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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음여류
작품등록일 :
2012.11.16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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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9.29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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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격변의 시[검주]엽인

DUMMY

“너는 일격필살이라고 들어보았느냐?”

“예, 반드시 가지고 싶은 검입니다.”


역시, 헛소리나 하던 놈과는 질적으로 틀렸다.


“가벼운 공격에 실린 힘을 어찌 배가하느냐?”

“근력과 무게중심을 베이스로 둔 회전력입니다.”

“익혔느냐?”

“익혔습니다.”

“하면 지금 너는 네 것을 느끼고 있느냐?”


조금은 뜬금없는 질문 같았지만, 일순 온몸으로 기세를 뿜어낸 도살자는 망설임없이 답했다.


“이 또한 익힐 겁니다.”

“좋구나.”


검주가 말을 끝내기 무섭게 다시 시너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을 향해 한 걸음 나선 스승이 제자의 시선을 느끼며 가르침을 전한다.


“육체가 실어낼 수 있는 회전력은 정해져 있으나 기에는 한계가 없다.”


마침 코앞으로 돌진해온 덩치의 가슴에 부드럽게 대검을 꽂아 넣자 놀랍게도 주먹만 한 구멍이 뚫리더니 그대로 날아가서 뒤쪽 시너 무리와 뒤엉켜 널브러졌다. 그를 본 도살자의 눈에 희열이 어릴 때 검주는 검병을 부드럽게 되잡았다.


“비단 그 힘은 하나로 정해져 있지도 않다.”


사방에서 몰려드는 네 명을 향해서 대검을 휘둘러 베자, 고작 10cm 정도에 불과한 검날이 장정의 목을 날리고, 팔을 자르고, 허리를 통째로 끊었다. 경악한 도살자의 동공에 마지막으로 일도양단 된 시너가 갈라지는 게 비친다.


“정말로 가능했다니?”


자신도 모르게 중얼대는 제자를 본 스승은 대검을 든 손을 내밀어 폈다.


“다수의 적을 만나면 베고 찌르는 것으로 부족할 때가 있다.”

“예, 저는 그럴 때 화기를 쓰고 없으면 도주했습니다.”

“좋은 판단이다.”

“감사합니다.”


솔직한 문답을 주고받은 둘이 비슷한 색깔의 미소를 띨 때 스승의 가르침이 이어진다.


“검과 내가 하나가 된다는 말을 들어보았느냐?”

“아주 가끔씩 느꼈습니다.”

“그 역시 좋구나.”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인 검주는 손바닥 위에 놓인 대검의 칼끝을 중지로 살짝 쳤다. 그러자 검은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려 회전하기 시작했다.


“내 오래전에 기연을 얻어 세상 만물이 품은 기를 보았다. 네가 이제야 느끼고 사용하기 시작한 기운은 세상 만물에 깃들어 있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제자가 어떤 의심도 없이 답하고 받아 들이자 스승의 입가에 흐린 미소가 걸린다.


“그 말인즉슨 지금 내 손에 들린 이 조그만 검조차 기를 품고 있다는 말이다.”


그가 언급한 말은 세상에 흔하디 흔한 소리였다. 지금 귀 기울여 그를 듣고 있는 제자 역시 비웃고 헛소리라 치부했던 낭설.. 하지만 가지고, 보여주고, 사용하는 자가 말을 하니 세상의 진리로 다가온다.


“오래지 않아 너도 느낄 게다. 그 기운을 놓치지 않고 정진해가면 네 손에 들린 검과 이미 준비된 신이 합일되는.. 놀라운 순간이 오겠지. 그때가 오면 주먹에 힘을 집중시키듯 검에 기를 모으고 휘돌려서 이런 것도 할 수 있게 된다.”


그가 말을 마치기 무섭게 시너들이 밀려들었다. 이번에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선 검주가 신비롭게 휘돌던 대검을 붙잡아 내지르자 무리의 3할, 약 30여 명을 감싼 공간이 일그러지며 커다란 와류를 형성하더니, 쾅! 폭발하며 사방으로 시너를 날렸다. 천장에 처박혔다가 떨어진 시너의 몸이 뒤틀린 것을 본 도살자의 눈빛에 한없는 존경의 염이 어린다.


‘제가 디딘 길이 얼마나 크고 넓은지를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제자의 부담스러운 눈빛에 역시나 흐린 미소로 답한 스승은 아직 호흡하나 흐트러지지 않았음에도 여유를 두지 않고 가르침을 이어갔다.


