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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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건
작품등록일 :
2014.07.20 23:57
최근연재일 :
2015.10.05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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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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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4.09.13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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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쪽

3장 어디에나 항구는 있다. (4)

DUMMY

경기장 이곳저곳을 가리키는 창 타오의 손가락을 따라 김홍준의 볼펜이 바쁘게 움직였다.

작은 수첩이 빼곡이 찼을 무렵 경기는 2군의 5:1 패배로 마무리 되었다.



김홍준이 처한 주변 여건은 변하지 않았다.

스티비 포츠는 여전히 김홍준에게 무관심 했고 동료들은 영어 한 마디 제대로 구사 할 줄 모르는 김홍준을 비웃기 일수였다.

세상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은 변할 수 있다.

김홍준은 창 타오의 도움을 받아 팀원들의 개성을 하나 둘 배워가기 시작했다.

중앙수비수인 창 타오는 평소 팀원들의 경기 중 움직임을 살피는데 집중해 왔고 그의 그런 경험이 김홍준에게 많은 도움이 되고 있었다.

김홍준은 빈틈없이 들어찬 수첩을 들여다보며 몇 번이고 창 타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창 타오는 너라도 내 입장이었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라 말하며 김홍준의 거듭된 인사에 손사래를 쳤다.

김홍준은 그 말에 어색한 웃음을 매달며 생각했다.

‘나는 안 그랬을 걸?’

하지만 굳이 그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2군의 5:1 패배가 있고 사흘이 지났을 무렵 김홍준을 바라보는 코치들의 시선이 바뀌었다.

구제불능에서 구제 아주 조금 가능 수준의 변화 였지만 김홍준은 그 작은 변화에도 만족했다.

미풍은 태풍의 전조다.

김홍준은 조금씩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아직도 여자는 질색이었고 친구를 사귈 마음도 들지 않았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까지 놓아 버릴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김홍준의 정신이 조금씩 제 정신을 찾아감에 따라 시간도 흘러 1군 대 2군 연습경기 선발전 당일이 되었다.

선수들 사이에 서서 김홍준은 스티비 포츠를 바라봤다. 그의 지시에 따라 선수들은 A팀과 B팀으로 나뉘어 배치되었다.

김홍준은 하나 둘 자기 팀을 찾아가는 선수들을 보며 창 타오와 같은 팀이 되게 해 달라 빌었다.

하느님도 부처님도 믿지 않아 누가 소원을 들어줄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마지막 기회인만큼 김홍준은 절실했다.

모든 선수가 호명되고 김홍준 포함 다섯 명의 선수가 남았다.

“멜빈 A팀. 요한 크루이프 B팀, 루드 굴리트 A팀, 셰도로프 B팀... 이거 참, 이름만 들으면 리그 우승을 하겠구만. 마지막으로 김 A팀.”

마지막으로 호명되고 김홍준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창 타오와 한 팀이 된 것이다.

앞줄에 선 창 타오가 고개를 살짝 돌려 미소를 보내왔다.

김홍준은 그 미소에 기쁘게 화답했다.



창 타오는 스티비 포츠가 김홍준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짐작하고 있었다.

아니 창 타오 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선수들이 수석코치가 김홍준을 좋아하지 않는단 사실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김홍준을 향한 선수들의 비웃음은 그런 스티비 포츠의 의중에 따른 결과물이었다.

창 타오는 골대 앞에 서서 바로 앞에 보이는 김홍준의 등을 쳐다봤다.

대부분의 수비수... 아니 모든 수비수는 생각한다. 자신의 눈앞에 서있는 수비형 미드필더의 등이 컸으면 좋겠다 그건 단순히 신체적인 건장함만을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존재감에 대한 이야기 였다.

창 타오 역시 다르지 않았다.

김홍준은 아마추어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그는 지금 이 경기장에 서있을 수도 없었다.

단 2주일만에 프로와 대등한 경기력을 보여 줄 수도 없다.

창 타오는 축구 선수로 프로에 발을 들이면서 망상과 작별한지 오래였다.

이 세계를 지배하는 건 오로지 실력뿐이다.

스폰서를 등에 업고 명문팀에 들어가도 실력이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중국 협회의 지원을 받아 AZ알크마르에서 훈련을 받았던 창 타오 본인이 그랬다.

창 타오는 김홍준을 바라봤다.

그에게 자명한 사실을 넘어 설 수 있는 재능이 있을까?

그런 의문에 창 타오는 단호하게 ‘예.’ 라고 답 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차가운 겨울에도 새싹이 피어날 가능성이 있는 것처럼 창 타오는 어느 순간 피어나는 불가능한 가능성에 대해 예전처럼 단호하게 부정 할 수 없었다.

