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 코트 위, 폭군에게 도전하는 천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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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우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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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우꾸우
작품등록일 :
2024.09.0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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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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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2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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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동상이몽

DUMMY

고요한 군암중 테니스장.


투웅, 투웅-.


연두색 보풀이 잔뜩 올라온 테니스공이 그 고요함을 깬다.

공은 아래위로 점프력을 자랑하듯 튀어 오르다 커다란 만희의 손에 잡힌다. 만희는 공을 떨어뜨린다. 그리곤 자신의 라켓으로 공을 툭 밀며 비찬에게 건넨다.

테니스공은 회전 없이 ‘ATP’라는 로고를 진하게 보여주며 비찬에게 다가온다. 비찬은 가볍게 스텝을 밟으며 왼발을 앞으로 놓고 왼손을 공이 오는 방향으로 뻗는다. 그리곤 공이 왼손 위치에 도착하기 직전 라켓을 빠르게 스윙한다.


탕-!


공은 추진력을 얻듯 회전하며 빠르게 날아가 만희가 서 있는 베이스라인에 도착한다. 그리고 높이 튀어 오르며 코트장 벽에 부딪힌다. 벽에 걸려있는 거미줄 같은 완충재에 볼이 맞고 떨어지며 또르르 굴러 만희 앞에 도착한다.

만희는 공을 집어 들고 비찬을 본다.


“어이 온비찬, 아니 강비찬이.”


비찬은 랠리 하지 않고 공을 흘린 코치를 보며 불안해진다.

또 무엇을 실수한 건 아닌지.

분명 왼발을 앞으로 내밀며 클로즈스탠스를 잡았는데 또 뭐가 문제였던 건지 머리를 굴린다. 머리 굴리는 소리가 만희에게도 들리는지 만희는 말을 이어나간다.


“훌륭하다.”


만희의 뜬금없는 칭찬에 비찬은 당황한다.


“아, 감사합니다.”

“그래도 새꺄. 첫 구부터 누가 그렇게 휘두르래? 처음에는 50%의 스윙부터. 알았어?”

“코치님. 50%였는데요?”

“그럼 30%로 쳐! 건방진 짜식이. 말이 많아?”

“네! 알겠습니다.”


만희는 고개를 돌려 베이스라인 밖으로 물러나며 입을 떡 벌린다. 그리곤 혼자 궁시렁댄다.


“아니. 저게 50%라고?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구먼. 하, 이 거지 같은 유전자. 이 평범하고 몹쓸 DNA는 죽어야지.”

“네? 코치님 안 들립니다.”

“응. 듣지 마. 인마.”


코치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공을 툭 건넨다.

비찬은 가볍게 날아오는 공을 또다시 클로즈스탠스를 잡으며 받아친다.

만희도 이번에는 여유있게 스윙하며 공을 건네준다.

생각보다 빠르고 묵직한 만희의 공에 비찬의 공이 살짝 뜬다. 만희는 다시 무겁게 볼을 쳐내며 소리친다.


“밀리지 마. 클로즈는 오픈보다 더 많이 움직여야 한다. 한 스텝 더!”

“네! 알겠습니다.”


비찬은 더 빠르게 움직이며 만희의 공을 받아친다. 그리고 라켓이 밀릴 정도의 묵직한 공을 받으며 비찬은 어이없어한다.


‘50%라면서. 어이없어.’


그러나 비찬의 얼굴에는 함박웃음이 가득하다.

사람이 더 늘어난 것도 아님에도 고요했던 코트에 활기가 돈다.

시끄러운 만희의 코칭 소리가 실내 코트에 메아리치며 울린다.

비찬의 거친 숨소리와 공을 치는 시원한 타격음, 나아가 비찬의 땀방울이 코트에 닿는 소리까지.

고요했던 코트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


테니스장 뒤편. 학교 내 분리수거장.

