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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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건
작품등록일 :
2014.07.20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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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05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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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9.17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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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4장 내 축구를 소개합니다. (3)

DUMMY

스티비 포츠는 경기장으로 걸어 들어가는 김홍준의 등을 보며 생각했다.

‘내 축구를 보여주지.’

포츠의 시선이 관객석을 향했다.



수석코치의 전략은 복잡한 것이 아니었다.

적절한 순간, 적절한 선수를 투입한다.

단순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그만큼 때를 기다리는 인내심을 요구한다. 또한 단순한 만큼 효과적이기도 했다.

득점 없이 후반 20분가량을 남겨 놓은 시점.

수세에 몰린 팀에게는 반전이 필요했다.

창 타오는 투입된 김홍준과 멜빈을 보며 숨을 골랐다. 상대 팀의 거침없는 공격에 제대로 숨을 고를 시간도 없었다.

선수들이 교체 투입되는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창 타오는 최대한 몸을 회복시키며 필드를 쓸어봤다.

단내가 나도록 뛰어다닌 상대 팀 선수들이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고 있었다.

모두가 지쳐 있었다.

약 2달간의 꿀맛 같은 휴식기간을 끝내고 복귀해 이제 막 몸을 만들어가는 시기였다.

아직 제대로 올라오지 않은 체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그들 모두 강도 높은 훈련을 소화하고 있었다.

그 여파가 2주째를 맞는 연습경기에서 여실히 드러나 보이고 있었다.

창 타오는 자신의 눈앞에 서서 정신없이 머리를 움직이는 선수를 쳐다봤다.

김홍준은 투입된 순간부터 필드 위를 살피며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을 찾고 있었다.

좋은 자세였다.

5초도 되지 않는 시간이 지나고 경기는 다시 정신없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김홍준도 그 흐름에 휘말려 들었다.

창 타오는 아직 흐름을 쫓지 못해 허둥지둥 움직이는 김홍준을 최대한 커버하며 경기 내내 위협적인 움직임을 보여줬던 세르비아 국적의 미드필더를 찾았다.

에레디비지에 클럽에서 자유계약으로 풀려나와 신임 감독과 함께 구단에 합류한 선수라고 들었다.

창 타오는 교체 투입된 1군 공격수를 쫓아다니면서 그를 놓치지 않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대부분의 공격이 그에게서 시작되고 있었다.

그를 놓치는 순간 실점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창 타오의 미래 역시 몇 보 후퇴가 불가피 하게 될 게 분명했다.

오늘 이 경기에서 창 타오는 말 그대로 인생을 걸고 있었다.

사념 속에서 창 타오는 공격수를 마킹했다.

교체 투입된 공격수는 활기가 넘쳤다.

시종일관 거친 몸싸움이 오갔다.

대결이 절정에 달했을 때, 세르비아 국적의 미드필더가 감각적인 로빙 패스를 날리는게 창 타오의 눈에 들어왔다.

본능적으로 창 타오는 볼을 향해 달려들었다.

1군 공격수는 이미 몸을 띄운 상대였다.

창 타오와 1군 공격수의 몸이 겹쳐졌다.

“윽!”

절로 신음이 새어나왔다.

순간 사고가 끊겼다.

0.5초의 공백.

사고의 흐름이 멈추고 시야가 검은색으로 물든 시간이었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창 타오는 주변을 뛰어 다니는 1군 선수들의 환호를 들어야 했다.

골이 들어 간 것이다.

필드에 누워 창 타오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김홍준의 얼굴을 발견했다.

걱정하는 표정이었다.

창 타오는 팀닥터의 손을 뿌리치고 몸을 일으켰다. 현기증이 일었지만 일시적이었다.

“괜찮아. 괜찮아요.”

동료들의 부축을 뿌리치고 자리에서 일어 선 창 타오는 뒷동수를 만지며 주변을 둘러봤다.

코너 라인 부근에서 예의 세르비아 국적의 선수가 환호를 내지르며 골세레모니를 하고 있었다.

우려했던 상황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벌어진 것이다.

창 타오는 반사적으로 관객석을 쳐다봤다.

몇 명의 스카우터가 손에 든 수첩과 스마트폰에 뭔가를 적고 있었다.

창 타오는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인상을 찌푸렸다. 전 날 라커룸에서 수석코치가 했던 말이 스카우터들의 행동과 겹쳐졌다.

좌절감이 창 타오의 정신을 덮쳐갔다.



김홍준은 창 타오를 따라 관객석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그 안에는 단 한 명의 동양인도 보이지 않았다.

창 타오는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김홍준은 그 시선의 의미를 알 수 없었다.

다만 창 타오의 눈에 맺힌 물방울이 땀이 아니라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창 타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21살 어린 선수 였지만 어떤 때는 형처럼 느껴지기도 했던 의젓한 녀석이었다.

김홍준은 주심의 지시에 따라 제 위치에 서며 필드 중앙에 놓인 축구공을 쳐다봤다.

