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
퍼엉! 쉬잇 쿠과광!!
레오파드의 우측 포수, 필립은 일순간 뿌연 포연에 앞이 보이지 않았다. 명중했는지 알 수 없었기에 재빨리 다시 철갑탄을 장전하고 발사했다.
퍼엉! 쉿 콰광!!
반동에 레오파드가 흔들릴 때마다 니클라스의 시체가 앞 뒤로 덜컹거렸다. 필립이 다시 장전하려던 순간, 우측 기관사 닐스가 관측창을 보고 외쳤다.
“명중!! 명중했어!!”
마크 V 전차에서 시뻘건 불꽃이 뿜어져 나왔고 안에서 영국 전차병들이 허겁지겁 탈출했다. 필립은 재빨리 우측 장갑에 있는 기관총을 적군 마크 V 전차를 향해 조준하고 총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도록 긁어댔다.
드득 드드드득 드드드득 드드드득
닐스가 외쳤다.
“고폭탄으로 날려버려!!”
필립은 재빨리 고폭탄을 장전하고 외쳤다.
“발사!!!”
퍼엉! 쉬잇 쿠과광!!콰광!!
퍼엉! 쉿 쿠광!!
닐스가 필립을 향해 손짓하며 외쳤다.
“필립!! 진정해!”
레오파드의 전차장 니클라스, 좌측 포수 알베르트는 사망한 상태였고 좌측 기관사 패트릭은 얼굴에 파편 조각이 꽂힌 채로 울부짖고 있었다.
“으악!!!도와줘!!”
닐스는 패트릭을 도와주고 싶었지만 자칫 잘못 건드리면 더 상처를 건드리는 꼴이 될 까봐 차마 그러지 못했다. 그 때 레오파드의 조종수 욘트가 외쳤다.
“앞으로 계속 전진한다!”
닐스가 외쳤다.
“이봐! 장갑에 구멍이 나서 전진하면 위험해!!지금 패트릭도!!”
레오파드에는 철갑탄이 뚫고 지나간 구멍이 생겼고 적군 저격수나 기관총 사수들은 이 구멍을 집중적으로 사격할 것이 분명했다. 더군다나 좌측 변속기를 담당하는 패트릭이 부상당한 상태라 제대로 선회할 수 있을지도 불확실했다.
욘트가 외쳤다.
“명령이다!!”
현재 생존한 전차병 중에는 욘트가 가장 계급이 높았기에 욘트가 전차장 역할을 대신해야 했다. 닐스가 알았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욘트가 패트릭에게 안심하라고 손짓하며 외쳤다.
“조금만 참게!!”
끼기긱 끼기기긱
그렇게 레오파드는 적진으로 깊이 들어가지는 않고 자리에서 움직이며 영국군의 마크 V 전차를 향해 포를 쏘며 주의를 끌었다.
이 때, 한스는 저격수 때문에 해치 위로 머리를 내밀 수 없어서 불안함을 느꼈다.
‘망할 연막 때문에 하나도 안 보이잖아..’
신호기의 색을 바꿔봤자 다른 전차들이 제대로 확인할 수 있을지도 불확실했고 무엇보다 다른 전차들이 어떤 상황인지 전혀 알 길이 없었다. 한스로서는 자신의 중대 전체를 지휘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이대로 가면 내가 지휘를 전혀 못하는데..’
한스는 해치를 열고 소총으로 자신의 철모를 위로 들어보았다.
‘안 쏴? 저격수 없나?’
한스는 철모를 조금 더 위로 올려 흔들어보았다. 순간,
타앙!!
“으앗!”
떨어진 철모에는 선명한 총알 자국이 남아 있었다. 한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프란츠!! 해치 위로 머리 내밀지 말라고 신호기 색 바꿔!!”
한스는 각 전차장들에게 중요한 상황에서는 머리를 내밀고 주위를 관찰해야 한다고 누누이 말했던 적이 있기에 더욱 느낌이 좋지 않았다.
한편 영국 저격수 버나드는 니클라스를 사살하고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고 있었다. 독일 저격수를 사살하고 싶었지만 도저히 어디 있는지 찾을 수가 없었던 것 이다.
‘포탄 파편이라도 맞아서 뒤졌나 보군..’
버나드는 새로 자리 잡은 포탄 구덩이에서 슬쩍 철모를 위로 올려보았다. 총알은 날아오지 않았다. 버나드는 안심하고 상체를 내밀었다. 그 순간
쉬이잇
공기를 가르고 오는 총알 소리를 자각한 뒤에는 이미 늦었다. 버나드의 동공이 축소되며 공포에 질렸다.
