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새글

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10.28 17:21
최근연재일 :
2024.09.19 21:00
연재수 :
689 회
조회수 :
369,348
추천수 :
17,248
글자수 :
4,053,323

작성
24.07.27 21:00
조회
83
추천
11
글자
12쪽

646화 시시비비

DUMMY

646화 시시비비


“방금 나간 그 개새끼의 말은 허세에 불과해.”


눈앞에서 명나라 장수 주옥, 자신을 하남 수군 총병 대리라고 소개한 이가 사라지자 성친왕 아이신기오로 요토는 불쾌함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물론 조금 전에 주옥이 눈앞에 있을 때도 그러했으니 무슨 다름이 있겠는가 누군가 묻는다면 요토는 당당히 말할 것이다.


지금부터는 더욱 노골적인 말이라도 거리끼지 않고 입에 담을 것이니 확연히 다르다고 말이다.


이를 증명하듯 이어서 나온 요토의 말은 한층 더 과격함이 깃들어 있었다.


“당장 골통 부수고 돌려보내자고.”

“후후.”


마치 어린아이 투정과도 같은 결정에 예친왕 아이신기오로 도르곤은 답답함도 잊고 웃었다.


이에 요토가 불쾌하다는 얼굴로 바라보니 그는 웃는 얼굴로 물었다.


“안 한다고 하지 않았나?”

“그놈 앞에서 이야기지.”


뭘 당연한 걸 묻느냐는 투로 대꾸한 요토는 대답을 바라는 걸 넘어서 아예 강요할 기색으로 시선을 주니 도르곤을 웃음을 지우며 말을 이었다.


“그렇게 할 수야 없지.”

“그럴 이유를 하나만 대보라고.”


이글거리는 눈으로 이른 요토는 방금 주옥이 나간 방향을 돌아보며 말을 덧붙였다.


“허세나 부리는 건방진 놈의 목을 베고 전쟁을 재개하지 않을 가장 타당한 이유 하나만 대. 그러면 내가 넘어가지.”

“그러면 다음이 없을 겁니다.”


요토의 사나운 말에 대답한 것은 도르곤이 아니라 지순왕 상가희였다.


그의 말에 요토는 물론이고 도르곤의 시선도 그에게 향했다.


“다음 화평 사절 따위, 없는 게 나.”

“유불리에 따라서는 다를 수도 있겠지만 일단 그건 넘어가겠습니다.”


유불리를 논하는 말에 요토는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그도 잠시, 그들이 지금 승하고 있다고 하여 천년이고 만년이고 그럴 수 없다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화무십일홍, 권불십년이라는 말처럼 위세는 영원하지 않다.


“다음에 오는 사자가 아예 없을 겁니다. 항복 사절을 포함해서 말입니다.”

“!”


상가희가 조금 더 풀어 이른 말에 요토는 급격하게 머리가 식는 걸 느꼈다.


그리고는 다시금 주옥이 나간 곳을 보고 그가 서 있던 것을 보더니 으르렁거리듯 낮게 일렀다.


“설마 노렸다고?”

“그건 모르겠습니다.”


때때로 장수 하나가 목숨을 바치고 수십, 수백의 결사대가 나가서 흐름을 바꾸기도 한다.


하지만 작금 상황이 그렇게 해야 하는 상황인가 하면 상가희는 다소 의문스러웠다.


과정은 어찌 되었든 지금 형세는 결국 양쪽 모두 거리를 두고 대치하는 상황이니 어느 하나가 유리하고 불리하고를 논하는 것은 공염불과 다르지 않았다.


말 그대로 의미가 없는 것이다.


“얌전히 보내고 위협한 다음에 전쟁을 재개하는 건?”

“차선 정도는 되겠지.”


요토가 한 말에 도르곤이 잠시 다물었던 입을 열어 대답하니 그는 느긋하게 말을 이었다.


“다만 섣불리 내릴 결정은 아니다.”

“놈들이 협박한 내용이 사실일까 봐 그러나?”

