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 위의 이데올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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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G
작품등록일 :
2023.07.1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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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7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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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화

DUMMY

다음 날, 이데아의 방위를 위해 인생을 바친 한 남자의 명이 다했다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하지만 이는 손바닥보다도 작게, 심지어 한구석에 내몰린 채였다. 당연했다. 모든 신문의 일면은 이데아의 기생충 팔리안 난민이 일으킨 폭동이란 제목으로 도배되었으니 말이다. 다만 뉴스로는 단 한번도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 이상했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집요한 마음과 이방에서 겪었던 수모가 낳은 원한을 품은 폭도의 행진은 거침이 없었다. 세계적으로 안전하고 깔끔하기로 유명한 도로를 걸어 수도로 입성한 그들을 막을 자는 아무도 없었다. 여기서 상반된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칼리스, 여긴 내가 어떻게든 해 볼 테니 당장 국장님께 가서 인원을 지원해 달라고 해.”


“그건 무리입···”


“닥치고 까라는 대로 까, 새끼야!”


“···.. 알겠습니다.”


대화를 마친 후배는 차를 타고 떠났다. 그렇게 누군가는 소임을 다하면서 미래를 바랐다.


“선배님, 시민들이 휩쓸리지 않게 인솔해야 않겠습니까?”


“음, 그래라. 나는 차고 쪽에서 응급 구호품 찾아볼게.”


“감사합니다!”


“난 그걸 들고 도망칠 거지만, 끌끌.”


대화를 마친 선배는 차를 타고 떠났다. 그렇게 누군가는 소임을 내던지고 미래를 버렸다.


어떻게 되었든 간에 경찰의 힘으로는 폭동을 막을 수 없었다. 팔리안은 반나절도 채 되지 않아 그들이 일하는 산업 단지를 지나 방금까지만 해도 시민들이 하하호호 떠들고 있던 상업 지구에 이르렀다. 경위가 이렇게까지 되자 상층부는 중심가와 배드 타운으로의 접근만은 막기 위해서 실탄 사격을 허용했다. 그런데 현장의 경찰이 실탄을 발사한 직후 도저히 믿기지 않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 나라의 가장 위대한 도시가 공격받고 있는 와중에도 평화로운 수상 관저, 간만에 거하게 식사를 하겠다는 수상 앙겔루스 디아볼리를 대신해서 기안문을 모두 확인한 보좌관 아디우토르 데키무스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집무실에서 나왔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한 남자가 경찰 쪽에 큰일이 벌어졌다며 수상은 어디 계시냐고 묻는 게 아닌가?


“일단 진정하세요. 각하께서는 1 층의 식당에 계십니다. 함께 가면서 이야기를 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그제서야 진정이 됐는지 남자는 헐떡이던 숨을 조금씩 천천히 내쉬었다.


“지금 수도에 폭동이 일어났습니다.”


“수도에 폭동이······?”


“그렇습니다. 외곽에서 판자촌을 만들고 불법 체류하는 팔리아 놈들이 범인입니다.”


“이상합니다. 분명 그자들의 대우가 좋지 않다곤 알고 있습니다만 굳이 이데아 전체를 적으로 돌릴 이유는 없을 겁니다.”


남자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아디우토르의 말에 동의를 표했다. 하지만 현실은 현실, 이미 벌어진 일이다. 물론 콘트라가 뒤에서 사주했으니 가능했지, 그게 아니었으면 절대 불가능할 것이다.


“이 정신 나간 새끼들··· 아 말이 험해서 죄송합니다. 아무리 해도 폭도들을 제압할 수 없어 실탄 사격을 지시했습니다만··· 도리어 당했습니다.”


“당했다니요?”


질문을 받은 남자는 땅이 꺼져라 깊은 한숨을 내쉰 후 그보다 깊은 고뇌가 담긴 눈망울로 상대를 바라보았다.


“‘상대가 먼저 공격했으니 이제 싸워도 된다.’라고 소리치더니 갑자기 뒤에서 소총을 든 녀석들이 튀어나왔습니다.”


“소총······!”


소총, 다른 말로는 라이플이라고 한다. 매우 기본적인 개인 휴대용 전투 화기 중 하나이지만 말 그대로 군에서 쓰는 ‘전투 화기'이다. 더군다나 법이 개정되어 민간인의 총기 소지가 불법인 이데아의 경우, 단순한 폭동이 아니게 된 셈이다.


“지금 당장 사령부에 지원을 요청하세요. 각하께는 저 혼자 가겠습니다.”


“하지만···”


“사령부에는 사정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가야 합니다. 알겠습니까?”


아디우토르의 단호한 말에 머뭇머뭇하던 남자는 아무리 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듯 눈을 감아 버렸다. 하지만 괜히 경찰 상층부에 오른 것은 아닌 모양이다. 그의 눈이 뜨였을 때는 입도 동시에 답을 말하고 있었다.


“보좌관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겠습니다.”




아디우토르만이 남은 복도는 어쩐지 햇살도 그를 피하는 것만 같다. 덕분에 구석에 남은 그림자는 누군가가 숨기에 최적화인 모양이었다.


“그쪽에서 정보를 차단했나?”


“국장님의 지시였습니다. 경찰은 최대한 책임을 미룰 것이니 내각의 사건 인지를 최대한 늦추라고. 혹시나 수상하게 여길지도 모르니 정부로 들어가는 신문에 한해서만 보도되도록 제한했습니다.”


“꽤나 머리를 썼군. 하지만 길어진다면 결국 의심을 살 게 뻔하지. 그 전에 빨리 일을 마무리 지으라고 해.”


