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 위의 이데올로기

무료웹소설 > 자유연재 > 전쟁·밀리터리

새글

백G
작품등록일 :
2023.07.10 20:20
최근연재일 :
2024.09.23 21:57
연재수 :
56 회
조회수 :
464
추천수 :
6
글자수 :
266,333

작성
24.05.01 00:29
조회
6
추천
0
글자
9쪽

41화

DUMMY

다음 날 아침, 아메리고의 주요 언론사는 하나같이 똑같은 소식을 다뤘다. 그것은 바로 이 나라에 주재하고 있는 알코즈 국영 석유 회사에 괴한이 침입했다는 전대미문의 사건이었다. 국가의 안보와 치안을 맡은 경찰, 나아가 정부는 난처하기 짝이 없었다. 설령 일반 기업이라 해도 쉽게 넘어가기 힘든 일이지만 그래도 해당 기업이나 고용 업체의 시큐리티 시스템을 핑계로 댈 수 있다.


문제는 이번 사건의 피해자가 타국의 국영 기업이란 사실이다. 손해 관계를 따지기 앞서 외교 관계가 걸려 있어 복잡한 상황이었다. 거기다 알코즈는 국력 자체를 떠나 세계의 석유 유통 중 절반 이상을 쥐고 있는 자원 강국이다. 괜히 강대강으로 대치해 봐야 머리만 아파질 뿐이다.


때문에 대통령 관저의 분위기는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죄송합니다, 각하.”


“죄송하다고만 하지 말고!”


대통령 앤드류 머레이의 호통에 사색이 된 비서실장은 다급히 고개를 숙였다. 겁에 질린 하급자가 원하는 대답을 내놓지 않아 답답해진 앤드류는 다시 한번 소리를 지르려 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각하.”


어느새 집무실에 나타난 랄프 호긴스는 여전히 덜덜 떨고 있는 비서실장을 밀치며 앤드류 머레이에게 다가갔다.


“랄프, 뭘 믿고 그런 말을 하는 거지?”


“외교 라인을 통해 연락이 왔답니다. 알코즈 놈들,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고 해 주는 대신 포탄의 수출을 기존보다 10 % 늘려 달랍니다.”


“약은 자식들······!”


앤드류가 온몸을 부들부들 떨자 랄프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열받지만 약점을 잡힌 건 우리입니다. 애초에 놈들이 피곤하다며 항구로 쫓아낸 싱 와튼이 멍청이였습니다.”


타당한 지적이라며 고개를 끄덕인 앤드류는 해당 조건을 받아들이라고 지시했다. 또한 야당과 밀회한 경찰청장을 이번 사건을 근거로 문책해 해임하라는 명령도 추가했다.


고개를 숙인 랄프 호긴스가 대통령 집무실을 나서자 그를 따라 나온 비서실장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감사합니다, 국방부 장관님.”


“아니야. 다만 각하를 제대로 모시지 못한다면 나한테도 혼날 거란 걸 명심해.”


“죄, 죄송합니다!”


뚜벅뚜벅 구둣발 소리와 함께 랄프가 사라지자 비서실장은 혼잣말과 함께 한숨을 내뱉었다.


“도대체 왜 국방부 장관 따위가 이 나라의 두 번째 권력자가 된 건지······ 이러면 여성 권리부 장관이 다른 장관들 서류까지 확인하던 그때랑 다를 바가 있는지 모르겠어.”




비밀리에 협의를 마친 알코즈는 약속대로 괴한의 침입은 있었지만 내부 보안에 막혔다고 발표했다. 무엇보다 아메리고 경찰의 신속한 대처가 큰 도움이 되었다고 이야기해 준 덕분에 정부에 대한 신뢰도 손상되지 않았다.


물론 완전히 피해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발표와는 달리 내부 보안은 완전히 붕괴되었고, 이중 장부를 비롯한 기밀 문서가 상당수 유출되었다. 그래도 알코즈가 괜찮다고 판단한 것은 본국에서 받은 지령서만은 지켜 냈기 때문이다. 신인 정치인 피기 스톤스를 지원해 아메리고를 혼란에 빠뜨리라는.


