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꾼 파이퍼
프란츠가 페인트를 가져와서 티거 측면에 쓰여져 있는 TIGER 표식 위를 덧칠하기 시작했다. 한스가 속으로 생각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바이스 중위가 말했다.
“놈들은 사활을 다해서 대대장님을 노릴 것 입니다! 시가지 쪽이라 저격수들이 여기저기 매복해서 대대장님이 해치위로 머리를 내밀었을 때를 방아쇠를 당길 겁니다! 다른 마크 V 전차들에 모두 TIGER라고 써서 놈들 저격수의 시선을 끄는 것을 건의합니다!”
바이스 중위에 말에 다른 마크 V 전차장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한스가 말했다.
“그..그럴 필요는 없네.”
한편 전차병들은 술을 마시며 조만간 있을 전투에 대한 두려움을 애써 잊으려 했다. 제프 디트리히가 척탄병 야닉에게 고급 술병을 내밀었다.
“네 놈도 마셔라.”
에밋은 담배를 계속해서 연달아 피웠다. 전차병들은 두고 두고 아껴 먹으려던 고급 술까지 통조림과 함께 먹어치웠다. 에밋이 말했다.
“술이고 담배고 지금 다 먹고 피워두는 것이 좋죠. 내일 뒤질 수도 있으니..악!!”
바그너가 에밋의 머리를 때렸다. 거너가 슬픈 눈으로 불평했다.
“술이랑 담배가 문제냐..나는 아직 동정인데..”
“뭐어! 불쌍한 자식!!”
헤이든도 중얼거렸다.
“우린 맨날 최전방에서 싸워서 여자들 볼 기회도 없었잖아..”
바그너가 말했다.
“멍청한 녀석들..이번 전투가 끝나면 휴가가 있을 테니 그 때 기회가 있을 거야!”
“과연 기회가 있을까요?”
“당연하지! 왜 기회가 없겠나!!”
바그너는 호언장담을 하면서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한편, 미하엘은 앞으로 자신이 쓰게 될 포커 D.VII를 바라 보며, 플라잉 서커스단에 온 것이 잘한 결정이라고 애써 생각했다.
‘낡아빠진 팔츠보단 이거 타는게 훨씬 낫겠지..’
후고, 디터는 새로 지급받은 포커 D.VII를 자신의 취향에 맞게 도색하느라 바빴다. 미하엘이 속으로 생각했다.
‘프랑스 놈들 시선을 끌지 않으려면 도색을 하지 않는 것이 좋으려나? 아니다..잘 싸우는 것으로 보여야 녀석들이 섵불리 안 달라붙을지도..’
최근 소령으로 진급한 붉은 남작이 그 특유의 잘난 미소를 지으며 걸어와서 아무 것도 도색하지 않은 미하엘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자네는 아무 것도 안 칠하나?”
“아..안 칠 해도 괜찮습니다!페인트도 부족하고..”
붉은 남작이 말했다.
“내가 쓰던 색을 써도 좋네! 붉은 페인트가 충분히 남아 있네!”
미하엘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속으로 생각했다.
‘절대 안돼!!!!’
“괘..괜찮습니다!”
붉은 남작은 잠시 뒤 자신의 비행대대원들을 불러놓고 말했다.
“내일 소형 폭탄을 떨어트릴 때는 가급적 파리에 주요 건축물들은 피하도록 하게.”
디터가 물었다.
“민간인들은 대피하지 않았습니까?”
“그렇긴 해도 중요한 건축물을 파괴하면 여론이 나빠질걸세. 이미 아미앵 대성당이 파괴된 일로 해외 여론이 좋지 않네.”
“네! 알겠습니다!”
“너무 일찍 사격하면 놈들에게 자신의 위치만 알려줄 뿐이다! 그렇다고 너무 근접 사격하면 파편이 튀길 수 있으니 적정 거리에서 사격한다!”
붉은 남작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스패드 전투기는 강하 능력이 좋기 때문에 이 점에 유의한다! 녀석들은 갑자기 구름 속에서 나타날지도 모른다. 놈들에게 사냥당하기 전에 먼저 사냥하라!”
“우와와!!!”
미하엘은 속으로 벌벌 떨었다.
‘사..사냥감? 너무 잔인한데?’
이 시각 프랑스 연대 지휘소에서 장교들이 작전을 논의 하고 있었다.
