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약 수송 차량
슐츠는 자신의 2중대의 소대장들과 함께 작전 회의를 하고 있었다. 1소대장이 이마에 식은 땀을 흘리며 말했다.
“총류탄 불량이 많습니다. 그..그리고 탄약은 충분한지..”
슐츠가 말했다.
“아, 뭐 충분할걸세!”
소대장들끼리 눈치를 보다 2소대장이 물었다.
“중대장님 죄송하지만 마지막 확인은 언제..”
“내가 확실히 확인해봤네! 걱정 말게나!”
한편, 전차병들은 케이블로 견인해 온 새 마크 V 전차, 티거 3세의 바퀴에 기름칠을 하고 포신에 거대한 청소봉을 넣어서 깔끔하게 쓱싹쓱싹 내부 청소도 하고, 궤도 교체를 하고 있었다. 궤도 교체는 하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이나 언제나 오줌을 지리게 만드는 위험천만한 작업이었다. 한스가 외쳤다.
“천천히 들어올려! 급하게 하면 다친다!!”
무사히 궤도 교체 작업을 마치고, 전차병들이 한숨 돌리고 있는데, 한스는 슐츠의 2중대 병사들이 탄약보급소에 가서 탄약을 운반해 오는 것을 목격했다.
‘지금 남은 탄약이 어느 정도지..’
조만간 영국에서 다시 대규모 전차전력으로 공격해올 것이 분명했기에, 이전 전투보다는 탄약 소모량도 많을 것이 분명했다.
‘탄약을 수송할 장갑차가 필요하다..’
한스는 하르트만 소령을 찾아갔다. 하르트만 소령은 휴식하고 있다가 한스가 제출한 보고서를 보며 바쁜 척 했다.
전과 :
- 적 전차 8대 격파(Mk.V)
- 적 장갑차 2대 격파
- 적 보병 다수 사살
아군 장비 손실 : Mk.IV 전차 1대
아군 인원 손실 : 없음
한스 전차 중대의 아군 인원 소실이 없는 것을 보고 하르트만이 속으로 혀를 찼다.
‘이렇게 희생 정신이 없다니 원..약해 빠져 가지고..’
“파이퍼 중위, 무슨 일인가?”
“탄약을 수송할 장갑차가 필요합니다!”
한스는 하르트만의 눈치를 보았다.
‘설마 지원해주겠지?’
하지만 하르트만은 일부러 못 알아들은 척 했다.
“뭐? 뭐가 필요하다고?”
“전차들에게 탄약을 수송할 장갑차가 필요합니다!”
“전차 중대에 탄약 수송 차량이 왜 필요한가? 전차에 충분히 넣고 가면 되지 않나?”
한스는 애써 화를 억누르며 말을 이었다.
“앞으로는 대규모 전차전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탄약 수송 차량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전령이 쓸 수 있는 자전거나 오토바이 또한 필요합니다!”
“지난 번에 두 개 지원해주지 않았나? 요구가 너무 많군!”
하르트만은 보고서에서 눈을 떼지 않고 선심 쓰듯이 말을 이었다.
“조금만 기다리게. 내가 말 해보겠네.”
잠시 뒤, 한스의 전차 중대는 포탑을 제거한 르노 전차를 수송용으로 개조한 작은 장갑차 한 대와 자전거 한 대를 받았다. 그 르노 전차는 포탑 대신 상자형의 짐칸이 있었고 장갑도 아주 얇았다. 에밋과 거너가 불안한 표정으로 이 장갑차를 바라보았다.
‘포탄 파편이라도 맞으면 바로 폭발할 것 같은데..’
‘폭발하면 조종수는 뼛조각도 찾기 힘들겠군..’
한스가 외쳤다.
“에밋, 거너, 자네가 이 탄약 수송 차량을 맡게!”
헤이든, 에밋, 거너가 같이 운전하던 마크 IV 티거가 격파 당했고, 새로 얻은 마크 V의 운전수는 헤이든 하나로 족했다. 그래서 한스는 에밋과 거너가 탄약 수송 차량을 맡기기로 결정한 것 이었다. 에밋이 개조된 르노 전차의 상부 장갑을 건드려보고는 질겁을 했다.
‘이..이거 대충 만들었잖아! 그냥 껍데기만 씌운 건데?’
에밋과 거너의 얼굴이 시퍼렇게 질렸다. 한스가 말했다.
