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 코트 위, 폭군에게 도전하는 천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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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우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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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우꾸우
작품등록일 :
2024.09.0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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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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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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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9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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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친구

DUMMY

인간은 때론 어떠한 기억을 잊고 산다. 그 기억이 끔찍해서 일 수도 있고, 때론 기억할 가치가 없어서 일 수도 있고.

차민은 소파에 삐딱하게 기대어 앉아 만희를 바라본다.


“너 아직도 그 피해망상에 빠져있냐? 내가 네 다리 병신 만들었다고?”

“입 닥쳐 새끼야.”


만희는 벌떡 일어나 차민의 멱살을 잡는다.

차민은 만희의 모자를 위로 들고 머리를 들이밀며 말한다.


“그때 이후로 영국 가서 몰랐는데, 너 그 뒤로 내 욕 많이 했다며? 경찰서도 드나들고?”

“네 짓이잖아. 더러운 새끼야.”


차민은 만희를 밀치며 일어난다.


“기억도 안 나는 옛날 일이 내 짓인지 아닌지 어떻게 아냐?”


차민은 만희를 비웃으며 아래위로 훑은 뒤 말을 내뱉는다.


“내가 온갖 비겁한 수를 쓴다는 건 뭐 인정. 그런데 그렇다 쳐도 너한텐 안 해. 그것도 상대가 급이 맞아야 쓰는 거지. 실력도 돈도 없는 너한테 내가 굳이?”


차민은 천천히 걸어가 사무실 문을 연다.


“자! 내 배려는 여기까지야. 꺼져 그만. 한 번만 더 여기 와서 비비려고 하면 네 잘난 군암중 코치 자리도 잘리게 해줄게.”


만희는 모자를 눌러쓰고 문으로 걸어간다. 그리곤 문 앞에서 다 꾸겨진 종이를 차민 손에 쥐여주며 말한다.


“와서 시끄럽게 굴어서 미안하다. 근데 스케줄 보고 아카데미에서는 기술적인 부분만 관리해줘. 기초체력, 스텝훈련 그리고 유연성 강화 훈련은 학교에서 할 테니까.”

“그런 거는 해달라고 해도 안 하니까 제발 꺼져주세요. 군암중 코치님.”

“알아들은 거로 알고 간다. 그럼.”


만희는 사무실 문을 세게 닫고 자리를 뜬다.

큰 소리에 학생들은 만희를 쳐다본다. 원재와 무룡 역시 코치를 본다. 무룡은 만희를 보고 손을 높게 들어 인사하려고 한다. 원재는 그런 무룡의 손을 막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무룡은 다시 만희를 본다. 어쩐지 만희의 어깨가 축 처져 있다.

원재는 만희를 걱정한다. 아직 아카데미에 남아있는 미연은 원재와 만희를 번갈아 보며 원재에게 소리친다.


“나원재! 쓸데없는 곳에 신경 쓰지 말고 훈련에 집중 안 해!?”


코트를 가득 메우는 미연의 호통에 원재와 무룡은 깜짝 놀라며 다시 훈련에 들어간다.

만희는 미연에게 고개를 까딱 숙이고 지나친다.

미연 역시 고개를 까딱이며 학부모들에게 말한다.


“눈치껏 나가주면 참 좋은데.”

“군암중은 다 좋은데 코치가 별로라더니 사실인가 보네요.”

“뭘 모르면 쓸데없는 짓만 안 해도 참 좋죠. 여기가 어디라고 찾아와? 찾아오길.”


미연과 학부모들의 말을 뒤로 한 채, 만희는 아카데미 문을 열고 나간다.


**


비찬은 테니스장 문을 닫고 나온다. 해질녘 태양이 비찬을 비춘다. 따뜻하게 비찬을 감싸는 태양을 향해 손을 뻗는다.

그때, 태양을 가리고 비찬의 앞에 영도의 친구인 광일이 비찬을 막아선다. 광일의 뒤로는 일진 무리 열 명이 비찬을 보고 웃는다.

광일은 하늘을 향해 뻗은 비찬의 손을 잡으며 비아냥댄다.


“이야 멋지네. 소년만화 주인공 같아? 뭐 악수라도 해줘?”


비찬은 악수하는 광일의 손아귀에서 손을 빼려 한다.

그러나 광일은 맞잡은 손을 꽉 쥐며 비찬을 잡아당긴다. 비찬보다 족히 머리 하나는 더 있을 거 같은 키. 그 큰 키에 해질녘 노을이 지고 사악하게 웃는 음흉한 광일의 표정만이 남는다.

비찬은 어쩐지 불길한 마음에 침을 꿀꺽 삼킨다.


**


원재와 무룡 그리고 은희는 아카데미 수업이 끝나고 떡볶이를 먹고 있다. 무룡은 떡볶이를 허겁지겁 먹고 있는 원재를 보며 이야기한다.


