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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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건
작품등록일 :
2014.07.20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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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05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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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9.09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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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lul (4)

DUMMY

미친놈과 악마의 자식.

그 둘을 품게 된 자의 마지막 평온을 기억에 담아두기 위해서였다.



김홍준은 정처 없이 북으로 북으로 향했다.

달리는 차 안에서 생전 처음 보는 대머리 외국인의 뒤통수를 쳐다보며 김홍준은 침을 삼켰다.

말이 안 통해서 정확한 사정은 알 수 없었지만 스하프와 이 남자의 말 속에 ‘따라와.’ ‘테스트’ 라는 말만을 알아들어 무작정 따라오게 된 것이었다.

김홍준은 떨리는 내심을 감추며 뒷자석에서 힐끔힘끔 대머리 외국인의 기색을 살폈다.

혹 인신매매 같은 범죄의 낌새가 느껴진다면 얼른 차에서 뛰어 내리기 위해서였다.

다행히 북서로 향하던 차는 1시간가량을 달린 끝에 한 경기장 앞에 도착했다.

김홍준은 정신없이 차창 밖 풍경을 둘러봤다. 주차장에서 김홍준은 작은 건물들과 그 너머로 드러난 축구 경기장을 쳐다봤다.

다행히 인신매매는 아닌 듯 했다.

괜한 노파심에 쪼그라들었던 심장을 펴며 김홍준은 스티비 포츠를 따라 차에서 내렸다.

순간 짜디짠 바다의 향기가 느껴졌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진한 바다의 향기에 김홍준은 스티비 포츠를 돌아보며 물었다.

“여기, 어디?”

아주 짧은 영어 였지만 다행히 의미는 통했다.

스티비 포츠는 탐탁치 않은 시선으로 김홍준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에이모이덴. 스마트폰으로 검색해봐.”

단답이었다.

김홍준은 그럼에도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앞서 걸어가는 스티비 포츠의 뒤를 따르며 김홍준은 스마트폰으로 에이모이덴을 검색했다.

“아! 항구도시구나. 어쩐지 짠내가 난다했지.”

김홍준은 혼잣말을 하며 새삼스런 눈길로 주변을 살폈다.

이국의 항구도시에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김홍준의 감성을 자극했다.

사랑에 배신당하고 우정에 배신당해 더 이상 뭔가에 감동 할 감성은 메말랐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닌 듯 했다.

김홍준은 기분 좋은 웃음을 매달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여! 스티비!”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한 중년여성이 큰 목소리로 스티비의 이름을 불렀다.

화통한 목소리만큼이나 당당한 체구의 여성이었다. 안경을 추켜올리며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프레야 가르시아를 보며 스티비 포츠는 어깨를 움찔 떨었다.

불안한 표정으로 스티비 포츠는 프레야 가르시아를 보며 인사했다.

“어.. 가르시아. 오랜만이네? 카타르에 갔던 거 아니었어?”

가늘게 떨리는 포츠의 목소리에 아랑곳 않고 가르시아는 호쾌한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영입 할 예정인 선수와 말이 잘 통해서 일이 빨리 마무리 되었거든.”

“그 말은..? 계약에 성공했단 말이야? 어떻게?”

“연봉은 대폭 깎고 뭐... 어떻게 구워삶았지.”

“이야. 이거 이번 시즌은 기대 할 만 하겠는데? 프랑크도 이제 좀 더 안심하고 공격적으로 플레이 할 수 있겠어. 역시 가르시아야.”

“그렇게 칭찬해도 줄거 없으니 적당히 하라구!”

가르시아는 그렇게 말하며 포츠의 등을 소리나게 때렸다. 그러며 그제야 눈치를 챈건지 포츠의 등 뒤에 서있는 김홍준을 보며 말했다.

“그런데 저 친구는 누구야? 관광객이야?”

화기애애하던 분위기가 순간 훅 가라앉았다. 포츠는 불안하게 떨리는 눈으로 가르시아를 쳐다봤다. 벌써 5년째 구단의 단장으로 부임해 일해 온 가르시아는 그간 특유의 수완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영입을 다수 이뤄냈다.

처음에는 여자라고 무시했던 구단내 인사들도 이제는 가르시아 말이라면 껌벅 죽을 정도였다.

평소 화통한 성격으로 어지간한 일에도 표정을 찌푸리며 이야기 하는 법이 없었다. 그런 가르시아가 유일하게 싫어하는 일이 있었다.

그건 3년전 구단의 주전 선수 둘을 날려 먹은 중국 선수와 4년전 구단을 내가 인수하겠네 말겠네 하며 구단 물만 잔뜩 흐려놓은 카타르 꼬맹이였다.

