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 코트 위, 폭군에게 도전하는 천재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스포츠, 드라마

새글

꾸우꾸우
그림/삽화
꾸우꾸우
작품등록일 :
2024.09.03 10:00
최근연재일 :
2024.09.19 00:05
연재수 :
18 회
조회수 :
544
추천수 :
41
글자수 :
101,602

작성
24.09.18 00:05
조회
15
추천
2
글자
13쪽

언더독(1)

DUMMY

차민 아카데미 실내 테니스장 1번 코트.

땀을 흘리며 무릎 꿇고 있는 이름 모를 주니어 선수의 뒤로 6:7이라는 점수가 적혀있다.

정철은 핸드폰을 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점수판을 슬쩍 보더니 양 선수를 향해 외친다.


“게임 셋! 앤드 매치, 원 바이 영도. 타이브레이크 7:6 영도 승.”

“으아! 가자 4강이다! 워후!”


평소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영도의 얼굴이 빨갛게 상기가 되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늘 본선에 오르는 것조차 힘겨워하는 영도다. 어릴 때부터 하지 않았다면 재능이랄 것도 없는 평범하디 평범한 주니어 선수.

그저 광영건설 회장인 아버지의 재력으로 남들보다 더 우수한 교육을 받아 지금까지 근근이 밀려나지 않고 버텨온 불운의 주니어 선수.

테니스를 칠 피지컬과 환경, 모든 게 갖춰져 있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나오지 않는 그 몹쓸 재능이란 놈.

그런 그가 처음으로 4강이란 문턱에 도착한다. 그것이 고작 아카데미에서 이루어지는 연습경기에 불과한 대회일지라도 말이다.

영도는 그 어느 때보다 다시 없을 컨디션을 유지하며 4강에 3번째로 올라간다.

4강에 가장 먼저 진출한 하늘이 선수대기석에 앉아 젤리를 먹으며 신나서 소리치는 영도를 쳐다본다. 지렁이 모양의 젤리를 길게 물고 늘어뜨리며 하늘은 비웃는다.


“품위 없긴. 누가 보면 윔블던 우승한 줄 알겠어.”


영도는 호흡을 고르며 선수대기석에 앉은 원재를 노려본다.

원재는 영도의 무서운 눈길에도 밝게 웃으며 손뼉을 친다.


“축하해요. 선배. 하하.”


사람 좋은 얼굴로 손뼉을 치는 원재를 보며 2층 벤치의 미연은 또 혀를 찬다.


“제발 좀 독해져라. 원재야. 네 경쟁자다. 이 등신아.”


그 순간, 끝에 있는 코트의 8강 마지막 경기가 끝이 난다.

점수판에는 6:0이란 점수가 적혀져 있다.

코트 위 네트 앞으로 구하림이 먼저 도착해 머리를 쓸어 넘기며 악수하기 위해 손을 뻗는다.


“야. 너 존나 잘한다?”


천천히 베이스라인부터 걸어오는 검은 모자를 눌러쓴 주니어 선수가 보인다. 구하림보다도 작은 키. 남자치고는 너무나도 조그마한 선수.

모자 속에 얼굴이 가려져 표정도 제대로 보이지 않지만, 그의 거친 숨소리에 얼마나 치열한 경기였는지를 보여준다.

그 선수의 이름은 김이민.

추후, 투어에서 가장 키가 작은 선수로 기록된다. 이민은 네트 앞으로 걸어와 하림이 내민 손을 쳐낸다.


“계집애한테 질 줄 알았냐? 그럼.”

“계집애? 이런 쥐좇만한 새끼가. 모든 게임 노애드 포인트로 잡았으면서. 듀스 포인트로 했으면 너 졌어! 새끼야.”

“응. 그래서 육대 떡이죠. 베이글(0점을 비아냥대는 은어) 처먹었죠?”

“이런 쥐새끼가. 나와. 맞짱 뜨자!”


악수를 내밀던 하림의 손은 어느샌가 이민의 멱살을 잡고 있다.

2층에서는 코트 내 상황을 알 리가 없다. 그렇기에 모두가 하림을 향해 야유를 보낸다.


“우우우우.”


하림은 이민의 멱살을 놓고 야유가 들리는 2층 벤치를 본다. 그리곤 벤치를 향해 우아하게 웃으며 손을 흔든다. 흔들던 손을 돌려 손등을 보인다. 그리곤 천천히 중지만을 놔두고 모든 손가락을 내린다.

