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 코트 위, 폭군에게 도전하는 천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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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우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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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우꾸우
작품등록일 :
2024.09.0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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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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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3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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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시작 : 서브

DUMMY

늦은 저녁 비찬의 집.

ㄱ자로 놓인 주방 선반 위에는 이제 막 요리가 끝났는지 정신없이 재료들이 널브러져 있다. 반쯤 자른 애호박, 여기저기 놓여져 있는 그릇들, 설거지 위에 대충 던져진 깨진 달걀 껍데기. 가스레인지 위에는 작은 뚝배기에 된장찌개가 보글보글 끓고 있다.

정신없는 주방과는 다르게 거실에 놓인 식탁 위에는 달걀후라이을 비롯한 다양한 반찬들이 가지런히 올려져 있다.


띠리릭-.


현관문이 열리고 영만과 비찬이 들어온다.

연수는 화장실 문을 열고 나오며 같이 들어오는 그들을 보고 묻는다.


“아니, 어떻게 부자가 나란히 들어오지?”

“이 앞에서 만났어.”

“나 몰래 둘이 뭐 맛있는 거 먹고 들어오는 거 아니지?”

“에이 무슨 소리. 같이 먹으려고 치킨 사왔···.”


자랑하듯 치킨 봉투를 높게 든 영만의 옆구리를 비찬이 쿡 찌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영만은 상황파악을 하지 못하고 비찬과 연수를 번갈아 본다. 그러다 연수 뒤에 펼쳐진 진수성찬을 보고 조심스레 치킨 봉투를 뒤로 숨긴다.


“하하, 이게 우리 대표님이 다 돌렸지 뭐야? 내가 막 오늘 당신이 요리한다고 했던 걸 까먹었다거나 그런 건 절대 아니야. 알지?”

“됐어. 치킨이나 많이 드세요. 비찬아 밥 먹자.”

“네. 어머니.”


비찬은 신발을 벗고 집으로 들어간다.

그런 비찬의 손을 영만이 꽉 잡는다. 영만의 살려달라는 표정. 간절한 표정과 붙잡은 손을 가볍게 뿌리치며 비찬은 영만에게 고개 숙여 인사한다.


“아버지. 저는 오늘 된장찌개 먹을 생각에 훈련에 제대로 임하지도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비찬은 달려가 식탁에 앉는다.

영만은 원망스러운 눈으로 비찬을 째려본다.

연수는 된장찌개를 가져가며 영만에게 말한다.


“됐으니까 와서 얼른 앉아요. 찌개 식어요. 조금만 먹고 뭐 치킨 맛만 보든가.”

“아 그럼요. 치킨은 맛만 보면 되지. 누가 치킨을 다 먹나?”


영만은 헐레벌떡 들어와 치킨 봉투를 내팽개치고 식탁에 앉는다.

연수도 식탁에 앉아 그들을 보며 말한다.


“둘 다 손은 씻지?”


엄마의 말에 두 남자는 질세라 달려가 화장실에서 함께 손을 씻는다.

그 모습에 연수는 웃음이 난다. 집 안에 울려 퍼지는 깔깔대는 웃음소리,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된장찌개, 온 가족이 둘러앉은 식탁.

행복이 집 안 가득 채워진다.


**


된장찌개, 반찬, 그리고 치킨까지. 모두 감쪽같이 사라지고 빈 그릇과 뼈만 남았다.

비찬과 영만은 배를 부여잡은 채 똑같은 자세로 소파에 기대앉아 있다.

연수는 빈 그릇을 가져가 설거지를 시작한다.

영만은 그런 연수에게 이야기한다.


“그냥 둬요. 내가 좀만 쉬었다 할게.”

“아냐. 비찬이랑 놀고 있어요. 내가 할래.”


그릇 부딪히는 소리와 물 흐르는 소리가 시작된다.

영만은 소리가 나는 부엌 쪽을 한번 쓱 본 뒤 고개를 돌려 비찬이를 바라본다. 평소와는 다른 영만의 시선에서 비찬은 어쩐지 낯설음을 느낀다.