“아?!”
퍼억!!
버나드는 오른쪽 어깨에 총알을 맞고 구덩이에 쓰러졌다.
“으악!!아아악!!!”
버나드는 왼손으로 어깨를 만져보았다. 손에서 피가 묻어 나왔다. 뼈가 부서진 것이 느껴졌다.
“아악!!좆같이 아파!!!시발!!!나 맞았어!!나 맞았어!!”
쿠과광!!콰광!!!
비명 소리는 포탄 소리에 묻혔다. 버나드는 구덩이 속에 나뒹구는 자신의 소총을 바라보았다.
‘아..안돼..’
포탄 구덩이 속에는 벌써 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버나드는 왼손으로 포탄 구덩이를 벅벅 파서 그 안에 소총을 파묻었다. 그리고는 구덩이 속에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에서는 솝위드 카멜기가 후고의 알바트로스와 함께 뱅글뱅글 서로의 꼬리를 잡으려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잠시 뒤 꼬리를 잡힌 솝위드 카멜기가 뒤에서 연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고는 짜릿함을 느끼며 끝까지 솝위드 카멜기에게 계속해서 총알을 박아 넣었다.
탕! 탕! 탕! 탕! 탕!
솝위드 카멜기의 기체 여기저기에 총알 자국이 남았고, 결국에는 상공에서 소형 폭탄과 함께 폭발하고 말았다.
쿠광!!쿠과광!!
공중에서 날아가던 후고는 혹시나 파편에 맞을까봐 몸을 수그리며 급히 선회를 했다.
“으익!!!”
폭발한 솝위드 카멜기는 영국군의 마크 V 전차 위에 떨어졌다.
쿠광!!콰과광!!
후고는 지상을 내려다보며 엄청난 폭발이 일어나는 것을 구경했다.
“와오!! 대단해!!!”
그 다음 후고는 저 편에 보이는 영국 마크 전차를 향해서 소형 폭탄을 떨어트리기로 마음 먹고 고도를 천천히 낮추며 저공비행하기 시작했다.
위이잉 위이이잉
후고는 소형 폭탄을 떨어트리는 것은 처음이라 대충 언제 떨어트려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지상 위에서 천천히 기어가는 작은 사각형 모양의 마크 V 전차를 보면서 후고는 손으로 소형 폭탄을 꺼내 들었다.
“자 간다!!”
하늘 위에서 떨어진 소형 폭탄은 마크 V 전차보다 훨씬 앞서서 떨어져서 폭발했다. 후고는 다시 선회해서 지상을 내려다보며 자신이 소형 폭탄으로 격파시키고 싶었던 전차가 계속해서 천천히 기어가는 모습을 목격했다.
“젠장!! 어렵잖아!!”
후고는 다른 소형 폭탄을 떨어트렸다. 이번에는 왠지 손맛이 좋았다. 후고는 확인해보지도 않고 남아 있는 두 개의 소형 폭탄을 떨어트리러 계속해서 저공 비행을 했다.
그 날 전투는 독일군의 승리로 끝났다. 한스가 티거에서 내리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비행기의 위력이 엄청나군..정말 대단해!! 비행기를 상대할 수 있는 전차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게 가능할지..’
그 때 푸마의 전령이 달려와서 한스에게 보고했다.
“레..레오파드가!!!”
“무슨 일인가??”
“저격수의 총을 맞아서 사망했습니다! 좌측 포수도!!”
한스는 뇌 속이 새하얗게 변하는 것을 느끼고 동료들과 함께 달려갔다. 레오파드의 능숙한 좌측 기관사 패트릭은 얼굴이 피로 뒤덮인 상태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으악!!!죽여줘!!죽여줘!!”
두 전차병이 양 옆에서 팔 다리를 못 움직이게 붙잡고 있었고 위생병은 마취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파편을 빼내고 있었다.
푸마의 다른 전차병도 이빨이 부러져서 입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전차병들은 레오파드에서 니클라스와 알베르트의 시신을 꺼냈다. 한스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걸어갔다.
“니클라스?”
요나스는 벌벌 떨며 기관단총을 들고 울고 있었다.
“뭐..뭐야? 죽은 거야?”
바그너가 요나스에게 걸어가서 말했다.
“이보게 요나스. 진정하게.”
“마..말도 안돼..21살 밖에 안됐는데..”
요나스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기관단총을 오른 손에 들고 있었다. 바그너가 요나스의 어깨를 두드린 다음에 진정시키고는 기관단총을 손에서 뺏었다.
