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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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건
작품등록일 :
2014.07.20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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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05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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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9.18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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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내 축구를 소개합니다. (4)

DUMMY

멜빈이 골대를 향해 뛰어들었다.

“정말 알 수 없는 놈이다. 넌.”

김홍준은 골망을 흔드는 축구공을 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사실 대단한 경기는 아니었다.

네덜란드 변두리 작은 클럽에서 벌어진 흔히 있는 연습경기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

그랬기에 대단한 이변이라 소문이 나지도 않았고 기사가 날 만큼 화제 거리도 되지 않았다.

20분가량을 맥없이 뛰어다니다 단 한 번의 날카로운 스루 패스를 날린 한 동양인 선수의 모습도 그래서 관객들의 박수소리와 함께 그렇게 덧없이 잊혀졌다.

김홍준은 1:1로 종료된 경기를 끝마치고 훈련장을 나서며 몸을 돌려 스톰포겔스 텔스타의 홈 경기장인 타타 스틸 스타디움을 올려다봤다.

2주가 흘렀다.

이 2주가 3개월로 연장이 될지 아니면 여기서 끝날지는 아마도 내일 결정 날 것이다.

운동복 윗옷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한참을 올려다보던 김홍준은 이내 몸을 돌렸다.

멀지 않은 곳에 창 타오가 기다리고 있었다.

둘은 일전에 그랬던 것처럼 바닷가 근처의 펍으로 향했다.

축구 선수에게 맥주는 섭취해서는 안 될 금지 목록 최상단에 위치한 물건이었지만 어쩌겠는가? 기념 할 만 한 날에는 한 잔 마셔줘야지.

오후 이른 시간 손님은 적었다.

둘은 창가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맥주가 오고 안주가 나왔다.

한산한 펍에서 둘은 술잔을 기울였다.

“너 울었지?”

김홍준의 뜬금없는 질문에 창 타오는 뭔 소리냐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골 먹고 경기 중에 울었잖아.”

능글능글한 어투였다.

창 타오는 김홍준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맥주를 들이켰다.

묵묵부답 맥주를 들이키던 창 타오는 이내 맥주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아니, 그건 눈물이 아니었어.”

“그럼 땀이냐?”

“아니, 마셨던 게토X이가 흘러서 눈가에 묻은 거야.”

“니가 무슨 아바타냐? 눈물이 퍼런색이게. 애초에 척 봐도 투명한게 눈물방울이던데. 헛소리 하고는.”

가벼운 농담이 오갔다.

둘은 안주를 집어먹으며 웃음을 터뜨렸다.

“영어 좀 늘었는데?”

창 타오의 칭찬에 김홍준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공무원 준비하며 2년... 8년을 공부 했는데 외국 생활 2주만 못하네. 사람이 살려고 발버둥 치니 봉인되어 있던 알파벳이 막 터져 나오는데?”

칭찬을 들었지만 김홍준은 알고 있었다.

아직 서툴기만 한 영어였고 지금 대화도 절반은 바디 랭귀지에 의지하고 있는 상태였다.

“이제 내가 없어도 되겠어.”

부지불식간에 튀어나온 말이었다.

창 타오는 조용히 맥주를 들이켰다.

김홍준은 멍한 표정으로 그런 창 타오를 쳐다봤다.

이내 김홍준의 입술이 일그러졌다.

“와.. 시X. 사내새끼에게 내가 이 소리를 들을 줄이야. 원래 너 없어도 됐어. 그러니까 그딴 오글거리는 소리 좀 면전에서 내뱉지 마라.”

질겁하는 김홍준의 모습에 창 타오는 묘하게 서운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게 그렇게 질겁할 말이냐?”

다행히 한국어 욕은 알아듣지 못한 창 타오는 안주를 집어 먹으며 툴툴거렸다.

둘은 그렇게 왁자지껄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해가 떨어지고 어둠이 깊어져 갈 무렵.

파장이 가까워져 왔다.

자리를 떠나기 전 창 타오는 불쑥 입을 열었다.

“전에 벽 차기 이야기 했었잖아.”

“어, 했지. 그게 왜?”

“얼마나 대단한 벽 차기 인지 갑자기 궁금해져서.”

