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 코트 위, 폭군에게 도전하는 천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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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우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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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우꾸우
작품등록일 :
2024.09.0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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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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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4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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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첫 세트 : 높은 벽

DUMMY

그들에게만 더 큰 중력이라도 작용하듯 무거운 공기가 두 아이를 짓누른다. 심지어 땅에 떨어져 있는 테니스공의 보풀도 한껏 아래를 향하고 있다. 그 압박을 두 아이는 고스란히 받으며 서로를 노려본다.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벌어질 거 같은 분위기.

노란 까까머리 원재의 이마에서 굵은 땀방울이 눈가로 내려온다. 원재의 눈에 땀방울이 들어간다. 원재는 눈을 깜빡인다. 그리곤 왼손의 손목 밴드로 눈가의 땀을 닦아낸다. 정색하며 노려보던 원재의 표정이 풀리고 금세 웃는다.


“오오. 재능충 강비찬. 역시 내가 인정한 천재답다. 그걸 또 금세 파악하고 자비롭게 내 걱정까지 해주는 거야? 감동이다. 흑.”


원재는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웃으며 비찬에게 말한다.

하지만 비찬은 여전히 정색한 채 이야기한다.


“게임 중에는 좀 진지해져. 연습 게임이라 하더라도. 네가 그렇게 장난식으로 나오면 내 입장에서는 꺾는 맛이 안 난다고.”


비찬은 라켓을 어깨 위로 걸치며 건방진 표정으로 원재를 본다.

원재는 옆에 떨어져 있는 공을 주우며 자리로 돌아가 공을 튀긴다.


투웅, 투웅, 투웅, 투웅-.


튀기던 공을 잡고 비찬을 보며 말한다.


“장난치는 게 아니야. 네가 그딴 표정으로 백 번이고 천 번이고 꺾어도 안 꺾인 것뿐이야. 딱 한 번만 말할게. 날 꺾으려던 천재란 놈들 다 이기고 지켜낸 랭킹 1위야. 열심히 도전해봐. 천재.”


원재는 여전히 즐겁다는 듯 웃고 있다. 그러나 그의 눈빛은 이제야 코트 위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비찬은 그런 원재의 표정을 보며 살짝 미소를 띤다.


“원재야. 제대로 무너져 보자.”

“건방진 자식이.”


원재는 토스를 높이 올리고 원래 하던 플랫폼 자세로 서브를 친다.

서브는 와이드쪽으로 뻗어간다. 스핀을 잔뜩 먹은 공은 바닥 위에서 요란하게 돌며 튀어 나간다. 와이드 깊숙하게 도망치는 볼을 비찬은 말도 안 되는 자세로 다이빙하듯 점프하며 리턴한다.

그리곤 날아가는 공을 바라본다. 공은 네트 정중앙으로 날아간다.

네트 앞에는 원재가 기다리고 있다.

서브 앤 발리.

서브를 깊숙하게 보내고 네트 앞에서 3구 위닝샷을 노리는 전략이다. 원재는 노련한 플레이로 유리한 위치에서 게임을 마무리 짓기 위해 라켓을 높이 든다.


“서브에이스는 기대도 안 했다. 괴물아. 이걸로 첫 포인트 가져간다.”


비찬은 오른 다리를 바닥으로 치고 오픈코트로 달린다.

원재는 그런 비찬의 반응을 예상하고 비찬이 달리는 반대 방향으로 공을 보내 역동작에 걸리게끔 한다.

비찬은 날아오는 공을 보고 이번엔 왼발을 바닥으로 깊게 누르며 몸을 회전시킨다. 그리고 회전시킨 힘을 이용해 원재의 얼굴 옆으로 포핸드 패싱샷을 때린다.

공은 날카롭게 날아가 원재의 뺨에 시원한 바람을 스치고 코트 베이스라인에 떨어진다. 베이스라인보다 공 반개쯤 뒤에 볼 마크가 찍힌다.

원재는 날아간 공을 바라보며 말한다.


“아웃. 15:15(피프티올).”


네트 앞에서 멍하니 서 있는 원재를 두고 비찬은 혼자 중얼거린다.