“조금만 기다리면 뷔싱 A5P나 에르하르트 E-V/4를 보급해준다고 하네! 그러니 조금만 참게나! “
하지만 그 말을 믿는 전차병들은 아무도 없었다. 한스가 애써 에밋과 거너를 설득했다.
“바퀴 달린 차량은 포탄 파편을 맞으면 타이어가 터져서 기동 불가가 되지만, 이 탄약 수송 차량은 궤도로 움직이니 뷔싱 A5P나 에르하르트 E-V/4보다 훨씬 좋네!”
에밋은 벌벌 떨며 앞으로 자신이 운전해야 할 탄약 운송 차량을 바라보며 울상을 지었다.
‘토미놈들은 롤스로이스 장갑차 타던데..’
한편 전차병들 또한 계속되는 전투에 사기가 많이 떨어지고 지쳐 있었다. 거의 매일마다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고, 정신적으로 극심한 피로가 쌓였으며 전차병들은 평소에 즐기던 취미조차 즐기지 않았고 전투가 없을 때는 무기력하게 누워 있었다. 포탄, 폭발, 수류탄, 포연, 기관총 등 격렬하게 아드레날린과 도파민이 분출되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전투 외에는 그 어느 것도 뇌에 자극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한스조차도 2주 전부터는 기계공학 책조차 무미건조하게 느껴졌다.
‘나중에 집에 돌아가서 쉬면 나아지겠지..’
잠시 뒤, 한스는 자신의 중대원들에게 이야기했다.
“전차 근처에서 포탄이 폭발하면 전차 내부 파편을 맞아서 사망할 확률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전투 도중 헬멧을 벗는 것을 금지한다!”
몇 전차병이 속으로 투덜거렸다.
‘젠장..더워 죽겠는데..’
한스가 말을 이었다.
“각 전차장은 소대장 전차만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맞게 유동적으로 스스로 판단해서 전차를 지휘해야 한다. 이는 각 전차의 포수, 조종수들도 마찬가지다.”
브룸베어, 하겐, 오딘의 전차장이 뜨끔했다. 겁이 나서 주변을 살펴보지 않고 맨날 소대장 전차만 졸졸 따라가면서 소대장 전차가 사격하는 쪽으로 사격 명령을 내린 것 이었다. 포수들도 적이 어디 있는지 정확히 관찰하기보다는 그냥 전차장이 명령한 방향으로 기계적으로 포를 발사했던 것 이다.
한스가 말을 마쳤다.
“질문 있나?”
그 순간, 멀리서 포탄이 날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쉬이이잇
쿠과광!!콰광!!
참호 안에 있던 한 독일 보병 신병은 포탄의 충격에 반사적으로 바닥에 몸을 움츠렸다. 포탄은 신병이 있던곳에서 비교적 멀리서 폭발했다. 참호 바닥에 작은 흙 알갱이들이 덜덜거리며 진동했다.
‘대..대피호로..가야..’
순간, 독일 신병은 아까와는 달리 아주 짧은 휘파람 소리를 들었다.
쉿!
고참들은 신병들에게 길게 쉬이잇 하는 소리는 멀리 포탄이 떨어지기에 안심하고 대피해도 되지만 짧게 쉿, 하는 소리는 근처에서 폭발하니까 바로 바닥에 엎드려야 한다고 했다.
‘어어?’
덜덜거리며 진동하던 자갈, 흙, 파편들이 하늘로 용솟음치며 거대한 기둥을 만들었다가 다시 우수수 떨어졌다. 참호 속에는 주인 잃은 철모만이 땅에 떨어져 놔 뒹굴었다.
“포격이다!!”
“대피호로 가!!”
독일 병사들은 재빨리 대피호로 달려갔다.
“망할!!저 새끼들은 쉬지도 않냐!!”
한스와 전차병들 또한 대피호에 숨어 있었다. 포탄이 폭발하는 소리는 점점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쿠광!!콰광!!
포탄소리에 맞춰 전차병들의 심장 소리는 쿵쿵쿵 점점 커져가며 아드레날린이 분비되기 시작했다.
‘망할 토미놈들..’
“저 자식들 포격이 다른 때보다 정확한데?”
전차병들은 다른 곳에 전차가 있는 것처럼 여기저기 궤도 자국을 남겨두고 그을린 자국을 내두어, 적 항공대가 사진을 촬영했을 때 그 쪽에 전차 중대가 있는 것 마냥 감쪽같이 착각하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안심할 수는 없었다.
통신병들이 겨우겨우 이중으로 가설해 놓은 통신선은 모조리 끊겨 버렸다. 사단장이 통신병에게 명령했다.
