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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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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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5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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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9화 밝기 전이 가장 어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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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9화 밝기 전이 가장 어둡다


“청나라 사람들은 단순한 듯 보이지만 실로 방심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 함이 마땅하겠습니다.”


산둥 아문 첨정 송시열이 건넨 말에 소현세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첨정이 말한 대로요. 하지만 따지고 보면 세상 어느 곳이나 그러한 일은 다르지 않은 법. 청나라의 대단한 점은 그렇게 여러 특색이 있다는 게 아니오. 아마 그대라면 이미 알겠지.”


소현세자가 하는 말에 송시열은 공손하게 대답했다.


“모두가 적절하게 자리하여 대응한다는 것이겠지요. 외조 시절부터 느낀 바가 있으니 저들은 실로 지혜가 필요한 곳에는 지혜에 뛰어난 자가, 무력이 필요한 곳에는 무력이 뛰어난 자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전장에서 싸우는 이에게 가장 최고로 치는 덕목은 용맹함이니 그런 이라면 머리가 다소 부족하다고 한들 흠으로 잡지 않는다.


반대로 후방에서 지원하는 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머리와 세심함이니 용맹함이 없다고 하여 흠으로 치지 않는다.


그러니 부족한 이라고 한들 자리만 제대로 잡게 하면 쓸모가 있으니 청나라는 기이하게도 이런 면에서 뛰어나다고 할 수 있었다.


“다만 이는 처음이기에, 아직 창건의 열기가 식지 않은 덕이라고 사료됩니다.”


송시열이 덧붙이는 말에 소현세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은 누구나 뜨겁고 강렬하지. 그리고 부자는 망해도 삼 대를 가는 법.”

“허면 이다음은 어려워질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들이 중흥한 것은 분명 지금으로부터 세면 딱 삼 대였다.


그러한 사실을 잘 기억하고 있는 소현세자는 잠시 미간을 좁히며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모르겠군.”

“저하께서는 정녕 영명하십니다.”


모르겠다는 말에 송시열은 크게 감탄하여 고개를 숙였다.


미래를 직접 보기라도 하지 않은 이상 판단할 수 없음은 지극히 당연하니, 과거에 있었던 일은 반복된다고 하나 그것이 온전하게 같지는 않았다.


누군가는 삼 대가 지난 후에 망하나 또 다른 누군가는 삼 대가 지난 후에 다시 부흥하기도 한다.


천하 형세 또한 지금 이 말과 같이 흘러가니 이러쿵저러쿵 속단하여 말하는 것보다는 솔직히 모른다고 하는 것이 더 나은 대답이며 가장 현명한 대답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니 저는 이 말씀을 반드시 드리고자 합니다. 적어도 조선의 앞날은 밝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말입니다.”

“이 모든 걸 무사히 해낸 다음에는 반드시 그럴 것이오.”


당연하다고 하듯 말하나 소현세자의 얼굴에는 긴장이 서려 있었다.


이미 부왕과 여러 차례 논하였고 이러한 일 역시 상정하기는 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이론과 실제는 다른 법이며,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법이었다.


말하는 것으로만 모든 것이 해결되며 그대로만 이루어진다면 농부가 봄에 씨를 뿌릴 때는 언제나 풍년이어야 하며 어부가 그물을 던지면 풍어여야 한다.


또한 붓을 들었다면 명필이며, 검을 들었다면 천하를 호령하는 장수가 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세상에 풍년과 풍어라는 말은 흔하지 않으며 천하에 이름 높은 명필과 장수는 손에 꼽는다.


마음먹은 대로 해낸다는 것은 이렇듯 어려우니 소현세자는 제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한양에서 부왕과 몇 번이고 주고받은 말들 가운데서 금과옥조로 삼은 것은 힘주어 말했다.


“우리는 누구의 편도 들지 않습니다. 편을 든다면 오로지 하나, 그것이 인의를 위함일 때만입니다.”

