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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음여류
작품등록일 :
2012.11.16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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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26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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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0.02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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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격변의 시[검주]검주vs제신, 깨달음

DUMMY

발밑으로 아슬하게 스쳐 간 불꽃이 바닥에 닿아 퍼지며 허무하게 사그라지는 찰나 균형을 바로잡은 검주는 즉시 왼손을 휘둘렀다. 진기를 가득 머금은 채 쏘아져 나간 좌 단검이 마침 고개 들던 제신의 오른쪽 동공을 터트리며 박힌다.


‘정녕 그곳에 닿은 게냐?’


얼어붙은 제신의 눈에서 한줄기 핏물이 흘러내릴 때 바닥에 착지해 흐트러진 기의 흐름을 순화한 검주는 우 장검을 고쳐 쥐었다. 그리곤 바로 적에게 쇄도하려다 말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훌쩍 물러섰다.


‘기를 실어 혈인을 잡아냈다고는 해도 상처가 크지 않아, 이제부터 시작이다.’


제신은 정지된 화면처럼 가만히 서 있었는데, 고급스러운 흰색 셔츠를 적시며 번지는 핏물만이 그가 살아있음을 보여줬다. 그 모습이 마치 패닉에 빠진 것만 같아 절호의 기회 같기도 했지만, 검주는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이 또한 미끼다.’ 좀 전의 공방만 해도 그 찰나 간에 자신의 약점을 간파하고 상식을 벗어난 함정을 파지 않았던가?


거기에다가 제신의 몸과 주변에서 이루어지는 가공할 법의 흐름까지 감지한 상태라 입안이 바싹 말라왔다.


'법사들은 이래서 힘들어, 내 심지도 다된 것 같고..'


기문을 닫았음에도 여전히 기를 흡수 중인 혈미궁의 괴이한 흐름이 그 때문이라 여긴 검주는 지그시 이를 악물었다.


‘승부가 날 때까지만이라도 폭주하지 않기를..’ 항상 기가 부족해서 허덕였는데, 이제는 넘쳐흐르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사지육신을 압박해온다.


균형을 이룬 상태라면 품을 건 품고 나머지는 흘리면 되겠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벅찼다. 솔직히 말해서 이렇게 서 있는 것마저도 너무 힘겨웠다.


‘그렇게 헤매왔는데 이렇게 찾아들다니. 조금만 더 일찍 닿았다면.. 아니, 이렇게 끝내선 안 돼.’


검을 쥔 손마저 떨리기 시작한 걸 보면 정녕 끝이라는 게 느껴졌지만, 그새 시너를 다 처리한 제자를 위해서라도 마음을 다잡았다.


'저 아이를 살려 보내려면 놈을 사냥해야만 한다. 부디 이 찰나의 연이 이어져서 세상에 닿기를.. 내가 해낼 수 있기를..’


그렇게 다짐하고 바란 검주는 적을 향해 담담히 걸음을 옮기며 검병을 되잡았다. 솟구치는 절망감을 억누른 채 지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되뇌었다.


“놈도 한낱 금수일 뿐, 가서 벤다.”


상대는 비록 멈춰서 있었지만, 당장에라도 용암이 터져 나올 활화산을 보는 것만 같았다. 간격에 이르는 순간 저 열기에 잡아먹혀 영혼까지 불타오르리라. 강대한 법의 발현을 감지한 본능이 시체라도 보존하려면 피하라고 속삭였지만, 그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그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늘어뜨린 우 장검에 아직도 그 허허로움이 남아 맴돈다.


하나 좌 단검이 꽂힌 것 또한 사실이었기에 그는 서슴없이 제신의 간격으로 들어섰다.


‘벤다!’


그렇게 흘러간 의지가 적의 목에 닿고 뿜어낸 진기가 혈인을 붙잡아 가두는 순간 섬광처럼 휘둘러진 우 장검이 정확히 그 부위를 파고들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다시 그 허허로움만 느꼈으니.. 일순 혈인을 속박당한 제신이 화염으로 화해 흩어진 것이다.