“알겠습니다. 그리고 국장님께서 원조를 요청하셨습니다.”


수상 보좌관이라는 거물이 귀찮은 감정을 숨기지 않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그림자에 몸을 맡기고 있던 요원은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걸리적거리는 게 사라진 것을 확인한 아디우토르는 옅은 미소를 짓다가 금새 지우고서 식당으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한창 식사 중이던 앙겔루스는 손님의 방문에 냅킨을 찾아 입에 묻은 양념을 닦았다.


“무슨 일이지?”


“식사 중에 죄송합니다, 각하. 현재 수도에서 소란을 일으키는 폭도가 있다고 급보가 들어왔습니다.”


“흐음?”


앙겔루스의 미간이 좁혀지자 식당의 공기가 한층 얼어붙었지만 아디우토르는 그저 설명만 이어 나갔다.


“중심가까지 피해가 갈 우려가 있어 경찰은 실탄까지 쓰면서 폭도들을 제압하려고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인원수 차이 때문인가? 다른 기관에 연락해서 추가 지원을···”


“보고에 따르면 그들이 소총까지 보유했다고 합니다.”


“소총?”


아까보다도 한층 좁혀진 상사의 미간을 보며 아디우토르는 소리 죽여 웃었다. 하지만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아직도 한참 많이 남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방심은 금물이다.


“폭도의 정체는 팔리안 난민입니다. 무기 공장에서 제작하고 남은 걸 빼돌렸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재료의 잔여분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감독은 한둘씩 꼭 있기 마련이니. 혹은 오늘을 위해 밤중에 물량을 확보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중요한 사항을 왜 이리 늦게 보고한 게야! 하, 뭐가 됐건 이제 중요치 않아. 이미 벌어진 일이고, 사정은 놈들을 제압하고 들어도 충분해.”


“각하의 말씀이 옳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쥐고 있던 냅킨을 던지듯이 식탁에 내려놓은 수상은 의자를 박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눈은 이미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자신을 방해한 모든 것을, 모든 적을 죽여 버리겠다는 증오로 말이다.


“사령부에 연락해라. 당장 수도 방위군을 중심가로 진격시켜.”


“명령대로 하겠습니다.”


인사를 마친 아디우토르는 등 너머로 꽂히는 짜증 섞인 혼잣말을 못 들은 척하며 신속히 식당을 떠나갔다.


“하필 이럴 때 사령부 장관이면 안 되는데 말이지.”




수상실에서 명령이 떨어진 지 반나절, 수도 방위군 소속의 한 소대는 아직도 저항하는 폭도들을 제압하며 미처 대피하지 못한 시민들을 구출하고 있다. 소대장 비탈레 피사는 선두에 서서 이쪽에 접근하는 난민을 하나둘씩 처리해 나갔다. 부소대장이 모든 시민의 후방 이송 완료를 보고하러 왔을 때는 이미 거리가 한산해진 상황이었다.


“이거 참, 소대장님께선 우리가 나설 기회를 주지도 않으십니까?”


“나 혼자 한 거도 아니잖아. 비톨로 상병도, 콜리나 일병도 함께 막았어.”


“예, 예, 알겠습니다. 욕심 좀 부리시지 말입니다. 얼른 승진하시려면 본인한테 유리한게 적으셔야 하는데, 쩝.”


“나만 승진이 급한 게 아니지. 소대원들도 먹여 살려야 할 입들이 있고. 부소대장도 그렇듯이.”


반박하기 어려운지 부소대장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나마 상사를 위해 할 수 있는 거리를 찾던 남자는 잔당의 처리는 본인들이 할 테니 기존 병력을 휴식에 임할 것을 권하던 순간 고함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폭도가 있는 전방이 아닌 시민을 옮긴 후방 쪽이었다.


“이게 다 군인 놈들 탓이야!”


“당신 왜 그래?”


“지금 저 사람들이 우릴 구해줬는데 그렇게 말하면 쓰나.”


분노에 가득 찬 남자의 목소리는 주변의 만류에도 멈추지 않았다.


“애초에 저놈들이 난민 새끼들을 감시만 잘했어 봐! 이런 일이 벌어졌겠어?! 난 지금 아내가 어딨는지도 모르겠다고······”


“하지만 치안은 경찰이···”


“그러네! 군인 놈들이 문제야! 그 뭐냐··· 신병이 죽은 걸 묻으려고 했을 때부터 알아봐야 했어!”


“우릴 구한다고 해서 감시 임무를 소홀히 한 게 묻힐 거 같아? 이거 완전 깨진 잔에 물 채우기 아니야?”


방금까지만 해도 남자를 말리던 무리는 불씨와 같은 한마디에 폭발해 군인들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 구한 시민들에게 비난을 받은 이들의 감정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 이제 막 자대에 편입해 후방에서 구출 임무를 맡았던 신병은 눈물을 터뜨렸다. 다른 병사들도 울지만 않았지, 몸을 떨고 있었다. 이에 더 이상 참지 못한 부소대장이 나서려던 찰나 비탈레 피사의 입이 열렸다.


“철수한다.”


“예?”


“군인의 입에서 ‘예?’라는 대답이 나오면 안 되지. 반박은 받지 않으니까 얼른 움직여.”


“······ 알겠습니다. 야, 소대장님 말씀 들었지? 바로 복귀할 준비해라. 특히 막내, 넌 울지 말고.”


쓴소리를 하면서도 은근히 신병을 챙겨 주는 부소대장을 보며 소대장은 옅은 웃음을 지었다. 반대로 부하들을 손가락질하는 무리를 향한 시선은 싸늘했다. 마지막으로 허공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공허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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