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괴 품은 퇴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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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8.31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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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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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8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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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마을 전투 (5)

DUMMY

김다솜 상급의 독목불성림(獨木不成林)이 만들어낸 수풀 속, 송민지 특급은 잠시 말을 잃었다.

과거, 그녀가 중급 퇴마사였을 때, 사고로 1급 요괴인 구미호와 만나 한차례 전멸당했던 기억이 구역질처럼 머릿속을 역류하였기 때문이다.

당시 유일한 생존자였던 그녀는, 자신의 나약함과 동료들의 죽음에 좌절한 채, 수많은 시간을 허송세월 보냈었다.

그랬던 그녀가 현재 특급 퇴마사의 위치까지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줄곧 신뢰를 준 이재욱 특급 덕이었던 것이고.


이러한 과거 때문에, 송민지 특급은 1급 요괴에 대한 트라우마를 여전히 지니고 있다.

그리고 지금, 전이안과 대치하고 있던 요괴가 1급 요괴라는 사실에 다시금 그 트라우마가 그녀의 눈과 귀를 멀게 하던 찰나.


“집중해-!!”


번개처럼 떨어지는 전이안의 목소리.

송민지 특급의 어깨를 붙잡고 흔드는 전이안.

빛이 들어온 동태 눈, 날카로워진 눈매, 거친 호흡.

송민지 특급은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표정이었다.


“둘이서 녀석의 ‘시선’에 혼선만 빚어준다면 이길 수 있어! 송민지 특급도 있고, 나의 ‘흡수’ 또한 남아있으니까 어떻게든 해보자고!!”


전의가 불타오르는 전이안.

1급 요괴를 상대로도 두려움 따윈 일절 보이지 않는 그의 모습에, 송민지 특급은 현재와 과거의 자신을 부끄러워했다.


“······‘시선’이라 함은, 저 어둑시니를 올려다보지만 않으면 된다는 거죠?”


격하게 떨리는 호흡과 목소리의 김다솜 상급.

그러나, 그 목소리 안에는 자그마한 용기의 불씨가 일렁이고 있었다.


“그래. 아, 아니. 네. 눈은 마주치지 말고 술식(術式)만으로 교란을 줘서 녀석이 눈 둘 곳을 찾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해요. 저와 김다솜 상급이 녀석의 시선을 끄는 사이 가장 화력이 강한 송민지 특급이 녀석을 공격해서 틈만 만들어준다면 제가 재빨리 흡수할게요.”


“네······! 저, 열심히 해볼게요···!!”


여전히 떨리는 목소리였지만, 각오와 비장함이 넘쳐흐르는 김다솜 상급.

그런 그녀를 다독이며 미소를 짓는 전이안.

그런 둘 사이, 송민지 특급 홀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싸워야 해. 애초에 다 알고, 각오하고 온 거잖아. 1급 요괴와의 전투.’


머리로는 모든 것을 이해했지만, 마음은 계속해서 송민지 특급이 각오를 다짐하는 마지막 한 발짝을 방해하였다.

전이안과 김다솜 상급이 작전을 회의하는 동안에도 입술을 떨며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는 그녀.

명색이 특급 퇴마사인데, 과거에 묶여 그 역할 하나 제대로 수행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원망하고, 또 원망했다.

그런 그녀에게, 김다솜 상급과의 작전 이야기가 다 끝난 전이안이 나지막이 속삭였다.


“두려워할 거 없어요.”


마치 그가 본인의 과거를 다 알고 있다는 듯한 말투에 흠칫한 송민지 특급.


“두려움이야말로 녀석들이 우리에게 원하는 바에요. 그리고, 우리는 절대로 그것을 녀석들에게 허용해서는 안 되는 책임을 지고 있는 존재들이고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는 전이안.

피로 적셔진 그의 등은, 송민지 특급의 눈에는 그 무엇보다도 크고 듬직한 거목과 같아 보였다.


“우리는 퇴마사잖아요? ‘축복’의 책임을 다해야죠.”


잠깐의 정적.

송민지 특급은 그 정적을 코웃음과 함께 깨부수며, 줄곧 움직이지 못하던 마음의 마지막 한 발짝을 내디뎠다.


“···그래. 가자. 퇴마하러.”



‘빌어먹을······.’


상귀하천(上貴下賤)의 효력이 해제된 어둑시니는 자그마한 바위 파편 위에 서서 수풀을 주시하고 있었다.


‘극(極)의 사용으로 마력(魔力)도 얼마 안 남은 데다 열쇠 녀석의 운석으로 인해 마땅히 올라설 곳도 없는데···.’


더 이상 마땅한 상하(上下)가 존재하지 않는 광장.

어둑시니는 주변을 경계하며 두 눈에 불을 켠 채,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사냥감이 먼저 움직이기를 기다리는 맹수와 같이, 상대가 모습을 드러내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드디어 수풀에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지금인가-!’


