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살5
주살5
[뭐? 날 저주하려고 했다고 왜?]
명찬은 눈을 말똥말똥 뜨고 윤지를 쳐다봤다.
윤지는 부끄러워서 명찬과 눈을 마주 볼 수가 없었다.
[너가 이번 기말고사에서 1등을 해서 얘가 2등이 됐잖아. 분해서 그랬대]
빛나가 눈깔사탕을 빨면서 소파에 깊게 기대 앉았다.
[아, 그랬구나... ]
명찬은 잠시 말문을 잇지 못했다.
윤지는 어디 숨고 싶었다. 설마 서명찬이 퇴마부원이었을줄이야.
이럴줄 알았으면 여기 안 왔다. 아~ 쪽팔려. 죽고싶다. 옥상에서 뛰어내릴까
마치 알몸으로 수천명의 관객들이 쳐다보고 있는 스테이지 에서 실수를 해서 비웃음을 당하고 있는듯한 느낌이었다.
[미안, 너가 그런걸로 그렇게 고민하는 줄은 몰랐어]
뭐라고?
고개를 들어 명찬을 쳐다본다
투명한 눈동자. 명찬의 눈동자는 한없이 투명해서 명찬의 속이 비쳐 보이는 듯 했다.
왜 사과를 하지? 잘못한건 난데
난 널 죽이려고 했단말야.
바보같이 날 비웃어도 돼는데 왜 사과를 하는 거니.
[내가 전학와서 윤지 너한테 피해가 갈거라고는 정말 생각 못했어. 한창 내신 생각해야할 시기기도 한데 ]
명찬은 진심으로 윤지가 괴로워 한일에 대해서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있는것 같았다.
명찬은 윤지가 자신을 죽이려 한데 대해서 화가나거나 어이없는 마음 보다도 윤지의 아픔에 더 공감하고 있었다.
[나도, 공부하는게 얼마나 힘든지 아니까. 그런거라면 충분히 이해가 간다]
[아냐! 내,내가! 미안해! 내가 잠시 어떻게 됐었나봐...미쳤나봐!]
윤지는 외쳤다.
진심이었다.
윤지의 두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자신의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이 느껴졌다.
[미안해, 흑흑, 미안해, 흑흑 용서해줘...]
윤지는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었다.
[윤지야...]
불과 30분 전까지만 해도
퇴마부실에 들어오기 전까지만해도 서명찬은 가장 죽이고 싶은 원수였다.
하지만 마주대한 명찬은 윤지 상상속의 악마같은 모습이 아니었다.
자신보다 남의 아픔에 먼저 공감하는 좋은애였다.
[악마... 악마는 바로 나야...]
흐르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왜 이렇게 난 바보같을까.
명찬이 옆으로 와서 윤지의 어깨를 쓰다듬어 주었다.
[괜찮아 윤지야. 괜찮아.]
너무나 다정하고 따뜻한 손길
돌이켜 보면 이렇게 다정한 손길을 받아본건 처음이었다.
윤지는 명찬의 품에 파묻혔다
[으아아아앙]
마치 어린아이처럼 지금까지 마음속에 쌓아왔던 울분이 갑자기 무너진 둑에서 콸콸 터져나오는것 같은 울음이었다.
[아....]
명찬은 마음껏 우는 윤지를 쓰다듬어 주었다.
[하... 또 이상한 의뢰인이 왔네. 얘 그만울어]
빛나는 질린 표정으로 주섬주섬 물티슈를 찾아서 윤지에게 건넸다.
윤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물티슈를 받고 눈 주위를 훔쳤다.
[그래서 저주얘기를 해보자고, 웹사이트에서 너한테 저주술을 가르쳐 줬다는 녀석]
[아이디가 보둔킬러라고 했어요]
[흠. 들어본 아이딘데]
빛나가 생각을 가다듬었다.
[아는사람이에요?]
[나도 '레나'로 오래 활동했으니까 오컬트 네임드들은 좀 알거든]
명찬의 질문에 빛나가 답했다.
[근데 그 보둔킬러라는 애는 내가 한창 활동할때는 그냥 유명한 어그로꾼 같은 거였거든? 걔가 진짜로 현실에서 작동하는 주술을 작성할수 있게 됐단 말야? 좀 의왼데]
윤지는 폰에서 자신이 했던 주술이 적힌 페이지를 빛나에게 보여주었다.
빛나는 심각한 얼굴로 윤지의 핸드폰에 뜬 주술 내용을 주시했다.
