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 코트 위, 폭군에게 도전하는 천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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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우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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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우꾸우
작품등록일 :
2024.09.0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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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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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7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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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스

DUMMY

훈련이 모두 종료된 테니스장. 내리는 한줄기 햇빛은 점수판을 가리킨다.

점수는 6:1. 원재의 승이다.

비찬은 점수판을 보고 있다. 그의 주변으로는 널브러진 공과 정리되지 않은 볼 카트가 보인다.

옆에는 원재, 무룡 그리고 신입생인 이은희가 테니스장을 정리하고 있다.

무룡은 점수판을 보고있는 비찬에게 말한다.


“야! 강비찬. 자꾸 멍때릴래? 얼른얼른 정리 안 하냐? 빠져가지곤.”

“아 미안, 미안.”


비찬은 코트 정리를 돕는다.

시간은 2시 20분. 조급해 보이는 아이들을 보며 말한다.


“너희 3시에 차민 아카데미 첫 수업 아니야?”


원재가 시간을 본다.


“으. 늦었다. 그래도 빨리하고 뛰면 충분해.”

“아니야. 내가 혼자 정리할게. 너희 얼른 가봐.”


비찬의 말에 은희는 쩔쩔매며 말한다.


“그래도 이 많은 걸 선배 혼자 어떻게 하십니까?”


이은희. 운동한다기엔 조금 통통한 체형. 시력이 나빠 동그란 안경을 쓰고 있다.

원재, 무룡과 어린 시절부터 테니스를 같이 해온 한 살 터울 동생이다. 열 살 때 처음 만난 이 친구들은 삼총사처럼 붙어 다녔다.

비찬은 은희를 보며 말한다.


“난 연습 더 하다가 가려고. 근데 다 정리해버리면 연습 못 하잖아. 부탁할게.”


비찬은 아이들을 보며 두 손을 모은다.


“비찬아.”


원재는 마음이 짠해져 무언가 말하려 한다.

무룡은 그 말을 자른다.


“어허이. 강비찬군. 아주아주 고마워요. 이 자식. 얼마나 더 강해지려고 나머지 연습을. 허허. 몰래 훈련법을 지켜봐야 하는데. 이놈의 아카데미! 어머니, 날 놓아주세요!”


무룡의 말에 모두가 웃는다. 그렇게 친구들은 고맙다는 말을 건네고 급하게 뛰기 시작한다.

모두가 떠나간 테니스장.

비찬은 볼머신기를 질질 끌고 온다. 그리곤 볼머신기 반대편에 가서 선다.


위웅, 위웅-.


리턴 자세를 잡은 비찬은 볼머신기 돌아가는 소리에 맞춰 호흡한다.


“스읍. 후.”


탕-.


볼머신기가 발사되자 공이 날아오는 방향으로 빠르게 스텝한다. 하나, 둘. 투 스텝으로 가볍게 오픈스탠스(빠른 공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두 발을 수평 선상에 놓는 스탠스)를 잡는다.

스핀을 가득 머금은 공은 바닥에 바운드되며 비찬의 라켓까지 튀어 오른다.

비찬은 바운드 되고 튀어 오르는 공을 끝까지 본 다음 라켓을 휘두른다. 비찬의 라켓 정가운데 공이 맞으며 엄청난 대포소리를 내뿜는다.


펑-!


비찬의 입가에 미소가 띤다. 그리곤 힘차게 앞 스윙. 라켓은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며 비찬의 어깨에 안착한다.

비찬이 쏘아 올린 볼 역시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며 반대편 코트로 날아간다.


탁-.


반대편에는 만희가 서 있다. 그는 날아오는 볼을 한 손으로 잡는다. 그리곤 고개를 숙여 볼머신기를 끄고 비찬을 바라본다.

비찬은 당황하며 말한다.


“아 코치님. 죄송해요. 금방 정리하겠습니다.”


만희는 무섭게 비찬을 쳐다보며 말한다. 평소 장난스럽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온비찬. 여러 차례 말했을 텐데? 오픈스탠스는 볼을 따라잡기 편하고 쉽지. 그렇지만 힘이 약한 주니어 선수에겐 코일링이 생명이다. 그렇기에 몸을 회전하기 쉬운 클로즈스탠스가 기본이다. 기본을 무시하지마.”

