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괴 품은 퇴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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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31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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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마을 전투

DUMMY

이화동 벽화마을.

평소에는 형형색색의 작은 건물들이 모여있는 명소.

그러나, 달 아래에서의 모습은 음산한 미로와 다름이 없었다.

심지어, 앞서 주변을 관할 구역으로 배정받은 조가 결계술까지 펼쳐놓은 탓에, 그 분위기는 대규모 폐가 체험에서나 볼 법한 마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전이안은 천천히 벽화마을을 배회하였다.

대표적인 날개 벽화, 꽃 그림이 가득한 계단들도 있었으나, 좀 더 깊게 파고드니 붉은 글씨로 영문 모를 문장들이 채워진 건물 또한 수두룩했다.


‘작은 건물들이 많은 걸 보니 요괴들이 숨어 지내기 딱 좋은 환경인 거 같은데.’


느껴졌다.

분명, 이곳에 요괴가 존재한다는 것이 감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아직은 심증만 있지, 물증은 없는 상황이다 보니 섣불리 ‘참새’를 통해 다른 조에 지원을 요청하기에는 무리였다.

하는 수 없이, 전이안은 마을의 깊은 곳까지 숨어들어 보기로 했다.


‘너무 음침한데.’


마을의 깊은 곳으로 가면 갈수록 붉은 문장으로 도배된 건물들이 계속해서 등장했다.

그리고, 그 문장들은 하나같이 같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조용히 해주세요]


건물들이 워낙에 가까이 붙어있어 본래 살고 있던 주민들 사이에서 방음 이슈가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의미가 있는 것인지.

전이안은 후자의 가능성을 생각하며 조심히 붉은 문장에 손을 대보았다.


‘굳어있지 않아.’


페인트나 물감으로 쓴 글이라면 진작에 말라 굳었을 터.

그러나, 막상 직접 만져보니 뭔가 끈적하고 기분 나쁜 촉감이 전해졌다.


“설마 피인가···?”


손가락에 묻은 붉은 액체의 냄새를 맡아보는 전이안.

철과 비슷한 냄새가 났다.


“누구지?”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조용히 해달라는 게 무슨 뜻인지 몰라?”


뒤에서 갑작스럽게 들리는 어린 소년소녀들의 목소리.

고개를 돌리자, 키 작은 아이들 열댓 명이 모여 전이안을 응시하고 있었다.


결계가 쳐진 곳에 마력(魔力)이 존재하지 않는 일반인들은 들어오지 못한다.

결계 안에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전이안을 응시하는 아이들은 어째서인지 결계 안에서 태연하게 말하고, 움직이고 있었다.


“나 배고파.”


“나도.”


“저거 먹자. 저거.”


갑자기 배고픔을 호소하는 아이들.

그들 중 하나가 먹을 것을 발견하고 손가락을 뻗었다.

그 손가락의 끝이 향한 곳은 바로 전이안이었다.


“···맛있겠다.”


한 아이가 속삭이자, 정적이었던 다른 아이들의 머리가 비정상적으로 커지더니, 괴이한 소리를 내며 전이안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태자귀인가.”


태자귀.

잔인하게 죽은 어린아이의 귀신이라고 알려져 있다.

아기가 납치되어 아사 직전까지 몰리다가 음식을 앞에 두고 온몸이 절단되며 죽어서 탄생한다는 귀신이라 전해진 바 있다.

위의 내용은 ‘본래의 태자귀란 이러한 존재다.’ 정도의 설명이고, 퇴마계(退魔界)에서는 무리 지어 다니는 아이 형태의 요괴로 통용된다.

눈에 보이는 것은 닥치는 대로 씹어먹는 하이에나 무리와도 같다고 보면 된다.

등급은 2등급.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키야악-!!”


거대해진 머리와 날카로운 이빨과 함께 전이안에게 돌진하는 태자귀들.

전이안은 재빠르게 태자귀들의 공격을 하나하나 피한 후, 날아오던 한 명의 태자귀의 다리를 잡아 빙빙 돌며 태자귀 무리를 향해 냅다 던졌다.


그러나, 2급 요괴에게 평범한 공격이 먹힐 리는 만무.

잠시 전선이 흐트러진 태자귀들은 빠르게 다시 일어나 전이안을 씹어먹기 위해 다시금 달려들었다.


“오자마자 홀로 2급 요괴를 만나다니···.”


건물의 지붕 위로 피신한 채, 자신을 향해 다시금 날아오는 태자귀들을 내려다보는 전이안.

일반적으로는, 상급 퇴마사 홀로 2급 요괴를, 그것도 상위권인 태자귀 무리를 만난 것은 최악의 상황이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전이안은 너무도 여유로웠다.


“···요놈들, 맛있겠네~.”


상위권 2급 요괴의 마력(魔力)을 흡수할 생각에 입맛을 다시며 미소를 짓는 전이안.

