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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음여류
작품등록일 :
2012.11.16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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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26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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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9.26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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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격변의 시[전투]송광극

DUMMY

지금 그가 표출하는 분노와 자괴는 꾸며낸 게 아니었다. 무기가 한정되어 있다지만, 협소한 공간에서 어둠과 연막탄, 그리고 100발들이 기관단총은 상당히 궁합이 좋았으니까. 거기에다가 숙련된 전투원 4명이면 길어도 3분 상간에 수십의 사상자는 만들어내며 흐름을 잡아가는 게 정석이었다.


‘그런데 이 병신들은.. 젠장, 상대가 너무 안 좋았어. 왜 내게도 숨긴 걸까?’


영화에서처럼 총 앞에 선 대중이 냉철한 판단을 하며 기가 막히게 도망이라도 간다면 참 멋있겠지만, 현실은 무척이나 달랐다.


‘사람의 머리가 터지고 피를 쏟아내는 데 무슨 놈의 판단을 해.’ 이성은 개나 주라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거기에다 비명과 신음, 총성이 뒤섞여 귓가를 때리면 그냥 주저앉는 게 삼 분의 일, 앞뒤 제쳐놓고 일단 뛰는 게 또 그만큼, 패닉에 빠져서 기도 따위나 하는 게 나머지였다. 그게 훈련받지 못한 민간인의 지극히 올바른 자세였다.


“그런데 B급이라니, 이런 씨 팔!"


죽음의 공포를 이겨낸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고, 학살은 그 공포를 극대화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최대한 이성을 죽이고 본능을 극대화 한 C급이라면 위와 같은 상황이 벌어졌겠지만, 안타깝게도 명령을 목숨보다 우선시 하는 B급이었다.


‘육체능력까지 발달했을 테니 그놈들한테는 쥐약이었겠지.’


거기에다가 숫자까지 압도적이라 훈련된 요원들이 공포에 쫓겨 도주하다가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아, 이런 씨 팔! 어떻게 나한테까지..”


홧김에 뭔가 말하려다 급히 얼버무린 마환은 광극을 슬쩍 보곤 억지로 말을 맺었다.


“여하튼, 진짜로 그런 건 아니었어요.” 한데 어찌하랴, 이미 벌어진 일인 것을.


무전기를 잘근잘근 밟아서 아주 가루로 만들던 그는 광극의 이제 준비하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감았다. 그리곤 천천히 호흡을 조절하다가 눈을 떴는데, 놀랍게도 그의 눈빛이 무채색에 가까운 잿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를 본 광극이 별말 않는 걸 보면 익숙한 모습이리라. 언제 흥분했냐는 듯 이리저리 몸을 풀던 마환은 고개를 좌우로 젖히며 입을 열었다.


“저도 준비가 다 됐으니까, 슬슬 시작하시죠?”

“그러자꾸나. 한데 그 우스꽝스러운 가면은 언제쯤 버릴 게냐?"

"예?"

"이번 사냥을 위해서라면 굳이 간섭하지 않겠다만, 처음부터 쓰고 있던 것이니 마지막까지 벗지 말거라.”


설마 이 순간에 그런 말을 들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마환의 잿빛 동공에 파란이 일 때, 광극은 손에 들린 MP5를 물끄러미 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런 모습을 조심스럽게 살피는 마환의 눈빛에 어린 건 짙은 당혹감이었는데, 아마도 저변의 스산한 살기가 진면목이리라.


‘송광극.’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몇 번이고 이를 악물던 마환은 아직은 아니라며, 곧 때가 올 거라고 속으로 되뇌며 애써 살의를 감췄다.


“송사부, 쉽게 벗을 가면이면 애초에 쓰지도 않았을 테니까 너무 그렇게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말이죠, 이 전장에.. 내 가면을 부술 자가 과연 있기나 할까요?”


