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아더
이 시각 파리, 한 탐욕스러운 독일 병사는 프랑스 포로에게 고급 시계를 내놓으라고 협박하고 있었다.
“이봐! 그거 이리 내놔!!”
그 포로가 손목을 뒤로 숨기며 시계를 내놓지 않자 독일 병사는 다가가서 노려보기 시작했다.
“이게 뒤지고 싶나?”
“이보게!!”
그 독일 병사는 한스가 다가가자 움찔했다.
“포로 학대는 군사 재판행일세!”
“죄..죄송합니다..”
그 병사는 한스에게 고개를 숙이며 벌벌 떨었다. 한스가 자리를 뜨며 속으로 생각했다.
‘소령이 되니 이건 좋군..’
한스는 포로 학대를 막았다는 뿌듯함과 함께, 묘한 쾌감을 느꼈다. 지금 모든 병사들은 한스를 동경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을 뿐 아니라 한스를 보면 각잡힌 자세로 경례를 했다. 한스는 아직 이런 것에 완전히 익숙하지는 않고 좀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권력이라는 것이 꽤나 달콤한 것 이었다.
‘나중에 더 진급하면 내 눈빛 하나에도 다들 쫄겠지?’
진급 욕심은 없었지만 한스는 머리 속에서 적수리 훈장을 받고 연대장이 된 자기 자신의 모습을 그려 보며 실실 웃었다. 한편 필립은 한스가 뒤에서 다가오는 것도 모르고 한 간호사한테 어설픈 불어로 계속 추근대고 있었다.
“아가씨, 맛있는 술 안 먹을래요?”
“이게 무슨 상황인가?”
“으헉!! 죄..죄송합니다!!”
“뭐가 죄송하다는 건가?”
“그..그···”
“그만 가보게!”
한스의 말에 필립은 부리나케 달아났다. 한스는 자신의 권력을 만끽하며 앞으로 걸어갔다.
‘우리 부대 녀석들은 저런 추잡한 짓거리 안 저지르는데 말이야.’
한스는 전차병들이 머무르는 건물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이게 무슨 소리지?’
한스는 헤이든, 거너, 요나스, 에밋이 머무는 작은 건물의 문을 활짝 열었다.
“하..한스!!”
“사..사고 입니다!!”
다음 날, 한스는 사크레쾨르 대성당에서 잠에서 깼다. 한스는 어제 자신의 행동이 잘 기억나지 않았다. 뚝뚝 끊겨져 있는 기억 속에서 남아 있는 몇 개의 잔상은 공포에 질린 부하들의 얼굴과 목소리였다. 요나스가 겁에 질린 목소리로 한스에게 말했었다.
“자네도 남자니까 우릴 이해하지?”
“죄..죄송합니다!!!”
“녀석들 모두 최전방에만 있어서 위안소도 못 갔잖아. 아아 죄송합니다! 소령님!!”
얼굴이 묵사발이 된 헤이든, 거너, 에밋의 표정이 언뜻 기억이 났다. 한스가 무어라 말하니까 거너가 비명을 지르며 외쳤다.
“지..지금 죽겠습니다! 제발 제 어머니한테만은!!”
“대대장님 제..제발··· 누나가 임신 중입니다! 이걸 알게 되면!!”
얼굴이 반 병신이 된 헤이든이 울부짖으며 외쳤다.
“저도 제가 왜 이랬는지 모르겠습니다..”
한스가 속으로 생각했다.
‘녀석들 왜 그런 소릴 했던 거지? 난 항상 녀석들에게 잘 해 줬는데?’
한스는 기억이 나지 않아서 주머니를 뒤져 보니 고급 시가 케이스가 있었다.
‘아..이걸 녀석들 주려고 갔던 것 같은데..’
대대장으로서 공평하게 병사들을 대해야했지만 그래도 오랜 시간 동안 함께 해 온 녀석들인만큼 한스는 요나스, 에밋, 거너, 헤이든을 신뢰했다.
‘어제 도대체 무슨 일이..’
기억의 파편 속에서 한스는 차분하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숙련된 전차병은 복구가 안 된다.’
기억 속에서 요나스가 울부짖었다.
“대대장님!”
한스는 자신의 목소리를 기억했다.
“자루 가져와!!”