그 일 이후로 가르시아는 스티비 포츠가 선수의 선자만 언급해도 경기를 일으켰다.

몇 년간 수석코치로 일하며 코치로서 역량을 인정받았음에도 영입에 있어 스티비 포츠의 발언권이 약한 이유였다.

“아니, 뭐.. 관광객이라면 관광객이랄까?”

“뭐야? 그 어중간한 대답은...? 설마? 또?”

가르시아는 내내 호선을 그리고 있던 입꼬리를 내리며 날카로운 눈빛으로 포츠를 노려봤다.

“그게 말이야. 크흠. 그렇게 나쁘기만 한 이야기는 아니야.”

“들을게 뭐가 있어? 이번엔 안돼! 절대 안돼! 3년전에 3부로 강등 당할 뻔 일 잊었어? 잘못하면 우리 전부 일자리 일을 뻔했다구! 거기다 4년전에는 카타르 꼬맹이 때문에 구단주가 클럽을 파네 마네 하면서 그 시즌에 제대로 영입을 못해서 성적이 바닥을 쳤잖아!”

“그야 그런데... 그래도 쟤는 좀 정상인처럼 보이지 않아? 멀쩡하게 생겼잖아.”

“잘생기기는 카타르 애가 더 잘생겼었어!”

“인종이 다르잖아.”

“그럼 중국인은?”

“쟤는 한국인이래.”

“말 같잖은 소리 좀 그만해!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예상대로 경기를 일으키는 가르시아를 보며 스티비 포츠는 마지막 카드를 꺼내들었다.

“쟤를 받으면 요한 루이스가 우리 팀으로 올거야.”

“뭐?”

가르시아는 포츠의 말에 눈을 크게 떴다.

“그 요한 루이스?”

“그래, 신임 감독이 그렇게 원하던 제대로 된 왼쪽 날개.”

가르시아는 미간을 찡그리며 김홍준을 쳐다봤다. 김홍준은 가르시아의 시선에 호감을 살 요량인지 함박웃음을 지어보였다.

그 웃음이 어째선지 가르시아에게는 굉장히 불길하게 다가왔다.

그럼에도 요한 루이스 라는 카드 때문에 가르시아는 망설이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아직 이적시장은 많이 남았어. 요한 루이스가 아니라도 영입 할 선수는 있을 거야.”

스티비 포츠는 고개를 흔들었다.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요한 루이스 정도의 재능은 없을 거야. 어중간한 선수를 데려온다면 지난 시즌의 반복이겠지.”

진지하게 대답하는 포츠의 모습에 가르시아는 미간에 주름을 더했다.

가르시아의 머릿속으로 유럽 내 영입 가능한 왼쪽 자원들의 데이터가 스치고 지나갔다.

“하아.. 스하프 그 인간은 우리 클럽과 웬수를 졌나? 왜 매번 이래?”

가르시아의 자포자기한 목소리에 포츠는 이를 갈며 말했다.

“우리 클럽이 아니라. 내게 원한이 있는 거야.”

그런 포츠의 말에 가르시아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요한 루이스 건은 내게 넘겨줘. 받는 조건에 저 한국인이 낀다며 스하프와 개인적으로 더 조율해 볼 여지가 있겠지. 연봉 부담을 줄이든 임대료를 줄이든 어떻게든 해볼게. 그래야 조금이라 덜 화가 날 것 같으니까.”

결국 승낙한 가르시아의 모습에 포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얼른 시선을 돌려 김홍준을 손짓으로 불렀다. 김홍준은 그 손짓에 쫄래쫄래 포츠의 곁으로 달려갔다.

“이쪽은 단장, 인사해.”

김홍준은 포츠의 지시에 고분고분 따랐다.

“안녕, 나는 김홍준이야. 만나서 반가워.”

영어 수업에 나올법한 전형적인 첫인사를 구사하고 김홍준은 또 함박웃음을 지어보였다.

가르시아는 미간을 찌푸리며 김홍준을 쳐다봤다.

“얼간이 같은 인사네.”

‘lul? 륄?’

김홍준은 멍청한 표정으로 가르시아를 쳐다봤다. 공항에서 만났던 경찰이 내뱉었던 단어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좋은 말인가?’

호기심이 일었다.

김홍준은 순간 입을 열어 lul의 의미를 물으려 했지만 가르시아는 인사를 한 번 하고는 곧장 자리를 떴다.

멀어져 가는 가르시아를 바라보고 있을 때, 포츠가 앞서 걸으며 김홍준을 불렀다.

김홍준은 서둘러 포츠의 뒤를 따랐다.

