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 코트 위, 폭군에게 도전하는 천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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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우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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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우꾸우
작품등록일 :
2024.09.0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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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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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602

작성
24.09.08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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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함정

DUMMY

어디선가 손톱 물어뜯는 소리가 들린다. 요란스러운 소리는 점점 발전한다. 다리 떠는 소리와 합쳐지며 듣기 괴로운 소음을 만들어 낸다.

고통에 더 큰 소리를 낸 건 가을이다.


“아 좀. 손톱 좀 그만 쳐드세요. 다리도 그만 떨고. 정신 사나워서 일을 못 하겠네.”


커다란 호통에 만희는 하던 행동을 멈추고 벽에 걸린 전자시계를 본다. 시계는 5시를 넘어가고 있다.

5시 1분.

더는 참지 못하고 그는 벌떡 일어나 문을 열고 나간다.

문밖의 코트에서는 아이들의 훈련이 한창이다.

코트 옆에 놓여 있던 간이의자들은 대부분 사라졌다. 그렇게 의자가 빠진 수 만큼 학부모들도 집으로 향했다. 남아 있는 이들은 미연을 포함한 4명의 엄마뿐이다.

그 중심에 차민이 앉아 있다.

만희는 그들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간다.


“차민 대.표.님. 대화 좀 하시죠?”

“아직 있었어?”

“그래. 얘기 좀 해.”

“후. 그러자. 들어가.”


차민은 학부모들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넨 뒤 사무실로 들어간다. 만희도 머리를 박박 긁으며 따라 들어간다.

문을 열고 들어온 차민은 사무실 가운데 놓인 소파에 드러눕듯이 걸쳐 앉으며 탁상 위에 발을 올린다. 그리곤 만희를 쳐다보며 반대쪽 자리에 앉으라는 듯 고개를 까딱한다.

만희는 소파에 앉아 차민의 발을 밀어 버리고 그 위에 종이 하나를 놓는다.


탁-.


차민은 어이없다는 듯 자세를 고쳐 앉아 만희가 건넨 종이 한 장을 본다.


“방학 중 군암중 훈련 스케줄이라···. 오전에는 긴장을 풀어주고 가동을 늘려주는 필라테스를 진행? 풉.”


차민은 첫 줄을 보자마자 비웃으며 만희를 본다. 옆에 있던 매니저 가을은 만희를 아래위로 훑으며 말한다.


“필라테스? 안 어울리게 고상한 취미가 있으시네.”

“푸하하. 그치? 필라테스란다. 가지가지 하네. 정말.”


만희는 끓어오르는 화를 꾹 눌러 참아내며 어금니를 물고 말한다.


“적당히 쳐 웃고 마저 좀 읽으시죠?”


차민은 종이를 만희에게 던진다. 종이는 하늘 위로 붕 뜬다.

만희는 펄럭이는 종이를 보고 생각한다.


‘아 그래도 교감보다 낫네. 찢지는 않는구나.’


종이는 만희의 얼굴을 때린 후 아래로 떨어진다. 만희는 종이를 잡고 주먹을 불끈 쥔다.

그런 만희를 보고 차민은 비웃으며 대답한다.


“마저 읽어? 첫 줄부터가 엉망이잖아. 적당히 스트레칭이나 하면 될 걸 가지고 필라테스로 50분? 지랄한다. 그게 테니스부냐? 필라테스부지?”

“척추 주변부터 시작해서 어깨, 무릎, 손목, 발목 그리고 더 디테일하게는 손가락 발가락 하나하나까지도 시도 때도 없이 염증이 발생하고 다치는 게 테니스야. 가벼운 스트레칭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전문적으로 관리가···.”

“하, 못 들어주겠네. 야 이 새끼야. 애들이 다 너같이 약골인 줄 아냐?”


차민의 말에 사무실 안에는 무거운 공기가 흐른다.

가을도 열심히 타자치던 손을 떼고 분위기를 살핀다.

만희는 자신이 들고 온 종이를 꾸긴다. 고개를 처박고 조용하게 말한다.


“네가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거 아니냐?”


만희는 고개를 들어 차민을 노려본다.

차민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웃는다.


**


시간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월강대학교에 부속된 실내 코트장.

이 실내 코트장의 바닥은 요즘은 잘 볼 수 없는 흙바닥이다. 클레이라 부르긴 하지만, 말이 좋아 클레이지 그저 모래를 깔아둔 학교 운동장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코트장 가운데 2008년 월강시 주니어 대회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현수막 아래로는 초록색으로 머리를 물들인 어린 차민이 앉아 있다.