저게 뭐라고 190cm가 넘는 거한을 울고 웃게 만드는 걸까?

뭐라고 고향에서 도망친 인간을 구하는 마지막 보루가 된 것일까?

김홍준은 갑작스럽게 물 밀 듯 밀려오는 상념에 심장이 뜨겁게 달궈지는 걸 느꼈다.

창 타오의 눈물이 뭘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지금 이 순간 김홍준은 묘하게 그 눈물에 공감하고 있었다.

의미도 모르면서 그저 공감한다.

눈물의 위력이란 그런 것이었다.

주심의 지시에 따라 축구공이 움직였다.

김홍준은 공을 따라 움직였다.

2군 진영에서 움직이는 공이 전후좌우로 움직이며 1군 선수들의 강한 압박을 피해 움직였다.

끊임없이 피하고 피하고 피한다.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뒤로 물러나는 패스를 받으며 김홍준은 전방을 주시했다.

김홍준의 시선이 상대 진영의 빈틈을 쫓아 바쁘게 움직였다.

전방을 향해 바쁘게 움직이는 눈동자와 다르게 공은 김홍준의 발끝을 스쳐 2군 진영을 헤매고 있었다.

갈 길을 찾지 못한 공을 따라 2군 선수들의 움직임도 갈팡질팡 전후좌우로 공을 쫓아 맥없이 움직여 다녔다.

한 바퀴 돌아 다시 공이 김홍준에게 도달했을 때, 세르비아 국적의 미드필더가 달려들었다.

그 빠르기에 일순 당황하며 김홍준은 발뒤축으로 공을 차 수비진에게로 공을 돌렸다.

세르비아 국적의 미드필더는 금새 김홍준을 지나쳐 창 타오에게로 달려갔다.

후반 38분 경기는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 사이 1군의 골에 움츠러든 2군은 제대로 된 공격도 해보지 못한 채 몇 번의 긴 패스만을 시도하고 맥없이 늘어져 있었다.

김홍준은 등껍질 속에 숨은 거북이처럼 움츠러든 팀 안에서 끊임없이 눈동자를 굴렸다.

단 한 번의 기회만 있으면 충분 할 것 같았다. 그 기회를 찾는다.

김홍준은 끊임없이 탐색에 탐색을 거듭했다.

그렇게 전방의 움직임을 김홍준이 주시하고 있을 때, 변화는 전방이 아닌 후방에서 일어났다.

2군 수비수의 실수였다.

예측하지 못한 순간 벌어진 패스 미스 였다.

공이 애매한 위치로 굴러갔다.

앞으로 전진해있던 세르비아 국적 미드필더와 창 타오의 사이로 공이 흘러갔다.

동료의 실수에 화를 낼 겨를도 없이 창 타오는 움직였다.

세르비아 국적 미드필더가 경기 내내 자랑했던 준족을 움직여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그 아슬아슬한 순간 김홍준은 전방의 변화에 주목했다.

2군 진영에서 벌어진 사소한 미스에 1군 수비수가 움찔하며 앞으로 전진 했다.

시종일관 상대팀 측면 수비수의 방어에 가로 막혀있던 멜빈에게 공간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순간 김홍준의 주변이 검게 물들었다.

그 검은 공간에 김홍준의 발끝에서 시작된 새하얀 선이 멜빈이 뛰어드는 공간을 향해 그어졌다.

그건 환상이었다.

공은 아직 창 타오의 눈앞에 놓여 있었다.

그 새하얀 선에 아직 공은 놓이지 못했다.

하지만 김홍준은 그 기묘한 감각 속에서 강렬한 확신을 느꼈다.

“받아!”

창 타오가 태클을 했다.

필드에 창 타오의 축구화를 따라 선이 그어졌다.

공이 창 타오의 발에 닿았다.

그건 패스는 아니었다.

단순히 발에 맞고 튕겨져 나간 것이었다.

불규칙한 움직임을 보이며 앞으로 흘러가는 볼을 쫓아 1군의 측면 공격수가 달려들었다.

김홍준은 공을 보지 않고 있었다.

관객석에 앉은 모두가 헛웃음을 흘렸다.

모두가 끝났다고 생각 할 무렵 공이 김홍준의 발뒤꿈치에 닿았다.

그 순간 공이 뻗어나갔다.

김홍준이 목격했던 새하얀 선을 따라 공이 날아갔다. 멜빈이 대각선으로 달려들었다.

1군 수비진은 모두 멜빈의 뒤에 서있었다. 아차 싶은 순간 멜빈은 이미 패널티 에리어에 도달해 있었다.

뒤늦게 수비진이 멜빈을 쫓았지만 지친 다리는 말을 듣지 않았다.

공이 멜빈의 발에 닿았다.

1대1 상황.

방향이 바뀌었다.

멜빈이 골대를 향해 뛰어들었다.

“정말 알 수 없는 놈이다. 넌.”

김홍준은 골망을 흔드는 축구공을 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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