‘둘 다 동시에 속박해야 돼.’


분분히 흩어지는 불꽃 사이로 떨어져 내리는 좌 단검을 받아듦과 동시에 거대한 불덩이로 뭉친 화염이 치달아 왔다. 반사적으로 우 장검을 휘둘러 화염을 양단했지만, 전과 같은 검으로는 어떤 데미지도 줄 수 없었다.


‘이대로 가면 필패한다.’ 둘로 갈라진 불꽃이 어느새 소용돌이로 화해 그를 집어삼키자 그는 온몸으로 기를 발산했다. ‘집중할 시간이 필요해.’


화염과 화염 사이의 미세한 틈을 포착한 검주가 회류로 흘러 비집고 나가는 걸 본 제신은 즉시 따라붙지 않고 형상을 갖추며 대소를 터트렸다.


“오랫동안 의문을 던졌다. 지금의 내가 일엽의 의지를 이은 엽인, 재앙과 같은 진짜와 대적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내 오늘 그 답을 찾으려 하니, 너는 시대에 닿아 노닐 준비가 되었느냐?”


어떤 답을 해서 시간을 벌까 고민하던 검주가 마른침을 삼키며 입을 여는 순간 바닥에서 솟구쳐 나온 핏물이 그의 발을 잡고 사지를 휘감아 왔다.


‘구렁이 같은 놈.’ 하려던 말을 다급히 삼킨 검주는 검 끝에 기를 모아 바닥을 찍었다.


터져 나온 기파에 닿은 진혈이 증발하듯 사라지는 걸 본 검주가 애써 호흡을 다잡을 때, 우측 사각에서 조용히 생성된 화염의 손이 그의 머리를 두들겼다. 다행히도 오감의 벽을 허문 검주는 별다른 동요없이 돌아서며 좌 단검을 뻗어냈다. 한데, 여지없이 관통당해 흩어지려던 불꽃이 그대로 폭발하는 게 아닌가?


‘피하지 못한다.’


움직일 겨를도 없이 화염에 휩싸여 날아가던 검주는 팽이처럼 휘돌아 화기를 떨친 뒤 겨우 중심을 잡고 바닥을 디뎠다. ‘빌어먹을.’ 내 살을 태우는 탄내가 속을 뒤집어대자 거칠게 숨을 뱉어내던 그는 전방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제신.’ 보란 듯 생성된 화염의 손 수십 개가 사위를 점한 채 위용을 뽐낸다.


작게는 직경 30cm에서 크게는 1m에 달하는 불덩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서늘해지자 제신의 조소가 들려왔다.


“이제야 도달해 어찌할 바를 모르니 안타깝기 그지없구나.”


검주는 이번에도 대답 대신 검을 되잡았다. 적이 보이면 가서 베기라도 할 텐데, 흩어져 법으로만 공격하니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태양과 함께 맞서되 어둠이 오면 도주하라던 게 바로 이 때문이지 않던가? 이제와 벗어나는 건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당신이 이루어 품은 최고의 무기를 검 끝에 담으시오. 그것이 그대의 마지막이 될 터이니.’


전대 예지자에게 듣고 흘렸던 충언이 문득 떠올라 뇌리를 스치자 그는, “내가 이루어 품은 무기.”라고 중얼대며 혈미궁의 기문을 활짝 열었다.


‘이게 내 마지막 발악이란 말이지.’ 그의 입가에 뒤틀린 미소가 그려지는 순간 혈문이 있는 대로 기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분해돼 날아가는 것만 같다. 일면 경이롭기까지 한 통증은 문제가 아니었다. 고작 삶의 증명일 뿐이니까. 하지만 나란 존재 자체를 느낄 수가 없는..


‘설..마?’


대자연의 강대무비한 기운 앞에서 이미 소멸해 버렸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밀려들자 절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간신히, 정말로 간신히 비명을 삼킨 검주는 으스러지라 이를 악물었다.


‘이 또한..’ 살아 있음이라 믿고, 말하고 싶은데 이제 그 고통조차 느껴지질 않았다.