“다 겪는 일일세.”
“젠장!!!소위님은 자식도 있지만 저 녀석은 17살에 끌려와서 전투만 하다가 죽었다구요!!멍청한 자식!!으아악!!!”
이 때, 독일 보병 하인츠는 영국 보병 찰리의 시체를 뒤지며 노획하고 있었다.
‘좀 쓸만한 것이 나오면 좋겠는데..’
하인츠는 찰리의 군복 속에 아무것도 나오지 않자 실망하며 옆에서 죽어가고 있던 올리버에게 다가갔다. 올리버가 눈을 커다랗게 떠서 굴리며 기괴한 소리를 냈다.
“으그극..끄그극..”
시꺼먼 흙으로 뒤덥힌 얼굴에 눈알만 굴리는 것은 가히 공포영화스러웠지만 배가 고팠던 하인츠는 올리버의 가방 속에서 마커너키 통조림을 한 개 얻어냈다.
“좋았어!!”
그렇게 하인츠는 올리버를 내버려두고 다른 노획할 것을 찾으러 구석구석을 뒤졌다. 그 때 포탄 구덩이 속에 저격수 버나드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버나드 또한 하인츠를 보고 공포에 질렸다.
“으으..으으으···”
하인츠는 버나드의 군복을 뒤지기 시작했다.
“네 놈 가방은 어딨냐?”
하지만 버나드의 가방은 보이지 않았다. 하인츠는 그 때 버나드의 주머니 속에서 고급 회중시계를 발견했다.
“오오! 이건 괜찮은데?”
하인츠는 버나드의 시계를 갖고 포탄 구덩이 속에서 빠져나갔다. 그 때 한 독일 위생병이 하인츠에게 말했다.
“자네 여기서 뭐하냐?”
하인츠는 고급 시계를 얻어서 기분이 좋았기에 위생병에게 말했다.
“저 구덩이에 토미놈 부상자 하나 있어!”
위생병은 귀찮았지만 의무감에 포탄구덩이 속에서 버나드를 끌어내서 마취도 하지 않은 채로 총알을 빼냈다.
“으악!!아아악!!”
위생병이 중얼거렸다.
“대충 소독은 했네!”
버나드는 독일어에 능했기에 위생병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저격수라는 것이 들통나지 않았기에 안도와 더불어 앞으로 자신은 어떻게 될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 때, 독일 병사들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이 새끼!! 저격수다!!”
버나드는 공포감에 질려 그 쪽을 바라보았다. 한 젊은 영국 저격수가 독일 병사에게 끌려오고 있었다. 그 저격수는 버나드도 아는 녀석이었다.
‘톰?’
저격수를 발견했다는 소식에 독일 전차병들이 우르르 몰려갔다.
“그 새끼 내놔!!!”
“이 새끼가 우리 전차장을 죽였어!!”
서슬 퍼런 독일 전차병들의 외침에 보병들은 영국 저격수를 전차병들에게 내어주었다.
“니들이 알아서 해라!!”
독일 전차병들은 영국 저격수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요나스가 외쳤다.
“죽이진 마!!숨통 끊어지게 하는 새끼는 뒤질 줄 알아라!!”
한 독일 전차병은 통조림을 탈 때 쓰는 칼을 들고 있었다. 버나드는 고개를 돌렸다. 독일 위생병은 치료를 마치고 버나드를 일으켜 세워서 부축해주었다.
“오른쪽 팔은 당분간 움직이지 말라고!”
저녁 노을이 내려앉는 땅 위에는 가축이 도축되면서 지르는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끄아악!!끄궤궤궥!!”
“죽이진 말라고!!!”
독일 위생병의 부축을 받고 앞으로 걸어가는 버나드는 이마에서 식은 땀이 흘러내렸다.
타앙!
총소리와 함께 비명소리가 멈췄다. 버나드가 깜짝 놀라서 그 곳을 바라보았다. 독일 전차 에이스, 한스 파이퍼가 무표정한 얼굴로 영국의 어린 저격수의 머리에 권총을 쏘았던 것 이다. 시끌벅적하게 떠들던 독일 전차병들이 일순간 조용해졌다.
버나드를 데리고 가던 위생병이 영어로 외쳤다.
“저 쪽에 가서 얌전히 있어!!”
버나드는 영국 포로들이 잡혀 있는 곳으로 가서 주저앉았다.
맥스는 자신의 소총 옆에 주저앉아 슈납스를 마시며 이 광경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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