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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건
작품등록일 :
2014.07.20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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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9.25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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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8쪽

5장 장유유서는 없다. (6)

DUMMY

스티비 포츠는 요한 루이스와 그에게 안겨 넋 나간 표정을 짓고 있는 김홍준을 번갈아 쳐다본 후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통화 상대는 알빈 반 브링크였다.



김홍준은 눈앞에서 웃고 있는 알빈 반 브링크를 바라봤다.

지난 1주간 알빈 반 브링크를 지켜보며 김홍준은 단 한 번도 그가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언제나 어딘가 화가 나 보였고 어떨 때는 우울해 보였다.

조울증이라면 가끔 조증이 찾아와 웃기라도 할텐데 그에게 그런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지난 1주일간 단 한 번도 웃지 않았다. 그런 그가 오늘은 무슨 재고품 대방출 세일이라도 하는지 계속해서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그러지 않던 사람이 저러니 인간이 왠지 가벼워 보이고 못 미덥게 느껴질 정도였다.

김홍준의 그런 감상에 상관없이 알빈 반 브링크는 환하게 웃으며 팀내 선수들에게 옆에 서있는 작은 체구의 네덜란드인 선수를 소개했다.

“요한 루이스다. 아는 사람도 있을테고 모르는 사람도 있을테지. 모두 시즌이 시작되기 전까지 이 녀석에 대해 잘 알아두기 바란다.”

눈에 보이는 편애를 목격하면서도 선수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 모두 요한 루이스를 알고 있었고 이 작은 소년의 재능을 알고 있었다.

지금 선수들의 뇌리에 가득 찬 고민은 감독의 편애에 대한 질투가 아닌 필드 위에서 요한 루이스를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것이었다.

김홍준은 선수들 사이에 서서 요한 루이스를 쳐다봤다. 아까부터 자신을 향해 묘한 눈짓을 보내는게 영 마뜩찮았다.

옆에서는 미하일 로쉐어블이 김홍준을 사이에 두고 시드 마스렉에게 일방적으로 농을 걸고 있었다.

요한 루이스의 미묘하게 끈적끈적한 시선과 미하일 로쉐어블의 알아듣지 못할 농담을 들으며 김홍준은 고개를 숙였다.

3주간 스톰포겔스 텔스타에 있었지만 김홍준은 지금 이 순간이 지난 3주간보다 더 피곤하게 느껴졌다.

“소개는 이상이다.”

알빈 반 브링크의 소개가 끝났다.

선수들은 뒤이은 스티비 포츠의 지시를 따라 훈련장으로 흩어졌다.

드디어 해방되었다 여기며 김홍준은 훈련장으로 뛰어나갔다. 그 뒤를 시드 마스렉, 미하일 로쉐어블, 요한 루이스가 쫓았다.

김홍준은 질색한 표정으로 그들을 뿌리치기 위해 런닝을 가장해 훈련장을 돌았다.

그 뒤를 어미 오리를 따르는 새끼 오리들처럼 다른 셋이 뒤따랐다.

도대체가 알 수 없는 현상이었다.

김홍준은 이 셋이 왜 이토록 자신을 따라다니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하나하나 목을 졸라 쫓아내고 싶었지만 상황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김홍준은 지난밤을 떠올렸다.

자르네 마네 고함을 질러대던 스티비 포츠는 요한 루이스의 존재를 눈치 채자 마자 태도를 바꿨다.

그 변화가 권력자를 눈앞에 둔 환관처럼 극단적이어서 얼이 빠질 정도였다.

직감적으로 김홍준은 요한 루이스가 자신의 명줄이 되었음을 눈치 챌 수 있었다.

달리다 지친 김홍준은 멈춰 서서 호흡을 골랐다. 저 괴물 같은 놈들은 숨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김홍준은 기진맥진해 훈련장 중앙으로 걸어갔다. 공을 받고 패스 훈련을 하려 하자 셋이 끼어들었다.

절망한 표정으로 김홍준은 패스를 돌렸다. 패스가 빠르게 이어졌다.

무슨 마법진이라도 그리려는 건지 네 명의 터치를 따라 공이 고속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시드 마스렉과 미하일 로쉐어블은 가속도가 붙은 공을 보며 눈을 빛냈다.

그들은 넋 나간 표정인 김홍준을 힐끗 힐끗 쳐다보며 전력을 다했다.

패스는 더더욱 빠르게 전개 되어 갔다.

그들의 패스를 여유롭게 받아 연결하며 김홍준은 한숨을 내쉬었다.

‘동양인이라고 괴롭히는 건가? 이게 설마 인종 차별은 아니겠지?’

그 순간에도 패스는 점입가경, 눈으로 쫓기도 힘든 속도로 이어져 갔다.

정도를 넘어선 순간 탈락자가 나왔다.

훈련에 처음 합류한 요한 루이스였다.