사크레쾨르 대성당에서 잠이 깬 한스는 눈을 비볐다. 옆에 있는 한 부상병의 배에서는 벌레들이 기어다니고 있었다. 한스는 고개를 올려 사크레쾨르 대성당 천장에 예수가 양팔을 들고 있는 벽화를 바라보다가 아무도 없는 작은 방으로 들어가서는 권총을 꺼내어 자기 머리에 겨누었다.
그러다 한스는 주머니 속에서 에밀라의 사진을 꺼내서 보았다. 편지로 보내준 에밀라의 사진은 배가 더 불러 있었다.
‘이 세상은 태어날만한 곳이 아니야..’
한스는 차라리 아이가 유산되어서 에밀라를 놔주고 자신은 편하게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한스는 피 냄새가 진동하는 사크레쾨르 대성당에서 부상자들 사이 사이를 지나가며 건물 밖으로 나왔다. 프란츠가 외쳤다.
“대대장님!!연대 지휘소에서 부르십니다!!”
크뤼거 대령이 한스를 보며 말했다.
“파울 폰 힌덴부르크 원수께서 세 시간 안으로 도착하신다는 전갈을 받았네! 혹시 파리 남부 쪽으로 도하하기 위한 작전을 짜둔 것이 없는가?”
“어..없습니다!!!”
크뤼거 대령의 이마에서 식은 땀을 흘렸다.
“젠장!! 오시기 전에 작전을 생각해야 하네!!”
“혹시 놈들의 육군 항공대 전력은 어떻습니까?”
한스는 늘 전투기들이 기존에 기관총보다 강력한 무기를 장착한다면, 순식간에 많은 전차들을 격파시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 현기술로는 무리겠지..그런 무기를 장착한다면 중량이 무거워질 테니..’
“놈들은 12발의 포탄을 장착한 스패드 XII 전투기가 있네.’
‘열..열두발의 포탄’
“반자동 모터 캐논으로 총 12발의 포탄을 지상을 향해 발사할 수 있네!”
한스가 덜덜 떨며 말했다.
“그..그러면 센강을 건너는 것은 무..무리입니다!! 전차 부대가 완전히 박살날 것 입니다!”
크뤼거 대령의 얼굴이 시뻘개지며 한스에게 외쳤다.
“절대 그렇게 말해서는 안되네!! 이틀 내로 전열을 정비하고 파리 남부로 도하해야 하네!!”
‘하..하지만 다리를 건너봤자..’
“호..혹시 그냥 휴전 협정이 될 가능성은 어...없습니까?”
크뤼거 대령이 황당한 눈으로 한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휴전 협정? 휴전 협정이라고? 자네 미쳤나? 빨리 전술을 생각해내게!! 지금 당장!!”
한스는 조만간 힌덴부르크가 온다는 말에 벌벌 떨기 시작했다.
‘젠장! 전술은 장성급 장교들의 몫 아닌가? 왜 나보고 지랄이지?’
잠시 뒤 힌덴부르크 원수가 연대 지휘소에 도착했다. 한스는 각잡힌 자세로 경례를 했다.
‘나..난 그냥 옆에 서 있기만 하면 되겠지?’
거의 2m 가까이 되는 장신인 그는 한스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컸고, 한스의 눈은 딱 힌덴부르크의 콧수염과 높이가 맞았다. 힌덴부르크는 70세에 노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위엄이 있었다. 힌덴부르크가 말했다.
“4일 내로 파리 남부를 점령해야 하네.”
한스는 머리가 쭈뼛 서는 것을 느끼며 힌덴부르크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4일 내로 파리 남부를 점령한다고? 부..불가능해 보이는데 혹시 무슨 방법이 있는 건가?’
그 때 힌덴부르크가 한스가 있는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생각나는 전술이 있으면 자유롭게 말해보게.”
‘왜..왜 내 쪽을 바라보는 거지?’
한스는 가능하면 힌덴부르크와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서 맞은편 벽에 있는 무늬를 응시했다. 그 때 힌덴부르크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파이퍼 소령!!”
“네..넵!!!”
“의견 있으면 자유롭게 말해보게!”
“그..그···”
힌덴부르크가 화를 억누르듯 숨을 크게 들이내쉬고는 말했다.
“다 나가 있게.”
한스도 슬쩍 나가려고 하는데, 힌덴부르크가 말했다.
“파이퍼 소령 자네만 빼고.”