“오전에 락 페르 회장이 다녀갔습니다, 사장님.”



출장을 다녀오자마자 귀찮은 보고를 들은 국영 회사의 아메리고 지사장 자리아는 미간을 찌푸렸다.


“뭐라고 하던?”


“진주 목걸이는 거의 다 완성되었다고 합니다. 예상대로라면 다음 주쯤엔 돼지 목에 씌울 수 있을 거라고 전해 달라고 했습니다.”


“괜찮네. 망할 잡종 흰둥이들을 믿을 수 있겠냐만은.”


“그래도 알코즈의 위대함은 알아본 잡종들입니다. 가엾으니 귀여워는 해 주시는 게···”


부하의 딱딱한 충언에 자리아는 씨익 웃었다.


“그래, 그래.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를 씌우기 전까지는 그럴게. 본국의 지령을 끝낼 때까진 트러블을 일으키면 안되지.”


“제가 말씀드리지 않더라도 사장님이시라면 걱정없을 텐데 죄송합니다. 그나저나 출장은 잘 다녀오셨습니까?”


드디어 기다리던 질문이 나오자 자리아는 건너편에 놓인 소파에 편한 자세로 앉았다. 아무리 부하라지만 한참 연장자 앞에서 다리를 꼬는 태도, 애초에 아직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국영 회사의 지사장을 맡고 있다는 점에서 자리아의 신분이 범상치 않음은 누구나 알 것이다.


“아메리 오일 회장을 만나고 나서 대사관을 방문했어. 대사한테 본국에서 소식 온 거 없냐고 물으니까 마침 삼촌한테 연락이 왔다지 뭐야!”


“나크 사드 장관님께 말씀입니까?”


“그래!”라고 크게 소리친 자리아의 얼굴은 흥분의 도가니로 가득 차 있다.


“이번 일만 잘 해결되면 본사에 자리를 마련해 준다더라고. 그동안 알코즈를 떠나 변방을 떠돈 보람이 있었어.”


변방이라는 말에 부하는 쓴웃음을 애써 감췄다. 왕세자의 측근이자 첩보부 장관 나크 사드의 조카인 덕분에 지사장이 돼 엄청난 기회를 거머쥔 자리아다. 하지만 그는 마치 자신이 온갖 역경을 스스로의 힘으로 여기까지 온 줄 안다. 그런 눈앞의 멍청이를 보고 있자니 구역감을 견디기 어려웠다. 억지로 미소를 지은 부하는 겨우 대화를 이어 나갔다.


“축하드립니다. 드디어 바라신 대로 금의환향할 수 있겠습니다. 부럽습니다.”


“그렇지. 본사, 본사의 중역이 될 거야, 난.”


이제 할 말을 다한 자리아는 소파에서 일어나 집무실로 향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다시 부하에게 돌아와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러고 보니 네 조카가 그리 예쁘다며?”


“······ 그건 갑자기 왜 말씀하십니까?”


“내가 귀국하면 자리를 주선해 봐. 혹시 모르잖아. 잘되면 너도 본사로 불러줄지.”


진짜 볼일을 다 끝내고 사무실로 들어가는 상관을 멍하니 쳐다보던 부하의 얼굴은 이내 분노로 붉게 물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남자는 금방 진정을 되찾았다. 입가는 오히려 살짝 올라가 있다.


“그깟 계집 따위 얼마든 내주마. 내가 성공할 수만 있다면 얼마든.”




아메리고에서 전달된 기밀 문서들을 모두 다 읽은 콘트라 도크트리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정보국의 요원들은 그가 원하던 대로 작전을 진행해 주었다. 다만 아쉽게도 알코즈와 피기 스톤스가 연결되었다는 확실한 증거가 되지는 못했다.