세상에 나는 없고 보이는 거라곤 일생을 함께 해온 시꺼먼 두 자루 벗과 새빨간 적 밖에 없었기에 그는 바닥을 박찼다.


‘당신이 이루어 품은 최고의 무기를 검 끝에 담으시오. 그것이 그대의 마지막이 될 터이니.’


그 가벼운 디딤을 이기지 못한 대리석이 모조리 터져나갈 때, 넘실대는 화염의 손에 도달한 검주는 우 장검을 휘둘렀다. 여지없이 폭발한 불꽃이 그를 휘감았지만, 놀랍게도 이미 흐르고 흐른 검주는 다음 화염을 가르고 있었다. 그를 보고 놀란 제신의 입에서 절로 탄성이 흘러나온다.


“정녕 그때의 무를 보는 것 같지만, 이제는 끝을 봐야겠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주변 모든 화염이 일제히 폭발했다.


사방팔방을 점하며 쏟아져오는 화염을 보고 호흡을 머금은 검주는 좌우 쌍검을 진동시키며 기이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러자 어느 우둔한 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저기, 사부님. 회류로도 피하지 못할 상황이 오면.. 그때는 어떡합니까? 아주 비처럼 쏟아지면 오갈 데가 없잖아요?’

‘모조리 다 베어라.’

‘예? 아니요, 그게 말처럼 쉽습니까? 빗방울 수만큼 칼을 휘두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우둔한 놈, 그냥 보고 배워라.’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잠시만요 스승님!’

‘이놈이 또 객쩍은 소리나 하려고..’


한바탕 호통을 치려 하자 제자는 다급히 항변했다.


‘그게 아니라 요즘.. 기분이 좋으신 것 같아서..’


그리곤 멋쩍게 웃는 놈의 면상을 후려 갈기고 싶었지만 일단 참고 물었다.


‘기분이라니?’

‘자주 웃으셔서..’

‘이놈이, 헛소리하지 말고 그냥 보기나 해!’


이어진 그 우둔한 놈의 탄성이 귓가를 맴도는 순간 좌우 쌍검이 거대한 파동을 만들며 사위 팔방을 모조리 휩쓸었다. 그 여파에 휘말린 지하홀은 물론이고 건물이 통째로 흔들리며 비명을 지르니 그 위력을 더 언급해서 뭐하랴?


‘그건.. 이름이 뭡니까?’

‘이름?’

‘그 회류나 혈미궁같은 거 말입니다.’

‘검을 휘둘러 적을 베는데 왜 그딴 게 필요해!’


당시에는 참 답답했는데 이제와 돌아보니 일생의 추억이라 미소를 아니 띨 수가 없었다. 한데 그를 본 제신이 당황해 주춤 물러섰으니..


‘법과 권능을 동시에 소멸시켜? 그러고보니 검술에 기괴한 웃음마저도 놈을 닮았구나. 환생이라도 한 게냐?’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 트라우마가 되살아난다.


혈무로 화한 상태라 눈으로 읽을 수 없었지만, 옅은 출렁임 만으로도 두려움이 읽힐 정도였다. 경이로운 검을 뿌린 검주가 바로 주저앉지 않았다면 더 못 견디고 줄행랑을 쳤으리라.


‘몸이 견디지를 못하는구나.’ 악다문 입술 사이로 선홍빛 핏물이 배어 나온다.


그래도 아직 끝나지 않았기에 그는 검을 지팡이 삼아서 가까스로 일어섰다. 하지만..


‘움직일 여력이 없어.’


전신을 휘감은 화상의 통증이 지독해도 전혀 문제 될 건 없었다. 화염과 부딪혔을 때는 반신이 뜯기는 줄 알았건만, 그 역시 견딜 만하였고. 한데, 넘쳐흐르는 진기가 문제였다. 이 기라는 놈이 알고 보니 괴물이라 하늘에 이르는 힘을 주지만, 과부하가 걸린 육신을 치유하거나 배려하지는 않았다.


