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 위의 이데올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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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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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1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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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12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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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화

DUMMY

정보국장의 차 안은 쥐죽은듯이 고요하다. 입을 여는 순간 얇은 유리가 깨질 것 같다. 그러면 자신을 괴롭히는 현실로 되돌아 간다.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콘트라는 조용히 앞만 바라보았다. 하지만 칼비티움은 그를 내버려둘 생각이 없어 보인다.


“움브라는 어떻게 됐나?”


“······ 이미 알고 계시시라 생각됩니다만.”


“나라고 모든 걸 아는 것은 아닐세. 아는 것만 알 뿐이야. 아는 것만··· 말이지.”


말은 흐리지만 웃음기 가득한 칼비티움의 태도를 보며 콘트라는 확신했다. 이 남자가 자신의 조직 움브라의 결말에 관여했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칼비티움은 정보국장이다. 움브라 실장 노비시메조차 함부로 다루지 못 한다. 괜히 트집을 잡아 봐야 본인만 난처해질 것이다.


그런데 껄끄러운 화제를 먼저 꺼낸 건 오히려 상대방이다.


“내가 각하께 움브라를 해체할 것을 건의했다고 생각하나?”


“솔직히 말해도 됩니까?”


“물론이네.”


“예, 그렇습니다.”


콘트라의 대답을 들은 칼비티움은 역시 솔직한 사람이라며 껄껄 웃어 댔다.


“너무 솔직한 것도 좋지는 않아. 특히 이런 정계에서는 더더욱.”


“정보국장님은 수상 각하께 어떻게 보고하신 겁니까?”


“있는 대로 했을 뿐이야. 아메리고의 정계에 분란을 일으켰고, 자신의 입지를 조금이라도 늘리기 위해 싸우느라 당분간은 우리를 견제하지 못할 것이라고.”


여기까지만 들으면 사실뿐이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아메리고에서 벌인 작전이 아니다. 은근히 중요한 정보국장이 은근히 자신이 원하는 화제를 회피하고 있음을 눈치챈 콘트라는 결국 자신의 입으로 꺼내고 말았다.


“정말 그것만 말씀하신 겁니까? 그럼 알코즈의 일은 어떻게 귀에 들어갔는지 의문이군요.”


“알코즈의 일이라니 영문을 모르겠군.”


“입가는 가리고 말씀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참고하지.”


대답과 달리 칼비티움은 하관을 끝까지 가리지 않았다. 그의 두 손은 핸들에 올려져 있을 뿐이다. 두 남자가 탄 차는 복잡한 도로를 부드럽게 벗어나 한적한 골목으로 향했다. 말이 좋아 한적하다는 것이지, 사람 하나 죽어도 전혀 모를 곳이다.


“콘트라 도크트리나는 외교부도, 움브라도 품을 수 없는 남자야.”


“너무 과한 칭찬입니다.”


“지나친 겸손은 오히려 독이 된다네. 주변의 질투는 물론, 오해를 사기 마련이지.”


“참고하겠습니다.”


“좋지 않은 걸 배웠군.”


칼비티움은 껄껄 웃으며 뒷좌석에 손을 뻗었다. 그의 손이 다시 돌아왔을 때, 거기에는 검은 봉투가 쥐어져 있다. 정보국에서 관리하는 일급 기밀이다. 어떤 경우는 수상조차 보지 못한다. 물론 절대적인 권력을 쥔 앙겔루스 디아볼리의 대에 와서는 이야기가 달라졌지만서도.


“제가 감히 봐선 안 될 것 같습니다.”


“괜찮아. 어차피 나와 자네만 입다물면 그만이니.”


“세상에 절대란 말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움브라도 사라지지 않았겠죠.”


콘트라의 입가에 감도는 씁쓸한 미소를 본 칼비티움은 직접 봉투를 벌렸다. 그러자 예상외로 아주 얇은 보고서만 들어 있다. 대충 봐도 표지를 제외하면 한두 장에 불과하다. 하지만 서류를 읽은 콘트라의 눈동자는 크게 떨렸다.


“이게 사실입니까?”


“이데아 정보국은 어디 신생국처럼 허술하지 않아. 괜히 일급 기밀이겠나?”


“하지만 이 서류가 진본이라면···”


“모가지가 날아가겠지. 그것도 엄청 높으신 양반들의.”


이데아에서 몇 없는 장성인 정보국장이 높다고 말할 정도면 최소한 원수, 어쩌면 장관급 이상일지도 모른다. 극심한 충격 때문인지 콘트라의 입술은 파르르 떨렸다. 아내가 그렇게 사랑하던 붉은 색이 새파랗게 질린 상태다. 그걸 본 칼비티움은 히터라도 틀어 줘야겠다며 농담을 던졌다.


“국장님이 이 문서를 가지고 있단 걸 수상 각하께서는 아십니까?”


“그럴 리가 있겠나? 만약 그랬다간 내 목부터 날아가겠지.”


콘트라는 납득이 간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머리는 멈추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다.


“왜 이런 기밀을 저에게 알려 주시는 겁니까? 제가 혹여나 각하께, 아니면 아디우토르 보좌관께 말씀드릴 수도 있지 않습니까?”


“뭐, 틀린 말은 아니야.”


말을 도중에 멈춘 칼비티움은 담배를 꺼냈다. 어두운 골목에서 붉게 빛나는 한 점은 미약하지만 콘트라의 눈에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불길에 이끌려 온 어리석은 나방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상관있나?”


“그게 무슨 말입니까?”


“움브라는 이미 수상의 신뢰를 잃었어. 자네의 충언 따윈 그저 살기 위한 발버둥으로만 보이겠지.”


