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스캄프바겐, 백작 작위 수여
엿 같은 신기술 발표가 이어지다가, 멍청하고 어리버리해 보이는 한 학자가 발표를 하러 올라왔다. 많은 발표를 듣다 보니 군 장성들도 별로 집중을 하고 있지 않았다. 그 학자가 말했다.
“저..저는 바..방탄유리로 만든 회전식 잠망경을 전차 내부에 다는 신기술에 대해서 연구를 하고 싶습니다! 이 잠망경을 설치하면 전차 위로 머리를 내밀지 않고 360도 사방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군 장성들이 숙덕거렸다.
“별 것 아니로군..”
“전쟁이 막바지인데 고작 저런 잠망경 따위로 뭘 할 수 있다는 건지..쯧쯧..”
반면 한스는 이 연구에 귀가 솔깃해졌다.
‘이런 회전식 잠망경이 있으면 해치 위로 머리를 내밀지 않고도 사방을 볼 수 있을 것 이다!’
“아주 멋진 아이디어입니다! 전차장용, 포수용 두 가지로 설치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전차장용 회전 잠망경은 전차 중앙에, 포수용 회전 잠망경은 포신과 같이 움직이도록 설치하면 어떨까요?”
한스의 말에 그 어리버리해 보이는 박사는 약간 희망을 품기 시작했다.
“그..그러면 연구가 시작되면 두 군데 다는 것으로..”
하지만 장성들은 한스의 말에 집중하지 않았다.
‘저 녀석 선전용으로 띄워줬더니 참모라도 되는 양 설쳐 대는 군!’
‘군사 학교도 안 나온 애송이가 건방지군!’
그 때, 한 장성이 박사가 낸 자료를 검토해 보았다. 다른 연구들에 비하면 요구하는 연구비가 그닥 크지 않았다.
‘뭐 이 정도면..나쁘진 않겠군..’
결국 그 박사의 회전용 잠망경 연구는 연구비 지원을 승인 받았다. 새로운 전차 시연까지 잠시 휴식 시간이 이어졌고, 한스를 건방지다 생각했던 한 장성이 물었다.
“이보게 파이퍼 대위!”
“네..넵!!”
한스는 장성들 앞에서 주목을 받자 손에 식은 땀이 나고 똥 오줌을 지릴 것처럼 벌벌 떨었다.
“자네는 어떤 전차가 개발되었으면 하는가?”
“저···저는 전차 전면, 측면, 후면을 경사진 장갑으로 만들면 적군 포탄이나 기관총에 더 방어가 쉬울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악!”
한스는 하도 긴장해서 삑사리가 났다. 한 장성이 웃음을 참으며 물었다.
“왜 경사진 장갑이 방어가 쉽다는 것 인가?”
“그..그렇게 하면 총알이나 포탄이 뚫고 가야 할 폭이 더 넓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보게 장갑을 경사지게 만들면 물건 보관이 어렵지 않겠는가? 구급상자나 탄약 상자도 경사지게 만들어야겠군!”
웃기지도 않은 한 장성의 농담에 모두 껄껄거리기 시작했다. 한스는 등까지 축축해지는 것을 느꼈다.
‘내..내가 뭘 잘못했나?’
“파이퍼 대위 멋진 생각이로군! 계속 말해 보게!”
“뿌..뿐만 아니라 저는 최소한 대대 단위 이상에, 독자적 지휘 체계를 갖춘 기갑 병과가 창설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악!!”
장성들은 이제 대놓고 웃기 시작했다.
“이보게 한스! 자네는 군사 학교를 나왔나?”
“나..나오지 않았습니다!”
“전차 몇 대 있지도 않은데 한 쪽에 몰아 넣으라는 건가? 여기저기 조금씩 배치하는 것이 효율적일 걸세!”
한스가 속으로 생각했다.
‘영국은 작년부터 전차를 대대 단위로 편제했는데 개네도 멍청하다는 건가? 그렇게 조금씩 배치하면 몇 대 안 되는 전차가 전부 기동 불가가 될 수도 있는데!’
그 당시 영국의 전차 대대는 총 48대의 전차를 두고 장교만 50명에 정비 중대까지 따로 두고 있었다. 한스는 자신이 웃음거리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이전까지 생각했던 것을 그냥 다 말하기로 했다.