그는 곧바로 한 손을 펼쳐 거대한 검은 공간을 생성했다.


“요괴조술(妖怪操術) - 공(蚣).”


각 손가락과 손바닥에서 생겨난 검은 공간들이 합쳐져 탄생한 대형 문에서 이전보다 더 거대해진 요괴 지네 세 마리가 튀어나와 태자귀들을 덮쳤다.


“으에엑-!!”


지네들의 공격에 무참히 당해버리는 태자귀들.

그러나, 그들 중 몇몇은 전이안이 소환한 지네마저 씹어 먹으며 길을 트고자 했다.


“대단한 집념이네. 이게 아기가 지닌 식욕에 대한 한인가.”


건물 지붕에서 여유롭게 태자귀들의 무서움을 감상하는 전이안.

그는 이번엔 양손을 머리 위로 올리며 열 손가락에 검은 공간을 생성했다.


“절단된 아기의 시체가 불에 태워진 후에 궤짝에 넣어져야 태자귀가 만들어진다고 했었나?”


전이안을 먹기 위해 지네들을 전부 씹어 먹어낸 태자귀들.

그러나, 그들의 앞에 어두운 벽화마을을 뜨겁게 밝히는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럼 다시 한번 태워보자. 너네들의 사지.”


- 화르륵


불꽃이 타오르는 소리.

전이안의 열 손가락에는 제법 큰 크기의 불화살들이 생성되어 태자귀들을 겨냥하고 있었다.


“요괴조술(妖怪操術) - 화전(火箭).”


눈 깜빡할 사이에 모든 태자귀의 몸을 꿰뚫은 불화살.

몸에 불이 번지자, 태자귀들은 하나같이 고통스러운 소리를 내며 지면에 몸을 나뒹굴기 시작했다.

전이안은 천천히 지붕에서 내려와 몸이 타들어 가는 고통에 시달리는 태자귀들에게로 다가갔다.


“역시 2급 요괴라 그런지 마력(魔力)이 상당하네.”


태자귀들은 자신들의 마력(魔力)으로 어떻게든 전이안의 불화살을 상쇄하고자 발버둥 쳤다.

확실히, 이대로 시간만 넉넉하게 주어진다면 태자귀들은 몸에 붙은 불을 진압하고 다시 전이안을 노릴 수 있다.

그러나, 그 시간을 줄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은 불화살의 주인인 전이안이다.

그리고 당연히 그는 시간을 줄 생각 없다.


“잘 받아 갈게. 너희들의 마력(魔力).”


전이안이 태자귀들을 향해 손을 뻗자, 다시금 생성된 검은 공간이 불덩어리 상태인 그들을 모조리 빨아들였다.


‘후우-. 이거, 제때 오지 않았다면 민간인들의 피해가 장난 아니었겠네.’


제법 강력한 저주와 한을 깃든 요괴를 흡수해서인가, 잠시 빈혈이라도 온 듯, 전이안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근처 벽에 몸을 기댔다.


‘그보다, 2급 요괴를, 심지어 그중에서도 상위권인 태자귀 무리를 나 혼자 쉽게 밟아버렸는데 이 정도면 특급 달아 줘야 하는 거 아니야?’


2급 요괴를 상대할 때 필요한 상급 퇴마사의 수는 최소 두 명.

물론, 개인의 역량에 따라 평균 수가 바뀌긴 하겠지만 퇴마사들이 보통 삼인 일조를 이루는 것을 미루어 볼 때 상급 퇴마사가 혼자서 2급 요괴를 상대하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다.

적어도 특급 퇴마사 레벨은 되어야 여유롭게 2급 요괴를 퇴마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 사실을 전이안 본인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본인을 향한 퇴마계(退魔界)의 처우가 좋지 않기에 특급 퇴마사가 될 수 없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이재욱 아저씨만 아니었어도 진짜로 진작에 때려치웠다.’


두통이 가시자, 전이안은 ‘참새’를 소환해 마력(魔力)을 불어넣어 다른 조들에 상황을 브리핑했다.

돌아오는 답변은 영 시원치 않았다.

참새 너머로 ‘괴물 새끼···.’ 등의 목소리와 비슷한 반응들이 들려왔다.

전이안은 욱함을 삭이며 지원이 필요한 조는 없는지 되물었으나, 대충 ‘응.’ 정도의 답변만이 돌아왔다.


‘그래도 뭐···. 그동안 줄곧 꿈꿔왔잖아, 퇴마사가 되기로. 열심히 하기만 하자.’


올라오는 분을 마인드 컨트롤을 통해 삭히던 와중, 참새를 통해 또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단 계속 그쪽을 수색해줘. 무슨 일이 생기면 다시 연락해.”


그나마 익숙한 목소리가 사람답게 대답해 주었다.

송민지 특급이었다.




***




송민지 특급을 비롯해, 그녀의 조원인 김다솜 상급 퇴마사는 이화동에서 비교적 가까운 혜화동 쪽을 수색하던 중이었다.


