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 코트 위, 폭군에게 도전하는 천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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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우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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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우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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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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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4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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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암중학교

DUMMY

군암 중학교


똑똑-.


교무실 문을 열고 만희가 조심스레 들어온다. 방학 전 업무로 바쁜 선생님들. 만희는 조심스레 교감 선생님 자리로 간다. 자리에는 교감의 이름이 적힌 명패가 있다.

우영춘. 머리가 반은 벗겨지고 네모난 안경을 쓴 교감은 어쩐지 무섭게 느껴지는 인상을 풍긴다. 그런 영춘 앞으로 만희는 조심스럽게 다가간다. 만희가 앞에 왔음에도 관심도 없는 영춘이다. 만희는 헛기침을 두 번 내뱉는다.


“큼, 큼.”


영춘은 인기척에 눈알만 올려 째려보듯 만희를 본다.


“뭡니까?”

“안녕하십니까! 교감 선생님. 좋은 아침입니다. 하하.”

“쓸데없는 인사는 생략하고 용건만 하세요. 용건만.”

“아, 다른 건 아니고 이번 테니스부 동계 훈련 일정이랑 내년 계획표를 컨펌 좀···.”

“말끝 흐리지 마세요. 일단 좀 봅시다.”


만희가 내미는 보고서를 영춘은 들여다본다. 조잡한 PPT 실력에 만희를 한 번 쳐다보곤 혀를 찬다.

만희는 민망함에 머리를 긁는다.


“그거 좀 깔끔하게 볼 수 있게 정리 좀 하라니까. 컴퓨터 안 배웁니까?”

“그게 이번 방학에는 꼭···.”

“아 됐습니다. 맨날 똑같은 소리.”


펄럭-.


영춘은 짜증이 난 듯 보고서 한 장을 넘긴다. 동계훈련 일정이 보인다. 보기에는 더럽지만 나름 구체적으로 훈련 일정을 적어놓은 만희다.

영춘은 앞에 있는 펜 뚜껑을 입으로 물어 뺀다. 보고서에 적힌 오후 3시 이후 일정을 모두 X표를 치며 지워버린다.

만희는 당황하며 쩔쩔맨다.


“교감 선생님. 3시 이후가 진짜 중요한 훈련들인데 그걸 지우시면···.”


영춘은 펜을 신경질적으로 집어 던지며 만희를 노려본다.


“이봐요. 박 코치. 자꾸 했던 말 반복하게 할래요? 저녁 시간에는 아이들 차민 아카데미 보내야 한다고 학부모 민원이 빗발칩니다. 당신 선수 시절에 차민 보다 잘했어요?”

“그건 아니지만···. 훈련이라는 게 흐름에 맞게 이어질 때 시너지가 나는 건데···.”

“시너지? 시너지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우라질. 차민입니다! 차민! ATP 랭킹 50위권 안에 든 대한민국 자랑 차민이라고요. 어디 고등 선수 출신이 시너지를 이야기합니까? 차민 선수랑 학교 동창이잖아요? 얼마나 잘하는지는 박 코치가 제일 잘 알지 않아요?”


영춘의 말에 만희는 고개를 숙인다.

바쁘게 업무를 보던 학교 선생님들은 만희의 혼나는 모습을 보며 혀를 찬다.

만희는 민망함에 거북이처럼 점점 더 고개를 처박는다.

영춘은 고개 숙이는 만희를 보며 더 신이 나는 인간처럼 몰아친다.


“잘나가던 군암중 시절을 누가 돌려놓으랍니까? 무슨 대회를 나갔다 하면 예선 광탈입니까? 그나마 원재 어머니가 차민 선수 설득해서 고향에 아카데미 차리게 만들어 줬잖아요? 그러면 달려가서 차민 선수한테 우리 아이들 어떤 방향으로 가르치면 될지 조언도 좀 구하고 차민 선수 가르치기 편하게 미리 훈련도 좀 맞추라고 내가 언제부터 얘기했는데 아직도 이따위 보고서를 들이밉니까? 네!?”

“죄송합니다. 하지만 차민은 선수 시절 끝낸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아직 우리 아이들이 어떤지 모르는 상태입니다.”

“그런 거 몰라도 박 코치보다 백배는 더 잘 가르칠 겁니다. 그러니까 잔말 말고 가서 차민 선수한테 박 코치도 코칭 좀 받으세요. 아시겠어요?”


만희는 대답하지 못한다. 그런 만희를 몰아치듯 영춘은 소리친다.


“대답!”

“네!”

“으이구. 속 터져. 으이구! 우리 학교 출신이라 코치 일이라도 하라고 기회를 준 건데. 제발 말 좀 들읍시다. 네?!”

“네. 알겠습니다···.”


만희를 보며 혀를 차던 영춘은 보고서의 마지막 부분까지 살핀다. 보고서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아주 작은 글씨로 P.S가 적혀있다.


[P.S 2003년 개학 이후부터는 월, 수, 금 오전 훈련 요망!]


영춘은 작게 쓴 글씨를 뚫어지라 쳐다보며 손을 바들바들 떨기 시작한다. 그리고 점점 얼굴이 빨개지며 급기야 머리카락이 없는 앞 통수에서 열기가 오르기 시작한다.

