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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건
작품등록일 :
2014.07.20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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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05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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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9.22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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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장유유서는 없다. (3)

DUMMY

주차장에 차를 세우기 무섭게 알빈 반 브링크가 거칠게 차 문을 열고 나갔다.

허겁지겁 차에서 내리는 스티비 포츠를 보며 알빈 반 브링크가 말했다.

“갑시다.”

둘은 스톰포겔스 텔스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규모의 클럽 하우스로 걸어 들어갔다.

알빈 반 브링크의 발걸음은 망설임이 없었다. 마치 고향을 찾은 것처럼 모든게 익숙해 보였다.

둘은 당황한 표정의 경비원을 지나쳐 문을 열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깔끔하게 닦여진 복도를 지나 한 사무실 앞에 섰다. 문에는 클라렌스 스하프라는 명찰이 붙어있었다.

알빈 반 브링크는 거침없이 문을 밀어 젖혔다. 벌컥 문이 열리고 안에 있는 두 남자의 시선이 문을 열고 온 두 남자에게로 쏟아졌다.

그 시선은 이내 당혹감으로 바뀌었다.

“무슨 일 입니까?”

“만다스 어디 있습니까?”

분명 나이는 클라렌스 스하프가 더 많았다. 하지만 스하프는 알빈 반 브링크의 무례한 행동에 화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곁에 앉아 있는 유소년팀 총책임자와 함께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실패한 감독이지만 그는 분명 레전드였다.

그는 아약스의 레전드였다.

“그러지 말고 일단 여기 앉으시죠.”

“그럴 시간 없는 거 아실 텐데요?”

단호한 대답이었다.

안하무인격의 행동이었지만 누구도 그 태도에 불만을 품지 않았다.

아니 오직 한 명만이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건 2부 리그 약소팀 수석코치인 스티비 포츠였다.

‘자기가 떠나고 난 후에 어쩌라고 이러나.’

스티비 포츠는 알빈 반 브링크의 행동이 스톰포겔스 텔스타와 아약스 사이의 갈등으로 번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임대로 생명연장의 꿈을 꾸는 약소팀 입장에서는 앞으로도 거래를 해나가야 할 리그 최고의 빅클럽과 불화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설사 1년 후에 떠날 팀이라 해도 그건 마찬가지다.

그런 스티비 포츠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알빈 반 브링크는 으르렁 거리는 듯한 어투로 말했다.

“왜 말이 없습니까?”

클라렌스 스하프는 곤란한 표정으로 유소년팀 총책임자를 쳐다봤다.

그도 난감한 표정이기는 매한가지였다. 둘이 난색을 표하고 있을 때, 스티비 포츠가 끼어들었다.

“스하프, 우리 약속하지 않았나?”

불쑥 튀어나온 말이었지만 유소년 총책임자 빼고는 모두가 그 말을 알아들었다.

클라렌스 스하프는 순간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어허, 그 친구 참. 그 이야기를 왜 여기서 꺼내나? 지금은 당면한 문제에 집중해야지.”

곤란함에 클라렌스 스하프가 몸서리 치고 있을 때, 가만히 있던 유소년팀 총책임자가 입을 열었다.

“알빈, 좀 진정하게. 아무리 자네라도 일에는 다 순리라는게 있는 법이야. 이렇게 막무가내로 찾아온다고 일이 해결 되겠나? 그리고 지금 만다스는 여기 없어. 다른 클럽으로 떠났네.”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의 유소년팀 총책임자의 말이었다. 알빈 반 브링크는 선수 시절 자신을 지도한 전력이 있기도 한 그의 말에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요한 루이스 건은 이미 끝난 딜 아니었습니까? 감독도 승인했고 단장도 승인한 문제에 에이전트가 왜 끼어듭니까?”

알빈 반 브링크의 지적에 유소년팀 총책임자는 입맛이 쓴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클라렌스 스하프는 그런 유소년팀 총책임자를 보며 대신 입을 열었다.

“에이전트뿐만이 아닙니다. 선수도 임대 거부를 해서 저희도 곤란한 상황이에요.”

알빈 반 브링크는 이를 갈며 말했다.

“만다스 입니까? 요한 루이스 입니까?”

“예?”

“만다스가 먼저 임대 거부를 한 겁니까? 아니면 선수가 먼저 임대 거부를 한 겁니까? 둘 중에 어떤 새 ㄲ.. 인간이 먼저 거부 했습니까?”

알빈 반 브링크의 질문에 클라렌스 스하프와 유소년팀총책임자는 시선을 교환했다.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눈빛이었다.

그러나 이내 둘은 하나의 의견으로 합의를 봤다.

클라렌스 스하프가 입을 열었다.

“요한 루이스입니다.”

유소년팀 총잭임자와 클라렌스 스하프는 이 발언을 비겁하다 생각하지 않았다.

요한 루이스는 18세의 어린 선수였지만 선수로서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너무 많이 넘었다.

아약스에서 훈련을 받는 동안 요한 루이스는 훌륭한 선수로 성장했지만 인간으로서는 최악이었다.

전임 2군 감독의 자진 사임이 그 최악의 인간성에 화룡점정을 한 케이스였다.

오랜 시간 요한 루이스를 지켜본 유소년팀 총책임자나 그를 맡게 된 클라렌스 스하프는 선수에게 새로운 환경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판단했다.

