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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건
작품등록일 :
2014.07.20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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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05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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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9.08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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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lul (3)

DUMMY

순간 스하프는 생각했다.

‘호구가 오셨군.’

“여! 포츠!”

스하프는 밝게 웃으며 40년지기 부랄 친구를 불렀다.



어느 나라 리그나 약소팀의 시즌 준비는 임대에서 시작되게 마련이었다.

큰 자금을 동원 할 수도 없고 선수에게 막대한 액수의 연봉을 약속 할 수도 없는 입장에서 오직 빅클럽의 은총에 기대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기 때문이었다.

스티비 포츠는 그런 약소 클럽의 비애를 안고 부랄 친구가 새로운 2군 감독으로 부임한 빅클럽을 찾았다.

모든 클럽이 시즌 준비가 한창인 6월.

빅클럽에서 출전 기회를 보장 받지 못하는 유망주들을 인맥에 기대어 선점하기 위해서 였다.

“스하프! 오랜만이야. 중국 리그에서 활동 할 때 보고 3년만인가?”

스티비 포츠는 최대한 친근하게 인사를 건네며 클라렌스 스하프에게 다가갔다.

인사를 하며 스하프의 옆에 서있는 왜소한 체격의 아시아인이 눈에 띄었지만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그렇지. 아마 그 정도 되었을 거야. 그 동안 별 일 없었지? 딱 보니 건강해 보이는데.”

포츠는 웃으며 대답했다.

“뭐 자네 말대로야. 변함없지.”

한차례 안부 인사를 주고받은 후 잠시간 공백이 생겼다.

아무리 40년 지기 부랄 친구라도 떨어져 있는 기간이 년 단위가 되면 대화거리가 떨어지는 법이었다.

어색한 침묵 속에서 스하프와 포츠는 서로 다른 속셈을 품고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그런 눈치 싸움 사이에는 언제나 눈치 없는 사람이 끼어들어 판을 흐리게 마련이었다.

“암 베리 베리 베리 베리 헬씨! 트라이얼 트라이얼! 암 오케이 암 오케이!”

김홍준은 절박한 심정을 담아 스하프에게 강렬한 원주민 언어로 자신의 존재를 주장했다.

포츠는 갑작스레 튀어나온 목소리에 흠칫 놀라며 옆을 돌아봤다.

아까 전 눈에 띄었던 아시아인이 팔을 휘휘 휘두르며 신체적 강건함을 표현하고 있었다.

김홍준 입장에서는 자신의 몸에 이상이 없음을 주장하기 위한 방법이었겠지만 포츠와 스하프의 눈에는 뉴질랜드 마오리족의 춤을 연상케 하는 위협적인 모습이었다.

포츠는 그 모습을 보며 불현 듯 클라렌스 스하프의 좋지 못한 버릇을 떠올렸다.

“자네 또 명함 돌린 건가?”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포츠의 모습에 움찔하며 클라렌스 스하프는 헛기침을 내뱉었다.

“전에는 카타르 거부의 아들이었지? 가장 최근은 중국 산골 마을 출신의 순박한 청년이었고?”

클라렌스 스하프는 슬쩍 김홍준의 눈치를 살피며 포츠에게 바짝 다가가 말했다.

“조용조용 말하게. 들리면 어쩌려구 그러나?”

“뭘 조용히 말해. 어차피 영어도 못 하는 친구 같은데. 우리나라 말이라고 알아들을 수 있겠나? 그냥 자네가 지레 찔리니 이러는 거지.”

“그래도 밤말은 쥐가 듣고 낮말은 새가 듣는다는 말이 있지 않나.”

“그거 어느 나라 말인가?”

“한국 속담 일세. 저 친구 고향이지.”

“아주 그냥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꿈을 파는구만. 자네가 무슨 도라에몽인가?”

클라렌스 스하프는 순간 친구의 비꼬는 말투에 욱했지만 목적을 떠올리며 참았다.

미소를 입에 걸며 스하프는 말했다.

“이 아시아 친구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자네 왜 찾아왔나?”

포츠는 순간 아차 하는 마음으로 스하프를 쳐다봤다. 능글능글한 미소를 입에 걸고 있는 스하프의 얼굴이 포츠의 눈에 포착되었다.

스티비 포츠는 작게 헛기침을 하며 사근사근한 어투로 말했다.

“미안하네. 내가 너무 자네 신상을 캐고 들었구만.”

“아니야. 부랄 친구끼리 이정도야 당연한 거지. 그래, 자네도 바빠 보이고 하니 서둘러 본론으로 들어가지. 선수 임대건 때문인가?”

“역시 부랄 친구야! 어떻게 내 마음을 그리도 꿰뚫어 보나? 맞네. 자네 팀의 선수 좀 빌려주십사 하고 이렇게 찾아 온 거지.”

손만 비빈다면 전형적인 내시의 모습에 다름없었다. 포츠는 굴욕적인 감정을 마음 한켠으로 밀어두며 계속해서 말했다.

“자네 클럽 유소년 아카데미 출신 중에 요한 루이스 라고 있지 않나?”

“있지. 왼쪽에서 뛰는 녀석.”

“최근 2군으로 콜업 됐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우리 클럽에 1시즌만 맡겨주면 안되겠나?”

“자네 클럽에?”

클라렌스 스하프는 미간을 찌푸렸다.

포츠가 언급한 요한 루이스는 U-18 국가대표로 선발 될 만큼 장래성이 있는 선수였다.