“임팩트 지점이 공 반개쯤 낮았어. 그만큼 벗어난다. 급박한 순간에는 아직도 볼을 끝까지 보지 못하는 거야.”


점수는 원재에게 돌아갔지만, 원재의 표정에는 어쩐지 슬픈 표정이 묻어 있다.


‘뭘 도전해보라는 거냐? 이미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수도 없이 꺾였는데.’


원재는 여전히 집중력의 전혀 문제가 없는 비찬의 눈을 보며 허탈하게 웃는다. 그리곤 토스를 높이 던져 공을 바라보며 이번엔 정말 행복하게 웃는다.


“그런데 그게 뭐? 이렇게 재밌는데.”


원재는 토스한 공이 최고점을 찍자 높이 점프하며 라켓으로 볼을 힘차게 때린다. 공은 힘차게 날아가 T존에 꽂힌다.

서브를 날린 원재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 반짝인다.


**


군암중 테니스장 문이 열린다.

무룡과 은희가 깔깔대며 들어온다. 무룡은 어쩐지 더운 열기로 가득한 코트를 한 바퀴 쓱 둘러본다.

중간에 매트를 깔고 누워 있는 원재와 비찬이 보인다. 그들은 세상 행복한 표정으로 땀을 잔뜩 흘리며 뻗어있다.

무룡은 그들을 보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은희야. 저것들 진짜 좀 변태 같지 않냐?”

“멋있는데 뭐. 오빠도 좀 본받아.”

“너 설마 취향이 저런 변태들이냐?”


무룡은 경악하는 표정으로 은희를 본다.

은희는 헛소리를 하는 무룡이 익숙한 듯,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코트로 걸어간다.

무룡과 은희를 따라 다른 테니스부원들도 들어온다.

그리곤 가장 마지막에 정실이 문을 닫고 들어온다.

다른 테니스부원들도 매트를 챙겨와 원재와 비찬의 앞뒤로 깔기 시작한다. 그리고 각자 자신의 스타일로 스트레칭을 시작한다.

정실은 뻗어있는 원재와 비찬의 앞에 선다.

그들은 벌떡 일어나며 정실에게 인사한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흐음. 이걸 박 코치님한테 말해야 하나? 너희 경기했지?”

“아니요. 그럴 리가요. 저희는 그저 선생님이 알려주신 필라테스 동작을 미리 와서 해보고 있었을 뿐입니다.”


원재가 꼭 무룡이처럼 능글맞게 웃으며 대답한다.

옆에서 매트를 깔던 무룡은 달려와 원재의 얼굴을 요리조리 뜯어보며 소리친다.


“마이콜 나와! 내가 마이콜인데? 나 나와! 나 새끼 나와! 내가 언제 나원재가 된 거지? 내 몸에서 나와! 아니 네 몸에서 나와!”

“최무룡. 자리 가서 앉아.”

“네 선생님.”


무룡은 돌아가 매트 위에 앉는다.

정실은 비찬과 원재를 보고 팔짱을 낀다. 그리곤 잠시 고민하듯 눈을 감는다.


“이번 한 번만이야.”

“죄송합니다.”


비찬과 원재가 동시에 대답한다.

정실은 그들에게 한발 다가오며 웃는다.


“선수는 몸이 재산이야. 오랫동안 행복하게 치고 싶으면 내 말 잘 듣고 따라와. 알았어?”

“네 알겠습니다!”


정실은 그들을 뒤로하고 크게 “모두 준비!”라고 소리치며 코트 앞으로 걸어간다.

비찬과 원재는 다행이란 표정으로 해맑게 웃으며 재잘댄다.

그런 그들을 영도는 뒤에서 무섭게 노려본다.

무룡은 매트 위에 앉아 영도를 바라보며 입술을 깨문다.


‘하, 뭐가 이렇게 불안하냐.’


**


바르셀로나 국제공항.

비행기 수속으로 정신없는 사람들이 보인다. 공항 안내대 앞 원형 기둥에는 서원이 블루투스 이어폰을 꽂고 삐딱하게 기대어 있다.