벽에 기대어 광일의 무리가 담배를 피우고 있다. 광일은 시끌시끌한 테니스장 소리에 담배를 더 깊게 들이마시고 내뱉는다. 하늘 위로 뻗어가는 뿌연 연기가 눈앞에서 사라지자 광일은 인상을 쓰며 일어난다.


“가자.”

“저 자식 끝나고 한 번 더 안 조져?”


광일의 친구 상태가 묻는다. 빡빡머리의 상태는 광일보다도 덩치가 좋다.

광일은 그런 상태의 등을 툭 치며 말한다.


“재미없다. 상태야. 오랜만에 어떻게 매트 위에서 뜨겁게 사랑 좀 나눠볼까?”


상태는 광일의 말에 어쩐지 안쓰러운 표정으로 되묻는다.


“다시 시작해보려고?”


광일은 자신을 걱정하는 상태의 뺨을 툭치며 말한다.


“농담이다. 인마. 놀 시간이 어딨냐? 돈 벌어야지.”


휘연은 조심스럽게 손을 들며 광일을 쳐다본다. 광일은 어이없단 듯 말한다.


“발표하냐? 새끼야.”

“아니. 광일아. 돈 벌 거면 기다렸다가 저 새끼 조지고 가야 되는 거 아니야?”

“난 저 새끼가 성공했으면 좋겠다.”


광일의 뜬금없는 고백에 모두가 어안이 벙벙해진다.

광일은 그들의 반응을 무시하고 걸어가며 말을 이어나간다.


“근데 세상 물정을 너무 모르잖아. 세상 물정 아는 사람한테 가야지.”


광일과 그 무리가 떠나간 자리, 무더기로 버려진 담배꽁초들이 차갑게 식어 땅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


차민 아카데미.

코치들은 실내 코트 4면과 실외 코트 8면에 나뉘어 레슨하고 있다.

실외 코트와 실내 코트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사실 코트의 모습이 다르진 않다. 실외나 실내나 요즘 트렌드에 맞게 파스텔 색감을 넣어 예쁘게 테니스장을 지어놨다. 파란색으로 코트중앙부를 가득 메우고 바깥쪽은 회색으로 칠해져 있다.

드론을 띄워 코트를 본다면 자갈에 둘러싸인 작은 바다처럼 보인다. 그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는 섬 하나.

실내 코트가 있다.

그렇다면 분위기가 어떻게 다른 걸까?

훈련에 임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실내에는 현재 주니어 랭킹 1위 원재를 비롯한 엘리트 아이들이, 그리고 실외 코트에는 가능성이 없는 주니어 선수들과 그저 취미로 테니스를 즐기는 몇몇 동호인들이 있다.

그렇기에 실외 코트에서는 1시간도 안 되는 짧은 훈련에 지쳐 널브러져 있는 아이들과 장난식으로 웃고 떠드는 동호인들로 가득하다.

그 분위기가 나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순수 즐거움은 실내보단 실외에 있지 않을까?

하지만 테니스를 치는 그 누구라도 실내로 들어가고 싶을 것이다. 웃음기와 칭얼대는 소리 대신 훈련을 버티기 위한 악에 받친 기합과 하드 코트를 뛰어다니는 끼익 끼익 신발 소리, 경쾌한 타구음과 호랑이 같은 코치들의 잔소리.

그 안에 흘리는 땀이 겨울이 갓 지나 추워야 할 지금을 여름처럼 만들어 놓는다.

물론, 차민이 실내, 외 코트로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얼마 남지 않은 월강시 대회가 실내 코트이기 때문에 엘리트들을 실내에서 교육하는 것이다. 다음 대회가 실외였다면 차민은 바깥 코트에 엘리트들을 배치했을 것이다.

차민에게 이번 대회는 새로운 커리어가 된다. 테니스 불모지 한국에서 투어 랭킹 39위란 말도 안 되는 업적을 이룬 차민은 이제 코치로서도 새로운 업적을 쌓고 싶다.