“엄청나네요···. 단신으로 태자귀를 퇴마하다니. 역시 이재욱 특급님께서 아끼시는 제자는 다르다 이 말인가요!”


김다솜 상급은 전이안의 활약에 놀라워하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반면에, 송민지 특급은 당연한 일이라는 듯, 별다른 반응 없었다.


“혹시나 저희가 잘못 봤던 건 아닐까요? 전이안 상급의 강함이나, 그에 대해서 여러모로 오해를-”


“임무 중이니 불필요한 이야기는 되도록 하지 말아줘.”


김다솜 상급의 말을 단호하게 끊는 송민지 특급.

그녀의 반응에 김다솜 상급의 눈은 금방 시무룩해졌다.


‘임무가 진행될수록 녀석이 해내는 업적이 많아질 테고, 그만큼 녀석을 다시 보는 퇴마사들이 생기겠지. 하지만 그렇게 되면···.’


고심에 빠진 표정을 짓는 송민지 특급.

그녀는 전이안의 처형 건에 대해 아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리고, 이재욱 특급이 전이안의 편에 서 있다는 사실을 아는 유일한 사람이다.


이재욱 특급의 제자로서, 퇴마계(退魔界)의 특급 퇴마사로서 그녀는 갈등의 갈림길에 서 있다.

특급 퇴마사로서, 전이안의 처형 건에 대한 책임을 맡은 사람으로서 그녀는 그동안 전이안을 차갑게 대해왔다.

그러나, 이재욱 특급의 제자로서, 그녀는 전이안이 토사구팽당하는 꼴을 보기 원치 않아 한다.

스스로 무언가를 선택할 수 없는 자신의 신분에 무력감을 느낀 송민지 특급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전이안에게 정을 주지 않는 것뿐이었다.


‘그래도 지금은 임무 중이니까···.’


송민지 특급은 급하게 움직이던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녀의 급정지에 김다솜 상급 또한 따라 멈추고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위로는 그만 올라가고 창경궁 쪽으로 내려가자. 태자귀가 나타났던 이화동이랑 가까우니 뭔가 있을 거야. 전이안 상급에게 지원받거나, 지원 가기도 편할 테고.”


“네!”




***




벽화마을 심층부에 다다른 전이안.

그의 앞에는 이전과는 다르게 넓은 광장과 피의 냄새가 유독 짙은 건물이 한 채 덩그러니 있었다.


“또 제물이 스스로 찾아왔나?”


“아니야. 퇴마사야.”


“그래? 어? 근데 진짜 퇴마사 맞아···? 느껴지는 마력(魔力)은 우리의 것이랑 비슷한데?”


“그러게. 마력(魔力)의 속성이 퇴마사들의 길(吉)이 아니라 우리들의 흉(兇)이야.”


영문 모를 대화를 나누며 건물의 검은 문에서 나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두 존재.

한 명은 온몸이 새까만,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근육질의 거구에 거칠고 긴 금발 머리와 날카로운 송곳니를 가진 사내였다.


“잠깐만, 저 얼굴은···.”


“······어라? 녀석이다! 녀석이잖아~! 맞지~?!”


달빛 아래 비친 전이안의 얼굴을 보고는 미소를 짓는 검은 아이, 그리고 흥분하며 기뻐하는 금발의 사내.


반대로, 전이안의 표정은 급속도로 차갑게 굳어져 갔다.

요괴에 관련된 서적이나 도감을 통해 본 적 있는 얼굴들이었기 때문이다.

둘은 모두 ‘1급 요괴’로 등재되어 있던 요괴들.


바로 어둑시니와 금돼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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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벽화마을 전투 (5) NEW 10시간 전 2 0 12쪽
17 벽화마을 전투 (4) 24.09.17 3 0 12쪽
16 벽화마을 전투 (3) 24.09.16 3 0 12쪽
15 벽화마을 전투 (2) 24.09.15 5 0 12쪽
» 벽화마을 전투 24.09.14 5 0 12쪽
13 다시 혼돈 속으로 24.09.13 6 0 12쪽
12 스승과 제자 24.09.12 6 0 12쪽
11 끊이지 않는 위협 24.09.11 7 0 13쪽
10 새로운 애제자 24.09.10 7 0 12쪽
9 믿을 사람은 스승 뿐 24.09.09 7 0 12쪽
8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 24.09.08 8 0 12쪽
7 이상한 신입생 24.09.07 7 0 11쪽
6 첫 번째 날 24.09.06 9 0 12쪽
5 퇴마술식(退魔術式) 24.09.05 9 0 12쪽
4 퇴마사 24.09.04 9 0 13쪽
3 처형식 24.09.03 9 0 12쪽
2 잘못된 만남 24.09.02 14 0 12쪽
1 혼돈과 퇴마사 24.09.01 23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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