‘륄, 륄! 뤼일! 만나는 사람마다 하는 걸 보면 반갑습니다. 좋은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건승하세요. 같은 의미 일까? 그 경찰도 사납게 취조하기는 했지만 의외로 좋은 사람이었군.’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김홍준은 포츠의 뒤를 따라 건물의 뒷문을 통해 밖으로 나왔다.

숲으로 둘러싸인 주변 풍경을 둘러보며 길을 걷고 있을 때, 맞은편에서 서른 후반쯤으로 보이는 흑인 남성이 걸어오는 게 보였다.

“감독님!”

딱 봐도 나이는 어려 보였지만 포츠는 싹싹하게 먼저 다가가 인사를 했다.

“암스테르담에 가셨던 거 아닙니까? 생각보다 일찍 돌아오셨군요?”

감독의 말에 포츠는 어색한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생각보다 일이 좋게 좋게 끝나서요. 잘 하면 원하시던 영입도 가능 할 것 같습니다.”

“정말 입니까? 요한 루이스를요? 어려울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군요.”

감독인 알빈 반 브링크는 놀란 표정으로 포츠를 바라봤다.

“그런데 거기에 조건이 하나...”

말을 흐리며 알빈 반 브링크에게 다가간 포츠는 곁눈질로 김홍준을 바라보며 저간의 사정을 설명했다.

그때마다 갖가지 표정 변화를 보이던 알빈 반 브링크는 이내 눈을 돌려 김홍준을 쳐다봤다.

한동안 김홍준의 몸을 알빈 반 브링크가 스캔하고 있을 무렵 포츠는 스마트폰을 꺼내 동영상 하나를 보여줬다.

그 동영상의 제목은 잠실 베르캄프였다.

몇 번인가 재생해 본 후 알빈 반 브링크는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포츠는 안심한 표정으로 서둘러 김홍준을 불렀다. 포츠의 손짓에 이끌려 다가온 김홍준은 큰 키의 흑인을 올려다봤다.

포츠가 옆에서 짧게 알빈 반 브링크에 대해 소개 했다.

“이 쪽은 우리팀의 감독이야. 그래, 감독! 감독! 감독님이 허락하셔서 일단 2주일 정도 지켜보기로.. 뭐? 그래, 기간! 2주일! 알아들었지? 그래, 2주일이야. 2주일 테스트 해보고 괜찮다 싶으면 테스트 기간을 늘릴 생각이야. 너 하기에 달린거지. 알겠어?”

포츠의 장황한 설명을 들은 후 김홍준은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빈 반 브링크는 그런 김홍준을 보며 예의상 손을 내밀었다.

김홍준은 급히 허리를 굽혀 그 손을 마주잡았다. 그런 순간 왜인지 김홍준의 머릿속에 좋은 인상을 남겨야 겠다는 강렬한 의지가 떠올랐다.

의지가 생기자 연달아 공항 경찰과 아까 전 덩치 좋은 여성이 말했던 단어 하나가 떠올랐다.

처음 보는 상대에게 하는 말!

김홍준은 악수를 하며 흑인 감독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봤다.

의기충천한 김홍준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알빈 반 브링크가 그 눈빛에 아주 아주 미비한 호감을 느낄 때, 김홍준은 자신이 아는 유일한 네덜란드어 단어 하나를 내뱉었다.

“얼간이! 얼간이! 얼간이! 얼간이!”

알빈 반 브링크의 표정이 굳었다.

더불어 포츠의 표정도 굳었다.

오직 김홍준만이 웃고 있었다.

네덜란드 에이모이덴을 연고로 한 스톰포겔스 텔스타의 홈구장 한켠에서 김홍준의 첫 해외 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작가의말

 스톰포겔스 텔스타는 네덜란드 쥬필러 리그 (2부 리그) 소속 클럽 입니다.

 사실 쥬필러 리그는 논 EU 국적 선수 이적이 불가능 합니다.

 그러니 현실에서는 중국인이나 카타르인이나 모두 텔스타에서 뛸 수 없는 거죠.

 주인공인 김홍준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지만 제 글인 ‘바퀴벌레’에서는 쥬필러 리그에서 논 EU 선수가 뛰는게 가능하다는 설정 입니다. (세리아의 용병 개념으로 이해 하시면 될 듯 합니다.)

 한마디로 일종의 평행세계죠.

 대부분 우리가 사는 세상과 유사한 모습이지만 다른 부분들도 눈에 띌 겁니다.

 앞으로 글을 진행해 감에 있어 이 부분을 언급해 드려야 할 듯 해 작가의 말에 올립니다.



 오류 및 오타 지적 환영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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