“싱거운 놈일세. 뭐 대단한 건 아니야. 공은 있냐?”

창 타오는 가방을 가리켰다.

공이 들었는지 불룩 튀어나와 있었다.

김홍준은 창 타오의 뜬금없는 제안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산은 더치페이였다.



창 타오는 김홍준을 따라 에이모이덴의 밤거리를 걸었다.

밤거리를 헤매며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는 김홍준의 모습이 경기장에서 패스 할 곳을 찾아 두리번거렸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아마 이 날의 패스를 대부분의 사람들은 잊어버릴 것이다.

관객석에 앉아 있던 축구 관계자들 역시 한 순간의 우연이 빚어낸 행운의 플레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무명의 선수가 보여준 기적 같은 플레이란 언제나 그렇게 평가절하 되고는 했다.

창 타오는 김홍준의 패스를 몇 번이나 되새김질 하 듯 떠올렸다.

오늘 상대팀에게 실점한 골은 창 타오의 실책이었다. 일순간 집중력을 잃고 사전에 걷어 낼 수 있는 패스를 볼 경합까지 끌고 간 것 자체가 문제였다.

그 실점으로 경기에서 패배 했다면 창 타오의 실수는 축구 관계자들의 뇌리에 박혔을 것이다.

그리고 창 타오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로 이어졌을 게 분명했다.

“여기 괜찮은데?”

앞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창 타오는 고개를 들었다. 김홍준이 고개 짓으로 어두운 골목을 가리키고 있었다.

창 타오는 생각을 접고 김홍준을 따라 골목으로 들어갔다.

꽤 깊숙한 골목이었다.

창 타오가 여자였다면 신변의 안전을 걱정해야 했을 정도였다.

한참을 걸어 골목의 끝에 이르렀다.

사면이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이었다. 창문에서 빛이 쏟아져 나와 크게 어둡지는 않았다.

김홍준은 공간의 중앙에 서서 주변을 한 바퀴 휙 둘러봤다.

그리곤 고개를 주억이곤 손을 흔들었다.

“공.”

창 타오는 가방에서 공을 꺼내 김홍준에게 던졌다. 발치에 떨어진 볼을 받은 김홍준은 가볍게 몸을 풀었다.

“큰 기대는 하지마. 프로가 보기에는 그닥 대단한 것도 아니니까.”

김홍준은 그렇게 말하며 목을 꺾었다.

목에서 우드득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한차례 숨을 내뱉고 김홍준은 공을 발등에 올렸다.

공이 떠올랐다.

김홍준의 발이 수평을 그리며 움직였다. 발에 맞은 공이 벽을 향해 날아갔다.

창 타오는 마침내 시작된 벽 차기를 멍 하니 바라봤다.

프로가 보기에는 그닥 대단치 않은 벽 차기는 의외로 프로가 보기에도 대단한 벽 차기였다.

창 타오는 헛웃음을 흘리며 김홍준을 쳐다봤다. 공간의 중앙에 서서 김홍준은 축구공으로 스쿼시를 하고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단 한 차례도 공이 바닥에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사면의 벽을 차고 나오는 공이 김홍준의 움직임에 따라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발, 정강이, 무릎, 허벅지, 배, 가슴, 어깨.

신체의 모든 부위가 춤추듯 움직이고 있었다. 모든 게 원터치로 이루어지는 끝없는 패스의 향연을 보며 창 타오는 끝내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5분 동안 쉬지 않고 이어진 자칭 ‘평범한 벽 차기’가 갑작스런 웃음소리에 끝났다.

“봐, 내가 별 거 없다 그랬잖아.”

“어, 별거 없네.”

창 타오는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대답했다.

그 미소에 김홍준은 투덜투덜 거리며 공을 들고 걸어왔다. 창 타오는 다가오는 김홍준을 보며 말했다.

“그 평범한 벽 차기를 소중히 해. 또 아냐 나 말고 다른 누구의 목숨 줄을 붙들어줄지?”

“뭐?”

“야! 이 새끼들아! 밤중에 뭔 축구질이야! 여기가 너네 집 정원이냐!?”

창문 밖으로 빵 하나가 튀어나왔다.

둘은 빵을 피하며 골목 밖으로 달려 나갔다.




2주째 마지막 날이 되었다.