서원은 하얀색 점퍼를 입고 있다. 점퍼 어깨에는 [칸 아카데미]라는 문구가 영어로 적혀있다. 서원은 정신없이 핸드폰으로 축구게임을 하고 있다.

서원의 아빠인 병용은 서원에게 걸어온다. 병용은 서원의 블루투스 이어폰 한쪽을 빼며 이야기한다.


“한서원. 점퍼 벗어.”

“왜요? 추워요.”


서원은 병용을 쳐다도 보지 않고 핸드폰만 바라보며 대답한다.

병용은 서원의 핸드폰을 빼앗으며 다시 말한다.


“벗으라고.”

“아이씨.”


핸드폰을 뺏긴 서원은 아빠를 잠시 노려본다. 그리곤 점퍼를 벗어 아빠에게 집어 던지듯 건넨다.

병용은 서원에게 점퍼를 받아 들고 어디론가 걸어간다.

서원은 병용을 따라가며 소리친다.


“핸드폰하고 이어폰 내놔요!”


병용은 서원을 무시하고 공항 쓰레기통 앞으로 걸어가 점퍼를 버린다.

서원은 달려와 병용을 밀치고 점퍼를 꺼내려고 한다.


“뭐 하는 짓이야? 이걸 왜 버려!”


서원이 내는 큰 소리에 주변 이목이 병용과 서원에게 쏠린다.

병용은 쓰레기통을 뒤지려는 서원을 잡아끌며 더 큰 목소리로 소리친다.


“한서원! 쪽팔린 줄 알아 이 새끼야.”

“뭐가 쪽팔려? 다시 갈 거야. 잠깐 쫄아서 내 재능을 다 못 보여준 것뿐이야. 내가 아니면 누가 칸의 교육을 받는데? 어?!”

“저거 주워서 입으면 진짜 쪽팔린 거야. 똑똑히 들어. 네가 때려치운 거야. 막상 가보니까 좇도 교육이랄 것도 없고, 배울 것도 없어서 네가 때려치운 거라고.”

“그렇게 거짓말하는 게 더 쪽팔린 거 아니야? 무슨 아빠가 그딴 개구라를 가르쳐?”

“배워. 거짓말이든 허세든 배우라고. 절대 널 깎아내리지 마. 알았어?”


서원은 병용의 말에 입술을 깨문다.

병용은 그런 서원에게 한 발 다가가 귓속말한다.


“야이 병신아. 네 재능이 별거 아니라서 쫓겨났단 소리는 듣지 않게 하란 말이야. 네 아빠 쪽팔려 뒤지는 꼴 보고 싶지 않으면.”


병용은 서원에게 핸드폰과 이어폰을 쥐여주며 공항 입구로 걸어간다.

서원은 버려진 점퍼를 보며 손에 쥔 핸드폰과 이어폰을 부서질 거처럼 꽉 쥔다.


“시발 개소리하지 마. 누가 그래? 내 재능이 별거 아니라고? 다시 보여주면 돼. 그때, 다시 찾으러 올 거야.”


그렇게 공항 쓰레기통 한복판에 버려진 점퍼를 두고 서원은 걸어간다. 병용과 서원이 떠난 자리에는 처량하게 버려진 점퍼만이 남아 있다.

깔끔한 네이비 슈트에 갈색 구두를 신은 한 백인 남성이 천천히 쓰레기통을 향해 걸어간다. 그리곤 그 남자는 쓰레기통에서 점퍼를 꺼내 든다.

[칸 아카데미]라 적힌 로고를 바라본다.

깔끔하게 정리된 5:5 머리를 한 백인 남자. 그는 선글라스를 벗어 점퍼의 로고를 빤히 본다. 백인임에도 검게 그을린 그의 피부와 선글라스를 벗으니 드러나는 자잘한 주근깨에서 그가 얼마나 뜨거운 태양 밑에서 운동을 하는지를 금방 알 수 있다.

남자의 뒤로 짧은 금발 머리의 뚱뚱한 남자가 뛰어온다. 그는 붉은색 카라티에 터질 거 같은 청바지를 입고 있다.