대신 획득한 것은 국영 회사에서 작성한 이중 장부와 대외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몇몇 회사와의 계약서 등등이었다. 어쩌면 여기서 원하는 단서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한 콘트라는 며칠 밤을 새워서 모든 서류를 확인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쓸만한 정보는 보이지 않았다. 이중 장부는 확실히 정치 자금을 위해 작성한 것으로 보였다. 문제는 피기 스톤스가 아닌 로비스트에게 돈을 입금하기 위한 출처로 보였다. 비밀 계약서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그렇다고 해도 의문이 모두 풀린 건 아니었다. 아메리고는 정치인에 대한 로비 활동에 대해 관대하다. 행정 체계는 물론이고 법률적인 측면에서도 허용된다. 그런데도 굳이 이중 장부와 비밀 계약서를 작성한 이유가 따로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고 생각한 콘트라는 처음부터 서류를 다시 읽어 보기로 했다. 그때였다.


“공모부장님, 데케브토르입니다.”


“예.”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곧장 들어온 데케브토르는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책상에 봉투 하나를 내려놓았다. 콘트라는 의문을 가지면 봉투를 열고서 안에 든 종이를 꺼냈다. 이데아어로 쓰인 공문서는 주이데아 알코즈 대사관에서 발송된 항의문이었다.


“이데아는 위대한 알코즈 왕국이 신대륙에서 그리고 있는 원대한 그림을 더럽히려 들지 마라······”


“알코즈 국왕의 옥쇄가 찍힌 공식 서한입니다. 아무래도 왕세자와 그의 측근인 첩보부 장관이 상당히 분노한 모양입니다.”


데케브토르의 설명에 콘트라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알코즈가 아메리고에 개입하고 있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다만 이해하기 힘든 점은 있었다.


“왜 이렇게 급하게 움직일까요? 대외적으로나마 우호적인 분위기를 형성 중이었는데 말이죠. 거기다 앙겔루스는 무슨 상황인지도 모를 텐데.”


“솔직히 저도 모르겠습니다. 일단 해당 서한 때문에 내각 회의가 열렸습니다. 결과가 나오면 국장님께서 방문하실 예정입니다.”


내각 회의란 말에 곰곰이 생각하던 콘트라의 눈에 책상에 놓인 서류가 들어왔다. 서류를 받았던 첫날에 바로 읽었던 것으로 국영 회사가 뒷돈을 제공한 회사와 금액을 기록한 이중 장부였다. 명단을 지긋이 보며 내려가던 순간 콘트라의 머릿속에 번갯불이 번쩍 일었다.


“당장 아메리고의 요원들에게 연락을 넣어요. 이데아인이나 이데아계 이민자가 운영하는 석유 회사 중에서 알코즈 국영 회사와 묘한 자금 흐름이 있는 곳을 찾으라고.”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시체 위의 이데올로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56 56화 NEW 4시간 전 0 0 11쪽
55 55화 24.09.03 5 0 11쪽
54 54화 24.08.27 4 0 10쪽
53 53화 24.08.19 3 0 10쪽
52 52화 24.08.12 6 0 13쪽
51 51화 24.07.29 5 0 10쪽
50 50화 24.06.24 4 0 10쪽
49 49화 24.06.19 5 0 10쪽
48 48화 24.06.18 4 0 10쪽
47 47화 24.06.17 5 0 11쪽
46 46화 24.06.04 8 0 10쪽
45 45화 24.05.27 6 0 11쪽
44 44화 24.05.20 7 0 9쪽
43 43화 24.05.13 7 0 9쪽
42 42화 24.05.06 7 0 10쪽
» 41화 24.05.01 7 0 9쪽
40 40화 24.04.22 8 0 10쪽
39 39화 24.04.15 7 0 10쪽
38 38화 24.04.08 7 0 10쪽
37 37화 24.04.02 7 0 10쪽
36 36화 24.03.25 7 0 10쪽
35 35화 24.03.18 7 0 10쪽
34 34화 24.03.12 7 0 10쪽
33 33화 24.03.04 6 0 10쪽
32 32화 24.02.26 8 0 9쪽
31 31화 24.02.12 7 0 10쪽
30 30화 24.02.05 7 0 11쪽
29 29화 24.01.29 8 0 9쪽
28 28화 24.01.22 7 0 10쪽
27 27화 24.01.15 9 0 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