“아빠 왜요?”

“비찬이 별일 없지?”


순간 비찬의 동공이 흔들린다. 아빠가 무얼 알고 말하는 건지, 아빠에게 말을 해야 하는 건지에 대한 생각에 빠진다.


“무슨 일 있어?”


비찬의 침묵에 세상 큰일이라도 난 거 같은 표정의 영만.

비찬은 차마 그런 영만을 걱정시킬 수 없다. 더군다나 모든 이야기는 만희에게 전달했으니 코치를 믿어보기로 한다.


“아니요. 아무 일도 없어요.”


비찬의 밝은 웃음에 영만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리곤 비찬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조만간 일이 잘 해결될 거 같다.”

“네?”

“자세히는 말하기 어렵지만, 아빠 회사 대표님이 아빠를 좋게 봐서 이번에 큰일 하나를 맡기실 거 같아. 그거만 해결되면 엄마 빚도, 비찬이 테니스도 다 해결할 수 있어. 아빠가.”


영만의 굳게 다문 입술에서 비찬은 어쩐지 불안함을 느낀다. 걱정스러운 눈으로 아빠를 바라보는 비찬. 그런 비찬의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영만은 말한다.


“이게 누굴 걱정해? 나쁜 일 아니야. 이것아. 그래도 엄마한테는 아직 비밀이다.”


여전히 자상하고 의지가 되는 영만의 모습에 비찬은 마음이 놓인다.

비찬은 거실 한구석에 놓인 테니스 라켓을 본다. 만희의 라켓.


‘당분간만 코치님께 신세를 지자. 아빠가 말한 일이 잘 끝나면 라켓은 그때 사달라고 해야겠다.’


화목한 비찬의 가정은 각자의 생각에 잠기며 밤은 깊어만 간다.


**


이른 새벽. 드넓은 군암강 위로 아침을 알리듯 해가 조금씩 고개를 든다. 넓게 뻗은 군암강 다리. 아침부터 출근하는 차들로 가득하다. 시끄러운 경적을 비롯한 도시의 소음이 군암강 다리 주변을 가득 채운다.

주변 소음은 모두 사라지고 신나는 음악이 흐른다.

비찬은 양쪽 귀에 이어폰을 꽂고, 한 손엔 라켓을 쥐고, 등 뒤에는 신발주머니를 메고 다리를 건너고 있다. 음악소리에 맞춰 비찬은 다리 위를 달리기 시작한다.

비찬의 집에서 학교까지는 차로 20분, 달려서 간다면 1시간 거리다. 그 거리를 비찬은 매일같이 달리고 있다.

군암강 다리를 지나자 보이는 군암중학교.

넓은 군암중 끝에 작은 실내 테니스장이 보인다.

비찬은 신이 나서 속도를 올리기 시작한다. 얇은 생머리가 들썩거린다. 비찬의 하얀 뺨 위에 상기된 홍조가 눈에 띈다.


설레는 마음으로 달려가 테니스장 문을 벌컥 열어젖힌다.

고요한 테니스장. 아무도 없는 거 같은 적막. 그 적막 속에서 숨을 몰아쉬는 비찬의 다리로 공이 하나 굴러온다. 발밑에 떨어진 공을 잡으며 심호흡을 하고 공이 굴러온 방향을 본다.

그곳에 서서 걸어오는 사람은 다름 아닌 원재. 원재는 웃으며 비찬에게 인사한다.


“늦었잖아. 인마.”


비찬은 원재를 보며 반갑게 웃는다.


“진짜 못 이기겠다. 너는 몇 시에 나왔냐?”

“6시? 그리고 말은 똑바로 하자. 나를 못 이기는 게 아니고 우리 엄마를 못 이기는 거다.”

“웃기시네. 어머니 아니었어도 열심히 할 놈이 꼭 말은.”

“최소한 10분은 더 자지 않았겠냐?”

“그것도 맞다. 크크.”

“얼른 와. 사람들 오기 전에 몸 풀고 한 게임 해 줘.”

“영광입니다.”