“저하, 대리국에서 사람들이 도착하였나이다.”


소현세자의 다짐과 함께 마지막 참가자가 산둥에 발을 들였음을 고하는 말이 들렸다.


“첨정, 시간이 된 모양이오. 가보십시다.”



***



‘기이한 일이구나, 기이한 일이야.’


가장 늦게 산둥에 왔지만 회담장에는 가장 먼저 발을 들은 대리국 국왕 임경업은 제 처지에 대한 생각을 하며 속으로 생각에 잠겼다.


순나라 땅이라면, 그들이 수도로 삼은 남양이라면 갈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남경에서 명령을 내린다면 그는 지체없이 군사를 움직였을 것이며, 그 일에 조금도 주저나 망설임을 품지 않았을 터였다.


양나라 땅은 다른 의미로 밟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 돕기 위해, 그리고 갈 사람이 임경업밖에 없다면 두 번 고민하지 않고 향했을 것이다.


명나라 땅은 몇 번은 밟을 거라고 여겼다.


황상께서 그를 부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청나라 땅은 가능할지는 몰라도 그 땅 밟기를 소망했다.


그가 생각하던 대명 천하, 회복하길 바라는 제대로 된 천하가 돌아오려면 응당 그래야 했기 때문이다.


조선 땅도 소망은 했다.


회복이니 그런 게 아니라 그 역시 사람이라고 하듯 종종 그리움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말년에 죽기 전에는 한번 자질구레한 구실 하나 잡고 고향 땅을 보러 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산둥 땅을 밟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해보지 않았으니, 이곳은 그와 관계가 없는 땅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전에 조선에서 북경에 향할 때에 지나가기는 했으나 그뿐, 다시 한 번 그곳에 갈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조선으로 돌아갈 일이 있다고 한들 남경에서 배를 내어 갈 예정이었고 말이다.


그러니 산둥은 그에게 있어서 한번 지나간 일이 있음에도 기이하고 낯선 땅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땅에 와서 중요한 일을 하게 되다니, 임경업은 참으로 놀랍고 두려웠다.


‘변방이 대국을 움직이고 있구나. 그것도 창칼의 도움이 없이.’


그 땅에, 그 나라에 있을 때는 상상도 해보지 못했던 일이다.


그러니 놀랍고, 그러니 두려웠다.


그러나 떠난 일에 후회는 없었다.


만약 누군가 임경업에게 물어서 그때로 돌아가서 다시 선택하라고 하면 그는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이건 놀랍고 대단하며 두려운 일임에는 분명하지만, 그렇기에 임경업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가 생각하는 안정된 천하와 지금의 천하는 그 결이 아주 다름을 말이다.


“조선의 세자께서 드십니다!”


바깥에서 사람이 왔음을 이르는 말이 들리니 임경업은 생각을 그치고 자세를 바로 했다.


“대리국 국왕 전하시군요. 이리 뵈어 반갑습니다.”


건네는 인사에는 친근함이 담겨 있으나 그 친근함은 오로지 사무적인 것에 그치지 조선의 세자가 임경업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분명히 드러나 있었다.


친분은 있으나 외인.


그것이 임경업이라는 자를 대하는 작금 조선의 시선이다.


이러한 일은 예상하였고 이미 전부터 경험하여 익히 안 것이며 익숙해졌다고 여겼다.


헌데 기이하게도 임경업은 이번은 특별히 입맛이 쓰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뵈니 반갑습니다.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물론이고 조선에는 별일이 없습니다.”


별일이 없다는 말에 임경업은 눈앞에 소현세자를 두고 있음에도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릴 뻔했다.


오늘 여기에 여러 나라가 모이는 것은 물론이고 이로 인해 사방에 잠시나마 전쟁이 멎었다.


그런데 그 모든 걸 주도한 조선이 별일이 없다니, 임경업이 아니라 누가 들어도 기가 막혔을 말이다.


“청나라의 예친왕께서 드십니다!”