재빠르게 두 발에 힘을 줘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어둑시니.

찰나의 순간에 상(上)의 위치를 차지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수풀 속에서 사람은 안 나오고 수풀 자체만이 계속 양 갈래로 나뉘어 움직였다.


‘···뭐지?’


독목불성림(獨木不成林).

김다솜 상급의 퇴마술식(退魔術式)으로, 자신을 기준으로 반경 10m 내에 본인을 비롯해 아군 주변을 마력(魔力)이 넘치는 수풀로 에워싼다.

아군의 숫자가 많을수록 수풀과 마력(魔力)의 규모 또한 비례해서 증가한다.


양 갈래로 나뉘어 이동하는 수풀은 김다솜 상급과 전이안.

그러나, 모두 수풀 뒤로 모습이 숨겨져 있기에 어둑시니는 그 안에 누가 있는지 판별이 불가했다.

반면에 수풀 안에 있는 자는 수풀 밖을 볼 수 있는 상황.

김다솜 상급과 전이안은 어둑시니가 바위 파편 위에 서 있는 것을 확인하자, 전이안은 빠르게 어둑시니가 위치한 곳 언저리로 이동한 후, 공간을 만들어내 술식(術式)을 발동했다.


“요괴조술(妖怪操術) - 조(鳥).”


평소와는 다르게, 벌새만큼 작은 크기의 요괴 새를 소환한 전이안.

가까이에서 보지 않으면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작은 새는 빠르게 날갯짓하며 송민지 특급이 숨어있는 수풀로 향했다.


‘확인.’


전이안의 새를 받은 송민지 특급은 새가 날아온 방향으로 술식(術式)을 전개했다.


“백화난만(百花爛漫)!!”


백화난만(百花爛漫).

순백의 꽃잎들을 소환하여, 지휘하는 술식(術式).

특급 퇴마사의 퇴마술식(退魔術式)답게, 꽃잎들 하나하나는 모두 어마어마한 마력(魔力)을 지니고 있으며, 범위 공격의 성능을 지닌 폭발체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어둑시니의 주변을 감싸는 순백의 꽃잎들.

상대가 반응할 틈도 주지 않은 채 대폭발을 일으켰다.


움직이는 수풀로 시선을 빼앗긴 어둑시니는 당연히 폭발에 당하고 말았고, 축 늘어진 몸과 함께 바닥으로 떨어졌다.

상(上)의 위치를 차지했지만, 시선을 마주치지 못했고, 방금 막 극(極)을 사용한 터라 백화난만(百花爛漫)을 상쇄시킬 만큼의 마력(魔力)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 때문에, 어둑시니는 막대한 치명상을 입게 되었다.


‘이 또한 열쇠가 내세운 잔재주···!’


이를 갈며 어렵사리 몸을 일으키는 어둑시니.

그는 빠르게 수풀들을 번갈아 보며 범인(전이안) 찾기를 시작했다.


‘좌측으로 빠져나간 수풀은 나와 거리가 꽤 있었고, 우측으로 빠져나갔던 수풀이 순간 내 근처로 다가왔었지···.’


그렇다면 정답(전이안)은 우측으로 빠져나갔던 수풀.

어둑시니는 곧바로 마력(魔力)을 손바닥에 모아 응축시킨 후, 아까까지 자기 근처에 접근했던 수풀을 노리고자 하였다.

그러나, 백화난만(百花爛漫)에 당한 사이, 근처에 왔던 수풀은 어느새 본래 거리가 좀 있던 좌측 수풀의 근처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러면 또 누가 열쇠인지 모르게 되잖아···?!’


전이안이 내세운 전략.

일명, 야바위.


수적 우위와 김다솜 상급의 술식(術式)을 이용해 정체까지 엄폐한 후, 깔짝깔짝 유효타를 먹이는 전략.

이 전략의 핵심은 현재 유일하게 어둑시니에게 유효타를 먹일 수 있는 송민지 특급이다.


그리고, 어둑시니 또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한 놈은 수풀이나 만드는 놈, 한 놈은 열쇠, 그렇다면 저기 멀리 떨어져 있는 수풀 속에는-’


급하게 마력(魔力)의 방향을 바꾸는 어둑시니.


‘네 녀석이 꽃잎이겠지-!!’


- 우우웅


어둑시니의 악심이 가득 담긴 마력(魔力)이 레이저처럼 방출되어 송민지 특급을 숨긴 수풀을 관통했다.

수풀은 어둑시니의 마력(魔力)에 의해 전부 재가 되어버렸고, 재가 된 수풀 너머 먼지가 일렁였다.

그리고, 먼지 너머 보이는 실루엣은, 공격에 당해 쓰러진 송민지 특급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래. 당연히 여길 노려야지.”


먼지가 걷히고, 먼지 너머에 있던 자와 눈이 마주친 어둑시니.

상대는 요괴로 이루어진 자그마한 벽 위에 간신히 몸을 늘어뜨린 전이안이었다.