“현 독일군 전차 중대는 마크 노획 전차들을 주로 이용하며 그 중대장은 통칭 사냥꾼 파이퍼라고 불리우는 그라프 한스 폰 파이퍼다. 이 자는 측면에 TIGER라고 쓰여져 있는 마크 V 전차를 탑승하고 전투 중에도 해치 위로 머리를 내미는 버릇이 있어서 저격이 용이하다.”
“독일 전차 부대의 전차장들은 모두 숙련된 전차병이니 TIGER라고 적혀 있지 않은 마크 V 전차의 전차장도 무조건 사살을 명령한다.”
연대장은 증오의 눈빛으로 책상 위에 놓여 있는 한스 파이퍼에 대한 보고서를 보며 말을 덧붙였다.
“가급적 생포하면 더 좋고.”
책상 위에는 한스가 여태까지 싸웠던 전투에 대한 보고서, 전술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심지어 한스가 쓴 전술 교본 책자까지 있었다.
“전차는 기동 불가가 될 가능성이 높으니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 보병들이 녀석들을 생포해서 고문하고 산채로 살가죽을 벗길 수 있겠지..”
회의를 마치고 베르나르 연대장이 연대 지휘소 밖으로 나왔다.
‘단 한 치라도 녀석들이 이 땅에 발을 들이게 하지 않을 거다!!내 목숨을 버려서라도!! 포격으로 도시가 많이 망가지기는 했지만 금방 재건할 수 있을 거다..’
노트르담 성당, 에펠탑, 개선문 등 주요 건축물들은 아직 건재했다. 건축과 예술을 좋아하던 베르나르 연대장은 절대로 이 아름다운 도시, 파리가 파괴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결심했다.
‘이건 프랑스 뿐 아니라 인류의 자산이다..이 곳을 지키는 것이 나의 임무다.’
그 때 몇 병사들이 표지판 근처에서 알짱대고 있었다. 베르나르 연대장이 물었다.
“이봐! 자네들 뭐하고 있나?”
그 중에 한 병사가 말했다.
“대대장님 심부름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병사들은 베르나르에게 경례를 하고 어딘가로 사라졌다. 베르나르는 앞으로 있을 전투 생각에 그 병사들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계속 장교 대피소로 걸어가서 억지로 눈을 붙였다. 한 시간 뒤, 베르나르의 부관이 그를 깨웠다.
“연대장님!! 비상 사태입니다!!”
“무..무슨 일인가?!!”
“연료 통에 모두 불이 붙었습니다!!”
프랑스 군복을 입고 있던 피셔 소위는 자신의 최정예 대원들과 함께 프랑스 전차 부대가 사용할 수 있는 연료 통에 불을 붙이고 달아나고 있었다. 엄청난 화염이 4층 건물 높이까지 치솟았고, 주변에는 스톰트루퍼에게 목을 공격당하고 순식간에 사살당한 프랑스 병사들의 시체가 널려 있었다. 프랑스어에 능해서 이번 작전에 뽑힌 에베렛이 피셔 소위에게 물었다.
“이..이제는 어떻게 합니까?”
“튀어!! 빨리 튀어!!”
피셔 소위는 득달같이 달려가가다 한 표지판을 보았다.
“먼저 가 있게!!”
피셔 소위는 잽싸게 표지판을 갈아끼우고는 부하들을 쫓아갔다. 잠시 뒤, 프랑스 보병들이 크라우트를 찾는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크라우트 새끼들이 연료통에 불을 붙이고 튀었다!!”
“소대장님!! 이..이곳에!!”
한 골목에서 프랑스 병사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으으..으아으..”
소대장은 퍼런새 군복에 피가 묻어 있고 입에서는 거품을 물고 있는 한 병사에게 가서 물었다.
“보슈 놈들은 어디로 갔나!!”
입에 거품을 물고 있는 병사가 신음 소리를 내며 손가락으로 한 골목을 가리켰다. 소대장이 자신의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저 쪽으로!!!그리고 의무병 불러와!!”
소대장과 보병들은 모두 우르르 그 병사가 가리킨 곳으로 달려갔고, 들것을 든 담가병이 뒤늦게 달려왔다.
“조금만 기다리게! 의무병이 오고 있..윽!!”
입에 거품을 물고 있던 피셔가 칼로 담가병의 목을 칼로 찌르고 달아났다. 급하게 달려오던 의무병은 주저앉아 있는 담가병을 보고 외쳤다.