“명나라의 병부시랑께서 드십니다!”

“순나라 정왕 전하께서 드십니다!”

“양나라 시왕 전하께서 드십니다!”


그러나 그것을 토로할 새도 없이 연이어서 자리할 사람들이 들어온다는 말이 여러 나라 말로 울리니 임경업은 나오려는 말을 도로 삼키며 자리에 앉았다.


그 모습을 본 소현세자는 가벼이 웃으며 제 자리로 가서 이제 모두 자리한 것을 확인하며 입을 열었다.


“모두 이곳에 모이심을 감사드립니다. 허면 천하를 위해 논하는 걸 시작해 보겠습니다.”



***



이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들은 노고와 시간이며 자리한 면면들이 무색하게 논의는 매우 단순하고 막힘없이 흘러갔다.


“지금 개봉에서 허송세월하고 있는 장정들은 모두 청나라가 우리 순나라를 도발하여 그렇게 되었소. 저들은 사람을 죽이고 배를 불태운 후에 양곡을 탈취하여 빼앗아 갔소이다. 뿐만 아니라 그다음에는 우리를 비웃듯 돌려주니, 그 소행이 실로 같, 크흠. 아니, 가증하다 하겠소이다.”


일을 유리하게 돌림과 별개로 그 당시 느낀 분노는 여전하니 순나라 정왕 이자성은 말을 이어가면서 제 감정을 다스리기 위해 부던히 노력했다.


“우리 청나라는 그저 선의로 양곡을 돌려주었을 뿐이오.”


그러나 그 인내도 예친왕 아이신기오로 도르곤이 뻔뻔하게 하는 말에 그대로 무너지니 이자성은 더 참지 못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직도 그런 말을 하다니!”

“양자간의 사실은 알겠습니다. 허면 각 왕들께서는 이 일의 옳고 그름이 어디에 있는지 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자성이 더 날뛰기 전에 멈추듯 소현세자가 입을 여니 사람들은 기이함을 느끼며 서로를 보았다.


“이 사람은 결정하기 전에 조선의 세자께 여쭙고 싶은 게 있소이다.”

“말씀하시지요.”

“내가 듣기로 이 일에 의결권은 오로지 우리 왕들에게만 있다고 들었소이다.”

“들으신 그대로입니다.”


소현세자가 고개를 끄덕여 대답하니 양나라 시왕 손전정은 한층 더 알기 어렵다는 얼굴로 다시 물었다.


“그것은 내가 할 말은 아닌 거 같지만 구태여 말하리이다. 이 자리에서 의결한다면 우리 세 번국에 조선만 권한을 행사할 수 있으니, 이 일은 누가 어떻게 발악한다고 한들 청나라의 잘못이라고 결정지어질 것이오.”

“그렇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될 수도 있다니······.”


천지가 개벽하지 않는 한, 아니 설령 그런다고 한들 과연 바뀔까 싶은 현실을 들이밀었음에도 소현세자는 흔들리지 않았다.


허나 더욱 기괴하여 껄끄러움을 느끼게 하는 것은 그게 아니었다.


‘저자는 왜 저리 침착하단 말인가?’


이대로 정하여지면 손해를 보는 것은 청나라가 되리라는 것은 세 살배기 어린아이가 보아도 명백했다.


그런데 도르곤은 그걸 용납할 생각인지 그대로 앉아서 귀 기울임은 물론이고, 소현세자 역시 딱히 개의치 않았다.


전자는 직접적으로 손해를 볼 것이며, 후자는 공정적이라는 면에서 큰 타격을 받을 것이 분명하거늘 어찌 이리 침착한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양나라는 청나라에 과가 있음을 주장하오.”

“대리국 역시 그에 동의하오.”

“하, 당연히 나 역시 그러하다!”


손전정의 말에 이어서 임경업이 말하니 이자성 역시 질세라 소리를 높였다.


그에 고개를 끄덕인 소현세자는 도르곤을 바라보며 물었다.