“아니. 그런 것, 있다고 한들 대학사며 섭정친왕회 사람들이 어련히 알아서 잘 막아내겠지. 정히 위험하면 조선에서도 힘을 빌려줄 것이니 적어도 황상 곁에 있는 이들 가운데 하나가 변절하지 않는 한 걱정할 게 못 돼.”


도르곤이 하는 말에 요토는 물론이고 상가희 역시 그 가능성 없는 일에 웃음을 지었다.


순치제 아이신기오로 푸린은 아직 어리다.


하여 그 주변은 사실상 황태후들과 섭정친왕회의 엄정한 심사를 거친 이들만 자리할 수 있었으며, 그 자리는 적다 못해 좁아터질 지경이다.


‘정비를 통한다면 기회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근래에 황상의 곁에서 사이가 좋다고 하는 일본인 비를 떠올린 도르곤이나 그는 금세 그 생각을 지웠다.


나중이라면 모를까, 지금 그녀는 물론이고 바다 건너 일본에서도 별다른 정치적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당장의 일에 굳이 그녀까지 변수로 끼워 넣는 것은 치밀함이나 세심함이 아니라 과함이었다.


그러니 도르곤은 그녀며 그 주변 사람에 대한 걱정과 의심을 거두었다.


하지만 다른 생각이 곧장 존재감을 과시하니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일본이라. 슬슬 진짜배기 우방으로 쓰는 방식도 고려할 때인가?’

“실제로 일이 벌어지면 얼마나 위협이 되었는지는 중요하지 않게 될 텐데.”


지금과 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방책을 궁리하던 도르곤은 요토의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의 말이 옳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직까지는 그러한 일을 벌일 정도로 저들이 힘들게 여겨지진 않았다.


“저놈들이 지금 뒤가 아주 없는 상황이라면 그렇겠지. 하지만 알다시피, 지금은 둘 다 앞만 막혔다. 물러날 자리는 얼마든지 있어. 그리고 무엇보다도-.”

“무엇보다도?”


요토가 묻는 말에 도르곤은 말을 아끼지 않고 대답했다.


“저런 방식은 양날의 검이다. 자칫하면 자신을 베는 수단이 될 수가 있지.”

“성공과 실패를 떠나서 우리가 분기하기 때문인가?”

“그것도 있고.”


누군가 하면 다른 사람도 한다.


이것은 만고불변의 진리니 도르곤은 사실 저들이 심양에서 난리 치는 순간 비슷한 일이 어딘가에 일어날 수도 있었다.


그게 남경이 될 수도 있고, 장안이 될 수도 있으며, 성도가 될 수도 있다.


아니면 남양이 될 수도 있고 말이다.


또한 성공보다는 실패가 더 크게 점쳐지는 일이라는 건 명백했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드러내어 패로 삼을 리가 없으니 말이다.


“놈들이 말하는 건 간단하다. 이 정도로 각오가 있으니 적당히 물러나라는 거다.”

“성공하지 못할 일을 일으키는 건 각오가 아니야.”

“맞는 말입니다. 그리고 제가 그간 오가며 살핀바 병부시랑 진신갑은 그러한 목숨 걸고 난리 부릴 성품이 아닙니다.”


전에 회유하며 이간하기 위해 술책 부렸던 일을 언급한 상가희의 얼굴은 그때 함께하였던 이를 떠올리며 안색을 어둡게 했다.


그 모습에 작은 연민을 실어 바라본 도르곤은 이내에 눈에서 감정을 지웠다.


“방금 든 생각이지만 제법 훌륭한 방식이, 제안을 받으면서도 깨뜨릴 방법을 떠올렸다.”

“오, 그런 게 있어?”

“거절하지 않으면서 판을 깨려면 저들이 응하지 못할 조건을 제시해야 합니다.”


반색하는 요토에 비해 상가희는 신중한 얼굴로 말을 꺼냈다.


또한 그것으로 그칠 생각은 없다고 하듯 그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그리고 과한 조건은 분명하게 우리에게, 더욱 정확히는 제시한 쪽에 책임이 생깁니다.”

“그야 나도 알지. 하지만 이 전쟁, 왜 시작했는지 생각하면 우리는 반드시 가려야 할 게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을 텐데.”

“가려? 승패 말고?”