스티비 포츠는 사무실에 앉아 선수들과 한 명 한 명 만나 면담을 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입가에서는 미소가 떠나지를 않았다.

평소라면 불쾌하게 여겼을 몇몇 선수의 항변에도 웃어넘길 정도로 스티비 포츠는 기분이 좋았다.

“다음 들어와.”

기분 좋은 스티비 포츠의 목소리를 따라 문이 열렸다. 한 선수가 들어왔다.

반 년 동안 팀에서 훈련을 받은 중국인 수비수, 창 타오였다.

스티비 포츠는 그를 보며 입을 열었다.

“그래, 마무리는 잘하고 있고?”

옆집 아저씨 같은 친근한 목소리에 창 타오는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짐은 이미 다 쌌고 옮기기만 하면 됩니다.”

“그래, 그래, FC오스는 꽤 역사도 있고 괜찮은 팀이니까. 열심히 해봐. 어제 경기가 마지막 테스트 였는데 잘 해냈어. 그쪽도 꽤나 괜찮은 액수를 제의하더군.”

창 타오는 스티비 포츠의 조언에 답례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악수를 하고 창 타오는 사무실을 나갔다.

스티비 포츠는 의자에 앉아 다음 선수를 불렀다.

“김, 들어오게.”

김홍준은 긴장된 표정으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 스티비 포츠는 경직된 김홍준의 표정을 보며 어제 비밀리에 가졌던 면담을 떠올렸다.

스티비 포츠가 내심 감독직을 욕심냈던 쥬필러 리그 하위권 클럽의 단장은 전화 한 통만 남기고 사라졌다. 사실상 감독 후보에서 탈락한 것이었다. 우울함에 빠져 있을 때, 쥬필러 리그의 중위권 클럽 구단주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와의 대화를 떠올리자 스티비 포츠는 다시금 얼굴이 풀어지는 걸 느꼈다.

그런 스티비 포츠의 표정변화를 보며 김홍준은 쭈뼛쭈뼛 자리에 앉아 있었다.

“2주간 훈련을 받아보니 어떻던가?”

전에 없이 친절한 포츠의 질문에 김홍준은 얼떨떨한 기분으로 대답했다.

“재밌었습니다. 배운 것도 많았구요.”

“그래, 얻은게 많다니 잘 됐군.”

의례 할법한 대화였다.

본론 언저리만 맴도는 포츠의 말을 들으며 김홍준은 불안하게 떨리는 다리를 손으로 억눌렀다.

“스하프와는 이후로 통화를 한 적 있나?”

포츠의 질문에 김홍준은 아니라고 대답했다.

“잘했어. 그런 인종과는 거리를 둬야 하네. 제멋대로에 책임감도 없지. 그러다 언젠가 길가다 칼 맞을 거야.”

김홍준은 동의도 반박도 하지 않았다.

말없이 앉아 있는 김홍준을 보며 입을 멈춘 스티비 포츠는 한차례 헛기침을 내뱉었다.

“어제 경기에서는 잘 해줬네. 경기 후 가진 회의에서 감독님도 좋게 평가하더군.”

“그럼...?”

스티비 포츠는 고개를 끄덕였다.

“프리 시즌이 끝날 때까지 훈련에 합류시키기로 했네. 자네 의향만 남았어.”

거절 할 이유가 없었다.

김홍준은 밝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고맙습니다.”

“훈련 기간만 연장된 거니. 안심하지는 말게. 아직 자네는 계약을 맺지 못한 신세니. 정식으로 우리 팀 선수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

일견 냉정하게 들릴 수 있는 말이었지만 김홍준은 불쾌하게 여기지 않았다.

용무가 끝나고 김홍준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기분 좋게 문을 열고 나가려는 순간 등 뒤에서 스티비 포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 자네의 축구를 찾게. 남들에게 소개 해줄 수 있는 자네만의 축구를 찾아. 이 세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그게 필요하네.”

2주간 훈련을 받으며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조언이었다.

김홍준은 시선을 돌려 스티비 포츠를 쳐다봤다. 동네 아저씨 같은 표정이 김홍준의 시선에 띄었다.

그는 오늘 기분이 아주 좋았다.


작가의말

 오류 및 오타 지적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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