이안은 순간 자기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그 모습에 이재욱 특급은 빵 터지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하하하~. 그래. 그런 점이 좋다니까~.”


계속해서 전이안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지 않는 이재욱 특급.

한참을 크게 웃던 그는 담뱃불을 끄며 웃음을 멈추고 진지한 목소리와 함께 입을 뗐다.


“난 네가 이대로 퇴마계(退魔界)에 남아주었으면 해.”


“쓰다 버리는 사냥개로서요?”


“아니. 그건 협회 측에게 있어서의 이야기고. 난 이 내용에 내 의견이 반영되었다고 말 한 적 없어.”


이재욱 특급은 조목조목 자신의 생각을 전하기 시작했다.


[네가 쓸쓸해지기를 원하지 않지만, 상황이 이러하니 주변의 쌀쌀함에 상처받지 말기를 바란다.


[당장의 기분이나 마음이 아닌 대의를 생각해줬으면 한다.]


[내가 직접 너를 맡았을 정도로 너는 재능있는 퇴마사니 이대로 잘 성장하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내가 널 죽게 만들지 않을 거다.”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잠깐의 정적 이후, 전이안은 다시금 이재욱 특급에게 질문했다.


“···아저씨가요?”


“내가 널 죽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라고. 혼돈이 끝나면 너를 도망시키던가, 너의 사후 요괴의 처리에 관한 아이디어를 제공하지 않는다던가, 뭐라도 해서 네가 죽는 미래를 없앨 거다.”


“왜 그렇게까지 해주는 거예요?”


가장 근본적인 의문이었다.

이재욱 특급은 퇴마계(退魔界)에 소속된 사람이자, 그쪽에서도 가장 강하고 입김이 강력한 인물이다.

그런 인물이 요괴를 품는 이질적인 존재를 굳이 감싸줄 필요가 없다.

자신의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전이안을 감쌀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의문이 매우 근본적이고 단순했던 만큼, 그 답 또한 매우 근본적이고 단순했다.


“너는 내 제자니까.”


항상 손익만을 따지던 전이안은 이재욱 특급의 답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저, ‘현 퇴마계(退魔界) 최강이 내 편에 서주니 일단 살았다.’와 ‘믿어도 될까?’라는 두 가지 생각이 머리 위로 떠오를 뿐이었다.


“지금 당장은 이해가 안 되겠지만, 너도 실전을 겪어보면 알게 될 거야. 우리 퇴마사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서로를 아끼고 신뢰하는지.”


이재욱 특급은 새끼손가락을 전이안의 얼굴 앞으로 들이댔다.

이제껏 보이지 않았던 온화한 미소와 함께.


“그러니 일단 믿어줘. 이 아저씨는 언제까지나 네 녀석의 편이라는 걸.”


전이안은 선뜻 이재욱 특급의 새끼손가락에 자기 손가락을 걸지 못했다.

머뭇거리는 그의 모습을 보고 이재욱 특급은 조금은 답답해하며 내밀은 손가락을 격하게 흔들었다.


“···역시 못 믿겠는데요.”


솔직하게 자신의 감상을 내뱉는 전이안.

그러나, 그 말에도 불구하고 이재욱 특급의 새끼손가락은 꺾이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널 믿는 거야.”


“그게 뭔데요 도대체.”


“아이씨! 사나이들끼리 꼭 이런 걸 말로 구구절절 설명해야 하나!!”


결국 참다 참다 폭발해버린 이재욱 특급.

그는 자신이 어째서 전이안을 신뢰하는지 결국 이유를 하나하나 나열했다.


퇴마사에게 가장 중요한 ‘강함’.

그 정도의 강함을 가지고도 과시하지 않고 역으로 조용히 행동하는 점.

고택에 와서 여러모로 동료들에게 안 좋은 취급을 받았음에도 이에 전혀 개의치 않은 점.

그리고 무엇보다도, 전이안이 퇴마술식(退魔術式)을 깨닫기 전, 유일하게 그의 속을 꿰뚫어 볼 수 있었을 때 보았던 그의 야망과 책임감.


이 모든 것들이 이재욱 특급이 좋아하는 요소였다.

그리고,


이재욱 특급에게는 이러한 제자가 과거에 한 명 있었다.


“너만큼은 제대로 키우고 싶다는 내 이기심이 좀 크긴 해.”