클럽에서도 육성에 상당한 공을 들이는 유망주로 2부 리그 그것도 비교적 훈련 환경이 열악한 팀에 임대 보낼 만한 선수는 아니었다.

보통이라면 망설일 필요도 없이 단칼에 거절해야 할 권유였다.

하지만 스하프에게는 단칼에 친구의 권유를 잘라내지 못하는 이유가 있었다.

스하프는 힐끗 김홍준을 쳐다봤다. 김홍준은 그 순간 대한민국 국민체조를 마오리족 전사의 춤 수준으로 격상시키고 있었다.

얼른 시선을 돌리며 스하프는 권유를 잘라내지 못한 또 다른 이유를 떠올렸다.

그건 요한 루이스에게 있었다.

축구선수로서 요한 루이스는 분명 뛰어낸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육체적인 부분은 아직 어린 선수이기에 미숙했지만 볼을 다루는 기술은 동 나이 대 아이들을 아득히 넘어서는 수준이었다.

문제가 있다면

“성격이 개차반 인 건 잘 알고 있네.”

스티브 포츠는 스하프의 속내를 정확히 짚어냈다. 정확히 절반의 속내만을.

클라렌스 스하프는 포츠의 다 알고 있다는 말투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모르는 사람이 있겠나. 이쪽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그 녀석 성격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네. 다만 그 성격이라는 게 상상초월이라 문제지. 국대에서도 국제대회를 앞두고 발탁을 보류 할 생각이라고 하더군.”

“그 정도인가?”

“왜? 좀 망설여지나?”

포츠는 턱을 만지며 새로운 시즌을 맞이할 자신의 팀을 떠올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왼쪽에 창조성을 불어 넣어줄 선수가 필요했다.

설사 그게 개라도 대화만 통한다면 상관이 없다 싶을 정도로 포츠는 절박했다.

그 절박함이 포츠의 결심을 부추겼다.

“아니, 부탁하네. 자네도 올해 첫 부임이니 힘들겠지만 클럽 운영진을 잘 설득해 줬으면 좋겠네. 못해도 들개에서 애완견 수준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네.”

자뭇 비장한 눈빛의 포츠를 보며 스하프는 입술이 푸들푸들 떨리는 걸 참았다.

잘못하면 웃음이 나올 것 같아 얼른 고개를 돌린 스하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자네가 그렇게까지 말하니. 한 번 노력해보겠네.”

“고마워. 올 시즌 좋은 성적으로 마무리 하면 내가 한 턱 거하게 쏘지.”

포츠의 화통한 제의에 클라렌스 스하프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악수를 했다.

흔들리는 손이 점차 리드미컬 해질 무렵 스하프는 슬쩍 이제는 완전한 마오리족 전사가 되어버린 김홍준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말이야. 임대에 조건이 하나 있네.”

“뭔가? 임대료 부담 말인가? 연봉은 우리가 전액 부담하겠네. 임대 이적료도 6000만원까지는 지불 할 용의가 있고.”

스하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건 당연한 거고... 이 조건은 내 개인적인 의사네. 혹시 말이네. 괜찮다면 저기 저 친구...”

포츠는 밝은 표정에서 순식간에 질린 표정으로 전환하며 말했다.

“또?”

“이번에는 좀 다를 거야.”

“카타르 부자의 아들이나 중국 청년 데려올 때도 그 얘기를 하지 않았나.”

“그야.. 뭐.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다를거네. 그리고 뭐 데려가서 테스트 해본다고 자네가 손해나는 일도 아니지 않나. 어차피 체류비용은 저 사람이 다 부담 할테니.”

“그때, 그 둘 때문에 클럽에서 내가 얼마나 욕 먹은지 아나?”

“그 정도로 엉망이었나?”

“엉망이고 나발이고 한 명은 돈 지랄로 물 다 흐리고 한 명은 어디서 배운 건지 아주 쿵푸축구를 하더군. 그 때문에 그 해 우리 팀 주전 선수 둘이 연습 시합에 무릎 아작 나서 시즌을 통째로 날렸지. 안돼! 이번에는 절대 안돼!”

단호한 포츠의 대답에 순간 스하프는 얼굴의 표정을 싹 지우며 말했다.

“요한 루이스를 원하지 않나?”

“윽!”

메피스토를 만난 파우스트가 된 것처럼 포츠는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분함에 입술을 부들부들 떨던 스티비 포츠는 결국 절대갑의 횡포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저 친구... 이름이 뭔가?”

“잘 생각했네. 이름은... 그냥 저 친구에게 물어보게.”

포츠는 반쯤 절망에 빠져 고개를 숙였다.

그에 대비되는 모습으로 스하프는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2군에서 주축이 되어줄 선수를 넘기는 것 치고는 지나치게 밝은 모습이었다.

‘그런데 자네 그거 아나? 내 전임 2군 감독이 어쩌다 팀을 떠나게 되었는지?’

스하프는 머릿속으로 병상에 누워있는 전임 2군 감독을 떠올렸다.

그는 침상에 누워 요한 루이스의 이름을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었다.

“그 녀석은 악마야. 악마의 자식이라구.”

스하프는 맥없이 김홍준을 향해 걸어가는 스티비 포츠를 지켜봤다.

미친놈과 악마의 자식.

그 둘을 품게 된 자의 마지막 평온을 기억에 담아두기 위해서였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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