관중석에서는 “어린년이 건방지게, 어머머 쟤 좀 봐.” 등등 더 큰 야유가 쏟아져 나오고 하림은 손을 내리고 그대로 코트 밖으로 나가버린다.

선수대기석에 앉아 있는 하늘은 그런 하림을 보며 벌떡 일어난다.


“우와. 내 스타일이야. 멋있어.”


차민도 같은 취향인지 테니스장 밖을 나서는 하림을 보며 웃는다. 그리곤 정수에게 다가가 이야기한다.


“구하림. 쟤도 체크해놔. 남녀를 안 나눈 건 좀 불공평하긴 했잖아? 하나 더 추가하자고.”

“네. 알겠습니다. 대표님.”


차민은 정수의 어깨를 두드리고 코트 중앙으로 걸어간다. 그리고 관중석을 한 번 쓱 훑어본다.

광일과 그의 무리가 앉아 있던 자리가 텅 비어있다.

차민은 잠시 인상을 구겼다가 이야기를 시작한다.


“모두 즐거우신가요?”

“네!”

“드디어 4강입니다. 전하늘, 나원재, 김영도, 김이민. 이 친구 중 단 2명만이 제 코칭을 받게 됩니다. 영광스러운 주인공이 될 두 주니어 선수를 위해 모든 관중 여러분은 조금만 더 자리를 지켜주시길 바랍니다.”

“윔블던 우승자 나오는 거 아니야?”

“재밌어요. 대표님!”

“연화고의 하늘, 전 하늘 파이팅!”


시끄러운 지방방송이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고 차민은 손을 높이 든다.


“모든 성원에 감사드리고 잠시 쉬었다가 4강 첫 경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첫 경기의 주인공은 전하늘 선수와 김영도 선수의 경기가 되겠습니다. 박수 부탁드립니다.”


짝짝짝-.


실내코트가 떠나갈 정도의 박수가 퍼진다.

이 작은 이벤트 대회에서의 열기는 흡사 프로 선수 경기를 방불케 한다. 마케팅이 좋은 차민은 이미 모든 순간을 영상에 담고 있다. 그의 화려한 이슈 몰이는 선수 때나 지금이나 그가 갖은 실력보다 그를 더 높은 곳으로 보내준다.

영도는 그런 차민을 보며 주먹을 불끈 쥔다. 재능이 없어 늘 바닥에서 허우적댔던 영도에게 그는 하늘로 이어주는 동아줄이다.

영도는 그 동아줄을 향해 손을 뻗는다.

영도의 4강 상대인 하늘은 영도를 보고 있다. 차민에게 손을 뻗고 있는 영도를 보며 하늘은 배꼽 잡고 웃기 시작한다.


“킥킥. 아 저 친구 재밌네.”


그러다 지렁이 젤리를 하나 집어 든다. 그리곤 젤리를 영도와 시야에 겹치게 가져다 댄 후, 젤리를 길게 늘어뜨린다.

젤리는 뚝 하며 끊어진다. 하늘은 끊어진 젤리를 먹는다.


“헤헤. 맛있겠다. 부러뜨리는 재미가 있겠어.”


**


군암중 코트 뒤편 분리수거장.

그곳에는 광일의 무리가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다. 그들은 교복을 입은 덩치가 작은 아이를 둘러싸며 공포감을 조성한다.

뿌연 담배 연기 둘러싸인 작은 아이는 터져 나오려는 기침을 참아내고 있다.


“광일아. 근데 영도 경기 끝까지 안 봐도 되냐?”

“본다고 뭐 달라지냐? 괜히 4강 못 가면 히스테리나 부리겠지.”

“그래. 차라리 마이콜이랑 저 거지 새끼 조져서 돈이나 벌자.”

“마이콜 이쪽으로 온 거 확실하지?”

“네. 형.”

“됐어. 가봐.”


일진 무리에 둘러싸여 있던 학생은 테니스장 뒤편에서 벗어나 달려간다. 그러다 그 앞에 서 있는 만희와 마주친다.

학생은 만희에게 인사를 하려 한다.

만희는 검지를 입술에 가져가며 반대 손으로 학생에게 가라고 손짓한다.

학생은 눈치를 보다 고개를 숙이고 도망간다.