한스는 손가락이 덜덜 떨리는 것을 느꼈다. 힌덴부르크가 한스에게 지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지금 18군 사령부가 오베흐빌리에 쪽에 있고 프랑스군은 이렇게 파리 서쪽에 굽이치는 쪽으로 돌출부를 형성하고 있네. 만약 프랑스군이 생드니나 끌리쉬로 도하해서 아군을 포위한다면 그야말로 끝장일세. 우리 쪽에서 먼저 놈들을 포위해야 하네.”
“프..프랑스 6..6군의 사령부는 어느 쪽에..”
“첩보에 따르면 6군의 사령부는 베르사유에 있네.”
한스는 덜덜 떨면서 지도를 보았다.
‘이..이 정도 규모의 전투를 왜 내가..’
한스는 그냥 사실대로 말하기로 했다.
“저..저는 자..잘 모르겠습니다!”
힌덴부르크가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쾅!!!
“조만간 미군이 몰려올걸세..놈들은 아직 전쟁에 익숙하지는 않지만 전혀 지치지 않았지..지금 파리 북부를 점령했다고 좋아할 때가 아닐세..”
힌덴부르크가 한스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놈들은 우리의 창자를 뜯어내려 달려오고 있네. 노트르담 대성당이 불타오른 것 이상으로 놈들은 되갚아주려 하겠지..그 자식들이 민간인 여성들에게 무슨 짓을 할지 생각해보게!!!”
다음 날, 한스는 크라우제 등 여러 전선 기자들 앞에서 인터뷰를 했다. 크라우제가 물었다.
“파리 점령은 며칠 걸릴 것으로 예상합니까?”
“군사 기밀이라 정확하게 밝힐 수는 없지만 조만간 독일 국민들에게 승리를 안겨드릴 수 있을 것 입니다!”
한스는 기자들 앞에서 큰 목소리로 외쳤다.
“파리 전역에 독일의 깃발이 휘날리고 국가가 울려퍼질 것 입니다!”
개선문 앞에서 촬영된 한스의 사진과 인터뷰는 전세계 언론을 통해 퍼져나갔다. 또한 센강 북쪽에서 한스의 목소리가 확성기를 통해 울려 퍼졌다.
“프랑스 군은 빨리 항복하는 것이 좋을 것 이다!!”
이 시각, 맥아더는 호언장담하는 한스의 인터뷰가 실린 독일 신문을 노려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강철 사냥꾼..도대체 무슨 생각이지?’
한편 피셔는 아직도 프랑스 남부에서 쉘쇼크로 정신이 나가버린 프랑스 군인인척 행세하며 생존하고 있었다. 정신이 나가서 바보가 된 병사들은 간혹 있었기에 다른 프랑스 보병들은 피셔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저 녀석은 뭐 하는 녀석이래?”
“정신이 돈 녀석이야. 냅둬.”
한 프랑스 병사는 피셔를 향해서 빈 통조림을 던졌다. 하지만 피셔는 계속해서 침을 흘리며 에헤헤헤 웃는 척을 했다.
“저런 멍청한 자식..”
피셔는 비틀비틀 걸어가다가 독일군 정찰기가 뿌리고 간 삐라를 주워서 읽어 보았다.
“조만간 파리는 독일에 함락된다. 속히 투항하라.”
‘무슨 생각이지..센강은 절대로 건널 수 없을텐데..’
그 당시 전차들의 도하 가능 수심은 최대 1m 였다. 그리고 보병들이 다리를 건너려는 순간에 기관총, 이동식 포의 밥이 될 것이 분명했다. 피셔가 속으로 생각했다.
‘센강이 피로 물들 날도 머지 않았군..’
센강에서 한스의 목소리는 확성기를 통해 계속 울려 퍼졌다. 한 프랑스 병사가 말했다.
“저 말 정말일까?”
다른 병사가 말했다.
“돌대가리냐? 그냥 허풍일 뿐이야! 만약 저 놈들 전차가 이 다리를 건너려는 순간 포탄을 맞고 센강 깊숙히 가라앉겠지!”
“그냥 이대로 전쟁이 끝나는 것 아닐까? 우리도 딱히 방법은 없잖아.”
한 프랑스 병사가 말했다.
“지금 내가 두려운 것은 독일군이 아닐세.”
“그럼 뭔데?”
“차라리 놈들이 먼저 내려오면 우리는 기관총만 긁어대면 되는 걸세. 하지만 만약 우리에게 도하하라는 명령이 내려온다면 그 때는..”
그 말에 프랑스 병사들은 모두 몸서리를 쳤다.
“나..나는 물에 빠져 죽기는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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