칼비티움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날카로운 비수처럼 콘트라의 가슴을 찌른다. 사실 그도 이미 알고 있었다. 앙겔루스 수상은 이미 움브라를 정리할 생각이었다. 설령 알코즈 건을 잘 해결했어도 다른 트집을 잡아 구성원을 갈았을 것이다.


“그래도 수상 보좌관이···”


“아디는 이미 내 편이야.”


“······ 예?”


“내가 한번 예상해 보지. 콘트라 도크트리나는 알코즈의 개입을 어떻게든 막고 싶었다. 이를 위해 알코즈의 약점을 건드렸다. 과거 폭동을 일으켜 콘트라 데키무스를 죽인 것을. 아마도 실권자인 왕세자와 독대할 수 있는 인물을 만났겠지. 음, 예를 들면 첩보 장관 나크려나.”


“그걸 어떻게 아신 겁니까?”


“수석 장관이 말하더군. 움브라에서 수상 각하께서 허가하셨으니 알코즈에 대한 이권을 발동하겠다고. 이쪽의 정보력을 너무 우습게 생각했어, 너희는.”


“그렇다면 아디우토르 보좌관이 훼방을 놓았다는 겁니까?”


“정확해.”


칼비티움은 연기를 내뿜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디에게 당장 움브라의 수작을 망치라고 말했어. 그 친구 잠시의 고민 없이 알코즈 쪽과 만나고 오겠다 하더군. 덕분에 난 기분을 잡친 왕세자와 오붓한 분위기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당신들은 도대체 뭔 짓을 벌인 거야!”


콘트라의 고성이 골목을 울렸다. 그래도 아무도 찾아오는 이가 없다. 칼비티움은 피식 웃으며 봉투를 뒷좌석에 집어던졌다.


“내가 전에 물은 적이 있었지. 자네가 그렇게 일하는 이유는 무엇이냐고 말이야.”


“그랬습니다.”


“자네는 절대 자기의 능력이나 성과를 인정받으려는 게 아니라고 했어.”


“그렇습니다. 전 언제나 이데아를 위할 뿐입니다.”


“나도 마찬가지야.”


칼비티움의 대답에 콘트라는 인상을 찌푸렸다. 저 남자는 정보국장이라는 요직을 맡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디우토르 수상 보좌관과 작당하고 알코즈가 팔리아에 개입하게 만들었다. 그 일이 얼마나 자국에 불리하게 작용할지 알면서도. 그렇기에 콘트라는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어진 이야기는 콘트라의 입을 멈추기에 충분했다.


“지난번에도 말했지. 이데아의 국민이 죽더라도 상관없어. 최소한의 피해만 입고, 최대한 많은 사람이 다치지 않을 방법이 있다면 그게 정녕 이 나라를 위한 길 아니겠나?”


여전히 이해하기 힘든 논리라고 생각하는 콘트라다. 그의 입장에서는 국민 한 명 한 명이 소중할 뿐이다. 물론 어쩔 수 없는 희생이 뒤따르는 것은 당연하다. 전쟁을 함에 있어서 전사자가 나오지 않길 바라는 것은 허황된 생각이다. 하지만 이게 최선이라고 주장하면서 불필요한 전쟁을 일으킬 필요까지는 없다. 눈앞의 남자가 딱 그 모양이다.


그런데도 콘트라는 어쩐지 칼비티움의 이야기가 더 듣고 싶어졌다.


“알코즈가 팔리아에 개입하든 개입하지 않든 이데아가 입을 피해는 없습니다. 애시당초 리다이트 민족을 이용해 대리전을 펼치는 중이니까요. 지금 중요한 건 이익이 달라진다는 겁니다. 팔리아로부터 수급할 수 있는 자원과 노동력, 그리고 남쪽으로 진출할 수 있는 거점을 얻을 수 있는 기회인데 그걸 왜 걷어찬 건지 이해가 안 됩니다!”


“자네는 똑똑하지만 영리하지는 못해.”


“그게 무슨 말입니까?”


칼비티움은 혀를 차며 필터까지 탄 담배를 창밖에 던졌다.


“얻을 건 이미 다 챙겼어. 알코즈는 녹지 지대를 먹지 않기로 했다.”


“이해가 안 갑니다. 그러면 그들이 얻을 게···”


“신망과 정통성.”


새 담배를 입에 문 칼비티움은 성냥에 불을 붙였다. 묘한 소리를 내며 타드는 끝에서 자극적인 냄새가 난다.


“북방의 지원을 받아 신식 무기로 무장한 리다이트는 사막 지대까지 손에 넣으려 한다. 하지만 남방, 그리고 마엘리교의 종주국인 알코즈가 이를 지켜 준다. 딱 봐도 전형적인 영웅 이야기 아닌가? 사막 지대의 경계선상에서 유지만 하면 피해도 거의 없을 테고.”


“설마 거기까지 알코즈와 이야기가 된 겁니까?”


납득하지 못 하는 콘트라를 향해 칼비티움은 연기를 내뿜었다. 독한 연기 속에서도 눈을 감지 않으려 어떻게든 버티는 콘트라다. 그런 그를 보며 역시 독종이라고 생각하는 칼비티움이다.


“아디가 그렇다고 하면 그런 거겠지.”


“수상 보좌관은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콘트라가 어떤 일을 당했는지도 잘 알면서!”


“잘 알기 때문이지 않겠나?”


“그게 무슨 말입니까?”


콘트라의 물음에 칼비티움은 방금과 같은 이야기라고 답했다.


“최소한의 피해로 최대한의 이익을 얻는다. 이데아를 병들게 한 앙겔루스 디아볼리를 숙청하고 새로운 수상을 세워서. 그게 나와 아디의 지향점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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