“강비찬입니다. 코치님. 온비찬이 아니고요.”


평소 남에게 싫은 소리를 못 하는 비찬의 얼굴에 화가 잔뜩 서려 있다.

만희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한다.


“알았다. 강비찬.”

“고맙습니다.”


비찬은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은 듯 코치를 노려보며 말한다.


“코치님. 혹시 훈련 중에 랠리 못하게 하고 계속 스텝 연습만 시키는 이유가 제가 온씨가 아닌 강씨를 써서입니까?”


만희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팔짱을 낀다.


“너 보기보다 굉장히 꼬였구나?”


비찬은 만희의 말에 욱하며 소리친다.


“그러면 도대체 왜 랠리를 못하게 하시는 겁니까!? 솔직히 원재랑 시합해도 밀리지 않는다고요. 코치님은 늘 테니스는 실력순이라 말하면서 왜 저는 늘 기본 스텝만 시키냐고요!”


만희는 팔짱을 풀고 테니스공을 두 개 집어 든다. 그리곤 비찬을 본다.


“먼저 너의 성을 잘못 부른 건 사과한다. 어른으로서 좀 더 조심했어야 했어. 근데 그깟 어른들의 문제 때문에 너를 스텝 연습시킨다 생각하냐?”

“그러면 그게 아니면 뭡니까?”


만희는 비찬처럼 오픈스탠스를 잡는다. 그리고 야구를 하듯 테니스공을 힘차게 비찬 옆으로 던진다. 공은 힘있게 날아가 테니스 벽면 그물망에 맞고 바로 떨어진다.

비찬은 공을 쳐다보다 다시 만희를 본다.

만희는 두 번째 공도 힘차게 집어 던진다. 이번에는 왼발을 앞으로 뻗는 클로즈스탠스를 취하면서. 공은 전보다 훨씬 빠르게 날아가 벽면 그물망에 맞으며 잠시 머물다 떨어진다.


“어떠냐? 첫 구와 두 번째 구의 차이를 알겠냐?”


비찬은 분명 공 두 개의 차이를 느꼈다. 그리곤 잠시 생각에 잠긴다.


“기본도 이해하지 못한 놈이 그저 타고난 운동신경빨로 공 칠 거면 너 혼자 대회 나가. 테니스부엔 왜 들어오고, 코치는 왜 필요하냐?”

“그렇지만 프로들은 거의 오픈을 유지하지 않습니까?”

“세발자전거랑 두발자전거랑 같냐?”

“네?”

“이제 막 세발자전거 갓 뗀 놈이 경륜 선수는 왜 저렇게 자전거를 탑니까? 라고 묻는 거랑 다를 게 없다는 뜻이다. 멍청한 새끼야.”


비찬과 만희는 잠시 서로의 눈을 맞추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23m가 조금 넘는 코트의 거리가 그들의 견해차를 반영하는 듯싶다.

만희가 먼저 자리를 뜨며 이야기한다.


“5시. 그때까지는 불 끄고 가라. 내 말 안 들어 처먹으면 랠리는 없다. 뭐 같으면 네가 코치하던가. 간다. 온비찬.”


만희는 테니스장 문을 닫으며 사라진다.

비찬은 자신의 발밑에 떨어진 공 두 개를 주우며 혼잣말을 한다.


“강비찬이라니까···.”


비찬은 테니스공 하나를 만희처럼 힘껏 집어던진다.


**


벌컥-.


문이 열리고 원재, 무룡 그리고 은희가 들어온다.

실내는 금방 페인트칠한 거 같은 예쁜 하드코트 4면이 눈에 띈다.

은희는 바닥을 발로 살살 밀며 말한다.


“우와. 여기 진짜 예쁘다.”


무룡은 은희의 머리를 라켓으로 때리며 말한다.


“당연한 소리를. 자그마치 차민이라고. 차민. 돈을 얼마나 쏟아부었겠냐?”

“애 머리를 왜 자꾸 때려. 마이콜 그거 하지 말라고.”


원재가 무룡의 라켓을 뺏으며 말한다.