‘조화를 이루지 못한 힘은 덧없는 춤사위에 불과하구나.’ 떠난 스승은 어찌 이리도 옳단 말인가?


깨달아 얻었다면 그에 걸맞은 육신을 당연히 가졌을 거라고 여기는 듯했다. ‘네게 무한한 힘을 주리라.’하고 속삭이면서 말이다. 물론 그의 귀에는, '지닐 자격이 없다면 파멸하리라.' 라고 들렸지만..


“파멸.”


힘없이 뇌까린 검주는 다시 나타난 불덩이들을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그 뒤로는 화염을 휘감은 제신이 보였는데, 기로서 혈인을 강제해봐야 화염으로 흩어질 걸 생각하니 그저 한숨만 나왔다.

보여도 벨 수 없다면 그야말로 무적이 아니겠는가?

다다른 경지를 미처 인지하지 못한 검사는 공중에 뜬 채 다가오는 적을 보며 힘없이 검을 되잡았다. 그의 절망을 읽은 제신이 화염을 아우라처럼 뿜어 위세를 과시하자 검주는 불현듯 떠오르는 단어가 있어 신음처럼 뱉었다. 그것은 전설로만 전해지는 법의 한 경지였다.


“화..형?” 그의 나지막한 목소리를 들은 제신이 만족스러워 대소를 터트린다.


신비 시대의 초기, 법의 종주인 초대 천법이 등장해 흑암 빙폭과 함께 세상에 선보인 뒤 단 한 번도 재현되지 않은 이능이 바로 화형이었다. 현대에 이르러 혈화라 불리는 낯 뜨거운 아류로 미약한 파편만 남은 이 절대지력은 법의 극한이며 발현자가 곧 영원불멸이라던 경지였다.


‘형의 완성이 곧 세상 모든 이치로부터의 탈피다.’


화형을 이루어 강림한 천법이 이제 불사에 이르렀다는 말을 남기고 홀연히 흩어졌을 때부터, 얼마나 많은 법사가 그에 도전했었던가?


누구도 형[形]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바로 그 절대지경을 언급하자 제신은 증명하겠다는 듯 불덩이들을 소멸시키고 그의 머리 위로 흘러왔다. 그리곤 장난처럼 손을 휘두르자 그의 손이 거대한 화염이 돼 검주를 내려친다. 반사적으로 검을 머리 위로 교차해 공격을 막아낸 검주가 풀썩 주저앉는 순간, 불덩이가 양쪽으로 나뉘며 2m에 육박하는 거대한 손으로 화해 그를 움켜쥐었다가 그대로 폭발했다.


“이걸로 끝이다.”


제신의 확언과 달리 그마저도 견뎌낸 검주가 남은 진기를 모조리 뿜어 화염을 흩었지만, 정신없이 헐떡이는 걸 보니 이제는 정말로 지친 것 같았다. 우 장검에 기대어 간신히 바닥을 딛고 일어서는 모습이 그저 안쓰러워 보였다.


'여기까지인가?'


그가 숨을 헐떡이며 힘겨워 하자 드디어 땅을 밟고 본 모습을 드러낸 제신이 오만한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며 입가를 일그러뜨렸다.


“안타깝구나. 검을 들지도 못하고 의지해 서 있는 검사만큼 초라한 모습이 세상 어디에 있겠느냐?”


그의 거만한 눈에 비친 검주의 옷가지는 넝마가 돼 너덜거렸고, 벌겋게 달아오른 피부는 껍질이 벗겨지고 살점이 타들어가 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이 느껴졌다. 벌겋게 충혈된 외눈은 여전히 번들거렸지만, 불굴의 의지만으로 할 수 있는 건 세상에 아무 것도 없었다.


“송광극, 이제 너와 이 몸의 간극을 알겠느냐?”


만신창이가 된 검주가 고개를 떨궜다. 한데 그의 외눈에 어린 투지는 여전하였으니.. 그는 한 가지를 확신하였기에 실낱같은 희망의 끈을 붙잡았다.


‘화형이 아니다.’