“안 뺏어 먹어. 천천히 좀 먹어라.”

“아 미안미안. 알잖아. 우리 엄마 알면 난리난다. 후딱 먹고 들어가야해.”


은희는 그런 원재를 보고 의아해한다.


“오빠. 어릴 때야 그렇게 잘하지 못했으니까 그렇다 쳐도 지금은 준우승까지 했는데 오빠 엄마는 왜 이렇게 엄격하게 하시는거지?”


무룡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은희의 말에 대신 대답해준다.


“어이 꼬맹이. 잘 들어.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아. 차라리 원재 저 쉐키가 나처럼 적당히 적당히 했으면 원재 엄마도 지금처럼 안 하실 거야. 오히려 가능성이 보이니까. 이게 조금만 더 하면 진짜 윔블던 갈 거 같으니까. 하물며 이번에도 만약 우승했으면 한서원이 아니라 원재가 스페인 갔을걸? 한서원 그 새끼는 매일 절다가 어떻게 칸 오니까 그렇게 잘하냐?”


원재는 마지막 떡볶이 한입을 흡입하듯이 먹고 가방을 부랴부랴 챙긴다.


“아마 눼가 이겨숴도 한허원이 슾헤인 가슬커햐.”


원재는 떡볶이를 입에 가득 넣고 웅얼거리고 말한 뒤 뛰어간다.

무룡은 대파 하나만 남은 떡볶이 그릇을 휘적휘적하며 뛰어가는 원재를 째려 본다.


“꼬맹아. 저놈 뭐라는거냐?”

“떡볶이 다 먹어서 미안하다. 그런 거 아닐까?”

“아니야. 원재가 매일 착해도 먹을 땐 안 착해. 장차오가 아시아 선수로 유일하게 메이저대회 우승하고 나서 ‘식이요법이 답이다.’ 이 지랄 했다가 그날 이후로 밀가루 구경을 못 해. 불쌍한 놈···.”

“어! 저기 비찬 선배 아닌가?”


은희는 멀리 걸어가고 있는 비찬을 본다.

무룡도 은희 옆으로 바짝 붙어 쳐다본다.

비찬이 누군가에게 둘러싸여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다.

무룡은 그들 중 비찬에게 어깨동무를 하는 광일을 확인한다.


“비찬이가 저 새끼들하고 왜? 은희야 여기 계산 좀. 나 먼저 간다!”


은희는 들고 있는 오뎅국물과 떡볶이를 다 먹은 빈접시를 바라본다. 그리곤 울상을 지으며 말한다.


“나 오뎅 하나 먹었는데. 마이콜 이 개새끼야!”


**


수많은 학원가 사이 어두운 골목. 담배 연기가 자욱하게 골목을 가득 메운다. 그 중심에 비찬이 콜록거리며 서 있다.

광일은 그런 비찬의 볼을 꼬집으며 귀여워한다.

비찬은 광일의 손을 뿌리치며 노려본다.


“하 새끼. 귀엽네. 아무튼, 이번 일 잘 끝내면 너도 차민? 그 뭐시긴가 하는 아카데미가서 수업들을 수 있어. 잘 생각해보고 연락해라. 너 돈 필요하잖아?”

“필요없습니다. 그런 돈.”


비찬은 광일을 무섭게 노려본다.

광일은 자신의 얼굴을 뒤덮은 노란 긴 머리를 쓸어 넘기며 말한다.


“너 아니어도 이 일 할 사람 많다. 근데 왜 너냐? 내가 네 기분을 잘 아니까. 돈 때문에 운동 접어야 하는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니까. 그러니까 기회를 주는 거야. 잘 생각해. 돈 없으면 프로 무대 근처로도 못 가. 병신아.”


광일은 비찬의 카라티를 반듯하게 매만진다.

그때 누군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무룡은 일진 무리 10명을 향해 뛰어든다.


“그 손 치워! 이 개자식아!”


무룡은 주먹 한 번 휘두르고 일진 무리에게 붙잡혀 허우적댄다.

그들은 낄낄대며 무룡의 원맨쇼를 감상한다.

무룡은 덩치 큰 빡빡이 상태에게 붙잡힌 채 발차기만 허공에 뻗는다.

광일은 그런 무룡의 왼발을 붙잡고 담배를 꺼내물며 친구들을 보며 말한다.


“그때가 이 발이었나? 저 발이었나?”

“그 발 맞아. 광일아.”


광일의 친구 휘연은 광일이 물고 있는 담배에 불을 붙여주며 말한다.

광일은 무룡의 왼발을 내려놓고 오른발을 집어 들며 웃는다.


“그러면 밸런스 맞춰줘야 하지 않겠냐? 비 오는 날 양쪽이 같이 쑤셔야 운동도 균형있게 하지. 그치?”


광일은 무룡을 보며 씩 웃는다.