무룡은 실눈을 뜨며 원재와 은희를 번갈아 본다.


“형제끼리는 안된다. 형제끼리 그런 거 아니야. 새끼들아. 너희는 거의 가족이라···. 으악!”


원재는 헛소리하는 무룡의 머리를 라켓으로 때린다.

은희는 쌤통이라는 듯 깔깔댄다.

장난치는 셋을 향해 멀리 있던 미연이 소리친다.


“나원재! 지금이 몇 시야? 빨리빨리 안 와?”

“비상비상. 원재 어머니 빡치셨다. 가자.”


무룡은 급하게 짐을 들고 뛰기 시작한다. 그 뒤로 원재, 은희도 부랴부랴 달려간다.

미연 옆으로는 수십 명의 학부모가 설레는 표정으로 누군가를 기다린다.

다닥다닥 붙여놓은 간이의자에 학부모들이 앉아 있다. 그 앞으로는 아이들이 바닥에 옹기종기 모여 기대에 부풀어 떠들고 있다.

원재는 학교 선배인 일우와 민희 옆으로 앉는다.


“형, 누나 오셨어요?”


민희는 웃으며 원재의 어깨를 다독인다.


“코트 청소하고 오느라 고생이 많네. 고마워. 같이 해야 하는데.”

“신입생이 쟤 혼자인 걸 어떡하냐? 얘들이라도 해야지.”

“맞습니다. 일우 형. 그런데 오늘은 비찬이가 다 해준다고 해서 저희는 편하게 왔어요.”


일우는 비아냥거리며 말한다.


“하, 땡잡았구먼? 호구 한 명 들어와서. 에이스는 좋겠네. 똥 닦아줄 친구도 있고.”

“박일우 왜 그래? 원재가 그럴 애냐?”


일우는 민희한테 구박받고 미안한지 손을 내밀며 사과한다.


“미안. 자격지심 같다. 사과할게.”

“아니에요. 형. 괜찮습니다.”


원재는 일우가 자신을 어떻게 보든 상관없었다. 그저 코트에 남아 혼자 연습하게 될 비찬이 안쓰러울 뿐이다. 원재는 작은 한숨을 쉰다.


“안녕하십니까? 차민 아카데미의 대표 차민입니다.”


박수 소리가 쏟아진다.

원재도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본다.

말로만 듣던 차민이 눈앞에 있다. ATP 투어 랭킹 39위이다. 대한민국에서 단 두 명만이 투어 50위권 안으로 진입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차민이다.

주황색 빡빡머리. 핑크색 티셔츠와 핑크색 바지 그리고 핑크색 신발까지. 화려하게 차려입고 사람들 앞에서 선다.

그의 플레이는 패션만큼이나 화려했다. 상대의 허를 찌르는 로브와 드롭을 마음대로 구사했으며, 가끔 언더서브를 넣어 상대를 당황시키는 행동도 서슴없이 보여줬다.

그렇게 상대를 당황하게 한 뒤에는 늘 농락하는 제스처를 취하며 비매너 모습을 보여주곤 했다. 악동 같은 코트 위 이미지와는 다르게 언제나 인터뷰나 코트 밖에서는 예의있고 신사적인 모습에 모두가 그를 보며 즐거워했다.

그렇게 테니스 현역 시절 붙여진 별명은 코트 위의 광견이었다.


“미친개로 더 많이 알고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코치를 할 때도 아마 그 성격이 나올 듯 싶은데 싫으신 주니어 선수들이나 학부모님들은 당장 이 자리를 떠나셔도 좋습니다.”


차민의 언행과는 다른 예의있고 정중한 행동에 학부모들은 앞으로의 일을 알지 못한 채 마냥 손뼉을 쳐댔다.

무룡은 입술을 깨물며 원재에게 귓속말한다.


“야. 어쩐지 좀 띠겁지 않냐?”


딱-.


뒤에 있던 영도가 무룡의 뒷통수를 때리며 말한다.


“투어 39위다. 띠거우면 뭐? 마이콜. 주둥이 놀리다가 군암중 망신시키지 말고 입 닫아.”


무룡은 자신의 뒷통수를 잡는다. 그리곤 원재를 보며 입 모양으로만 욕한다.