‘나도 이 정도 발언 자격은 있다!다들 무시해도 누군가는 내 말에 동의할지도 모른다!’
한스의 손바닥과 이마는 완전히 땀으로 젖어버렸고 오줌을 지릴 것 같았음에도 계속 말했다.
“앞으로 전선에서 전차가 고장 났을 경우 부품을 교체할 수 있도록 여분의 부품들 또한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주요 부품들과 탄약을 운송하는 기능의 전차 또한 필요합니다! 또한 통신 목적의 통신용 전차까지..”
한 장성이 속으로 생각했다.
‘이 멍청한 녀석은 지가 무슨 역할인지 모르는군..’
그 때 한 장성이 말했다.
“동부전선에서 쓰던 장갑차를 지원해주도록 하겠네.”
한스는 그 말에 귀가 솔깃해졌다.
‘자..장갑차를?’
“쓰다 남은 것이 몇 대 있네.”
장성들은 모두 새로운 전차 시연을 보러 건물 밖으로 나가야 했기 때문에 한스는 어떤 장갑차를 얼마나 더 지원받을 수 있을지는 듣지 못했다. 한스는 잔뜩 기대에 부풀었다.
‘좋았어! 여기까지 온 보람이 있다! 과연 새로 개발한 전차는 얼마나 멋질까?’
거대한 무언가가 아주 커다란 천에 가려져 있었다. 한스가 속으로 생각했다.
‘너..너무 큰데? 여러 대를 동시에 보여주는 건가?’
엄청나게 넓은 천이 펄럭이며 아래로 떨어졌고, 이윽고 독일의 야심작이 장성들과 한스의 눈 앞에 나타났다. 아직은 제작이 완료되지 않아서 목재로 만들어진 그 거대한 무언가는 전장 12.7m, 전폭 6m, 전고 3m에 77m 포가 4문, 기관총이 총 7정 달려 있었다.
“회심의 역작!그로스캄프바겐입니다!”
“오오!! 어마어마하군!”
“역시 독일의 과학 기술은 세계 최고다!”
“이 7정의 기관총은 360도 모든 방향으로 인명 살상이 가능합니다!”
A7V는 양 측면, 후면에 각각 2개씩 총 6개의 기관총이 있었지만 위치 선정을 잘못해서 뒤에서 45도 각도로 접근하는 보병에게는 기관총으로 쏠 수가 없었다. 당연히 영국, 프랑스에서는 이러한 A7V의 약점을 금새 알아챘고, 대전차 수류탄을 들고 접근하는 보병들에게는 그러한 사각이 있는 쪽으로 접근하라고 지침을 내렸다. 이 때문에 A7V의 전차병들은 수시로 해치를 열고 직접 MP18을 갈겨야 했다.
“완벽해!! 이 정도면 대전차호에 빠질 일도 없겠군!”
“장갑 두께는 30mm입니다! 실제로 완성되면 120톤의 육중한 중량이지만, 이론적으로 최고 속도는 시속 7.5km에 달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또한 무게중심이 윗쪽에 있는 A7V와는 달리 잘 넘어지지도 않을 것 입니다! 또한 차체가 그렇게 높지 않아서 포탄을 맞을 확률도 줄어듭니다!”
“병사는 총 몇 명 들어가는가?”
“22명까지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한 장성이 한스에게 말했다.
“이것 보게! 독일은 자네 전차병들을 위해 최고의 지원을 해주고 있네!”
한스가 이마에 땀을 흘리며 물었다.
“가..가.감사합니다 그..그런데 이..이걸 열차에 어..어떻게 운반할지..”
“부품을 열차로 운반해와서 다시 조립하면 됩니다!”
“초..총 몇 대의 전차가 만들어질지..”
“10대 정도 생산될 것 같습니다!”
한스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이런 엉터리 전차가 만들어지면 뒤지는 것은 한스 같은 전차병들일 것이 분명했다. 결국 한스가 용기를 내서 말했다.
“전체적인 디자인 자체는 크게 문제가 없지만 지금 전선에는 보다 많은 전차가 필요합니다! 크기를 더 줄이고 여러 대로 만드는 것이···”
“이보게 파이퍼! 자네는 그렇게 배짱이 없어서 어따 써먹겠나? 모름지기 영국, 프랑스, 미국을 누르려면 이 정도의 전차는 필요한 걸세!”