나름 의미심장한 말을 던진 마환은 사냥터에서 송광극의 판단과 행동력이 얼마나 냉혹하고 무자비한지를 알기에 천천히 무게 중심을 옮기며 그의 반응을 기다렸다. 하나 광극은 그의 예상과 달리 그저 가볍게 한숨 쉬며 고개 저을 뿐,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는 않았다. 재미있는 건, 그런 모습에 안도해야 할 마환이 오히려 으르렁대며 물고 늘어지기 시작했다는 거다.


“대놓고 무시하시는 걸 보면 송사부는 생각이 조금 다른가 봅니다? 마안이 없어서 눈이 먼 거야, 아니면 나보고 죽을 자리를 파 달라는.. 뭐, 그런 싸인이야?”


그가 노골적으로 송곳니를 드러내려 하자 광극이 한탄하듯 말을 뱉어 흐름을 끊었다.


“어설퍼, 역시 이건 아니야.”


울컥한 마환이 대꾸를 하려 들 때 그는 MP5의 안전클립을 젖히고 탄창까지 분리해서 수풀 한쪽으로 던졌다. 그리곤 등에 꽂힌 흑색 봉을 천천히 뽑아 든 채 만족스러운 미소를 흘리며 양 옆구리 쪽으로 옮겨 꽂았다.


“그래 이거면 족하지.”


그 여유로운 모습을 본 마환은, ‘애초에 네 헛소리는 듣지도 않았다.’ 라는 환청이 들려오자 다시 으르렁거리려고 했다. 하지만..


“환아, 나는 이걸로 충분할 것 같구나. 마지막 사냥인데 장난감을 가지고 놀 수야 없지 않겠느냐?”


또다시 타이밍을 뺏긴 채 거친 호흡에 울화를 실어내던 마환은 그를 가만히 노려보다가 자신의 MP5를 계단 옆 정원에다 집어 던지며 소리쳤다.


“이런 씨 팔,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이 딴 거로 장난치려는 생각은 애초에 없었어. 그냥 애새끼들 장단 좀 맞춰준 거지.” 그리곤 조끼 주머니에서 브레스 너클 두 개를 꺼내서 착용했다.


황동 재질의 몸통에 달린 4cm 길이의 티타늄 칼날이 그의 두 주먹을 흉기로 만들자 그를 힐끔 본 광극이 혀를 찬다.


"이제는 그런 것도 사용하느냐?"


주먹을 두어 번 쥐락펴락하던 마환은 그의 물음을 씹어버리곤 허공으로 가볍게 주먹을 날리며 습관적으로 몸을 풀었다. 묘한 눈길로 지켜보던 광극은 다시금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철문으로 다가가며 입을 열었다.


“네가 날 찾아왔을 때, 자락을 잡았다고 했었지?”


번갈아 양쪽 어깨를 돌리던 마환이 득의의 미소를 흘린다.


“뭐, 운이 좋았죠.”

“그렇구나, 내 오는 도중에 잠시 과거를 되돌아봤다. 그러고 보니 너와의 연 또한 가볍지 않았는데, 내가 너무 무심했더구나.”

“갑자기 뭔 소리를 하셔?”

“홀로 벽을 넘어선다고 많이 힘들었을 텐데,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지금에 와서 사과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마는.. 돌아보니 너무 많은 걸 놓쳤어.”


꿈에서조차 생각해본 적 없는 송사부의 갑작스러운 사과에 당황한 마환은 얼굴을 굳히다가 이내 조소를 흘리며 빈정거렸다.


“어이구, 우리 송사부 갈 때가 다 돼서 교회에 오니까 고해성사라도 하고 싶은 거요? 죄송하지만, 나는 일 없으니까 혼자서 많이 하세요.”

“그래, 네 말대로 때가 오긴 한 것 같구나. 내 너를 정식으로 가르친 게 고작 1년에 불과하나, 무의 근본은 잡아줬다 여기기에 오늘 한 가지를 보여주도록 하마.”


마환의 입가에 걸린 비웃음이 짙어진다.