“제가 의견을 표하기 전에 예친왕께서는 달리 할 말이 없으십니까?”

“있다.”

“허면 하시지요.”


소현세자의 말에 도르곤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먼저 말하자면, 우리 청나라가 양곡 돌려준 일에 선의로 하였음은 진심이다. 허나 안타깝게도 과가 있음도 인정하니, 전선에서 공을 세우고자 한 이가 함부로 날뛰어 오해가 있었음을 알리는 바요.”

“오해? 오해라고!”


도르곤이 하는 말에 이자성이 벌떡 일어나서 손가락질을 하니 소현세자가 그를 말렸다.


“정왕 전하께서는 진정하여 주십쇼. 이곳은 논의로서 시시비비를 가리고자 모인 장소입니다. 과도한 행동은 막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과도하다니! 저 자들이 한 일이 명백하거늘 어찌 과하다고 하는가!”

“결론이 완전히 지어지기 전에 감정을 부딪치는 일은 과한 일입니다. 심정은 이해하나 그걸 용납하면 이 자리는 금세 도리를 잃게 됩니다.”


차분한 말에 이자성은 이를 악물고 자리에 앉았다.


그걸 본 소현세자는 고마움과 미안함을 담아 가벼이 고개를 숙여 보인 후에 도르곤에게 다시 물었다.


“예친왕께서 주장하시는 일, ‘오해’에 대해 상세히 듣고자 합니다.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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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4 663화 내어주고 얻기 +2 24.08.21 72 11 12쪽
663 662화 달갑지 않은 방법 24.08.20 72 11 14쪽
662 661화 하늘 아래에 있는 세상 +2 24.08.19 70 12 13쪽
661 660화 아침에 다르고 저녁에 다르다 +2 24.08.16 85 11 13쪽
» 659화 밝기 전이 가장 어둡다 24.08.15 81 14 12쪽
659 658화 현재만이 전부가 아니다 +3 24.08.14 73 14 12쪽
658 657화 두 마리 토끼 +1 24.08.13 87 10 13쪽
657 656화 끼어들 준비 +1 24.08.12 79 12 12쪽
656 655화 공정한 땅 +3 24.08.11 80 11 13쪽
655 654화 천하를 가둘 울타리 +3 24.08.10 88 12 12쪽
654 653화 천자론 +6 24.08.09 87 12 12쪽
653 652화 대신할 수 있는 자리 +3 24.08.08 82 11 12쪽
652 651화 천하를 다스리는 자격 +3 24.08.07 86 11 14쪽
651 650화 언제나 진심인 사람들 +2 24.08.01 86 9 12쪽
650 649화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라 +2 24.07.31 81 10 13쪽
649 648화 고장난명 +2 24.07.30 78 11 12쪽
648 647화 시작과 지속은 쉽지만 끝은 어렵다 +1 24.07.28 78 11 12쪽
647 646화 시시비비 +1 24.07.27 83 11 12쪽
646 645화 화전(和戰) +1 24.07.26 85 12 12쪽
645 644화 그들의 책임 +1 24.07.25 78 13 12쪽
644 643화 합의에 필요한 숫자 +1 24.07.24 79 12 11쪽
643 642화 내세울 만한 이 +1 24.07.23 83 13 12쪽
642 641화 빛이 보이면 다가간다 +2 24.07.21 93 14 12쪽
641 640화 스스로 서기 위하여 +2 24.07.20 90 14 12쪽
640 639화 고난 끝에 얻은 것은 +1 24.07.19 86 15 12쪽
639 638화 좋고 싫고는 중요하지 않다 +2 24.07.18 89 15 12쪽
638 637화 호언장담 +2 24.07.17 85 14 13쪽
637 636화 원동력 +1 24.07.16 83 13 14쪽
636 635화 버림받은 자의 각오 +2 24.07.15 77 14 13쪽
635 634화 뒤틀린 믿음 +1 24.07.14 94 1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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