“씨발롬.”


원재는 그런 무룡을 보며 웃음을 참는다.

차민은 말을 이어나간다.


“여기에는 여러 학교 학생들이 있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학교 출신이든 상관없습니다. 이곳에 들어온 이상 모두 차민 아카데미 출신이 되는 겁니다. 학교체전을 제외한 모든 대회에서 학교 이름을 내려놓고 차민 아카데미 이름으로 나가세요. 제 이름을 걸고 나가는 학생들은 제가 목숨 걸고 편애할 것을 약속합니다.”


차민의 농담 같은 진담에 다들 웃는다.

그 모습을 실내 사무실에서 강만희가 바라보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재수 없는 새끼.”

“부러운 새끼 아니고요?”


차민 아카데미 매니저 한가을. 짧은 단발에 작은 키. 노랗게 물든 머리가 약간은 불량스럽게 보인다. 그렇게 의자에 앉으며 만희에게 말한다.


“중딩 때 라이벌이 떵떵거리며 잘되고 코치님은 고작 군암중 코치나 하고 있으려니 배 아프신 거 아니냐고요?”

“라이벌은 무슨. 하! 매니저님이 잘 모르셨나 본데 내가 저놈보다 열 배는 더 잘했을 겁니다. 진짜 중학교 시절에 저랑 쟤랑 결승에서 붙었을 때···.”

“네네. 그러시겠지요. 차민 대표님 들어오시네요.”


차민이 오리엔테이션을 끝내고 사무실로 들어온다.

만희는 차민을 본다.

차민은 만희를 보며 살짝 당황한다. 그리곤 눈을 맞추지 않고 자리로 가서 앉으며 말한다.


“누구시더라?”

“어이. 차민. 잘나가는 척 좀 적당히 하지?”


차민은 그제야 고개를 들어 만희의 얼굴을 본다. 그리곤 생각이 낫다는 듯 악수를 건네며 말한다.


“아아, 강만희 맞지? 중학교 때. 우리 학교 테니스부. 야 반갑다. 잘 사냐?”

“후. 알아봐 줘서 고맙습니다. 차민 대표님. 할 이야기가 있어서 왔다. 오늘은 군암중 코치 자격으로 온 거야.”


그때, 노크 소리가 들린다. 문이 열리고 조심스럽게 미연이 얼굴만 내민다.

차민은 미연을 보고 웃으며 마중 나간다. 그리곤 고개를 돌려 만희에게 말한다.


“이거 어쩌냐? 나 오늘 선약이 많다. 다음에 와라.”


만희도 미연을 본다.


“원재 어머니. 안녕하세요.”

“아 코치님. 오늘은 무슨 일로?”

“차민 대표님과 아이들 훈련 문제로 상의를 좀 하려고요.”


미연은 만희를 보고 작은 한숨을 내쉬며 말한다.


“차민 선수, 아니 대표님께서 알아서 하시겠죠. 그냥 돌아가세요. 코치님.”

“그래요. 코치님. 저희 아카데미와 굳이 함께 상의할 일은 없을 거 같은데 돌아가시죠?”


만희는 억지로 웃으며 말한다.


“두 분 말씀 나누시고 오시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차민 대.표.님.”

“에휴. 오래 걸릴 텐데. 정 그러시면 뭐 그러시던가요. 어머니 저희는 나가서 이야기할까요?”

“네. 그러시죠. 대표님.”


그들이 나가고 만희는 창밖을 보며 끌어 오르는 화를 참고 있다.

옆에서 가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대표와 학부모들은 영업을 시작했고, 영업 상품인 아이들은 훈련을 시작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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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부러진 라켓 24.09.11 21 2 13쪽
9 경계 24.09.10 23 2 12쪽
8 친구 24.09.09 22 3 12쪽
7 함정 24.09.08 28 2 11쪽
» 스탠스 24.09.07 29 3 13쪽
5 내딛는 첫발 24.09.05 34 2 12쪽
4 군암중학교 24.09.04 39 2 13쪽
3 나원재 24.09.04 48 3 13쪽
2 온비찬 24.09.04 58 3 13쪽
1 한서원 24.09.04 83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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