“하아···. 하아···. 나, 수풀 너머로 네 눈 진작에 봤다···?”


“그사이에 자리를 바꿨다고-?!!”


어둑시니 몰래 상(上)의 위치를 선점하고 시선을 마주쳐놓았던 전이안.

그로 인해 어둑시니의 악심이 담긴 공격은 전이안에게 통하지 않았다.


어둑시니의 차례는 끝.

다음 차례를 이어받은 사람은 김다솜 상급 옆의 수풀로 이동한 송민지 특급.


“백화난만(百花爛漫) - 극(極)···”


거센 꽃샘추위 때나 느낄 수 있는 공기의 흐름이 송민지 특급을 중심으로 일렁였다.


‘한 번에 끝내야 해···.’


‘할 수 있어요, 송민지 특급···!’


제 역할을 모두 수행한 전이안과 김다솜 상급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송민지 특급을 응원하는 것뿐.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을 거야···!’


그리고, 송민지 특급 또한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최후의, 최강의, 그리고 최대치의 공격을 어둑시니에게 퍼부었다.


“···화란춘성(花爛春盛)!!!”


전이안을 향해 시선을 빼앗겼던 어둑시니 주변에 피어난 수많은 꽃나무.

여름의 끝을 달리는 계절에 피어난 꽃들은 일제히 색을 발하더니, 일전에 전이안이 떨어뜨린 혈광태성(血光太星)을 능가할 정도의 대폭발을 오로지 어둑시니의 발밑에서 일으켰다.


좁은 범위 안에서 석유 터지듯 끝날 줄을 모르며 지속되는 폭발.

대략 1분여의 미친 폭발이 끝나자, 어둑시니는 형태의 절반 이상을 잃은 채, 지면이라는 가장 낮은 자리에 등을 맞대고 있었다.


‘후우···.’


전투 불능의 상태에 빠진 어둑시니를 흡수하기 위해 그에게 다가가는 전이안.

그 무엇보다 강력했던 존재인 1급 요괴가 자기 발아래에 누워있다는 사실에 그는 오묘한 감정을 느꼈다.


“네놈의 잔재주는 끝이 없구나, 열쇠······.”


거친 숨이 많이 섞인 목소리와 함께, 하나 남은 눈으로 전이안을 올려다보는 어둑시니.

그의 모습은 그 무엇보다 작고, 검고, 왜소하고 연약해 보였다.


“이제 그 얼굴에 공포마저 보이지 않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공포를 느낄 시간조차 없었거든.”


“그러냐···. 뭐, 됐다···. 결국 지금은 네놈이 내 위에 섰으니···. 그렇기에,”


반쯤 타들어 간 혀를 내미는 어둑시니.

있는 힘을 모두 목에 집중시켜, 전이안을 향해 마지막 조롱과 악담을 남겼다.


“결국 넌 가장 낮은 곳에서 끔찍한 최후를 맞이할 거다···. 그게 ‘저주’를 떠안게 된 너의 정해진 결말이야···.”


그 어느 때 보다 환한 얼굴을 내비치는 어둑시니.

반면에 전이안은 동요하지 않고, 어둑시니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래? 그럼 내가 그 결말을 바꾸는 걸 내 안에서 지켜봐 줘.”


- 후우욱


전이안에게로 흡수된 어둑시니.

더 이상 이화동 벽화마을에 1급 요괴는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흡수와 함께 몸의 모든 진을 소모한 전이안은 그대로 어둑시니가 누워있던 지면으로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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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괴 품은 퇴마사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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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안녕하세요. 잘 부탁 드립니다. 24.08.31 10 0 -
19 증명 NEW 9시간 전 2 0 11쪽
» 벽화마을 전투 (5) 24.09.18 5 0 12쪽
17 벽화마을 전투 (4) 24.09.17 5 0 12쪽
16 벽화마을 전투 (3) 24.09.16 5 0 12쪽
15 벽화마을 전투 (2) 24.09.15 6 0 12쪽
14 벽화마을 전투 24.09.14 7 0 12쪽
13 다시 혼돈 속으로 24.09.13 8 0 12쪽
12 스승과 제자 24.09.12 8 0 12쪽
11 끊이지 않는 위협 24.09.11 8 0 13쪽
10 새로운 애제자 24.09.10 8 0 12쪽
9 믿을 사람은 스승 뿐 24.09.09 8 0 12쪽
8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 24.09.08 9 0 12쪽
7 이상한 신입생 24.09.07 8 0 11쪽
6 첫 번째 날 24.09.06 10 0 12쪽
5 퇴마술식(退魔術式) 24.09.05 10 0 12쪽
4 퇴마사 24.09.04 10 0 13쪽
3 처형식 24.09.03 10 0 12쪽
2 잘못된 만남 24.09.02 15 0 12쪽
1 혼돈과 퇴마사 24.09.01 25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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