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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건
작품등록일 :
2014.07.20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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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9.24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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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5장 장유유서는 없다. (5)

DUMMY

익숙한 막장의 향기 속에서 김홍준은 헛기침을 하며 좌우로 손을 들어 보였다.

“이도미씨, 이거 통역 좀 해줘요.”

김홍준의 행동에 일순 남녀 모두 입을 다물었다. 그들은 눈빛으로 이거 뭐야 라고 묻고 있었다.

그들의 눈빛을 받으며 김홍준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 가게 수리비 누가 낼 겁니까?”

이도미가 통역했다.

여자가 대답했다.

“저 녀석이 내겠죠.”

남일 말하듯 무심한 어투였다.

김홍준은 여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남자를 돌아봤다.

남자는 여자를 노려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건 저와 이 분이 저지른 일이기 때문이겠죠? 원인이 뭐든 어쨌든 바닥을 구른건 저와 이 분이니까요.”

이도미의 통역에 여자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김홍준은 남자를 쳐다봤다.

“왜 화를 낸 겁니까?”

남자는 주위를 둘러봤다. 주저하는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사람이 이렇게 많은 곳에서 가정사를 떠드는게 쉽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어린놈이 뭐 생각이 있어서 화를 냈겠어요?”

가만히 있던 남자에게 여자가 기름을 부었다. 순식간에 미간이 좁혀지며 고성이 터져 나왔다.

“네가 그 건달 놈들에게 빚져서 이런 거잖아!”

아직 어린 티가 나는 목소리를 들으며 김홍준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많이 겪어서 이제는 넌더리가 나는 일이었다. 가족 간 돈 문제가 싸움으로 번지는 건 유형만 다를 뿐 숱하게 벌어지는 일이었다.

그때마다 신고 받고 출동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김홍준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니까 싸움의 발단은 누님 되시는 분의 다년간의 빚 때문이라 이거군요?”

뭐 씹은 표정의 여자가 고개를 홱 소리 나게 돌렸다. 그 퉁명스런 반응을 확인한 후 김홍준은 남자를 쳐다봤다.

김홍준의 시선에 남자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싸울 이유가 없는데요?”

바보 같을 정도로 단순한 결론이었다.

남매는 동시에 김홍준을 쳐다봤다.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 둘을 번갈아 보며 김홍준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누님 되는 분이 말했죠? 가게 수리비는 동생이 책임져야 한다고.”

“그게 왜요?”

“왜긴요. 본인도 동의 했잖아요. 일은 저지른 사람이 책임져야 한다. 고로 빚은 누님이 책임져요.”

김홍준은 동생 쪽을 쳐다봤다.

“누님이 이렇게 자립심이 특출 나신데 왜 싸웁니까? 그냥 냅둬요. 자기 빚은 자기가 갚게. 가만 보니 싸울 필요도 없는 일로 싸운 당신이 잘못한 거 아닙니까? 니가 갚을 생각을 하니까. 싸움이 난거잖아. 안 갚아주면 니 누나 인생이 끝날 것 같아? 안 끝나. 다 자기 인생 자기가 건사 한다고. 난 뭔 죄야. 입단 테스트 중인데 몸 망가지면 네가 책임 질 거냐?”

김홍준은 무심한 눈빛으로 둘을 보며 랩이라도 하듯 말을 쏟아냈다. 마지막은 존대를 쓰는 것도 귀찮았는지 반말이었다.

이도미는 멍한 표정으로 김홍준의 말을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그대로 통역했다.

통역이 얼마나 훌륭했는지 김홍준의 감정이 남매에게 그대로 전달되었다.

여자가 괴성을 지르며 칼을 휘둘렀다. 김홍준은 덮쳐오는 여자를 보며 옆에 떨어져 있던 쟁반을 재빨리 집어 들었다.

한차례 칼을 막고 쟁반으로 여자의 싸다구를 날렸다. 옆으로 날아간 여자가 쓰러진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김홍준은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는 군중 사이를 가로질러 여자에게 다가갔다.

숨이 붙어 있는 걸 확인한 후 김홍준은 쓰러진 누나를 바라보고 있는 남자를 힐끗 쳐다봤다.

“가족이라고 똥 싸고 난 뒤까지 닦아 줄 필요 없어. 잘 생각해봐라. 살아보니 인생이 그렇더라.”

인생의 깊은 빡침이 느껴지는 조언이었다. 김홍준이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 앉아 커피를 들이킬 때, 멀리서 경찰사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아주 좋은 타이밍이었다.



전화를 붙잡고 있는 알빈 반 브링크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했다.

통화가 끝나고 전화기를 내려놓았을 때는 알빈 반 브링크의 표정은 하나로 귀결되어 있었다.