“맞네!! 이 정도는 되어야지!”
독일인들은 이상한 강박관념, 집착이 있었고 스스로도 이에 대해서 잘 알고 있어서 이에 관한 농담을 하기도 했다. 프랑스나 영국 병사들 사이에서도 독일인 특유의 강박증에 대해서 정신병자 크라우트라는 농담이 유행할 정도였다. 한스는 이런 특성은 민족이 아니라 개개인마다 다르다고 생각했지만, 생각이 바뀌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시발 새끼들아!!! 저런 전차 만드느라 자원 다 날려먹다가 전쟁에서 뒤지겠다!!이 미친 강박증 정신병자 크라우트 새끼들!!’
한스는 억지로 이빨이 다 보이도록 미소를 지으며 애써 좋은 점을 칭찬했다.
“포 사격 범위도 넓고, 야지 주행 능력도 뛰어나 보입니다! 하지만 전선에서는 전차의 화력보다는 수량이 중요할 때가 있습니다!”
그로스캄프바겐 다음으로 선보인 전차는 LK2 전차였다.
“중량은 8.75톤! 길이 5.1m! 각 전차마다 전차병은 3명이 탑승 가능합니다! 장갑은 최대 14mm, 최대 속도는 시속 18km, 숫놈은 5.7센치 주포가 달렸습니다!”
악어 대가리를 닮은 그 신형 전차, Leichter Kampfwagen II 는 한스가 보기에 그닥 나쁘지 않아 보였다.
‘중전차 뒤를 따라가서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면서 보병들을 사살하고 다니기에는 좋겠군..
한스가 슬쩍 물어 보았다.
“이것은 몇 대나 주문되었습니까?”
“총 580대가 주문되었습니다!”
한스가 기대감에 부풀었다.
‘좋아!!아까 그 그로스캄프바겐도 크기를 좀 줄이고 마크 V와 함께 돌파 전차로 쓰고 이 악어 대가리 전차를 2파에서 쓴다면!!’
한스는 기뻐하며 LK2를 자세히 살펴 보았다. 기술자는 한스에게 이런 저런 설명을 했다.
“이 곳이 전차장 자리입니다!”
장성들이 한스를 보고 낄낄대며 수군거렸다.
“저 애송이는 580대가 정말 만들어질 것 이라고 착각하는 군.”
“지금 물자가 부족해서 제작 가능할지도 모르는데 말 일세. 내 확신하는데, 20대도 못 만들어질 거야!”
“착각하게 냅두게. 그래도 10대 정도는 제작 가능하다고 들었네.”
한스에게는 전선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절차가 남아 있었다. 그것은 바로 백작 작위를 수여 받는 것 이었다. 한스는 베를린 성 안으로 들어가며 얼마 전에 자신들이 파괴했던 아미앵 성당이 떠올랐다.
‘이것도 포탄 맞으면 다 부셔지려나..’
한스는 흰 장갑을 낀 빌헬름 2세 앞에 무릎을 꿇었다. 빌헬름 2세가 이제는 거의 권력이 없다는 사실은 한스도 공공연히 들어서 잘 알고 있었다.
‘이 작위 수여도 퍼레이드도..결국에는..’
지금 독일에서는 반전 시위가 벌어지고 있었고 빌헬름 2세에 대한 여론이 점점 안 좋아지고 있었다. 오랜 전쟁으로 인해 독일인들은 고통 받았고, 누군가에게는 그 책임을 물어야 했다. 전쟁이 패배로 끝나면 빌헬름 2세는 바로 자리에서 끌어내려질 것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위 수여는 엄숙한 절차 아래서 진행되었다. 작위 수여를 마치고 빌헬름 2세가 한스에게 말했다.
“하나였던 독일은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네. 파이퍼 백작, 하느님과 함께 전진하게. 신의 가호 아래 자네에게 영광과 승리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네.”
퍼레이드, 파티까지도 버텼지만 이 작위 수여로 인하여 한스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괴로움을 느꼈다. 한스는 장갑차를 타고 전선으로 다시 이동했다. 결국 퀴퀴한 폭약 냄새가 나는 전선에 다가오자 한스는 속이 후련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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