당황하여 되물은 요토의 말은 상가희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했다.


“시시비비를 가려야지.”


그런 두 사람에게 도르곤이 가벼이 말하니 상가희보다 앞서서 요토가 두 눈을 크게 떴다.


“흐하하하! 그래, 그랬지! 아아, 물론 가려야지!”

“예?”


그에 반해 상가희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그러면서도 상가희의 이성은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하듯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최근의 전투로 하여 이 전쟁이 시작한 계기까지 순식간에 거슬러 올라간 상가희는 어렴풋이 두 사람이 하는 말을 이해하고 웃었다.


“하하, 제가 선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두 분께 비하면 한없이 순수한 모양입니다.”

“그대가 순수하다고?”

“지나가던 개가 웃을 소리는 그만하라고.”


도르곤과 요토가 서로 웃으며 말하니 상가희는 가만히 생각하더니 제안을 입에 담았다.


“이 일을 제가 말하는 게 좋겠습니까? 아니면 한번 사자로 다녀오는 게 더 좋겠습니까?”

“전자는 좋으나 후자는 솔직히 말하면 위험하니 사양하고 싶군.”


턱을 쓰다듬으며 말한 도르곤은 잠시 더 생각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 여기서 말하여 나름대로 대비하게 함은 전쟁 지속이라는 측면에서는 영 좋지 않은 거 같군. 하지만 한편으로는 저들의 결속을 알아보기 위한 기회로 쓰는 것도 나쁘진 않아.”

“산둥을 통한 저들의 밀사 대처까지 생각하면 후자가 낫지 않겠습니까.”

제 의견을 말한 상가희는 슬며시 주변 눈치를 보더니 목소리를 낮추어 말을 덧붙였다.


“이런 말이 두 분께 어떻게 들리실지는 모르나, 알고도 방치하였다는 오명은 가능하면 피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옳은 말이오.”

“마음에 들지 않지만 맞는 말이군.”


도르곤과 요토가 각각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니 상가희는 제 말이 잘 먹혔음을 알고 남몰래 안도했다.


‘후, 적어도 두 번 배반한 놈이라는 소리는 안 듣겠군.’


상가희는 이러한 문제가 나중에 터지면 그 책임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마구 사방에 튈 수 있음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허면 뜻이 어느 정도 모아졌다고 생각하니 그자를 다시 부르고 제가 말하도록 하겠습니다.”


그가 한 제안에 도르곤과 요토는 달리 반응하지 않고 무언으로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상가희는 바깥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명나라 사자를 도로 안으로 들여라!”



***



‘생각보다 빠르군. 오랑캐들이 다른 건 몰라도 나아가며 물러가는 속도 하는 빠르다고 하더니 이것도 그러한 것인가?’


자신을 다시 부른다는 말을 듣고 걸음을 옮긴 주옥은 머릿속에 든 상념을 털어내고자 고개를 흔들었다.


‘정신 차려라, 지금 중요한 것이 이놈들 늦고 빠르고더냐.’


어떻게든 저들을 대화할 자리로 이끌어 내는 것.


그것이 중요함을 다시금 떠올린 주옥은 마음을 단단히 다지고 안으로 들어섰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무슨 말을 듣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침착하고 대범하게 대처하리라 마음먹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 결심은 상가희가 꺼낸 몇 마디에 크게 흔들리게 되었다.


“대화에 응할 수 있으며, 화평이든 정전이든 맺을 생각도 있다. 하지만 그 전에 반드시 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으니, 이 전쟁에서 책임을 가리는 일이다.”

“책임을 가린다니, 서로가 나라를 위하여 싸우는 일에 적을 많이 죽였다고 죄인으로 내어주기라도 하라는 말씀이십니까? 청나라 사람들은 도의가 너무 없으시군요.”


한껏 불쾌함을 드러내어 이르는 말에 상가희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일은 바라지 않소. 다만 이 전쟁을 시작한 것이 순나라의 과도함에 있었음을 기억하니, 그에 대한 책임과 사과 정도는 받아내야 마땅하겠지.”

“······지금 뭐라고 하신 겁니까.”