“통신선 재가설해! 빨리!!”
통신병은 벌벌 떨며 장교 대피호 밖으로 나와서 올라갔다. 순간, 짧은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쉬잇!
“으아악!!”
통신병은 잽싸게 장교 대피호 안으로 다시 몸을 날렸다.
쿠광!!콰광!!!
조금만 늦었다면 포탄 파편을 맞아 팔다리가 날라 갔을 것이 분명했다. 한 장교가 사단장에게 말했다.
“지금은 포격이 심해 통신선 재가설이 힘들 것 같습니다!!!”
그러자 사단장은 쓰러진 통신병을 군홧발로 짓밟으며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재가설해!! 재가설하라고!!”
포격은 3시간 뒤 끝났다. 전차병들은 잽싸게 전차를 숨겨두었던 곳으로 달려나갔다.
“다행이다! 멀쩡해!!”
반면 전차가 있는 것처럼 위장하기 위해 널빤지로 만든 가짜 모형을 비치해 두고 가짜 궤도 자국을 남겨둔 곳은 포격으로 여기저기 깊은 구덩이가 파여 있었고, 모형들은 산산조각 박살 나 있었다. 심지어 근처에 있던 꽤 굵은 나무는 뿌리채 뽑혀서 놔뒹굴고 있었다.
한스가 잽싸게 이번에 새로 노획한 마크 V 전차, 티거 3세 안에 들어갔다.
‘포탄을 아껴야 한다..’
새로 노획한 마크 V는 재생공장에서 수리를 받지 못해서 영국군이 쓰던 포를 그대로 써야 했기에, 전차 안에 남아 있던 탄약이 전부였다. 그 때, 한스는 관측창을 통해서 보병들이 미친듯이 달아나는 광경을 목격했다.
‘무..무슨 일이지?’
하지만 마크 V 내부에 요란한 엔진 소리 때문에 해치를 닫은 상태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놈들의 전차가 벌써 여기까지 올 리는 없는데?’
한스는 해치 위로 머리를 내밀어서 쌍안경으로 주변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쌍안경 속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고, 하늘에서 엄청나게 요란한 소리가 한스의 두개골을 뒤흔들었다.
위이이잉
솝위드 카멜기가 프로펠러로 공기를 찢어 발기며 저공 비행하며 지상을 향해 기관총을 갈겨 대고 있었다.
탕! 탕! 탕! 탕!
“으아악!!!”
한스가 비명을 지르며 해치를 닫은 순간 티거의 상부 장갑에 기관총 총알이 쏟아졌다.
탕! 탕! 탕!
한스는 자신도 모르게 바지에 오줌을 지렸다.
“으아악!!!”
한스가 헤이든에게 외쳤다.
“지그재그로 가!!”
한스는 식은 땀을 흘리며 관측창으로 멀어지는 솝위드 카멜기를 바라보았다.
‘지난번처럼 소형 폭탄을 떨어트릴 거다..놈들이 노리는 것은..’
한참 저 멀리 날아간 솝위드 카멜기는 선회하더니 다시 한스의 전차 중대 쪽으로 날아오기 시작했다.
“으악!!!아악!!!”
이 때, 한스와 같은 부대였던 슐츠 중대의 슈타이너 하사는 기관총 호 안에서 잽싸게 기관총 자물쇠를 풀고 저공 비행하는 솝위드 카멜기를 향해 기관총을 겨누었다.
“우와와와!!!”
드드득 드드드득
솝위드 카멜기는 프로펠러를 돌리며 지상에 있는 독일군 보병에게 두 정의 기관총을 긁어대고 있었다.
탕! 탕! 탕! 탕!
두 정의 기관총에서 나오는 예광탄이 그리는 선은 점점 슈타이너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럼에도 슈타이너는 숨지 않고, 총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도록 계속해서 기관총을 쏘았다.
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득
순간 슈타이너의 기관총에서 나온 총알이 솝위드 카멜기의 조종사의 어깨에 명중했다. 그리고 솝위드 카멜기에서 나온 총알이 슈타이너의 머리에서 3센치 정도 옆으로 비껴갔다. 솝위드 카멜기의 프로펠러는 슈타이너의 30m 앞에서 공기를 분쇄시키며 다가오고 있었다.
위이이잉 위이잉
슈타이너는 잽싸게 부사수 레온의 머리를 짓누르며 참호 속으로 엎드렸다.
“엎드려!!”
쿠광!!!쿠과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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