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호 소장(3)>
<황성호 소장(3)>
3미터의 거구가 휘두르는 검기 실린 장군도.
뱀파이어는 머리 위에서 내리꽂는 그것에 경악했다.
“본 골렘이 도대체 어째서 여기에?!”
“춘춘식식이이는는남남자자이이름름-!”
“말도 제대로 못 하는 놈 따위가 감히 날 공격해?!”
푸확!
발치에서 솟구친 시뻘건 화염이 장군도를 막았다.
그 속에 담긴 쇳조각들이 방패가 되어 장군도를 저지하려 들었다.
그러나 설령 그게 C랭크의 마법이라고 해도, 춘식이의 등급도 그에 못지않다.
더군다나 근접전 전문의 본 골렘이 뿜어낸 검기.
그걸 완전히 막아내는 건, 적어도 공격 마법으로는 무리였다.
콰직!
마법이 두 조각으로 갈라졌다.
대경한 황성호가 급히 안개화를 통해 피하려고 했으나, 그게 무적의 회피기는 아니었다.
마침내 내려온 장군도가 놈을 베었다.
서걱!
“크아아-!”
절단된 왼팔을 부여잡으며 비명을 내지르는 황성호.
뱀파이어는 해골과 달리 고통을 느끼는 언데드다.
그래서인지 녀석의 비명은 처절했다.
오러에 지져진 팔은 그 특유의 재생력까지 틀어막아 팔의 복구를 저지했다.
반면 그 상대는 멈출 줄 모르는 존재.
춘식이는 다시 장군도를 휘둘렀다.
“나나쁜쁜놈놈은은죽죽어어라라.”
끼아아악-!
오해하지 않길 바란다.
내가 지른 비명이 아니다.
춘식이의 데스 오러에서 뿜어지는 귀곡성이다.
중급 이상의 언데드에게서 종종 들리는 소리다.
물론 나도 비명을 지를뻔하긴 했지.
‘춘식이 저거 지금 나보다 강한 거 아닌가?’
솔직히 말해서 잘 모르겠다.
그래서 결국 계획까지 틀어졌다.
원래는 나도 이때쯤 돌격하려고 했는데 말이지.
내 예상보다 언데드 강화의 위력이 너무 강력하다.
“그냥 지켜볼까?”
그게 좋을 것 같네.
솔직히 나서기 좀 찝찝하거든.
그러니까, 지금 춘식이의 눈빛 말이다.
“나나는는남남자자가가아아니니야야-.”
검은 눈구멍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감정.
같은 해골이라서 알 수 있다.
저건 뼛속 깊이 새겨진 원한이 올라오는 상태다.
아마 지금 눈에 뵈는 게 없을걸?
더 최악인 건 왠지 저 감정이 황성호를 향한 게 아닌 것 같다는 점이다.
‘지금 가면 왠지 나까지 쪼개려고 할 것 같은데?’
쟤가 뭐라고 하는지만 제대로 들렸어도 판단하기 편할 텐데.
안타깝게도 지금은 제대로 알아먹을 수 없는 상태다.
춘식이의 목소리가 마치 메아리치듯 중첩돼서 들렸으니까.
더군다나 거기에 귀곡성이 섞이니 어떻게 알아듣냐고.
아무것도 모르고 폭주하는 언데드 근처에 가는 건 아주아주 미련한 짓이란 말이지.
“남남자자몸몸싫싫어어-.”
스팟!
멈추지 않고 이어지는 장군도의 참격.
황성호도 어찌저찌 피하고 있지만, 몸에는 상처가 점점 늘어났다.
산발한 머리와 잔뜩 찢어진 피부.
언데드의 귀족이라는 종족답지 않게 비참한 몰골이다.
“되다 만 괴물 주제에 감히-!”
“너너죽죽이이고고여여자자몸몸받받을을거거야야-.”
“알 수 없는 소리나 지껄이다니, 빌어먹을 놈. 네놈이 이겼다고 착각하지 마라!”
화르륵!
황성호의 주위에 세 개의 화염구가 새로 솟구쳤다.
‘아직 마력이 남아있었나?’
큰일이다.
설령 저게 좀 전의 마법보다 약하더라도, 엄연히 언데드와는 상극인 속성.
갑자기 무쌍 모드가 된 춘식이라도 정통으로 맞으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어쩔 수 없지.
나는 각오를 다지며 그곳을 향해 뛰었다.
타탓!
“다중 화염구! 죽어라!”
“너너나나죽죽어어-!”
검은색의 검기와 화염구가 충돌하기 직전의 순간.
난 비로소 검을 지닌 채 황성호의 뒤에 도착했다.
검기는 이미 완성된 상태였다.
“아니?!”
“늦었어!”
[단테류 검술 스킬 획득.]
[정정. 이미 체득한 기술입니다.]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맨 먼저 휘두른 검은 자세를 무너뜨리기 위한 것.