비찬은 신발 주머니를 풀어 신발을 꺼낸다. 앉아서 다리를 길게 펴고 신발을 신는다.

여기저기 찢긴 신발. 밑창은 얼마나 신었는지 다 닳아 있다.

원재는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돌린다. 보지 않는 것이 예의라 생각하는 원재다.


“몸 풀고 와라. 서브 연습 좀 하고 있을게.”

“응. 금방 간다.”


원재는 반대 방향으로 걸어간다.

비찬은 신발을 신다가 원재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그리곤 원재의 다리를 쳐다본다. 이미 종아리에도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다.

비찬은 다짐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원재의 다리를 지켜주겠다고.


**


비찬과 원재는 테니스장 벽에 걸린 시계를 본다.

7시 정각.

원재는 자신의 시계로 스톱워치를 누르면서 말한다.


“원세트 매치만 하자. 코치님 오시면 필라테스 전에 게임 했다고 혼난다.”

“좋아. 서브는?”

“먼저 할래?”

“좋지.”


원재는 비찬에게 공 두 개를 나란히 던져준다.

비찬은 날아오는 공 하나를 왼손으로 잡는다. 그리고 잇따라 하나 더 날아오는 공은 라켓으로 잡는다.

비찬은 공 두 개를 모두 왼손으로 잡으며 비교한다. 그중 보풀이 많은 공을 주머니 속으로 집어넣고, 비교적 보풀이 적은 공을 왼손으로 쥔다.

원재는 반대편에서 비찬의 행동을 유심히 쳐다본다.


“자, 또 어떤 공으로 나에게 절망을 안겨줄 거냐? 강비찬.”


비찬은 공을 든 손을 높게 든다(상대가 준비되었는지 확인하는 행위다).

원재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인다.

비찬은 자신의 손에 쥐어진 공을 빤히 쳐다본다. 그리곤 눈을 감고 공을 코로 가져가 냄새를 맡는다.


“스읍. 하.”


비찬의 눈빛이 바뀐다. 비찬은 원재의 포지션을 확인하지도 않는다. 그저 공을 높이 던져 토스한다. 토스한 공은 천장을 향해 높게 올라간다.

원재는 비찬이 던진 공의 높이를 확인한다.


‘높다. 시작부터 온다.’


토스가 끝나기도 전에 원재는 T존을 버리고 와이드를 선택한다.

이 행동은 얀이 서원의 토스를 예상하고 달려든 것과는 다른 것이다. 얀은 서원의 행동 패턴을 단 한 구 만에 알아냈다면 원재는 그저 찍는다.

어차피 비찬의 저 높은 토스는 공을 보고 난 다음에는 반응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선택한 행동이다.


탕, 탕-.


정답.

와이드로 깊숙하게 들어오는 비찬의 서브를 원재는 달려가 받아친다.

얀의 공도 그러했듯, 원재의 공도 날카롭게 더 각을 내며 와이드로 도망친다.

다만 서원이 하지 못했던 행동을 비찬은 해낸다. 서브에서 발이 떨어짐과 동시에 공이 오는 방향으로 뛰어간다. 그리고 한 번 더 말도 안 되는 각을 내며 와이드로 더 날카롭게 공을 꽂아 넣는다.

원재는 빠르게 달려가 받아치지만, 네트에 걸리며 공은 바닥으로 떨어진다.


“15:0(피프티러브).”


원재는 공을 주워 비찬에게 던져주며 외친다. 그리고 씩 웃는다.


“첫 서브부터 너무 달리는 거 아니야?”


평소 밝은 비찬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무서운 표정으로 게임에 임하는 또 다른 비찬만이 남아 있다.

비찬은 웃음기 없는 얼굴로 대답한다.


“상대에 대해 파악할 필요가 없으니까.”

“나에 대해서는 모든 알고 있다. 이거지?”


비찬은 질문에 답하지 않고 애드코트로 걸어가 다음 서브를 준비한다.

원재는 그런 비찬을 보며 못 당하겠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돌린다.


“연습 게임이라니까. 혼자 진지해지기는.”


원재는 다시 리턴할 자세를 잡고 비찬을 쳐다본다.