뚱뚱한 백인 남자는 쓰레기통 앞에 서 있는 남자를 부른다.


“헤이, 로베르토. 쓰레기통 앞에서 뭐 하는 거야?”

“수속은 마쳤어? 알폰소?”

“응. 한 시간 뒤 비행기야. 손에 들고 있는 게 뭐야?”

“음···. 버림받은 천재?”

“무슨 소리야?”


알폰소는 뿔테 안경을 치켜들며 점퍼의 로고를 본다. 그리곤 어깨를 으쓱하며 말한다.


“또 칸의 짓이구먼.”

“그러게. 이번에 인터뷰 잡힌 나라가 한국이라 했지?”

“응. 그건 왜?”


로베르토 카를로스는 멀리 걸어가는 병용과 서원을 본다. 그리곤 도통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본다.


“그냥. 좀 기대가 되네.”

“음. 이번 일정은 기대할 만하다고. 한국은 음식이 최고야. 아마 자네 입맛에도 잘 맞을 거야.”

알폰소는 초롱초롱한 눈을 반짝이며 로베르토에게 말한다.

로베르토는 그런 알폰스의 눈을 피하며 선글라스를 쓴다.


“후. 가자고 먹보.”

“자네 코치를 그렇게 부르면 안 돼. 존중하라고.”


앞장서 걸어가는 로베르토의 손에 버림받은 점퍼가 쥐어져 있다.


**


이른 저녁. 군암타워가 보이는 어느 레스토랑.

통창에 보이는 군암타워 뒤로 붉은 노을이 넘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 군암시의 작은 상가들에 불이 켜지기 시작한다.

레스토랑의 고급 룸. 식탁 위에는 값비싸 보이는 해산물 요리들이 올라가 있다.

통창 너머 야경을 바라보며 서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비찬의 아빠인 영만이다. 멋진 풍경과 영만의 뒷모습이 어쩐지 잘 어울린다. 영만이 입은 공장 점퍼 등에는 [광영건설]이란 회사 이름과 함께 로고가 박혀있다.


스르르-.


자동문이 열리고 영만이 뒤를 돈다.

키가 작고 계량한복을 입은 노인네와 그를 보좌하는 정장 차림에 남성, 머리를 단정하게 묶은 여성이 들어온다.

정장을 입은 남자는 영만에게 명함을 건네며 인사한다.


“반갑습니다. 광영건설 본부장 장민용입니다.”

“네 반갑습니다. 강영만 소장입니다.”


그들이 인사를 건네고 있을 때, 백발의 노인은 비서가 빼주는 의자에 앉으며 말한다.


“앉으세요. 광영건설 회장 김광영입니다.”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초대해주셔서 가문의 영광입니다.”


영만은 넉살 좋게 웃으며 고개를 숙이고 자리로 앉는다. 떨리는 가슴을 쓸어내리고 심호흡을 한 뒤 광영을 본다.

광영은 그저 말없이 젓가락을 들어 회 한 점을 씹으며 묻는다.


“아드님이 군암중에 계신다고?”


이런저런 서두도 없이 이야기를 진행하는 김 회장에 방식에 영만은 당황한다. 사람 좋은 그의 얼굴에 식은땀이 흐르고 본부장 민용과 비서 이서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눈치를 살핀다.

당황하는 영만이 보이지 않는 건지, 아니면 그저 신경 쓰지 않는 것인지, 회장 광영은 그저 음식만을 먹고 있다.

영만은 어쩐지 광영의 뒤로 멋지게 펼쳐진 군암시의 야경이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한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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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동상이몽 24.09.12 22 2 13쪽
10 부러진 라켓 24.09.11 20 2 13쪽
9 경계 24.09.10 22 2 12쪽
8 친구 24.09.09 21 3 12쪽
7 함정 24.09.08 28 2 11쪽
6 스탠스 24.09.07 28 3 13쪽
5 내딛는 첫발 24.09.05 34 2 12쪽
4 군암중학교 24.09.04 38 2 13쪽
3 나원재 24.09.04 48 3 13쪽
2 온비찬 24.09.04 58 3 13쪽
1 한서원 24.09.04 83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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