[흠... 역시 어린애 장난수준의 주술이잖아. 근데 어찌어찌 큰 줄기는 잡았네. 이거라면 실제로 작동하기는 하겠어]
[어떻하죠? 일단은 저주를 풀어야 되잖아요?]
[글쎄. 일단 이 보둔킬러라는 놈을 잡기는 쉽지 않을걸. 술자를 잡아서 저주를 푸는건 무리야]
빛나의 말에 윤지는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그, 그럼 어떻하나요?]
[뭐 이렇게 된거 자업자득이지.]
빛나의 차가운 말에 윤지는 더 공포에 질려서 오들오들 떨고있었다.
[그런말이 어딨어요! 퇴마사가 사람을 구하려고 해야죠!]
[으... 농담이야]
명찬의 서슬퍼런 말에 빛나도 좀 뒤로 밀려났다.
[명찬아...]
윤지는 감동스런 눈길로 명찬을 보았다.
[그나저나 쟤는 널 죽이려고 했는데, 너도 사람 참 좋다. 화도 안나니?]
빛나가 얄궂게 이죽거렸다.
[미,미안해...!!]
윤지는 금방이라도 울거 같은 얼굴이었다.
[하. 그만해요. 윤지도 이렇게 반성하고 있잖아요]
[허...]
[그리고 난 퇴마사니까. 위기에 빠진 일반인을 구해야죠]
[? 너가 언제부터 퇴마사가 됐는데?]
[?? 퇴마사죠. ]
명찬이 어이가 없다는듯 빛나를 봤다.
[??]
[퇴마사가 된거 아니었어요?]
명찬이 약간 자신이 없다는듯 다시 물었다.
[넌 말야. 임시야. 그냥 일반인인데! 영력이 있어서 잠시 삼촌이 나을때 까지 날 돕는거라고! 퇴마사가 아무나 하는건줄아니!]
명찬은 좀 상처받은 얼굴이었다.
[....]
[야, 그런얼굴 하지마, 내가 뭐 나쁜말이라도 한거 같잖아. 퇴마사가 좋은거 하나도 없어. 빨리 일상으로 돌아가는게 다 널 위한거야]
[... 알았어요.]
명찬의 대답에 빛나도 좀 마음이 놓였다.
[그래도 법령스님의 상처가 나을때 까진 저도 퇴마사가 맞아요! 그러니까 그때까지는 퇴마사의 마음가짐으로 있을거에요!]
명찬의 눈에는 확신같은것이 차 있었다.
[뭐야? 너 퇴마사가 되고싶니?]
명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빛나는 큰 짐덩어리가 어깨를 누르는듯한 책임감을 한순간 느꼈다.
[하?! 뭐, 뭐야 언제부터...???]
[글쎄요. 그렇게 느낀건 최근이긴 한데. 잘 생각해 보니까 저랑 적성에 잘 맞는거 같아요! 저는 퇴마사가 되고싶어요!]
명찬은 밝은 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야... 야.. 제발 부탁이니까 그런소리는 관둬?!, 너 공부도 잘하잖아. 대학 가야지]
[공부는 지금까지 별 생각없이 해왔던거 같아요. 대학은 안가도 좋을거 같아요. 진짜 자기가 하고싶은거 해야죠]
[뭐?! 얘가 지금 뭔소리 하는거니? 윤지야 너도 뭐라고 말해봐]
[명찬이는 벌써부터 자기가 뭘 하고싶은건지 찾았구나.... 멋져...]
윤지는 명찬을 존경스럽다는듯 쳐다보고 있었다.
[헤헤 그래? 그렇게 대단한건 아닌데. 고마워 윤지야]
[아냐! 명찬아 대단해 나 응원할게!]
윤지랑 명찬은 둘만의 세계에 들어가 있엇다.
[쟤들 뭐라니???.... ]
어쨋든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빛나는 윤지의 몸에 새겨진 주술을 더 자세히 조사해봐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일단 윤지에 이마에 있는 주술을 카메라로 찍었다.
그리고 그 사진을 목성대학의 박근원교수에서 전달했다.
박근원 교수는 무속신앙을 연구하는 이 분야의 권위자였다.
빛나의 삼촌인 법령스님과는 오래전부터 아는사이라고 했다.
[박교수님이라면 뭔가 도움이 될만한 정보를 주실거야. 연락 올때까지 기다려 보자 ]
빛나의 말에 윤지는 다음날까지 기다려 보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