시드 마스렉을 빼고 미하일 로쉐어블이 왁자하게 웃으며 김홍준에게 다가가 뒤통수를 때렸다.

요한 루이스는 김홍준에게 다가가 주먹으로 가슴을 두드렸다.

유일하게 가만히 서있는 시드 마스렉을 보며 김홍준은 찡그린 표정으로 고통을 감내했다.

‘장유유서도 모르는 상놈의 자식들... 그래, 실력만 있으면 된다 이거지? 언제까지 이럴 수 있나 두고 보자.’

환하게 웃는 미하일 로쉐어블과 요한 루이스 사이에서 김홍준은 그렇게 전의를 불태웠다.



알빈 반 브링크는 스티비 포츠에게 훈련을 일임하고 구단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좁은 복도를 지나 개인 사무실 문을 열었다. 소파에 두 명의 남자가 앉아 있었다.

커피를 들이키는 둘을 지나쳐 알빈 반 브링크는 책상으로 가 앉았다.

일견 무례해 보일 수 있는 모습이었지만 소파에 앉아 있는 누구도 그 행동을 신경 쓰지 않았다.

“요한은 어떻습니까?”

“몬스터죠.”

멋들어지게 수염을 기른 남자, 만다스의 물음에 알빈 반 브링크는 그렇게 대답했다.

“최소한 쥬필러 리그에서는 그렇게 될 겁니다.”

자신감 넘치는 발언이었다.

그 발언에 깨름칙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만다스는 커피를 들이켰다.

바로 앞에 앉아 있던 클라렌스 스하프가 말했다.

“성격 좀 잘 고쳐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성인이 된 순간 빅클럽이 아니라 교도소로 이적하게 될 테니까요.”

알빈 반 브링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요한을 어떻게 설득 한 겁니까? 가기 싫다고 그렇게 발광을 하던 녀석인데.”

만다스의 질문에 알빈 반 브링크는 헛기침을 하며 대답을 회피했다.

만다스의 시선이 클라렌스 스하프를 향했다. 하지만 요한 루이스의 마음을 바꾼 존재와 껄끄러운 관계를 맺고 있는 스하프로서도 말하기 힘든 사항이었다.

대답을 피하는 둘의 모습에 만다스는 굳이 더 캐묻지 않았다.

대신 다른 질문을 했다.

“페르난도 네베스 영입에 성공했다던데 사실 입니까?”

시선을 회피하고 있던 알빈 반 브링크는 만다스의 기습적인 질문에 눈꼬리를 치켜 올리며 말했다.

“어떻게 알았습니까?”

카보 베르데 국적의 수비수인 페르난도 네베스에 관한 사항은 단장인 프레야 가르시아가 매우 비밀리에 진행한 일이었다.

유럽 빅리그에서 전성기를 보낸 페르난도 네베스에 대한 관심은 컸고 그건 그가 카타르 리그에서 선수로서 황혼기를 보내고 있음에도 여전했다.

그 때문에 그가 자유계약으로 풀릴 거라는 소식을 들은 순간 스톰포겔스 텔스타 운영진은 매우 비밀스럽게 그에게 접근했었다.

이적이 확정된 지금까지도 언론사 어느 곳에도 기사가 나지 않은게 그 증거였다.

“에이전트로 먹고 살려면 이 정도 정보는 쉽게 쥘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살이가 쉽지가 않아요.”

알빈 반 브링크는 여유롭게 커피를 들이키는 만다스를 쳐다봤다.

확실히 만만치 않은 자였다.

“정말 페르난도 네베스를 영입 했습니까? 대단하군요. 내가 알기로 에레디비지에에서도 노리는 클럽이 있다고 들었는데.”

뒤늦은 클라렌스 스하프의 감탄을 들으며 알빈 반 브링크는 입맛을 다셨다.

입단식 때, 거하게 터뜨릴 생각이었던 계획이 만다스의 한마디에 무너졌다.

요한 루이스의 임대에 얽힌 비밀을 말하지 않은 것에 대한 보복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아약스 1군과의 친선경기에서 페르난도 네베스를 볼 수 있겠군요? 어떻게 베스트 일레븐은 정해 놓으셨습니까?”

클라렌스 스하프의 질문에 알빈 반 브링크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

훈련장이 보였다. 수많은 선수들이 구슬땀을 흘리며 훈련을 받고 있었다.

그들을 조용히 쳐다보며 알빈 반 브링크는 말했다.

“아직 정해진 건 없습니다.”

“시즌은 시작 되지도 않았으니까요. 정해지지 않았다니 더 기대가 되는군요.”

알빈 반 브링크는 스하프의 대답에 예의 이리 같은 미소를 입가에 매달며 말했다.

“예,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작가의말

 오류 및 오타 지적 환영합니다.

 

 회심의 개드립이 하나 들어가 있는데 눈치 채셨나 모르겠네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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