“거참 감사합니다. 우리 송사부가 무슨 비기라도 보여주시려나 본데.. 아, 혈미궁? 그래, 혈미궁은 조금 탐나기는 해. 하지만 그것 말고는 내가 그쪽한테 배울 게 없을 텐데, 어쩌죠?”


말을 끝내기 무섭게 보란 듯 기세를 뿜어 노골적으로 적의를 드러낸 마환을 담담히 마주보던 광극은 씁쓸한 미소를 그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그는 옅은 호흡에 어떤 아쉬움을 실어 뱉은 뒤 철문으로 다가섰다. 지하로 이어진 묵직한 문의 잠금장치를 열고 마치 자신의 집인 것처럼 가볍게 걸음을 옮기다 잠시 멈춰선 채 공중으로 스러지는 입김처럼 허허로운 웃음을 흘렸다.


“네 말이 옳다. 스스로 자락을 잡았는데 닿지도 못한 내게 무엇을 더 배우겠느냐?”


그는 마환의 복잡한 눈빛을 뒤로한 채 스스럼없이 바닥을 디뎠다.


“닿지도 못했어.” 홀로 뇌까리며 향하는 곳에는 문을 지키라는 사자의 부름을 받은 백여 명의 시너가 있었다.


그들 중 문 앞에 딱 버티고 서서 이등병처럼 경계를 서던 군인, 중령 계급장을 단 대머리가 가장 먼저 둘을 발견하고는 목이 터지라 고함을 질렀다.


“이단자!”


그의 손길을 따라 고개 돌린 광신도들이 일제히 눈을 번뜩이며 이단을 외치자 광극은 숨을 쉬듯 자연스럽게 흑색 봉을 뽑아 들었다.


“왜 닿지 못했을 꼬.” 그리곤 다시 한 걸음 내디디자 소리 없이 검날이 흘러나온다.


한데 시꺼먼 검신에 당연히 보여야 할 이음새가 전혀 보이질 않았으니.. 마치 검병에 봉인돼 있던 어둠이 흘러나와서 검신을 이루어 가는 듯 신비로운 모습에 잠시나마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흑검.’ 신비시대 이전부터 전해진 고대기병 중 유일한 쌍검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적의 무기를 본 광신도들은 일제히 분노를 외치며 걸음을 옮겼고 광극은 좌우 쌍검을 놓칠 듯 편안하게 되잡았다. 그리곤 눈앞의 백여 명은 보이지도 않는지 고개를 돌려 뒤따라오는 마환에게 말했다.


“환아, 내가 먼저 나설 테니 잠시 지켜보거라. 만일 네가 느끼는 게 하나라도 있다면, 내 마음의 짐을 조금은 덜 수 있을 것 같구나.”


온몸으로 투지를 뿜어대던 마환은 그의 묘한 분위기에 휘말려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고맙다.” 옅은 미소를 머금은 광극은 공기를 뒤틀 정도로 짙어진 광기를 향해서 터덜터덜 걸음을 옮겼다.


그의 외눈에 어려 있던 정제된 눈빛이 일순 강렬한 열기를 머금는다 싶더니 광량한 기세를 뿜어대기 시작했다. 그것은 절정에 이른 검사의 투지였다. 또한 전의고, 광기며, 살의의 총화임을 드러내 사냥의 시작을 알리려고 할 때, 총성이 울렸다.


“이단을 멸하라!” 중령의 K5와 옆에 선 자들의 리볼버, 엽총 등에서 연이어 터져 나온 총성이 널따란 지하홀을 쩌렁쩌렁 흔든다.


그들이 총기를 사용할 거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한 마환이 본능적으로 긴장할 때, 광극은 우 장검을 가볍게 들어 공간을 훑었다.


‘저게 뭐야?’


그야말로 단순한 움직임이요 안타까운 속도고 흔하디 흔한 궤도였건만, 그를 향해 날아들던 총알이 블랙홀에 휘말리기라도 한 듯 검날로 빨려 들었다가 부딪혀 사방으로 흩어졌다.