그의 코치는 반대쪽 코트를 응시하며 말한다.


“민아. 만희 저놈한테는 내가 잘 일러뒀어. 적당히 하다가 긴장한 척 더블 폴트 2개만 하라고 했어. 그러면 그게 신호니까. 그때부턴 무리하지 말고 코트 안에 볼만 안전하게 넣어.”


차민은 답답하단 듯 혀를 차며 대답한다.


“쯧쯧. 코치님. 저 새끼가 어디 누구 말 들을 새끼로 보입니까? 저 표정 보면 모르겠어요? 저 새끼 오늘 질 생각 없어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


반대쪽 코트의 어린 시절 만희가 무섭게 차민과 코치를 노려보고 있다. 그가 앉아 있는 벤치 위에는 코치도 부모도 없다.

코치는 만희와 눈을 마주치고는 헛기침을 하며 눈을 피한다. 그리곤 차민의 뒤로 걸어간다.


“어, 어 그래그래. 그래도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으니 어머님께는···.”


코치는 차민의 어깨를 주무르며 멋쩍게 웃는다.

차민은 코치의 손을 치우고 일어난다. 그리곤 코치를 보고 귀엽다는 듯 웃으며 그의 어깨를 두드린다.


“거 참. 이제껏 해온 게 있는데 그걸 모른 체할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 순간 방송이 울린다.


“월강시 주니어 대회 16세부 결승을 시작합니다.”


방송이 끝난 후, 코트 위에는 차민과 만희만이 남는다. 모두가 관중석으로 돌아가 그들의 경기를 본다.

차민의 서브로 시작되는 결승전.

모두가 숨죽여 차민을 바라본다. 모두의 이목이 쏠린 그때, 차민이 쳐다보는 것은 공도, 만희도 아니었다. 자신의 서비스 라인 안쪽 네트 부분만을 응시하고 있다.

그리곤 고개를 돌려 만희를 보고는 씨익 웃는다. 왠지 만희는 차민의 웃음이 기분 나쁘지만 ‘늘 기분 나쁜 놈이니까.’하고 넘겨 버린다.

차민의 서브게임이 시작된다.

만희는 시작부터 평범하게 리턴하지 않고 드롭 리턴으로 변칙적인 플레이를 쓴다. 차민이 가장 좋아하는 드롭으로 기선제압을 시작한다.

하지만 생각보다 센 서브에 드롭 된 공은 높게 떠서 차민의 코트 오른쪽 서비스 라인에 튄다. 충분히 달려와 받을 수 있는 공임에도 차민은 멈칫한다.

만희는 살짝 갸우뚱하지만, 본인의 변칙적인 플레이에 반응을 못 했을 거로 생각하고 가볍게 넘긴다.

만희는 후회한다.

어째서 첫 게임이 진행되는 내내 차민이 서비스 라인으로 진출하지 않았는지, 자신이 아닌 네트 쪽을 계속해서 응시했는지, 도대체 그 기분 나쁜 웃음은 무엇이었는지, 의심하지 않았던, 그저 순진하게 게임에 집중했던 자신의 행동을 평생 후회하게 된다.


“게임 바이 박”


1:0. 첫 게임이 만희의 손에 들어온다.


“화이팅!”


만희는 첫 세트를 따냈다는 성취감에 가볍게 환호하고 주먹을 불끈 쥔다. 만희와 차민은 코트체인지(테니스에서는 게임 점수 합산이 홀수일 경우, 코트를 바꾼다)를 한다.

코트를 바꾸는 순간, 두 선수는 서로 지나치며 묘한 신경전을 펼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차민은 상대의 멘탈을 흔들 수 있는 이 순간을 가장 좋아한다.


“이번 게임 내내 드롭샷을 떨궈줄게. 알려줘도 못 막으면 병신.”


선수가 지나치는 순간, 심판은 네트 중앙에 있으므로 이 소리를 못들을 리 없다.

비신사적인 차민의 행동에 만희는 심판을 쳐다본다.

심판은 개의치 않는 듯 자신의 시계만을 쳐다보고 있다.

만희는 화가 치밀어 오르나 이 모든 것도 게임의 연장선이라 생각한다. 호흡을 길게 한다. 그리곤 반대편 코트로 가서 생각한다.


‘후우. 흔들리지 말자. 차민의 성격상 분명 드롭은 없다. 그저 낚시질일 뿐일 거야. 긴 드라이브를 조심하자.’


만희의 서브가 이어진다.


탕-, 탕-, 탕-.


3구의 짧은 랠리가 이어지고 이어서 차민의 드롭샷이 나온다.