무룡은 그런 광일의 눈을 피한다. 그리고 광일이 잡은 자신의 오른발을 빼려고 힘을 준다. 그러나 유도 주니어 선수 출신의 광일의 손아귀는 한번 잡은 무룡의 발을 놓아주지 않는다.

무룡의 표정이 점차 어두워지고 급기야 두려움에 눈물이 고인다. 광일은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는다. 그리곤 무룡의 오른 신발에 담배를 끄며 무섭게 말한다.


“빌어. 무릎 꿇고.”


광일이 무룡의 오른발을 놓아주자 상태도 무룡을 풀어준다.

무룡은 벌벌 떠는 와중에도 울면서 주먹을 불끈 쥔다.

광일은 무룡의 꽉 쥔 주먹을 보고 뺨을 때린다.


퍼억-.


뺨 한 대에 무룡은 날아가 버린다. 무룡은 다시 벌떡 일어나 주먹을 꽉 쥐고 광일을 쳐다본다. 광일은 일어난 무룡에게 걸어간다.

그 순간, 비찬의 작은 음성이 세어 나온다.


“그만해.”


광일은 미처 그 소리를 듣지 못하고 무룡에게 다시 손을 올린다.

그 순간.


“그만하라고!”


좀처럼 들을 수 없는 비찬의 고함 소리가 학원가 골목을 가득 메운다.

모두가 놀라 비찬을 쳐다본다.

광일은 고개를 돌려 비찬을 보며 함박웃음을 터트린다.


“푸하하! 이쪽이었어? 네 발작버튼이? 이 친구 의외로 낭만있네.”

“그만 보내주세요.”

“암 그럼. 그래야지. 누구 부탁인데. 야 길 터줘.”


일진무리 열명은 모세의 기적마냥 좁은 골목에서 길을 터준다.

비찬은 무룡을 챙겨 그사이를 걸어간다. 무룡의 덜덜 떨리는 손을 비찬이 꼬옥 잡아준다.

멀어져가는 비찬의 뒷통수에 대고 광일은 소리친다.


“어이 친구. 결정 잘해! 네 손에 저 친구 선수 인생도 달려있는 거 같으니까. 크크. 아따 낭만있다!”


비아냥대는 광일의 모습에 일진 무리의 웃음소리가 울려퍼진다.

비찬은 이를 악물며 그들을 무시하고 걸어간다.


**


무룡의 집 앞 놀이터.

비찬과 무룡이 그네에 앉아 있다. 무룡은 조금 진정이 됐는지 입을 연다.


“아, 비찬이 네가 안 말렸으면 광일이 그 새끼 내 손에 오늘 죽었다. 알지?”


비찬은 그런 무룡을 보며 웃는다.


“그래그래. 네가 사람 죽이고 선수 생활 마감할까봐. 내가 빼준거야.”

“짜식. 네가 뭘 좀 아는구나?”


무룡은 자신의 흐르는 콧물을 훔치며 말한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비찬의 표정을 슬쩍 살핀다. 어딘가 어두운 비찬의 얼굴. 무룡은 걱정이 되어 묻는다.


“비찬아. 그 새끼들이 너한테 뭐 시킨거 같던데. 뭔데? 털어놔 봐. 이 형이 도와줄게.”


비찬은 잠시 생각에 빠진다. 그리곤 고개를 들어 무룡을 본다. 무룡의 왼쪽 발에는 수술 자국이 선명하다.

무룡은 비찬의 눈을 의식했는지 자신의 왼쪽 발목을 툭툭 치며 말한다.


“야 인마. 이건 내가 방심해서 그런 거야. 그리고 지금 코트 위에서 날아다니는 거 안보이냐? 제대로 부러뜨릴 줄도 모르는 놈들이야. 두 번 다신 안 당해. 그러니까 말해봐.”


비찬은 무언가 말을 하려 하다가 삼킨다. 그리곤 그네에서 일어난다.


“선생님이나 코치님께 내가 말씀드릴게. 무룡아 부탁이야. 너는 이번 일 모른 척 해줘.”

“야 인마. 말하라고. 같이 해결하자니까.”


비찬은 무룡의 어깨를 툭툭치며 자리를 뜬다.

무룡은 그네에서 일어나 소리친다.


“야! 강비찬! 내일은 꼭 말해줘야 한다! 같이 해결하자고!”


비찬이 떠나고 무룡은 혼자 그네에 털썩 주저앉는다. 그리고 고개를 떨구며 흐느끼기 시작한다. 자신의 오른발을 붙잡으며 혼자서 중얼거린다.


“야 이 치사한 새끼야. 흑흑. 왜 다행이라 생각하냐고. 비찬이가 모른척하라니까 고맙냐? 고맙냐고? 쫄보새끼. 치사한 새끼.”


무룡은 그네에서 쓰러지듯 내려와 쪼그려 앉으며 계속 중얼거린다.


“비찬아. 미안해. 근데 나 너무 무서워.”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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