창 타오는 첫 날 목격한 김홍준의 마법 같은 기술을 떠올렸다.

과정은 알 수 없었지만 그것이 만들어낸 결과는 지금도 선명하게 떠올랐다.

자신에게 없는 것을 목격 했을 때, 사람들은 두 종류의 선택을 한다.

그것을 꺾어 버리거나 혹은 그것에 매혹되거나.

주심이 경기장 중앙에 섰다.

공이 떨어지고 휘슬이 울렸다.

경기가 시작되었다.



스티비 포츠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경기 양상은 포츠 자신의 예측을 넘어서 있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 그토록 둔탁했던 역습 전개가 굉장히 유연하게 흘러갔다.

역습은 유연했지만 수비는 일전의 경기보다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포츠는 A팀 진영을 보며 장탄식을 내뱉었다. 수비진이 속수무책으로 유린당하고 있었다.

창 타오는 상대의 빠른 역습에 끊임없이 노출되고 있었고 원치 않는 실수도 계속해서 범하고 있었다.

후반전 65분을 지나 벌써 4실점째 였다. 붕괴된 수비진 앞에서 김홍준은 상대가 전진해 올 때마다 우왕좌왕 헤매기만 했다.

제대로 된 압박이나 위치선정을 기대 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김홍준은 수비형 미드필더임에도 A팀 수비에 전혀 공헌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 A팀의 수비는 현재 완전히 망조가 들어 있었다. 스티비 포츠는 그런 A팀 진영을 보며 실실 웃음을 흘렸다.

웃음이 나오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스티비 포츠가 웃음을 흘리고 있을 때, 상대의 드리블 돌파를 창 타오가 막아냈다. 공을 탈취한 창 타오는 망설임 없이 김홍준에게 패스 했다. 공이 김홍준을 향해 미끄러져 갔다.

B팀의 선수 둘이 김홍준을 압박하기 위해 달려들었다. 스티비 포츠는 묘한 웃음을 흘리며 김홍준을 바라봤다. 공이 김홍준의 발치에 도달하고 동시에 B팀 선수 둘이 가능한 패스 경로를 모두 봉쇄하며 압박했다.

보통이라면 답안은 다시 수비진에게 공을 돌리는 리턴 패스 였다.

하지만 그 순간 스티비 포츠는 다른 답안을 떠올렸다. 2주일 전에 봤던 동영상이 김홍준의 모습과 오버랩 되었다.

김홍준의 발에 공이 닿았다 싶은 순간.

공이 김홍준의 발을 떠나 왼쪽 측면의 멜빈에게로 날아가고 있었다.

패스가 가능해?

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각도에서 뿜어져 나온 원터치 패스였다.

상대 미드필더 라인까지 올라가 있던 멜빈이 공을 잡았다.

전진 압박 상태에서 헐거워져 있던 B팀 진영을 개인기로 돌파한 멜빈이 패널티 에리어 근처에서 땅볼 크로스를 올렸다.

슬라이딩해 들어가는 공격수의 발바닥에 공이 닿았다. 공이 골키퍼를 지나쳐 들어갔다.

골망이 흔들리고 환호성이 터졌다.

스티비 포츠는 스코어 보드를 쳐다봤다.

현재 스코어는 4:3 스티비 포츠가 스톰포겔스 텔스타의 수석코치로 부임하고 처음 맞는 난타전이었다.


작가의말

 오류 및 오타 지적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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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5장 장유유서는 없다. (3) +10 14.09.22 9,807 248 10쪽
17 5장 장유유서는 없다. (2) +6 14.09.20 8,983 208 8쪽
16 5장 장유유서는 없다. (1) +6 14.09.19 11,622 290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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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4장 내 축구를 소개합니다. (2) +5 14.09.16 10,169 260 9쪽
12 4장 내 축구를 소개합니다. (1) +7 14.09.15 10,211 256 9쪽
11 3장 어디에나 항구는 있다. (5) +9 14.09.14 9,146 232 7쪽
» 3장 어디에나 항구는 있다. (4) +5 14.09.13 9,275 241 7쪽
9 3장 어디에나 항구는 있다. (3) +4 14.09.12 9,871 223 9쪽
8 3장 어디에나 항구는 있다. (2) +5 14.09.11 10,271 250 8쪽
7 3장 어디에나 항구는 있다. (1) +8 14.09.10 9,785 228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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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장 +11 14.09.06 13,816 297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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