그렇기에 지금 그는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훈련에 임하고 있다. 정확히는 훈련 중에 자신을 코치로서 업적을 쌓게 해줄 보석을 찾고 있다.

엘리트 담당 코치 원정수가 차민에게 걸어온다. 정수는 긴 머리를 뒤로 묶은 잘생긴 청년이다. 투어에 발을 담가보긴 했으나, 그 경력이 화려하진 않아 평소 존경하던 차민을 따라 은퇴해 코치 생활을 하고 있다.


“민이 형. 원재 어때요?”

“차 대표님. 새끼야.”

“죄송합니다. 대표님.”

“원재 좋지. 원재 훌륭하지. 아 근데 좀 평범해.”


정수는 차민의 말에 갸우뚱하며 원재를 쳐다본다.

연습게임에 몰두 중인 원재. 때마침 원재는 머리 위로 높게 지나가는 공을 빠르게 달려가 자세를 잡고 포핸드를 친다. 그 공이 다운더라인으로 빠지며 점수가 난다.


“평범하다고요? 저 속도가?”

“아니. 재능 말고 새끼야. 스타성.”

“네?”

“어차피 여기 있는 놈들 중 한 놈도 내 발밑에도 못 미쳐. 투어 랭킹 100위 안에 들면 다행이려나? 그러니까 임팩트 있는 주니어 한 놈 길러내서 내 이름 알리는 게 우선이다. 이거야.”

“저 아이들 잘 키워서 100위 안에 들면 그게 더 빠른 길 아닙니까?”

“너 어디 그래서 사업하겠냐? 잘 들어봐. 재미있는 놈 하나를 잘 포장해서 유튜브에 띄울 거야. 그렇게 조회수 빨면서 코치로서 이름 좀 알리고 나면 투어 랭킹 50위 안에 드는 슈퍼루키를 접촉해서 뺏어오는 거야. 그리고 결승전 한 번만 보내면 그때부턴 그냥 인생 피는 거야.”

“하···.”


정수는 말문이 막힌다. 존경하는 선배이긴 하나, 아이들에게 진심인 정수는 어쩐지 속이 답답해진다. 그리고 연습경기가 끝나자마자 널브러져 쉬는 게 아니라 자신의 몸을 스트레칭을 하는 원재를 보며 마음이 짠하다.


“형님.”

“대표님이라고 부르라고.”

“형님. 한마디만 할게요. 그래도 키워내는 동안은 우리 아이들이니까 진심으로 대해주십시오. 우리도 꿈을 꿀 때가 있지 않았습니까?”

“지랄한다. 어디 건방지게 우리라 묶어. 네가 나랑 같은 꿈을 꿀 레벨인 적이 있어? 한 번만 더 건방 떨면 잘라버린다.”


차민은 정수를 무시하고 손뼉을 치며 아이들을 주목시킨다.


“주목!”


훈련 중이던 아이들은 코트 한가운데로 들어온 차민을 본다. 차민은 정수를 대하던 싸늘한 표정은 온데간데없고 천사같이 웃으며 아이들에게 말한다.


“아주 멋지다. 너무 훌륭하다. 자라나는 너희들의 꿈을 나는 모두 이루어주고 싶다.”


주니어들은 차민의 한 마디에 환호한다.

차민은 손을 높게 들어 아이들을 진정시키며 말을 이어나간다.

아이들은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훔치며 눈을 초롱초롱하게 뜬다.


“그러나. 너희들도 어차피 겪게 될 현실이기에 이 대표는 악역을 맡기로 했다. 누군가에게 원성을 살 것이란 걸 알면서도 너희에게 전달한다. 내일 같은 시각. 연습대회를 진행한다. 월강시 대회에 나갈 아이들 누구라도 신청해도 좋다. 4강까지 올라간 주니어 중 단 두 명만 내가 직접 전담 코칭을 할 예정이다.”


아이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한다. 대부분 아이의 표정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물론 그 안에서는 차민의 직접 코칭을 받는다는 생각에 들뜬 아이들도 있다.