제 귀를 의심하며 되묻는 말에 주옥은 금세 같은 말이 돌아오는 걸 들을 수 있었다.


“순나라에서 전쟁을 시작한 책임을 지라고 하였소.”

“이 전쟁은 순나라 아니라 당신들이 시작한 겁니다!”


명나라 사람이라고 한들 이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모르는 이는 없으니 그 시작은 분명 청나라 수군의 도발이라는 걸 주옥 역시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이런 주옥의 반응이 적잖이 마음에 들었는지 상가희는 뻔뻔함을 얼굴에 두르며 말을 이었다.


“우리가 무얼 했다고? 도적을 소탕하였더니 누명을 씌웠던 걸 기억할 따름이다.”

“이 무슨!”


격양하여 화를 내려던 찰나, 주옥은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참아내고는 호흡을 골랐다.


‘후우. 내가 아니야. 정하는 것도, 화를 내는 것도 내가 아니야.’


자신은 전령일 뿐이라는 사실을 되새긴 주옥은 도르곤과 요토를 보며 물었다.


“두 분 전하께서도 같은 의견이십니까?”

“그러하다.”

“당연한 일이지.”


셋이 뜻을 같이하였으니 이는 그저 상가희가 면피하기 위한 일이 아님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좋습니다. 허면 그 조건을 전하여 말할 것이니, 다음에 뵙는 것이 부디 병기가 아니라 말로서 겨루는 자리이길 기원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 작성자
    Lv.68 ageha19
    작성일
    24.07.27 21:20
    No. 1

    명나라는 판을 물리려 하고 반대로 청나라는 판을 깨려 하는군요. 과연 주옥은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까?

    찬성: 0 | 반대: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664 663화 내어주고 얻기 +2 24.08.21 72 11 12쪽
663 662화 달갑지 않은 방법 24.08.20 72 11 14쪽
662 661화 하늘 아래에 있는 세상 +2 24.08.19 70 12 13쪽
661 660화 아침에 다르고 저녁에 다르다 +2 24.08.16 85 11 13쪽
660 659화 밝기 전이 가장 어둡다 24.08.15 81 14 12쪽
659 658화 현재만이 전부가 아니다 +3 24.08.14 73 14 12쪽
658 657화 두 마리 토끼 +1 24.08.13 87 10 13쪽
657 656화 끼어들 준비 +1 24.08.12 79 12 12쪽
656 655화 공정한 땅 +3 24.08.11 80 11 13쪽
655 654화 천하를 가둘 울타리 +3 24.08.10 88 12 12쪽
654 653화 천자론 +6 24.08.09 87 12 12쪽
653 652화 대신할 수 있는 자리 +3 24.08.08 82 11 12쪽
652 651화 천하를 다스리는 자격 +3 24.08.07 86 11 14쪽
651 650화 언제나 진심인 사람들 +2 24.08.01 86 9 12쪽
650 649화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라 +2 24.07.31 81 10 13쪽
649 648화 고장난명 +2 24.07.30 78 11 12쪽
648 647화 시작과 지속은 쉽지만 끝은 어렵다 +1 24.07.28 78 11 12쪽
» 646화 시시비비 +1 24.07.27 84 11 12쪽
646 645화 화전(和戰) +1 24.07.26 85 12 12쪽
645 644화 그들의 책임 +1 24.07.25 78 13 12쪽
644 643화 합의에 필요한 숫자 +1 24.07.24 79 12 11쪽
643 642화 내세울 만한 이 +1 24.07.23 83 13 12쪽
642 641화 빛이 보이면 다가간다 +2 24.07.21 93 14 12쪽
641 640화 스스로 서기 위하여 +2 24.07.20 90 14 12쪽
640 639화 고난 끝에 얻은 것은 +1 24.07.19 86 15 12쪽
639 638화 좋고 싫고는 중요하지 않다 +2 24.07.18 89 15 12쪽
638 637화 호언장담 +2 24.07.17 85 14 13쪽
637 636화 원동력 +1 24.07.16 83 13 14쪽
636 635화 버림받은 자의 각오 +2 24.07.15 77 14 13쪽
635 634화 뒤틀린 믿음 +1 24.07.14 94 15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