“이 또한 형태가 정해져 있지는 않다. 네가 어느 벽을 넘었고 무슨 마음을 먹었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게다. 하나 이런 기술은 많은 힘을 소모하니 주의하는 게 좋다. 선을 넘으면 칼부림 중 하나에 불과하겠지만..”


전장에 서면 언제나 냉철했던 도살자는 들뜬 소년처럼 물었다.


“저기 너무 궁금해서 그런데.. 지금 계신 곳에서도 벽이 보입니까?”


쓴웃음을 입가에 건 스승은 기로 묶어 가둔 시너들을 보며 한탄하듯 답했다.


“비로소 깨달아 벽을 넘고 넘었건만, 저 까마득한 곳에 또 하나가 보이는구나. 그 뒤로도 한없이 늘어서 있겠지. 일엽은 그 끝을 봤을까?”


그는 제자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너는 저 벽을 깨뜨리거라.”

“예, 그리하겠습니다.”


그저 막연했던 삶의 목적을 스승이 알려주니 피가 끓는다.


“저는 반드시 그 벽을 부수겠습니다.”

“어찌해야 하느냐?”

“쉼 없이 정진하겠습니다.”


기껍다 못해 흡족한 마음가짐을 보며 정말로 오랜만에 푸근한 미소를 머금은 스승은 왜 하필이면 찰나의 연일까 한탄하며 입을 열었다.


“만일 네가 검신의 합일이 아니라 세상과 하나 되었음을 느낀다면.. 발을 들어 하늘을 차서 울리고, 공간을 밟아 흔들고, 땅에 닿아 사위를 짓누르게 된다면..”


뭔가 뜬구름 잡는 말을 한 스승은 멋쩍은 듯 쓴웃음을 흘리며 이어갔다.


“네 숨결조차도 검이 돼 적을 벨 게다.”


오랜 방황 끝에 만나서 이어진 유일무이할 인연인 스승의 입에서 나온 말이 아니었다면 비웃었으리라. 하지만 도살자는 아이처럼 꿈을 품었다. 그는 보무도 당당하게 걸음을 옮겨 스승 앞에 섰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손을 내밀었다.


“배움에 실전보다 좋은 게 있습니까?”


스승은 뜨거운 열정을 한가득 머금은 눈을 마주보며 답했다.


“그딴 건 세상에 없다. 한데 너는 네 것을 잊지 않았느냐?”

“보여드리겠습니다.”


대검을 건넨 스승이 무리로부터 기를 회수할 때 제자는 조금 머쓱한 말투로 물었다.


“저기, 처음에 꼭두각시라는 건 무슨 뜻입니까?”


어떤 말도 흘려 듣지 않는 자세에 다시 흡족함을 느낀 스승이 답했다.


“네 고정된 관념과 비루한 경험이 손발을 옭아매지 않았더냐?”


놀라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고 고심하던 제자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부수고 나아가라.” 그리곤 스승을 향해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이 은혜···마지막 날까지 새기겠습니다.”

“놈, 객쩍은 소리 말고 가서 몸으로 익혀라, 나는 그걸로 족하니.”

“예, 스승님.”


대답과 함께 두 눈을 살기로, 투지로, 광기로 물들인 제자는 망설임 없이 바닥을 박찼다. 그는 학살조의 도살자가 아니라 절대검사에게 막 사사 받은 초짜처럼 어설프게나마 흘러서 베고 찌르고 던지다 못해 들이박고 뒹굴며 새로운 힘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갔다. 그 탄력적인 투사의 모습에 과거 자신이 겹쳐지자 너털웃음을 흘린 검주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쌓아 올린 덕도 없는데 운이 과해서 흔적 하나는 남기는구나.’


그리곤 길고 옅게 심호흡을 하니 여전한 시너들의 괴성이 멀어진다. 놀랍게도 벌써 기를 이용해서 적을 지하홀 끝으로 몰아붙이는 기특한 인연의 기감마저도 사라진다. 문득 흑검은 어찌하나 생각이 들었지만, 적아를 떠나 누가 들든 그가 주인이 되는 것 또한 연이라고 생각하자 다시 편안해졌다.


‘그래도 오래 살았어.’


