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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건
작품등록일 :
2014.07.20 23:57
최근연재일 :
2015.10.05 00:51
연재수 :
5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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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8,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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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06
글자수 :
200,772

작성
14.09.12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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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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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
글자
9쪽

3장 어디에나 항구는 있다. (3)

DUMMY

창 타오는 이후 훈련 시간이 되면 김홍준을 면밀히 살폈다.

고작 4일이었지만 창 타오는 김홍준이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김홍준은 5일째 타타 스틸 스타디움 주변을 달렸다. 오늘은 친선경기에 선발 할 선수들을 선별하는 첫 연습경기가 있는 날이었다.

새벽 공기가 어스름하게 깔린 시간 그 속을 헤치고 나가는 김홍준의 몸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아무것도 해내지 못했다는 사실에 부담감만 늘어갔다. 이대로 2주만에 한국으로 돌아 갈 생각을 하니 자동적으로 얼굴이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도망치듯 떠나온 조국이었다.

친구들에게는 앞으로 오랜 시간 돌아 올 생각이 없다고 선전포고를 하기까지 했다.

쌓여 가는 고민 속에서 김홍준의 심사는 갈수록 꼬여만 갔다.

마음을 따라 달리는 속도도 점차 줄어들어갔다. 이내 평소 달리던 거리의 절반만 돌고 김홍준은 멈춰 섰다. 숨은 차지 않았지만 어째선지 평소보다 더 지쳐 있었다.

그때 김홍준의 옆으로 누군가가 달려지나갔다.

“온 유어 레프트.”

김홍준은 달려가는 이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어디서 많이 본 익숙한 뒷모습이었다.

누굴까 궁금한 생각은 들었지만 김홍준은 이내 한숨을 내쉬고 자리에 앉아 버렸다.

비참한 이혼을 당한 후 김홍준은 사소한 호기심에 그다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게 되었다.

만사가 되는대로 였고 인간관계에 별달리 공을 들이지도 않았다.

그냥 사니까 사는 인생이었다.

무감정한 눈으로 검청색의 하늘을 올려다보며 김홍준은 하나 둘 포기해 가는 자신에게 익숙해져 갔다.

포기하면 상처 받지 않는다.

무관심하면 상대도 다가오지 않는다.

김홍준의 인생관은 많은 부분에서 이혼 전과 달라져 있었다.

그렇게 한숨 푹푹 나오는 인생관에 김홍준이 찌들어갈 무렵 또다시 한사람이 눈앞을 지나쳐갔다.

“온 유어 레프트,”

김홍준은 멀거니 빠르게 지나쳐 가는 인물을 쳐다보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미친놈, 혼자서 캡틴X메리카를 찍나. 앞에 가는 사람도 없는데 온 유어 레프트는 무슨 온 유어 레프트야.”

별거 아닌 일에도 쉽사리 짜증이 났다.

김홍준은 그런 자신을 자각하고 있었지만 거기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짜증이라도 내지 않으면 가슴 속 뭉친 응어리가 그대로 속에서 썩어 들어 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썩어 가는 응어리를 부여잡고 김홍준은 멍하니 검청색 하늘을 쳐다봤다.

“온 유어 레프트.”

고즈넉한 마을 공기를 뒤흔드는 목소리였다. 체력 좋다고 자랑하는 건지 아니면 시비를 거는 건지 새벽 조깅을 하는 남자는 계속해서 김홍준의 앞을 지나쳐 갔다.

‘온 유어 레프트.’ 라는 소리를 몇 번이나 들었을까 김홍준은 슬슬 짜증이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온 유어 레프트.’ 라는 이름의 진원지에서 시작된 떨림은 이내 지층을 흔들었고 끝내 김홍준이라는 이름의 휴화산에 마그마를 퍼올렸다.

“온 유어 레프트.”

“야! 이 새끼야!”

김홍준은 고함을 내질렀다.

막 김홍준을 지나쳐 가던 상대는 움찔 몸을 떨며 멈춰 섰다.

김홍준이 삿대질을 하며 그에게 다가갈 때, 그가 몸을 돌렸다.

“어? 너는?”

눈앞에 서있는 남자는 창 타오였다.

김홍준은 멍하니 서서 그를 쳐다봤다.

191cm의 장신에 외국에서 보기 드문 검은 머리의 동양인이다.

설사 뒷모습뿐이라도 척 보면 알아봐야 했다.

김홍준은 새삼 자신이 주변에 이토록 무심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이제야 말을 거네.”

창 타오는 김홍준을 보며 말했다.

짧은 영어로 창 타오의 말을 겨우 알아들은 김홍준은 멍하니 그를 쳐다봤다.

그의 의도를 알 수가 없었다.

창 타오는 멍하니 서있는 김홍준에 아랑곳 않고 계속해서 말했다.

“김홍준, 너에게는 문제가 있어. 나를 알아보는게 늦은 것도 네 문제 중 하나야.”

길게 이어지는 창 타오의 영어는 의외로 알아듣기 쉬웠다.

영어 생초짜인 김홍준을 배려해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이야기 하고 있었다.

“지난 사흘간 너를 지켜봤어. 넌 아직 엉망이야. 하지만... 너에게는 분명 재능이 있어. 넌 그걸 살려야 해. 그건 프로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이상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야.”

김홍준을 배려한 기계적인 발음이었다. 그 발음 때문에 일견 차갑게 느껴질 수 있었지만 김홍준은 묘하게 훈훈해지는 마음을 느끼며 창 타오를 쳐다봤다.

“오늘 너는 절대 선발로 뛸 수 없어. 아마 교체 명단에도 오르지 못하겠지.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내 지난 1년 6개월이 그랬어. 하지만 그렇기에 너는 경기를 뛰는 선수들보다 더 경기에 집중해야 해. 그게 레귤러가 아닌 자들의 숙명이니까.”