만희는 좀 더 가까이 가서 일진 무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근데 광일아. 돈은 영도가 확실히 주는 거지?”

“영도는 모르는 일이다.”

“에이. 어떻게 몰라? 네가 영도 앞에서 쉬쉬해서 그렇지 영도가 시킨 거 우리도 다 알···.”


퍽-.


주먹이 오가는 소리에 만희는 한쪽 눈썹을 높이 치켜든다.


“억.”

“아가리 닥쳐. 영도 앞에서 함부로 입 놀렸다가 일 망치면 넌 진짜 죽어.”

“알았어. 광일아. 진짜 미안해.”


휘연의 잘못을 비는 소리가 만희에게도 들려온다.

만희는 테니스장 뒤편, 일진 무리가 모여 있는 곳으로 걸어간다.

일진 무리는 다가오는 만희를 본다.

만희는 그들을 향해 인사한다.


“안녕. 영도 친구들.”

“가자. 오늘은 텄다.”


광일은 담배를 끄고 일어나 만희를 지나친다.

만희는 지나치는 광일의 팔목을 붙잡는다.

광일은 고개를 돌려 만희를 노려본다. 아직 중학생임에도 광일의 덩치와 키는 만희와 비슷하다. 오히려 만희가 작아 보이게끔 하는 덩치다.


“어구 무서워라. 때리려고?”


만희는 광일을 비아냥거리며 웃는다.

광일도 표정을 풀고 웃으며 만희의 모자를 앞 챙을 잡는다.


“그럴 리가요. 코치님. 감히 제가. 그저 모자가 삐뚤어져 있으시길래 제대로 좀 씌워드려야 하지 않나 생각했을 뿐입니다.”

“아 그래? 고맙네.”

“그러시면 이제 이 손 좀 놔주시죠?”


광일은 자신을 붙잡은 손목을 들어 올린다.

만희는 손목을 놔주며 능글맞게 군다.


“어이쿠. 미안. 그 손목으로 꼭 사고를 칠 거 같아서 나도 모르게 그만.”

“설마요. 저 코트 안에서 훈련하는 거지새끼 손목이 사고를 치면 모를까.”

“입이 거치네? 학생.”

“말씀이 거치시길래 저도 모르게.”


한 마디도 지지 않는 광일을 보며 만희는 더는 웃지 않는다. 그리고 광일을 빤히 보다가 두 눈을 감고 이를 꽉 문다.


“딱 한 번만 부탁하자. 어른으로서 자존심 다 내려놓고 사정하마. 애들 괴롭히지 마.”


만희는 모자를 벗고 고개를 숙인다.

광일 뒤에 있는 일진 무리는 낄낄대며 만희를 비아냥거린다.

광일은 그런 만희의 고개 숙인 정수리를 보며 험악하게 인상을 쓴다.


“당신 같은 인간들이 더 문제야. 힘도 없는 것들이 어른이랍시고 나서니까 일이 더 커지는 거라고. 닥치고 빠져 있어. 나대지 말고.”


광일은 만희를 밀치고 지나간다.

덩치가 산만한 상태는 화가 난 광일을 뒤를 졸졸 쫓아간다.

다른 일진 무리는 고개 숙인 만희를 한심하게 보며 지나친다.

일진 무리가 다 떠나간 자리. 만희는 벗은 모자를 다시 눌러쓰며 버려진 담배꽁초만을 본다.


“그래. 늘 어른이 문제지. 그래도 어쩌겠냐? 어른인데.”


만희는 말없이 담배꽁초를 줍기 시작한다.


**


어느새 어둑해진 날씨, 차민 아카데미.

평소라면 화려하게 조명이 켜져 있을 실외코트가 어둠으로 자욱하게 내려앉는다. 그리고 바다 위에 등대처럼 실내코트만이 어둠을 밝히고 있다.

그곳에서는 엄청난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차민 아카데미 실내 2번 코트.

점수판에는 2:0이라 적혀있다.

네트 앞, 코트 위로 공이 데구루루 굴러간다.

공이 굴러간 곳에는 영도가 무릎 꿇고 앉아 있다.

영도는 하나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굴러온 공을 본다. 그리곤 고개를 들어 네트 위로 라켓을 대고 삐딱하게 서 있는 하늘을 본다.

하늘은 넘어져 있는 영도를 보며 입꼬리를 한껏 들어 올린다.