혈인의 권능을 이용해 펼친 불의 법은 보다시피 위력적이었지만, 절대지경이라는 화형에 비하면 너무나 조악했다. 그런데도 화형이라고 주장하는 걸 보면..


‘내가 신비에 얽매였듯, 네놈도 과거의 이름에 매였구나.’


제신이 여태껏 사냥했던 포식자보다 까다로운 건 사실이었다. 준비도 전혀 되지 않은 상태이니 패배는 당연하리라. 하지만 혈인에 법을 접목한 공격은 사실 별다를 게 없었고, 아직도 기는 넘쳐흘렀다. 그것이 독이건 약이든 간에 말이다.


‘거기에다가 짐승은 겁 먹었을 때 몸을 불리지.’


검주는 적의 꾸며진 여유와 오만에 깊은 감사를 표하며 자신이 가진 무기를 되살폈다. 남은 거라고는 단 하나밖에 없었지만, 좀 전에 커다란 단서를 찾았다.


‘신비에 얽매였다. 얽매였다, 얽매여? 그렇구나, 혈미궁은..’


흡수한 기를 머무르게 하지 못해 미완의 술이라 여겼었다.


‘내가 만들고도 제대로 사용치 못했어.’


빌어먹을 놈의 신비라는 단어 때문에 기를 몸에 축적해야만 된다고 생각했다. 정말 개 같은 고정관념이리라. 혈미궁은 헝클어진 기혈을 강제로 열고 빨아들인 기를 육신에 가둔다. 하나부터 열까지 강제하는 술이기에 고통을 동반했고 유지 시간도 극히 짧았다. 하지만..


‘왜 나는 만들고도 틀을 벗지 못한 걸까?’


혈미궁이 발현되는 순간 기혈이 열리고 무한에 가까운 진기가 주입된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그 시간만큼은 신비에 닿는 게 아니라 그 자체가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혈미궁을 하나의 문이라 여겼다면 자신 또한 거대한 기의 통로로 내버려뒀어야 했다. 그랬다면 밖으로 새어나가는 미약한 진기 따위에 연연치 않았으리라.


‘기가 흐르는데 통로가 가득한 건 당연한 일이거늘..’


참으로 간단명료한 진리를 이제야 깨달아 얻은 검주는 탄식을 뱉었다.


“이미 완성된 상태였어.” 생의 마지막 자락에서 지극한 깨달음을 얻자 오히려 허무한 기분이 든다.


흘러나오는 숨결에 한탄이 섞이는 것도 당연한 일이리라.


“조금만 일찍 깨달았다면.. 이제 전해줄 시간도, 사람도 없건만..”


이 위대한 무를 행해야 할 육신은 이미 명을 다했고, 가장 중요한 깨달음은 후대에 전할 수가 없었다.


‘나와 함께 스러지겠구나.’


그의 입에서 허허로운 웃음이 흘러나올 때, 제신의 구둣발 소리가 들려왔다. 오만과 여유가 완벽하게 조화된 얼굴로 다가오는 짐승을 힐끔 쳐다본 검주는, 늘 그래왔듯이 양손에 굳게 쥐어져 있는 흑검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러자 검이 그의 일부가 되어 막대한 진기를 세상천지로 흘려보낸다. 그제야 제신의 이르렀냐는 말이 귓가를 스친다.


‘이르렀다?’


제신은 자신이 법을 막고 떨치는 것을 당연하다 여겼다. 범인이라면 막고 스치는 순간 불타 죽었을 텐데 말이다. 그 말인즉슨..


‘나는..이르렀구나.’ 그렇게 검주는 절대라 칭하며 경외해 마지 않는 경지에 발을 디뎠다.


작가의말

정신없는 추석녘, 제 글로 잠시나마 한숨 돌리셨기를.. 


혹여 한가위가 썩 달갑지 않거나, 외롭고 쓸쓸한 분이 계신다면 제 글을 처음부터 다시 보세요. 아차 하는 순간에 잠들어서 눈 뜨면, 다 지나가 있을 겁니다. 힘내세요,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제가 장담하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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