틱- 툭툭툭.


공이 짧게 떨어지고 만희는 당황한다.

그렇게 차민의 드롭샷은 한 게임이 진행되는 내내 이어진다.

0:40(러브포티).

두 번째 게임의 한 포인트만을 남겨두고 있다. 단 한 번도 반응하지 못한 만희는 멘탈이 크게 흔들린다.


‘정말 모든 포인트를 드롭샷으로 땄어. 속임수가 아니었어?’


만희는 차민을 바라본다.

근데 어쩐지 차민의 표정이 좋지 않다.

기술적인 불만족이었을까?

관중들의 표정만 봐도 그럴 리 없다. 주니어 선수의 컨트롤이라 믿기 힘들 정도의 깔끔한 드롭샷. 차민은 이때부터 볼 터치에 대한 감각은 남달랐다. 실력적으로 하나의 부족함을 찾기 힘든 선수였다.

만희는 집중해서 다시 차민을 바라본다.

리턴 자세를 취하는 차민. 그는 자신을 바라보는 만희와 눈을 마주치며 입 모양으로 그를 건드린다.


“벼~엉~시~인.”


만희는 차민의 입 모양을 보고 확신한다.


‘이번에도 기회만 온다면 드롭샷을 보낼거야. 나를 아주 호구로 보고 있는 거야.’


만희는 공을 튀기며 생각한다. 차민이 드롭샷을 역으로 이용할 방법을.


‘몸쪽으로 오는 서브는 돌아서 치기보다는 한 손으로 슬라이스를 쳐서 되받는게 쉬운 방법이야. 구속까지 낮춘 몸 쪽 서브를 보낸다면 차민은 분명 슬라이스를 활용한 드롭샷을 구사할 거야.’


만희는 일부러 몸 쪽으로 구속을 낮춘 서브를 보낸다.

아니나 다를까?

차민은 만희의 서브를 보고 드롭샷을 준비한다. 그의 얼굴에는 악마 같은 웃음이 가득하다.

만희 역시 그의 표정을 보고 서브 후 지면에 발이 닿자마자 네트 앞으로 달려든다.


‘드롭샷은 예상만 할 수 있다면 오히려 나한테는 기회야.’


틱-.

타다닥-.


드롭을 확신해 미리 뛰었지만, 차민의 드롭샷은 여전히 날카롭다. 만희의 코트 오른쪽 네트를 아슬아슬하게 넘기며 공이 한 번 튀어 오른다.


‘조금 짧아. 이럴 땐 슬라이딩으로 거리를 좁힌다.’


만희는 바운드 된 공을 향해 다리를 찢으며 슬라이딩하며 라켓을 뻗는다.


콰직-.


그 순간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만희의 발목이 꺾이며 네트 앞으로 나뒹군다. 만희는 넘어지며 라켓을 던져야 하지만 미처 대응하지 못하고 라켓에 의해 갈비뼈까지 부러진다.


콰드득-.


“으아아아아악!”


만희의 괴성이 코트장을 감싼다. 관중들 모두가 경악하며 만희를 바라본다.

만희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와중에 반대편에 있는 차민이 보인다.

찰나였지만, 차민은 분명 웃고 있었다.

만희는 그대로 정신을 잃는다.

코치는 달려와 만희를 들쳐업고 코트장 밖으로 달려나간다. 만희가 떠나고 난 자리에 코트에는 만희의 라켓만이 덩그러니 놓여져 있다.


**


해가 저물어가는 시점, 코트 관리인이 들어와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그러다 미처 챙기지 못한 만희의 라켓을 찾아낸다.


“아 저거구먼.”


코트 관리인은 천천히 걸어와 만희의 라켓을 집어 들고 돌다가 휘청이며 넘어진다.


“아이쿠야.”


코트 관리인은 넘어진 곳의 바닥을 보고 깜짝 놀란다.

코트 위에는 발 하나가 들어가고 남을 정도의 큰 구멍이 패어 있다. 그리고 그 구멍 주변으로 색이 묘하게 다른 흙이 바닥에 뿌려져 있다.

관리인은 다른 색의 흙을 움켜잡으며 속삭인다.


“흠 어떤 개잡놈이 내 코트에서 이런 장난질을.”


코트 관리인은 큰 손으로 만희의 라켓을 꽉 쥐며 코트장 밖을 나간다.

움푹 팬 코트와 색이 다른 흙만이 누군가의 패어 버린 마음과 멍울을 대변하고 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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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경계 24.09.10 22 2 12쪽
8 친구 24.09.09 21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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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스탠스 24.09.07 28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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