**


3분 전. 하늘의 서브.

하늘은 서브를 위한 트로피 자세를 취한다.

토스를 올린 하늘의 왼팔 위를 영도가 쳐다본다. 토스했음에도 공이 없다. 영도는 정신을 차리고 두리번거린다.

언더암 서브(토스를 낮게 던져 팔 밑으로 보내는 변칙 서브).

영도는 토스하는 동작이 속임수였음을 뒤늦게 눈치챈다. 하지만 이미 볼은 서비스 라인 안쪽에 도착해 포인트를 빼앗긴다.

영도는 멍하니 굴러가는 볼을 보다 고개를 세차게 흔든다.


‘두 번은 안 당한다.’


하늘은 이번에도 역시 언더암 서브를 넣는다.

영도는 눈치채고 빠르게 네트 앞으로 달려온다.

언더암 서브는 비거리가 낮은 만큼 날아가는 공의 거리도 짧다. 영도는 짧은 공을 빠르게 달려 나와 때린다.


탕-!


라켓에 맞는 감각을 느끼며 영도는 확신한다.


‘완벽하게 들어갔다.’


그러나 공이 날아간 자리에는 하늘이 이미 자리 잡고 기다리고 있다.

하늘은 과하게 백스윙을 가져간다.

영도는 하늘의 백스윙을 보고 생각한다.


‘큰 게 온다. 뒤로 물러야 해.’


영도는 몸을 돌려 베이스라인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영도의 등 뒤에서 ‘틱’ 소리가 들린다.

하늘은 백스윙을 크게 가져가 페이크 동작을 주고 짧게 떨어지는 드롭샷을 구사한다.

영도는 짧은 공을 보며 다시 앞으로 달린다.


“이런 젠장!”


영도는 젖먹던 힘까지 짜내며 달리지만, 공은 눈앞에서 두 번 튀긴다. 영도는 라켓을 뻗어 공을 치려다 넘어지고 만다.

하늘은 네트 앞으로 걸어와 네트에 라켓을 올리며 삐딱하게 선다. 그리고 쓰러진 영도를 보고 웃으며 발광한다.


“헤이. 열정맨. 끝난 거야? 더 발악해야지. 더 뛰어야지. 더 보여줘야지!”


하늘은 쓰러진 영도를 보며 미친놈처럼 과도한 제스처를 취한다.

영도는 과하게 행동하는 하늘을 절망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본다.

차민과 하늘은 같은 과다. 쓰러진 영도를 보며 차민 역시 즐거워한다. 더는 감추지 않는다. 차민은 재밌는 드라마를 보는 듯한 설렘 가득한 표정으로 영도를 본다.


“더, 더 발악해. 너의 상품성을 보이라고. 포기하지마.”


영도는 하늘에게서 고개를 돌려 차민을 본다.

차민의 눈에 서려 있는 설렘을 읽는다.

영도는 끝나지 않았음을 인지한다.


‘4강이야. 끝나기 전에 보여주면 돼.’


그렇게 이 작은 섬에서 언더독의 마지막 발악이 시작되고 있다.


작가의말

.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테니스 코트 위, 폭군에게 도전하는 천재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매일 밤 12시5분에 연재됩니다. 24.09.18 8 0 -
18 언더독(2) NEW 22시간 전 10 2 13쪽
» 언더독(1) 24.09.18 16 2 13쪽
16 주니어 넘버원 24.09.17 19 2 12쪽
15 리커버리 24.09.16 17 2 12쪽
14 이기기 위한 전략 : 로브 24.09.15 23 2 13쪽
13 첫 세트 : 높은 벽 24.09.14 22 2 13쪽
12 게임의 시작 : 서브 24.09.13 22 2 13쪽
11 동상이몽 24.09.12 23 2 13쪽
10 부러진 라켓 24.09.11 21 2 13쪽
9 경계 24.09.10 23 2 12쪽
8 친구 24.09.09 23 3 12쪽
7 함정 24.09.08 28 2 11쪽
6 스탠스 24.09.07 30 3 13쪽
5 내딛는 첫발 24.09.05 34 2 12쪽
4 군암중학교 24.09.04 40 2 13쪽
3 나원재 24.09.04 49 3 13쪽
2 온비찬 24.09.04 60 3 13쪽
1 한서원 24.09.04 85 3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