창 타오는 긴 말을 내뱉고 김홍준의 표정을 살폈다. 혹시 너무 길어 못 알아듣지 않았을까 우려해서 였다.

다행히 김홍준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김홍준은 창 타오를 보며 생각했다.

‘넓은 오지랖은 인생을 망치는 지름길이지. 딱 보니 네 인생도 견적이 나온다.’

속마음은 거칠었다.

하지만 거칠게 모난 응어리는 속마음과 달리 천천히 녹아내리고 있었다.



스티비 포츠는 1군 대 2군 연습경기를 바라봤다.

경기는 예상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1군의 강세와 2군의 열세가 완벽하게 맞물려 돌아갔다.

스티비 포츠는 승리의 가능성이 전혀 엿보이지 않는 반코트 게임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경기에 돌입하기 전 포츠는 구멍이라 평가 받는 1군의 왼쪽 측면을 공략하고자 했다.

의도대로 오른쪽 라인을 최대한 공격적으로 구축했다.

1군과의 경기에 수비력이 약한 대신 공격능력이 뛰어난 풀백을 배치 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 였다.

오른쪽에 생길 수비 공백은 지난 경기에서 김홍준과 교체 출전해 골을 넣은 선수를 집어넣는 것으로 메꿨다.

모든 것이 스티비 포츠의 예상대로 흘러갔다면 수비진에서 힘들게 연결한 공이 오른쪽 공격 라인을 따라 빠른 역습으로 진행되어 꽤나 박진감 넘치는 경기가 연출되어야 했다.

하지만 인생사가 그렇듯 경기는 스티비 포츠의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알빈 반 브링크 감독은 그런 포츠의 속셈을 눈치 채기라도 한 것처럼 4141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출전한 선수를 앞 선에서부터 강하게 압박했다.

그 덕에 기껏 패스가 연결되어도 후방의 1의 위치에 서있는 수비형 미드필더가 늦은 판단과 그로인한 느린 볼 배급으로 계속해서 위험한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또 다시 공을 갖고 버벅대던 수비형 미드필더가 공을 빼앗겼다.

다행히 수비수가 반칙으로 막아내 일대일 상황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불안한 상황인 건 마찬가지였다.

스티비 포츠는 위태롭게 흘러가는 경기 상황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의 시선이 연습경기를 지켜보는 스카우터들에게로 향했다.

그 사이에는 연초 비밀리에 감독 제의를 해온 3부 리그 클럽의 단정도 있었다.

재정상의 문제로 직접 스카우트를 뛰는 모양이었다. 경기장으로 다시 시선을 돌려 스티비 포츠는 생각했다.

염원하던 감독직이다.

귀가 솔깃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스티비 포츠는 그 제안을 거절했다.

입질이 온 순간 자신의 미래가 더 나아 질 수 있다는 예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이번 시즌 스톰포겔스 텔스타의 결말이 어떻게 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만약 좋은 결과를 낸다면 감독만이 아니라 수석 코치인 스티비 포츠 역시 높은 평과를 받게 될 확률이 높았다.

에레디비지에는 몰라도 쥬필러 리그 클럽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 가능성이 파랑새가 되어 스티비 포츠의 눈앞을 날아다녔다.

그런데 지금 이 결과다.

아무리 스톰포겔스 텔스타의 성적이 좋아져도 스티비 포츠 개인의 평가 역시 끌어 올릴 필요가 있었다.

그 시작이 2주간 있을 두 차례의 연습경기였다.

‘스하프의 말도 안 되는 제의까지 받아 들였는데.’

포츠는 계속해서 실책을 범하는 수비형 미드필더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그런 스티비 포츠의 등 뒤에서 두 명의 아시아인 선수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경기장 이곳저곳을 가리키는 창 타오의 손가락을 따라 김홍준의 볼펜이 바쁘게 움직였다.

작은 수첩이 빼곡이 찼을 무렵 경기는 2군의 5:1 패배로 마무리 되었다.


작가의말

 오류 및 오타 지적 환영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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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4

  • 작성자
    Lv.99 수라마후
    작성일
    14.10.24 05:07
    No. 1

    걍 찌질이는 찌질이 분수에 맞게 땅바닥에서 굴러 먹어요,,, 노력도,성격도,신념도 없는 놈이 무슨 주인공 씩이나(사람이 저정도 폐인으로 가면 뛰어 내려야지 20층 아파트에서),,,,,,,,,,, 차라리 칭타오가 주인공역에 어울리겠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Vivere
    작성일
    14.11.01 17:07
    No. 2

    아 전부터 이름 하나가 읽는데 왜케 거슬린다고나할가 걸린다고나 할까
    스티비 포츠 란 이름
    스포츠 티비 라고 읽혀져서 ㅎㅎ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5 목동냥냥이
    작성일
    14.11.17 20:43
    No. 3

    위에 수라마후분의 기분이 꼭
    내기분과 같네요..
    주인공의 정신에 화도나고
    욕지기가 .. 너무 몰입해서리
    자 진정하고 .....!
    즐독에 감사드립니다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1 SilverLi..
    작성일
    15.09.20 02:19
    No. 4

    외국에서 어두운 머리 검은 머리를 포함해서 생각보다 흔합니다. 왠지 백인은 검은 머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가. 아이언 맨도 검은 머리고, 유럽 제일 서쪽인 영국인 중에서도 검은 머리 꽤 많습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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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3장 어디에나 항구는 있다. (5) +9 14.09.14 9,146 232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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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3장 어디에나 항구는 있다. (1) +8 14.09.10 9,785 228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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