화들짝 놀란 황성호가 내 공격을 피했지만, 그것 자체가 노림수였다.
[단테식 제일초. 하늘베기.]
그저 검을 직선으로 휘두르는 단순한 공격.
그러나 검기가 진동한다.
가로막는 모든 걸 뒤틀어 벌린다.
마법과 피륙을 무너뜨리는 검날.
이윽고 내 검이 놈의 팔다리를 전부 날렸다.
“이게 깍둑썰기다, 자식아!”
“크아악!”
파파팟!
팔다리가 잘린 채 바닥에 떨어진 머리와 몸통.
베어진 마법도 이미 사라졌다.
장군도를 휘두르던 춘식이가 왠지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주주인인-. 잔잔인인해해-.”
“잘 안 들린다, 춘식아. 일단 얘부터 마무리하고 말하자.”
춘식이는 내 말이 끝나기 전에 이미 후다닥 뒤로 물러섰다.
[귀속 언데드 춘식이의 등급이 복구됩니다. 현재 D+.]
[과도한 강화의 부작용으로 등급이 잠시 하락합니다. 현재 D-.]
“무슨 롤러코스터냐? 오르락내리락 지맘대로야 아주.”
약해진 건 춘식이만이 아니었다.
나도 아직 쓰기 버거운 검술을 억지로 펼쳤으니까.
이미 검을 쥐고 있기도 힘들다.
물론 오뚝이가 된 황성호보단 나았지만.
춘식이의 무쌍 모드도 끝났겠다, 이제 이 공동의 가장 강한 놈은 나다.
난 당당하게 놈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야, 뱀파이어. 언제부터 황성호로 살았지?”
죽이기에 앞서서 정보를 캐야 한다.
뱀파이어가 사람들 사이에 숨어있다는 건, 언제든지 대참사가 벌어질 수 있다는 소리니까.
그러나 내가 워낙 착하게 생겨서일까?
기생오라비같은 놈이 주제도 모르고 똥배짱을 보였다.
“이 더러운 천민 놈! 감히 귀족에게 손을 대? 내 동족들이 알면 네놈을 가만둘 것 같더냐?”
“아, 그러셔?”
“비천한 해골 따위가 귀족인 날 공격한 죄! 네놈은 미래영겁 고문당할 것이다!”
그거 정말 무섭네.
그런데 왜 지금 네가 협박하는 거니?
칼은 내가 들고 있는데 말이지.
나는 놈의 목에 검을 들이밀었다.
그러자 녀석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
역시 대화 수단으로는 칼이나 총이 제격이다.
“고문 무섭지. 너무 무서워서 칼 쥔 손이 막 떨리네? 조금만 실수하면 목을 찌를 것 같아.”
“헉!”
“헉 같은 소리 말고. 너 언제부터 인간인 척 살았냐니까?”
“너 같은 말단 해골이 그걸 알아서 어쩌려는 거지?”
말단 해골이라.
아까부터 저러는 걸 보면, 놈은 내가 김원효란 사실을 꿈에도 모르는 모양이다.
하긴, 내가 거울 봐도 모를 정도긴 했다.
“뱀파이어 친구. 궁금한게 많지?”
“누가 네놈 친구-.”
“근데 칼을 든 건 나잖아. 그치? 그럼 대답은 네가 해야겠지?”
“누가 네놈 따위에게 정보를 줄 것 같으냐?”
중하급 뱀파이어 주제에 도대체 참으로 기개 넘치는 놈이다.
하지만 몬스터 따위가 저러니까 좀 역겹다.
이 상황에서 감히 큰소리를 친다고?
절대 그렇게 둘 수는 없지.
저놈 주둥이를 놔둔 건 정보를 듣기 위해서지, 헛소리를 들으려는 게 아니니까.
아무래도 당장 덜 아파서 저러는 모양인데, 상황부터 제대로 파악하게 도와줘야겠다.
[사악한 지혜가 속삭입니다.]
나는 놈의 복부를 손끝으로 찔렀다.
푹!
“이게 무슨-? 으아아악!”
“좀 닥치고 있어봐. 잘못 찌르면 너 죽는다?”
나도 내장은 건들기 싫다고.
얌전히 목표물만 챙긴다니까?
남자가 이거 하나 못 참아?
쯧쯧. 난 바위에 머리를 맞아도 비명은 안 질렀다고.
콰드득!
놈의 갈비뼈를 부러뜨렸다.
참고로 이건 고문이 아니라 정당한 권리 행사다.
그럼 그럼.
그냥 신사적으로 저놈의 갈비뼈를 획득하려는 의도일 뿐, 괴롭힐 생각은 전혀 없다.
“끄륽···.”
“야. 정신 안 차려? 죽으면 안 된다고. 눈 떠!”
찰싹!
한 손으로 놈의 배를 째면서, 한 손으로는 녀석의 뺨을 쳤다.
언데드가 이런다고 죽나 싶기는 한데, 뱀파이어는 해골이랑은 매커니즘이 달라서 걱정이다.