만희는 그 모습을 보며 생각한다.


‘아 사람이 극도로 열이 받으면 주전자처럼 김을 내뿜는구나. 그렇구나.’


“박 코치!”

“네!”

“미쳤어요? 본선도 못 올라가는 아이들 수업도 빼먹고 훈련을 하라고요? 제정신입니까?!”

“교감 선생님. 혹시 악순환이란 말을 들어보셨는지요? 훈련이 부족하니 본선에 못 가고 본선에 못 간다고 훈련시간을 줄이고, 애들은 더 실력이 하락···.”

“나가.”

“네?”

“당장 나가라고!”


영춘은 보고서를 찢어 만희 얼굴로 던진다.

만희는 날아다니는 보고서를 본다. 찢겨 날아가는 보고서를 보며 열심히 컴퓨터를 하던 자신의 모습이 떠오른다.


‘아, 오래 걸렸는데. 역시 컴퓨터를 배워야 하나?’


**


만희는 서 있다. 교무실 문밖에 서 있다. 쫓겨났다.

찢어진 보고서를 양손으로 들고 있는 만희에게 체육 교사 공정실이 다가온다. 정실은 만희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한다.


“코치님. 보고서 올리기 전에 저랑 상의하시라니까요.”


만희는 정실을 보며 울먹인다.


“보셨으면 안 된다고 하셨을 거잖아요.”

“안 될 거니까요.”

“흑.”


만희는 고개 숙인다.

정실은 어깨를 토닥이며 귓속말을 한다.


“제 수업 시간, 테니스부 있으면 테니스장으로 보낼게요. 40분씩이라도 괜찮으시면 개별 수업이라도 하세요.”


만희는 눈을 반짝이며 정실을 바라본다.


“선생님은 천사이십니다.”

“대신 술 사요.”

“그거 갑질입니다. 체육샘.”

“됐다. 말을 말자. 아무튼,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건 여기까지예요. 그러니 잘 좀 해서 애들 입상 좀 만드세요.”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만희는 떠나는 정실의 뒷모습을 보며 밝게 웃는다. 고개를 내려 찢어진 보고서를 보고는 한숨을 내쉰다.


“아이고. 계획을 처음부터 다시 짜야겠구먼. 3시까지 어떻게 모든 훈련을 마치냐? 아, 정말 차 민이라도 찾아가야 하나···. 그건 죽기보다 싫은데. 후···.”


**


시간은 흘러. 겨울 방학이 시작되었다. 교복을 입은 아이들은 방학식을 마치고 뿔뿔이 흩어진다. 체육복을 입은 몇몇 학생들은 무리를 빠져나와 테니스장으로 향한다. 모두가 형형색색 예쁜 테니스 가방을 메고 있다.

그중 비찬만이 실내화 가방 하나와 검은색 라켓을 덜레덜레 들고 걸어간다.

그 뒤로 원재와 무룡이 비찬을 놀라게 하려고 슬금슬금 다가온다.

비찬은 인기척에 슬쩍 웃는다. 그리곤 뒤를 돌아 먼저 그들을 놀래킨다.


“워!”

“엄마! 깜짝이야.”


원재와 무룡은 흙바닥에 자빠진다.

비찬은 그 모습에 깔깔대고 웃는다.

원재는 먼저 일어나 무룡을 일으키며 말한다.


“마이콜. 저 자식 아무리 봐도 뒤에 눈 있는 거 같지 않냐?”

“응. 있어. 저 새끼 어제 발리 할 때 보니까 이상한 자세로 뒤돌아 치더라. 몸 꺾이는 줄.”

“괴물 새끼. 재미없어.”

“이하동문일세.”

“오. 어려운 말.”

“훗. 이 마이콜의 지식수준을 함부로 넘보지 말게나. 호빗이여.”


원재와 무룡이 장난치는 모습을 보며 비찬은 해맑게 웃는다. 그러다 그들의 어깨에 있는 가방을 보고 조금은 씁쓸한 표정을 짓는다.

원재는 그 마음을 읽었는지 비찬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말한다.


“이딴 거 부러워하지 마라. 사람들한테 물어봐라. 이딴 가방 백 개 가져다줘도 네 테니스 재능이 더 부럽다고 할걸.”


무룡은 원재에게 어깨동무하며 말한다.


“어이. 진골. 어디서 일개 서민 코스프레를 하려고? 뒤지고 잡냐?”

“마이콜. 나 연습하는 거 반만이라도 해봐라. 너도 나 금방 따라잡을걸.”

“응. 노력도 재능. 하고 싶어도 안 돼. 난 타고났어. 게으른 게 타고났어.”


비찬은 마음이 편안해진다. 자신의 재능을 부러워해서가 아니다. 그저 이들과 함께 나란히 걸으며 테니스장으로 향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한다. 그토록 바라던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음에 만족한다.

문을 열고 들어간 테니스장에 강렬한 빛이 들어선다.

아이들은 각자의 이유로 얼굴에 미소가 가득해진다.


벌컥-.


문이 열리고 마지막으로 코치 만희가 들어온다.