‘기병 중 유일하게 영능이 없는 무기가 흑검이라고 들었는데, 저런 능력이 숨어 있었어?’


그런 망상을 할 정도로 놀란 마환이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할 때, 마찬가지로 경악한 총잡이들이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역시나 우 장검이 부드럽게 공간을 훑었고 총알은 검신을 타고 흘러 사방으로 흩어졌다.


‘어떻게 저런 일이 가능해?’


같은 생각을 한 모두는 명약관화한 사실 하나를 깨달을 수 있었다. 총기 따위로는 저 검사의 걸음을 단 한순간도 흔들리게 할 수 없음을.. 그 높디높은 벽을 감지하는 순간 뭔가 설명키 어려운 공포가 그들의 뒤틀린 신념을 내리눌렀다.


‘저자를 막으면 죽는다.’


또한 조금이라도 무를 연마해본 이들은 본능에 따라 마른침을 삼켰다.


‘우리와는 뭔가 다른 존재야.’


신의 사자로부터 분노를 허락 받은 위대한 성전사 100여 명이 한낱 인간의 발걸음에 질려 주춤 멈춰 설 때, 광극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마환의 귓전에 허허로운 목소리가 들려와 머릿속을 헝클였다.


‘혹여 네가 느끼는 게 있다면, 그걸로 족할 테니.’

“빌어먹을 송사부, 당신은 대체 어디에 서 있는 거요?”


마환의 나지막한 뇌까림에 답을 해주려는 듯, 어둠을 머금은 검이 주인의 의지를 세상에 관철하려 울음을 터트렸다. 수없이 집어삼킨 짐승의 효후와도 같은 그 검명은 전장 위 모든 사냥감에게 한 가지 절망적인 사실을 속삭였다.


‘사냥꾼이 왔다.’


마안을 강탈하고 계절의 재림을 꿈꿔 이면을 떨어 울린 풍운아이자 투박한 흑검 한 쌍으로 최강의 자리에 오른 검주, 엽인 송광극의 마지막 사냥이 시작되었음을..


"좋구나." 검주는 다시 한 발 앞으로 내디뎠다.


작가의말

진짜로 두둥! :)


다음 화부터 잠시간, 부제 [전투]를 [검주]로 바꿔서 연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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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5 대격변의 시[전투]사제의 연. +2 17.10.11 292 9 11쪽
264 대격변의 시[전투]제신 +7 17.10.10 307 14 14쪽
263 대격변의 시[전투]우물 밖 +2 17.10.10 247 10 15쪽
262 대격변의 시[검주]흔적 +12 17.10.04 327 17 15쪽
261 대격변의 시[검주]검주vs제신 그리고 혼돈 17.10.04 288 11 14쪽
260 대격변의 시[검주]검주vs제신, 깨달음 +3 17.10.02 369 12 16쪽
259 대격변의 시[검주]검주vs제신 17.10.02 264 8 13쪽
258 대격변의 시[검주]엽인 +15 17.09.29 358 13 10쪽
257 대격변의 시[검주]찰나의 연, 사제 +2 17.09.29 291 11 10쪽
256 대격변의 시[검주]보답 17.09.29 235 10 10쪽
255 대격변의 시[검주]마환 vs 송광극 +9 17.09.29 320 15 16쪽
254 대격변의 시[검주]조우 +2 17.09.28 296 11 13쪽
253 대격변의 시[검주]무적{無敵} +8 17.09.27 322 8 13쪽
» 대격변의 시[전투]송광극 +10 17.09.26 237 11 12쪽
251 대격변의 시[전투]일보직전 17.09.26 728 10 13쪽
250 대격변의 시[전투]슈지, 마지막 도주로 +4 17.09.25 246 11 12쪽
249 대격변의 시[전투]진입 +6 17.09.24 246 12 13쪽
248 대격변의 시[전투]증명 +4 17.09.22 238 11 13쪽
247 대격변의 시[전투]의지 +2 17.09.22 220 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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