뿌드득 갈리는 이를 보며 스티비 포츠는 불현 듯 알빈 반 브링크의 치아 상태를 걱정했다.

그러다 자신을 노려보는 알빈 반 브링크의 시선에 급히 생각을 지웠다.

“어디서... 온 전화 입니까?”

스티비 포츠의 질문에 알빈 반 브링크는 이루 형언 할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경찰서입니다. 와서 데려 가라더군요.”

“누가 일이라도 저질렀답니까?”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고 일단 가서 데려오세요.”

용이라도 승천 할 기세인 미간의 주름을 보며 스티비 포츠는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누굴 데려오면 될까요?”

“김입니다.”

스티비 포츠는 순간 ‘또 요?’ 라는 말이 튀어나오려는 걸 억눌렀다.

김홍준을 처음 만났던 날이 떠올랐다. 클라렌스 스하프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리며 스티비 포츠는 헛기침을 하며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사위는 벌써 어둠에 잠겨 있었다. 오후에만 벌써 두 번째인 암스테르담 행에 스티비 포츠는 입맛을 다시며 주차된 차에 시동을 걸었다.

길고 긴 도로를 달려 경찰서에 도착했다. 스티비 포츠는 자동차에서 내려 경찰서 안으로 들어갔다.

접수대로 걸어간 스티비 포츠는 신원을 밝히고 김홍준을 찾았다.

접수원의 안내를 받아 건물 안쪽으로 이동한 스티비 포츠는 마치 집에 오기라도 한 것처럼 편안한 자세로 앉아 있는 김홍준을 발견했다.

껄렁한 자세로 다리를 떨며 앉아 있던 김홍준은 복도 끝에 서있는 스티비 포츠를 발견하곤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어색한 미소가 김홍준의 입가에 걸렸다. 스티비 포츠는 붉어진 얼굴로 김홍준에게 다가갔다.

“기회를 쓰레기통에 버리는군!”

호통에 자라목이 된 김홍준은 눈동자만을 움직여 스티비 포츠를 올려다봤다.

“내가 괜찮다고 해도 감독이 자넬 내보낼 걸세! 네덜란드에 오자마자 한 달도 안돼서 경찰을 두 번이나 만나다니! 자네가 무슨 제이슨 본이라도 되나?”

“홍준씨가 잘못한게 아니에요. 여기에는 다 사정이...”

옆에 함께 앉아 있던 이도미가 끼어들었다. 스티비 포츠는 이도미를 한차례 쓸어보곤 말했다.

“당신은 뭡니까?”

“아, 저는...”

이도미는 순간 고민했다.

자신을 뭐라고 소개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당신이 누가 되었든 뭔 사정이 있든. 다 끝난거요! 프로를 지망하는 선수가 경찰서에 간다는 게 누구 눈엔들 좋아 보이겠소! 김! 자네 짐 싸게! 다 끝났어!”

폭풍처럼 몰아치는 스티비 포츠의 목소리에 이도미는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말을 전부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대충 눈치로 내용을 알아챈 김홍준의 표정이 물에 녹은 찰흙처럼 흘러내렸다.

그때였다.

방에서 소년이 걸어 나왔다.

덩치 큰 남자의 뒤를 따라 나오던 소년의 눈에 김홍준이 띄었다.

소년은 뭔가 북받치는 표정으로 김홍준에게 달려갔다.

“bro(형제여!)!”

김홍준은 얼떨떨한 얼굴로 자신에게 안겨든 소년을 내려다봤다.

곁에 서있던 스티비 포츠가 갑자기 달려든 소년을 떨떠름한 눈으로 쳐다봤다.

“가지가지 하는구만.”

탐탁치 않은 눈으로 소년을 쳐다보던 스티비 포츠의 눈이 크게 뜨였다.

“어? 너는?”

“자네가 왔나?”

익숙한 목소리였다.

스티비 포츠는 고개를 들어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덩치 큰 남자, 클라렌스 스하프가 묘한 표정을 지으며 서있었다.

얼떨떨한 얼굴로 스티비 포츠는 클라렌스 스하프에게 물었다.

“요한 루이스 맞지?”

“아약스에 달리 경찰서에 올 놈이 누가 있겠나?”

클라렌스 스하프는 깊은 한숨을 담아 말했다. 원하는 대답을 들은 스티비 포츠는 멍한 시선으로 김홍준에게 엉겨 붙어 있는 소년, 요한 루이스를 쳐다봤다.

스티비 포츠는 요한 루이스와 그에게 안겨 넋 나간 표정을 짓고 있는 김홍준을 번갈아 쳐다본 후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통화 상대는 알빈 반 브링크였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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