최악의 인간에게는 최악의 환경만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가르쳐 줘야 했다.

알빈 반 브링크는 스하프의 대답에 먹이를 눈앞에 둔 이리 같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옆에서 그를 지켜보고 있던 스티비 포츠는 순간 그가 혀를 뽑겠다고 한게 그냥 하는 말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 있습니까?”

짧은 질문이었지만 누구를 지칭하는지는 알 수 있었다.

“클럽에는 없습니다. 훈련이 끝났으니 어디 외출이라도 했겠죠.”

알빈 반 브링크는 스하프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연락 주십시오. 제가 잘 설득해보겠습니다.”

어떻게 설득 할 거냐고 묻지는 않았다.

클라렌스 스하프와 유소년팀 총책임자는 묵묵히 고개 끄덕였다.



김홍준은 버스를 타고 한참을 달려 암스테르담에 위치한 한 카페에 도착했다.

훈련을 막 끝내고 온지라 지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지만 3개월도 남지 않은 테스트 기간, 없는 체력도 끌어내야 했다.

커피를 쪽쪽 빨아 먹으며 야외 테라스에 앉아 멍하니 주변 풍경을 바라보고 있을 때, 휴대폰이 울렸다.

게시글에서 본 전화번호였다.

“예, 여보세요.”

“전화 하신 분이죠?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

나긋나긋한 목소리였다.

3주만에 듣는 고향의 소리에 김홍준은 묘한 감흥을 느끼며 대답했다.

“말씀하신 카페의 테라스에 앉아 있습니다.”

“아, 예. 금방 갈 테니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전화가 끊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카페를 향해 걸어오는 여자가 보였다.

유달리 눈에 띄는 검은 머리를 보며 김홍준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긴 생머리가 어울리는 미모의 여성이 자리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이도미라고 해요.”

“예, 저는 김홍준이라고 합니다.”

둘은 자리에 앉아 대화를 나눴다.

과외비에 대한 흥정에 이르렀을 때, 둘은 서로가 제시한 금액에 난색을 표했다.

금액 조율이 고착 상태에 빠졌다.

“네덜란드 물가도 생각하셔야죠.”

이도미의 말이었다.

“제 주머니 사정도 생각해주세요.”

김홍준은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둘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평행선을 달리는 의견에 고뇌했다.

그때 였다.

카페 내부에서 소란이 일었다.

둘은 비명소리가 흘러나오는 카페 내부를 쳐다봤다. 유리창 너머로 내부 풍경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한 젊은 여성이 어려보이는 남자에게 뺨을 맞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은 그 모습에 기겁을 하고 있었다.

김홍준은 별반 변화가 없는 표정으로 안쪽 풍경을 바라봤다.

네덜란드에 오기 전 경찰 생활을 했던 김홍준에게 있어 그닥 낯선 풍경은 아니었다.

대신

“네덜란드에도 여자 패는 새X들이 있구나.”

라고 홀로 중얼거릴 뿐이었다.

“저거 누가 안 말리나요?”

이도미의 말에 김홍준은 한숨을 내쉬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상황에서 ‘내’가 아니라 ‘누구’를 찾는다. 세계 어디를 가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히어로 영화가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건지도 몰랐다.

“여기 경찰 신고 번호가 몇 번이죠?”

“112요.”

익숙한 울림이 느껴지는 번호였다.

번호를 눌렀다. 신호가 갔다. 금새 연결이 되었지만 김홍준은 난감한 표정을 지어야 했다.

‘아, 나 영어 못하지.’

김홍준은 도미에게 전화를 넘겨줬다.

“대신 말 좀 해줘요.”

“예? 아, 예.”

휴대폰을 넘겨주고 김홍준은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새삼 경찰 시절이 떠올라서는 아니었다. 특별히 의협심이 있어서도 아니었다.

다만 여자가 맞고 있는 모습이 불쾌 할 뿐이었다.

카페로 들어간 김홍준은 일단 CCTV가 있는지 살폈다. 다행히 CCTV가 설치되어 있었다. 가짜도 아닌 듯싶었다.

제대로 작동하는 CCTV를 확인한 후 김홍준은 젊은 남자와 여자 사이에 끼어들었다.

“호이!”

네덜란드어로 ‘안녕’ 이라는 인사말이었다. 처음 이 인사를 들었을 때, 김홍준은 네덜란드에서 둘리가 국민 만화라도 되는 줄 알았다.

“그만 하자. 그만. 여자 다친 거 안 보여?”

김홍준은 짧은 영어를 구사하며 남자를 멀찍이 밀어내려 했다.

하지만 작은 덩치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강단이 있어 남자는 쉽게 밀려나지 않았다.

졸지에 힘겨루기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 사이 남자에게 맞던 여자는 울면서 카페를 뛰쳐나갔다.

‘좀 누가 잡아줘. 그 여자 나가면 사정청취는 누가 하냐.’

김홍준은 허탈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폭행 현행범들이 흔히 그렇듯 여자를 때리던 남자는 이내 분노의 타겟을 바꿨다.

이제 소년티를 벗기 시작한 남자의 반항적인 눈빛을 보며 김홍준은 그 사실을 직감했다.

“아, X됬네.”

주먹이 날아왔다.


작가의말

 오류 및 오타 지적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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