“그 과거의 제자란···.”


“그래. 미륵지영(彌勒之影)의 강우현이라는 녀석이다.”


강우현.

반(反) 퇴마 협회(退魔協會) 성향의 조직, ‘미륵지영(彌勒之影)’의 리더인 전 특급 퇴마사.

그 또한 이재욱 특급의 제자였다.

그리고, 전이안과 같은 성격을 지닌 인물이었다.

강함을 과시하지 않으며 조용히 지내지만, 그 누구보다도 야심과 책임감이 강한 인물이다.

그러나, 그의 야망과 책임감은 결국 다른 길로 새어버리고 말았다.

이재욱 특급은 강우현의 변질로 인해 스스로에게 많은 실망을 하였고.


그렇기에, 강우현과 닮은 전이안 만큼은 어떻게든 올바르게 키워내 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 것이다.

어쩌면, ‘쓰다 버리는 사냥개’라는 위태로운 위치에 있음을 알게 되었음에도 흥분하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한 전이안에게 더 눈길이 갔을지도 모른다.


“꼭 관묘안(貫妙眼)을 통해서만 사람을 바로 볼 수 있는 건 아니야. 오히려 틀릴 때도 있지. 하지만 너는···. 너는 강우현과는 다를 거라는 기대심을 들게 해. 사랑이든 저주든, 모두 잘 짊어질 수 있을 정도로 강한 인격을 지닌 거 같다 이 말이야. 생각해 봐. 누구든 그 지옥도를 보게 되면 바로 정신을 잃을 법한데 너는 멀쩡하잖아?”


“너무 과대평가하시네. 그냥 제 퇴마술식(退魔術式)의 디폴트 값일 뿐인데.”


“과대평가가 아니고 인마! 남들은 절대로 볼 수 없고 이해 못 해주는 부분을 난 봤으니까 하는 말이지! 하여튼, 너는 너무 태연해서 탈이야.”


혀를 차는 이재욱 특급.

그러나, 그의 말투에는 깊은 신뢰와 동료애가 담겨있었다.

기대심 또한 함께.


전이안 또한, 이재욱 특급의 반응을 살피며 조금은 표정이 풀렸다.

‘믿어도 되겠다.’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굳이 자신을 좋게 봐주겠다는데, 마다할 필요가 없었다.


“그럼, 나중에 모든 상황이 잘 풀리고 나서 제 목숨 알아서 챙겨주세요.”


“오냐. 백번이고 챙겨주마. 의심 많은 제자 놈아.”


이번에는 새끼손가락 따위 필요 없었다.

그저, 서로 실실 웃으며 찻잔을 부딪칠 뿐이었다.


“앞으로 함께 고생 좀 하자, 퇴마사 전이안.”


“낯간지러운 호칭이네요.”


“그럼 너도 나한테 스승님이라고 해봐.”


“뭔 사내들끼리···. 소꿉놀이도 아니고···.”


“반응이 너무 맛없네. 됐다. 그냥 내 등이나 바라보면서 따라와.”


“어차피 이젠 아저씨 등을 따라가는 거 말고는 살길이 없는걸요, 뭐.”


끝까지 자신을 스승이라고 부르지 않는 전이안의 머리통을 가볍게 한 대 때리는 이재욱 특급.

전이안은 순순히 자기 머리를 내주며 홀짝 차를 마셨다.


‘그래도 이 시린 벌판에 아군이 있어서 다행이네.’


그래도 내심, 이재욱 특급의 보호가 고마운 전이안.

애초에, 이재욱 특급이 없었더라면 진작에 죽었을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퇴마술식(退魔術式)을 깨우치지도 못하고, 야망을 이뤄 볼 기회조차 손에 잡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전이안도 본인 나름대로 속으로 다짐했다.

이재욱 특급이 자신을 믿어주는 만큼, 자신 또한 이재욱 특급을 실망하게 하지 않기로.




***




‘······.’


별관 밖에서 우연히 둘의 대화를 엿듣게 된 송민지 특급.

그녀는 짧은 한숨과 함께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녀의 목적지는 고택 밖, 큰 소나무가 자리 잡은 절벽.

절벽 위에는 또 다른 특급 퇴마사인 백승훈이 앉아있었다.


“임무는 잘 끝났나 봐요?”


“···그래. 그보다, 급보가 있어.”