정보를 불기 전에 죽이면 안 되니까 말이다.
“됐다.”
녀석의 갈비뼈를 확인하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이 비쩍 말라 앙상한 뼈를 보라.
이딴 걸 내 몸에 붙이려니 심란해 죽을 지경이다.
세상에 멸치뼈를 붙이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쓰읍. 그래, 좀 참자. 맨날 제육만 먹을 순 없잖아? 가지무침도 먹어봐야지.”
우욱.
가지무침을 떠올린 순간 있지도 않은 위장이 뒤집히는 느낌이다.
솔직히 거기에 비하면 이놈의 갈비뼈가 더 나을지도?
어쨌든 적당한 부위를 골라서 내 뼈와 교체했다.
[뼈 호환 발동.]
치이익-.
새로 붙인 갈비뼈에서 연기가 피어났다.
살점과 피가 사라지더니 온전한 뼈만 남았다.
이윽고 순백의 뼈가 비로소 내 몸에 딱 달라붙었다.
그와 동시에 떠오르는 장면들.
혈마법을 익히고 혈액에서 철분을 추출하는 기억.
다른 누군가에게 재수 없는 표정으로 이것저것 지시하는 기억.
그리고 마력의 흡수를 남들보다 빠르게 하는 기억이었다.
[불사자의 등급이 상승합니다. 현재 E.]
[스킬 혈마법[기초] 획득.]
[특성 카리스마[E] 획득.]
[특성 마력흡수[D] 획득.]
“이거 실화냐?”
또 전투용 스킬이 없다!
혈마법은 공격 스킬 아니냐고?
해골인 나한테 피가 어딨는데?
발동 자체를 못 하는 마법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냐고.
“젠장. 어떻게 그거 하나를 못 건지냐?”
어쩔 수 없지.
애초에 뼈 호환으로 얻는 스킬은 그냥 복불복이니까.
지금은 저놈 기를 죽인 것으로 만족하자.
“야, 아직 살아있지?”
“으아악!”
“왜 해골 얼굴 보고 놀라냐? 넌 뭐 언데드 아니야?”
지는 시체처럼 창백한 주제에.
감히 내 얼굴을 보고 놀라?
안 되겠다.
조금 처벌 수위를 올려야지.
“아, 아무리 고문해도 내 입을 열진 못한다.”
“에이, 고문이라니?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다. 난 그런 끔찍한 짓은 못해.”
그럼그럼.
나 김원효야.
살면서 그런 간악한 짓은 한 적이 없다고.
살면서는 말이지.
“제기랄. 광기의 레벨이 너무 높잖아···.”
“나 참. 몬스터가 사람보고 미쳤다고 하네.”
진짜 미친놈이 뭔지 보여줘?
[사악한 지혜가 속삭입니다.]
[사악한 지혜의 등급이 상승합니다. 현재 D+.]
“아, 뱀파이어 친구. 대화할 때 필요한 건 입이랑 성대, 그리고 귀지?”
“히익?!”
“뭘 그렇게 놀라? 야, 고문 안 한다니까? 내가 막 야만인처럼 여기저기 자르고 썰고 할 것 같아? 안 그런다니까?”
뱀파이어 친구가 몸을 덜덜 떨었다.
그런데 녀석만 떠는 게 아니었다.
호달달.
아니, 춘식아. 넌 왜 그러고 있냐?
형 무서운 사람 아니야.
“야. 뱀파이어. 말이 안 나와? 성대 고장났냐? 말만 해. 내가 고쳐줄 테니까. 새 걸로 끼워줄게.”
“뭐?”
“아, 성대는 뼈가 아니구나. 그러면 목뼈를 교체하자. 그러면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을까?”
마침 여기엔 품질 좋은 뼈도 많으니까.
에헤이, 걱정하지 마.
내가 이 바닥 전문가라니까?
난 팔다리도 없이 버둥거리는 놈의 곁에 앉았다.
그리고 한때 춘일이였던 해골의 목뼈를 들어 황성호의 목과 비교했다.
교체할 때 사이즈는 중대사니까 제대로 재야지.
“마, 말하겠소! 말하겠습니다! 제발, 제발!”
“에이, 말도 더듬거리는 데 무슨 말을 하겠다고? 잠깐만 기다려. 내가 금방 고쳐준다니까?”
시체처럼 창백했던 놈의 얼굴이 이제는 눈 덮인 설원처럼 표백되었다.
“제, 제가 인간 세상에 온 건 7년 전입니다!”
멈칫.
“7년?”
“예에, 그, 그렇습니다.”
“그럼 황성호는 어떻게 된 거지?”
그 돼지를 만난 건 7년보다 훨씬 오래됐는데.
“그게, 다른 몬스터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몬스터? 도움?”
“도플갱어라고, 제가 소장을 잡아먹고 그놈으로 변신하는 스킬을 받았습니다.”
이건 또 무슨 엿같은 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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