“이봐!! 부상병은 어디있나!!”
프랑스 보병들을 모조리 죽이고는 일부러 피를 묻히고 부상당한 척 쓰러져있던 피셔는 그렇게 담가병을 죽이고는 구불구불한 골목으로 달려갔다.
‘녀석들..잘 도망갔겠지..’
다음 날 아침 5시 58분, 한스는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티거 상부 해치 위로 상체를 내민 채로 파리 쪽으로 가해지는 포격을 바라보고 있었다.
쿠구궁!! 콰광!!
한스는 자신의 시계를 바라보았다. 이제 공격까지 90초 정도 남았다.
‘연료 폭파 작전은 성공했을까···’
지원 받은 르노 FT 전차들은 모두 기동 가능한 상태였다. 정비사 출신 전차병들이 많아서 이런 점은 꽤나 든든했다. 조만간 노획 마크 전차들도 8대나 추가로 도착할 것 이다.
한스의 전차 대대는 크게 두 방향으로 나뉘어서 앞으로 전진할 예정이었다. 각 중대에 르노 FT 전차, 마크 전차, A7V, 장갑차 등을 절반씩 배치했다. 그렇게 양 팔을 벌리며 파리의 일부를 포위하고 섬멸한 다음에 다시 앞으로 전진하는 것을 반복하기로 했다. 전차가 기동불가 상태가 되었을 경우 자폭할지, 아니면 전차에 남아서 최대한 싸울지는 전차장이 결정할 몫이었다.
쿵 쿵 쿵 쿵
한스는 술병에 절반 정도 남은 술을 마시고는 술병을 휙 던졌다.
쨍그랑!
’30,29,28,,’
심장은 전차 엔진처럼 미친듯이 박동치며 피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어딘가에서 준비하고 있을 적들의 전차들을 당장에라도 불타오르는 깡통으로 만들고 탈출하는 전차병들을 향해 기관총 사격을 명령하고 싶었다. 한스는 잠시 뒤부터 있을 전투에 대한 열망 때문에 바지에 똥오줌을 지렸다.
‘5,4,3,2,1’
타앙!
“전진!!!”
끼기긱 끼기기긱
철십자가 그려진 독일의 전차 대대가 파리를 포위하기 위해 아가리를 벌리고 앞으로 나아갔다. 이 순간 미하엘은 똥오줌을 지리며 파리 하늘 위를 비행했다.
‘시..시발..그냥 대충 아무대나 떨구면 안되나?’
정확히 소형 폭탄을 떨구려면 저공비행을 해야 했다. 하지만 이런 시가지에서 저공비행을 하다간 건물에 꼴아박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었다. 미하엘은 현재 자신이 속했던 편대에서 떨어져나왔다는 것을 눈치챘다.
‘아..아무도 안 보겠지?’
그리고 미하엘은 대충 소형 폭탄을 아무렇게나 떨구었다. 빙글빙글 돌아가던 소형 폭탄은 노트르담 대성당에 떨어졌다.
쿠광!!콰과광!!
미하엘은 자신이 소형 폭탄을 어디로 떨궜는지 확인하지도 않고 그냥 남은 3개도 다 떨구기로 했다. 그렇게 3개의 소형 폭탄은 빙글빙글 돌아가며 프랑스인이 자랑스러워하던 건축물 위에서 폭발했다.
쿠과광!!콰광!! 쿠구궁!!
“휴..다했다..”
미하엘은 이제 자신의 편대로 돌아가기로 했다.
“어?다들 어디있지?”
미하엘은 슬슬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보병 시절 미하엘은 하늘을 유유하게 멋있게 비행할 것 이라는 환상을 가졌었다. 하지만 하늘을 비행하는 것은 이런것과는 전혀 거리가 있었다. 바람에 얼굴은 병신같이 짜부라지고 추워서 콧물이 나고 숨도 잘 쉬기 힘들었다. 살점을 후드득 잘라낼 것 처럼 무시무시하게 돌아가는 프로펠러 소리 또한 공포스러웠다. 혹시나 적 전투기 편대에게 발견된다면 끝장이었다. 미하엘은 질질 눈물을 짜고 똥오줌을 지리며 애써 숨을 쉬려고 했다.
“읍! 하~ 읍! 하~”
그 때, 2시 방향에서 아군 편대를 발견했다.
“찾았다!!”
미하엘은 잽싸게 자신의 편대에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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