전국 주니어 랭킹 7위의 전하늘. 이름과 어울리는 하늘색 긴 머리를 묶고 있다.

전국 주니어 랭킹 11위의 김이민. 작은 키에 바짝 눌러쓴 모자. 어딘가 음침해 보이는 모습이다.

그들은 상기된 얼굴로 차민을 바라본다.

그러나.

그런 차민의 이야기에 관심조차 없는 아이들도 있다.

전국 주니어 랭킹 9위의 이군화. 또래와 비교하면 월등히 큰 키와 덩치. 그는 얼른 차민의 연설이 끝나고 다시 훈련하기를 바랄 뿐이다.

원재 역시 군화와 같은 마음이다.


어수선한 분위기를 깬 것은 주니어 랭킹이 몇 위인지 기억도 안 나는 영도였다. 엘리트반의 끝자락에 있는 영도.

그런 영도는 하늘과 이민처럼 기대가 가득한 표정으로 손을 들었다.

차민은 영도를 본다. 모자를 눌러써서 자세히 보이진 않으나 꽤 수려한 외모, 입은 옷에서 느껴지는 부유함, 밀리는 순위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손을 드는 자세, 더군다나 성공만 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거 같은 표정.

차민은 영도를 보며 입맛을 다신다.


“어이 손든 놈. 이름.”

“안녕하십니까. 군암중학교 3학년 김영도입니다.”

“나이는 좀 있네. 손든 이유는?”

“4강 안에 들면 사람은 4명인데 그중에서 두 명을 어떻게 뽑으신다는 말씀입니까?”

“일리 있는 질문이다. 왜 우승자, 준우승자가 아니라 4강에서 2명을 뽑느냐? 그게 궁금한 거지?”


모두의 표정이 같아졌다. 알 수 없다는 표정. 차민의 대답을 듣고 싶어하는 표정.

차민은 그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준다.


“이기기만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어떻게 이겼냐가 중요하다. 그 차이를 모른다면 아무리 우승자라도 내 코칭을 받을 수 없어. 그렇기에 1등은 중요하지 않다. 그렇지만 어떻게 이기든 4강도 못 가는 놈이라면 그건 이미 틀린 거겠지. 그래서 4강이다.”


차민의 대답에 아이들은 각자 다른 생각을 한다.

개성이 강한 하늘은 생각한다. 원재만 만나지 않고 무난히 4강까지 올라간다면 코칭은 따 놓은 당상이라고.

어딘가 좀 음흉해 보이는 이민은 빠르게 주변을 살핀다. 그리고 원재를 보며 생각한다. 저 녀석만 아니라면 누구한테도 지지 않는다고.

우직하고 성실한 군화는 차민의 코치에는 관심은 없다. 단, 연습대회에서 주니어 넘버원 나원재를 만나 승부를 보고 싶다는 마음뿐이다.

순위권 안에도 못 드는 영도는 생각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4강에 들어 인생을 바꿔보겠다고. 그렇게 해서 나원재를 이겨보겠다고.

그 중심에 있는 원재는 생각한다.

이 얘기만큼은 절대 엄마 미연에게 해서는 안 되겠다고.

그렇게 각자의 꿈을 품으며 다음 날 있을 연습대회를 준비한다. 코트 위의 활기가 사라지고 서서히 적막함이 가득 채워진다.


작가의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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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상이몽 24.09.12 23 2 13쪽
10 부러진 라켓 24.09.11 21 2 13쪽
9 경계 24.09.10 23 2 12쪽
8 친구 24.09.09 22 3 12쪽
7 함정 24.09.08 28 2 11쪽
6 스탠스 24.09.07 29 3 13쪽
5 내딛는 첫발 24.09.05 34 2 12쪽
4 군암중학교 24.09.04 39 2 13쪽
3 나원재 24.09.04 48 3 13쪽
2 온비찬 24.09.04 58 3 13쪽
1 한서원 24.09.04 83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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