송민지 특급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한 백승훈 특급은 조용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무언가를 속삭였다.

급격하게 표정이 어두워지는 송민지 특급.

백승훈 특급 또한 살의가 가득한 표정과 함께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드디어 움직이나 보네요.”


씁쓸한 목소리의 송민지 특급.

백승훈 특급은 그저 아무런 말 없이 한숨만을 내쉬었다.

그렇게 수 초간 침묵이 흐르다가, 백승훈 특급은 무언가가 떠올랐다는 듯 대뜸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요괴를 흡수하는 신입은 당장 쓸만한가?”


“네. 이재욱 대선배님께서 잘 봐주신 덕분에. 솔직히, 상급이 아니라 감히 특급이라고 해도 될 정도의 잠재력을 지닌 거 같던데···.”


“쓸만하다니 다행이네. 조만간 실전인데, 좋은 때에 와줬네. 뭐, 본인 딴에는 최악의 타이밍이겠지만.”




***




어슴푸레한 달 아래.

이화동 벽화마을 내부 어느 건물.

그 건물의 안에서는, 어째서인지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는 수많은 고통 섞인 비명과 괴성이 난무했다.


바닥을 적시는 피 웅덩이 위에는 인간의 모습을 한 존재 두 명이 나란히 서서, 고통스럽게 사지가 절단되는 사람들을 감상하고 있었다.


“이번 제물들은 소리가 맑네.”


“소리고 나발이고 먹을 게 많아서 좋은데? 그보다, 여자 제물 좀 데려오지. 먹기 전에 다른 의미로 먹어보며 재미 좀 보고 싶은데~.”


한 존재는 어둠 그 자체의 색을 지닌 작은 존재.

한 존재는 달빛 아래 금색의 머리가 빛나는 존재였다.

둘은 무언가에 홀린 듯이 두 눈에 흰자가 사라진 인간들을 부리면서 ‘제물’로 칭해지는 사람들의 사지를 계속해서 절단하였고, 절단한 신체는 상반신은 방 한 곳에 모아두도록 시켰다.


“그보다, 드디어 나타났다던데? 열쇠.”


“알아. 이미 들었어.”


“그래서 두억시니 그놈의 표정이 요즘 풀린 거구나~! 참 나. 우리들의 머리라는 놈이 열쇠 하나에 그리도 쉽게 마음을 휘청거리다니. 크하하하~!”


금빛의 머리를 한 자는 호탕하게 웃으며 자기 발 앞에 떨어진 사람의 팔을 주워다 갈비 뜯듯 씹어먹었다.

옆의 어둡고 작은 존재는 그런 금빛 머리를 한심하게 바라보며 한마디 했다.


“이제는 좀 진지해져야 한다고. 마지막 열쇠가 나타난 만큼 실수가 용납돼서는 안 돼.”


“그래야지. 이제 단 한 발짝인데. 퇴마사들 전부 먹어 치우고 우리 세상을 열어야지, 암!”


금빛 머리는 피범벅이 된 입가를 닦아내며 그윽하게 달빛을 바라보더니, 송곳니 가득히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달을 향해 손을 뻗었다.


“뒤집으러 가자. 지하와 지상의 경계를.”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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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벽화마을 전투 (4) 24.09.17 3 0 12쪽
16 벽화마을 전투 (3) 24.09.16 3 0 12쪽
15 벽화마을 전투 (2) 24.09.15 5 0 12쪽
14 벽화마을 전투 24.09.14 6 0 12쪽
13 다시 혼돈 속으로 24.09.13 7 0 12쪽
» 스승과 제자 24.09.12 7 0 12쪽
11 끊이지 않는 위협 24.09.11 8 0 13쪽
10 새로운 애제자 24.09.10 8 0 12쪽
9 믿을 사람은 스승 뿐 24.09.09 8 0 12쪽
8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 24.09.08 8 0 12쪽
7 이상한 신입생 24.09.07 8 0 11쪽
6 첫 번째 날 24.09.06 10 0 12쪽
5 퇴마술식(退魔術式) 24.09.05 10 0 12쪽
4 퇴마사 24.09.04 10 0 13쪽
3 처형식 24.09.03 10 0 12쪽
2 잘못된 만남 24.09.02 15 0 12쪽
1 혼돈과 퇴마사 24.09.01 25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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