비찬은 금세 코트 위에 녹아들었다.

무섭게 집중하는 비찬을 보며 원재는 속삭인다.


“좀 부럽긴 하네.”


비찬의 토스는 여전히 높다.

원재는 다시 한번 와이드로 달린다.


탕-.


비찬의 서브는 T존으로 강력하게 꽂힌다.

서브의 속도는 어림잡아 200km 이상.

원재는 서원의 강서브를 받을 때와 같은 느낌을 받는다. 절망적인 패배감. 무슨 짓을 해도 이겨낼 수 없을 거 같은 중압감.

그 후로 첫 포인트 한 구를 제외하고는 모두 서브에이스로 게임이 끝난다.

비찬은 공을 원재에게 던져주며 말한다.


“1:0”

“코트체인지는?”

“할래?”

“됐어. 그냥 하자.”


비찬은 자세를 잡고 원재의 서브를 기다린다.

원재는 리턴 자세를 잡는 비찬의 포지션을 살핀다. 서브가 어디로 오든 리턴할 수 있는 단식 라인 끝에 서 있다. 반대로 생각한다면 어디로 오든 칠 수 있다는 자신감.

원재는 당연한 기본적인 포지션에 묘하게 기분이 상한다.


“욕심 좀 내볼까?”


원재는 가볍게 공을 땅에 서너 번 튀긴 후 토스한다. 그리곤 천천히 뒷발을 앞발에 붙이며 핀포인트 자세를 취한다.

비찬이는 그런 원재의 자세를 보고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뭘 또 연습한 거야?”


원재의 볼은 강력한 속도로 날아가 서비스 라인 애매한 위치에 꽂힌다.

비찬의 포지션에서 포핸드를 치기 딱 좋은 위치로. 비찬은 빠르게 스윙을 휘둘러 다운더라인에 공을 꽂는다.

리턴에이스.


“쯧. 0:15(러브피프티).”


원재는 비찬의 역습에 포인트를 빼앗긴다. 애매한 서브에 혀를 찬다.


“쯧. 아직 미완성이네. 좀 더 연습해야 하나?”

“하지 마.”

“뭐라고?”

“그거 연습하지 말라고.”


비찬은 원재를 노려보며 진지하게 말한다.


“뭐야? 갑자기. 무섭냐? 내가 어마어마한 서브를 완성시켜 올까 봐?”

“두 발을 모으면 서브가 더 세질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핀포인트라고 하지. 너도 은연중에 따라하는 자세고.”

“네 다리를 봐.”


원재는 자신의 다리를 쳐다본다.

중학생답지 않은 종아리 근력. 자신의 무기를 더 극대화하기 위해 원재는 늘 하체 운동에 중점을 두고 있다. 더 빠른 다리를 가지기 위해 매일 달린다. 그로 인해 원재의 종아리에는 잔 근육이 가득하다.

비찬은 원재의 다리를 라켓으로 가리키며 말한다.


“충분히 지면 반동을 이용할 수 있는 근력을 키워 놓고, 안정성 떨어지는 짓을 굳이 왜 하는 거야? 네 길을 똑바로 가. 무식하게 연습만 하지 말고.”


비찬의 독설에 원재도 표정이 굳는다.

게임을 시작하니 완전히 딴사람이 되어있는 비찬.

그런 비찬을 원재 역시 무섭게 노려본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긴장감이 군암중 코트에 흐른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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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첫 세트 : 높은 벽 24.09.14 22 2 13쪽
» 게임의 시작 : 서브 24.09.13 21 2 13쪽
11 동상이몽 24.09.12 23 2 13쪽
10 부러진 라켓 24.09.11 21 2 13쪽
9 경계 24.09.10 23 2 12쪽
8 친구 24.09.09 22 3 12쪽
7 함정 24.09.08 28 2 11쪽
6 스탠스 24.09.07 29 3 13쪽
5 내딛는 첫발 24.09.05 34 2 12쪽
4 군암중학교 24.09.04 39 2 13쪽
3 나원재 24.09.04 48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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