목까지 차오른 삼도천의 물결에 스스럼없이 몸을 맡기자 온몸이 나른해진다. 이제 주인의 뜻에 따라 검신을 감춘 애병을 손에서 놓기만 하면 떠나게 되리라. 한데, 지하홀을 울리는 나지막한 구두 소리가 귓전을 자극해왔다. 놀랍게도 그를 붙잡아 끌어올린다.


‘이 무슨..?’ 기이하게도 그 울림은 사라졌던 감각을 모조리 되살렸다.


어디서나 들을 법한 흔하디 흔한 발걸음 소리였건만, 건물을 울리는 괴성을 짓누르고 그의 심장을 옥죄일 정도로 묵직했다. 이 서늘한 감정의 정체를 너무나도 잘 알기에 엽인의 입가에 그려진 흐린 미소의 색깔이 일변한다.


“그래, 편히 보내줄 리가 없지.”


그는 죽음에의 허무를 숨결에 실어 뱉은 뒤 흑검주의 눈으로 돌아와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참으로 달콤하고 두려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예상대로 얼은 실패했구나. 어리석은 놈, 상처하나 주지 못할 힘으로 큰소리를 치다니. 안 그렇소?”


열기를 띤 외눈이 화염을 담은 짐승의 눈과 마주치는 순간 검주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어 긴장을 떨쳐냈다. 그는 나선형 계단을 여유롭게 내려오는 한 마리 짐승을 마주하며 흑검을 뽑아 늘어뜨렸다. 긴 머리카락을 올백으로 넘겨 흐트러트린 모습이, 선이 굵고 강렬한 인상과 어울려 마치 백수의 왕과 같은 풍채를 보이는 자가 그를 내려다보며 미소를 그렸다.


“흑검주 송광극, 이렇게 그대를 만나는구려.”


오늘 처음으로 대면했음에도 검주는 그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이런 위압감으로 사위를 짓누를 자는 이 전장을 통틀어 오롯이 두 마리 뿐이고 개중 하나는 동양인이니까.


“제신.” 사냥감의 이름을 씹어뱉자 어둠을 머금은 검신이 소리 없이 흘러나온다.


탐욕의 손을 보는 순간 머릿속을 맴돌던 허허로움은 산산이 부서졌다. 그 자리에는 일평생 자신을 이끌어온 단 하나의 절대적 사명만이 똬리를 튼 채 기뻐서 절규하고, 들떠서 오열하며 있는 힘껏 소리 높여 외쳤다.


‘사냥감이다! 네 사냥감이 바로 저기에 있다, 엽인이여!’


작가의말

물론 다음 편은 검주 vs 제신  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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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7 대격변의 시[전투]시너 vs 남명진 +2 17.10.13 395 1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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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5 대격변의 시[전투]사제의 연. +2 17.10.11 293 9 11쪽
264 대격변의 시[전투]제신 +7 17.10.10 307 14 14쪽
263 대격변의 시[전투]우물 밖 +2 17.10.10 247 10 15쪽
262 대격변의 시[검주]흔적 +12 17.10.04 328 17 15쪽
261 대격변의 시[검주]검주vs제신 그리고 혼돈 17.10.04 288 11 14쪽
260 대격변의 시[검주]검주vs제신, 깨달음 +3 17.10.02 370 12 16쪽
259 대격변의 시[검주]검주vs제신 17.10.02 264 8 13쪽
» 대격변의 시[검주]엽인 +15 17.09.29 359 13 10쪽
257 대격변의 시[검주]찰나의 연, 사제 +2 17.09.29 291 11 10쪽
256 대격변의 시[검주]보답 17.09.29 235 10 10쪽
255 대격변의 시[검주]마환 vs 송광극 +9 17.09.29 321 15 16쪽
254 대격변의 시[검주]조우 +2 17.09.28 296 11 13쪽
253 대격변의 시[검주]무적{無敵} +8 17.09.27 322 8 13쪽
252 대격변의 시[전투]송광극 +10 17.09.26 237 11 12쪽
251 대격변의 시[전투]일보직전 17.09.26 728 10 13쪽
250 대격변의 시[전투]슈지, 마지막 도주로 +4 17.09.25 246 11 12쪽
249 대격변의 시[전투]진입 +6 17.09.24 246 12 13쪽
248 대격변의 시[전투]증명 +4 17.09.22 239 11 13쪽
247 대격변의 시[전투]의지 +2 17.09.22 221 8 13쪽
246 대격변의 시[전투]자각 +8 17.09.21 233 1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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