여기저기서 몸을 풀던 아이들이 만희 앞으로 다가온다. 기대에 찬 눈으로 만희를 바라본다. 만희는 아이들을 쓱 훑어본 뒤, 이야기를 시작한다.


“일단 미안하다.”

“으아!”

“안돼!”

“제발요 코치님.”


아이들은 절망한다.

그런 아이들을 볼 낯이 없는지 만희는 모자를 눌러 쓰고 말한다.


“내년에도 똑같이 오전 수업은 한다.”


그때, 테니스부 2학년 상익이 안경을 추켜 올리며 말한다.


“코치님. 이번에 원재가 준우승도 했는데 안된답니까?”

“미안하다.”


아이들은 풀이 죽어 있다.

만희는 모자를 살짝 들어 그들을 본 뒤 말한다.


“그러나.”


아이들은 초롱초롱해진 눈으로 만희를 바라본다.


“교감 샘이 백번 양보해서 3월 초에 열리는 월강시 주니어 대회에서 3명 이상 본선에 들어가면 화, 목 오전 훈련을 허락한다고 하셨다. 박수!”


혼자만 신난 만희다.

아이들의 표정이 영 좋지 않다. 무룡은 삐쭉거리는 입으로 투덜대며 말한다.


“코치님. 본선이면 16강인데. 그냥 도 대회도 아니고 전국대회에서 어떻게 본선에 3명이나 올라가요? 솔직히 원재 빼면 다 허접인데.”


영도는 무룡의 말에 화가 나 멱살을 잡는다.


“마이콜. 뒤질래? 네 선배 보고 허접이라 한 거냐?”

“영도 형 보고 말한 거 아닌데요? 왜 찔리세요?”

“이 새끼가 진짜.”


영도는 무룡에게 주먹을 든다.

만희는 테니스 볼 카트를 발로 차며 소리친다.


“그만 안 해?! 이 새끼들이 코치님 앞에서. 너넨 내가 우스워?”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영도와 무룡은 서로 뒤돌아서 떨어진다.

그런 무룡의 어깨를 비찬이 토닥인다.

만희는 테니스부원 전체의 얼굴을 하나씩 바라본다.


“총 열두 명. 너희 모두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놈들이다. 중학교까지만 하고 테니스 그만둘 거야? 그럴 거면 지금 나가. 고작 지금 성적이 너희의 평생 성적이라고 생각해? 라켓만 놓지 않는다면 언제 너희의 실력이 급성장할지는 아무도 몰라. 당장 오늘일 수도 있고, 재수 없으면 10년 뒤일 수도 있다.”


만희의 말에 아이들은 고개를 숙인다.


“잘 들어. 그런데 지금 포기하면 10년 뒤는커녕 나의 진짜 실력은 확인도 못 해보고 만년 예선 광탈이나 하는 선수로 끝나는 거다. 그러고 싶어?”

“아닙니다!”

“믿어. 내가 꼭 그렇게 만들어 줄게. 시간이 부족하면 새벽에라도 나와서 가르쳐주고 밤을 패서라도 가르쳐 줄게. 그러니까 열심히 해보자.”


아이들은 만희의 말에 힘을 얻는다.

영도는 주장답게 소리친다.


“코치님께 인사!”

“코치님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이들의 타오를 거 같은 의지에 만희는 반성한다. 과거 일에 얽매여 차민을 보러 가지 않겠다고 생각한 자신이 한심해진다.


‘그래. 그깟 자존심이 뭐라고. 내 새끼들을 위해서라면 더러워도 내가 간다.’


“얘들아. 차민 아카데미 다니는 애들 몇이나 되냐?”


아이들은 우르르 손을 든다. 총 열한 명. 비찬 빼고는 모두 차민 아카데미에 간다. 만희는 몰려오던 감동이 달아나고 있다.


“개자식들···. 내가 못 미더웠냐?”


무룡이 머쓱하게 웃으며 대답한다.


“에이 코치님. 그것보다는 차민 선수라잖아요. 브랜드 값. 아시면서.”

“몰라 새끼야. 보세만 입어봐서.”


만희는 아이들을 째려본다.

아이들은 슬금슬금 눈을 피한다.

그런 아이들을 보며 만희는 웃는다.


“됐다. 이것들아. 아쉬운 놈이 우물 파야지. 내가 오늘, 내일 중으로 차민 만나서 훈련 상의해볼게. 최대한 커리큘럼 연결되게 훈련 맞춰보마.”


아이들은 표정이 밝아진다.


“감사합니다! 코치님.”


모두가 웃는 한때, 웃지 못하는 비찬이다. 불과 30분 전에 마음을 다잡았거늘. 이 정도면 만족하자 그리 다짐했는데. 실력이 아닌 가난이란 이유로 벌어지는 아이들과의 격차에 비찬이는 어쩐지 속이 상한다.

하지만 이것은 비찬의 욕심이다.

부모의 꾸준한 지원에도 자신의 발밑도 따라오지 못할 아이들의 간절함을 부러워하다니.

비찬에겐 필요 없는 욕심이 어린 마음에 차곡차곡 쌓여간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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