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 위의 이데올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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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G
작품등록일 :
2023.07.1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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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3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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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15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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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화

DUMMY

땅거미가 진 지 한참이 지난 시각, 도크트리나가의 주택은 어둠으로 물들었다. 창문 너머로 새어 나오는 불빛과 여주인의 콧노래가 적막한 밤공기를 부각시킨다. 침묵 속에서 은밀하게 숨어든 자들은 야경의 일부분으로 보인다.


“언제 진입하지?”


“불이 꺼지면 바로.”


“확인.”


아르마의 짧은 대답에도 이번 임무를 맡은 분대장은 따지지 않았다. 지금 그녀가 하는 말은 곧 상부의 지시이기 때문이다.


베드타운답게 도로에는 차들이 자주 다니고 있다. 하지만 어둠 속에 녹아든 요원들을 발견하는 사람은 흔치 않았다. 그 몇몇조차도 집밖에서 주인을 기다리는 손님으로만 생각했다. 그만큼 평범하고 자연스럽다. 하지만 이들은 마음만 먹으면 당장이라도 주머니에 숨긴 칼과 총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


슬슬 콧노래가 멎어 들자 아르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분대장은 손을 들어올렸다. 이를 본 분대원들은 각자 맡은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움직였다. 주변의 시선을 속이는 요원은 길가에, 혹시 모를 방해꾼을 견제하기 위한 요원은 사각에서 대기했다. 그리고 집 안으로 진입을 맡은 이들은 권총에 소음기를 결합 중인 아르마의 곁에 모였다. 모든 준비를 마친 여자가 고개를 든 순간 창문과 흰 벽이 차례대로 검게 변했다.


“지금 가 볼까?”


그렇게 콘트라 도크트리나의 가족들은 누군가에 의해 납치되었다. 그가 세운 계획의 첫 번째 공작이 무사히 실행된 것이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말해 보게.”


수상은 무미건조한 한마디와 함께 보고서를 내던졌다. 어젯밤에 벌어진 불상사를 보고하러 온 정보국장은 할 말이 없다며 고개를 숙였다.


“죄송하면 끝인가? 미끼가 사라진 이상 콘트라를 붙잡는데 차질이 생겨. 거기다 볼모로 잡아 둔 딸이 풀려난 게 파이니트의 귀에 들어가면 고집을 꺾는 데도 시간이 걸리고”


“일이 꼬인 건 사실이지만 사후 조사에서 저희 요원들이 확보한 단서가 있어 신속히 대처하였습니다. 다만 최종적인 사안은 각하의 허가가 필요합니다.”


“흠.”


칼비티움의 담담한 태도에 무언가가 있다고 느낀 앙겔루스는 아디우토르에게 시선을 보냈다. 수상의 생각을 읽은 보좌관은 정보국장과 함께 온 경찰청장을 데리고 나가기로 했다. 어떤 사정인지 자세히 모르는 청장은 수상의 총애를 보좌관이 독대를 요청하자 단숨에 응했다. 동료의 훌륭한 행동에 속으로 미소를 지은 칼비티움은 설명을 시작했다.


“요원들의 보고에 따르면 목표물을 납치한 범인은 단 한 명이었으며 갓 성인이 된 여자라고 합니다. 이는 조사 결과 사실로 확인되었습니다.”


“그딴 계집애한테 정보국의 요원이란 것들이 경계 임무조차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고?!”


“저도 처음에는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난번에 보고 드린 새로운 영상 기기로 촬영한 내용을 보니 도저히 인간으로 생각하기 어려운 신체 능력이었습니다.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범인은 암살에 특화된 것 같습니다. 오히려 살아 돌아온 요원들이 많아 천만다행입니다.”


“자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거짓말은 아니겠군.”


어느 정도 납득한 건지 앙겔루스의 눈은 부드러워졌다. 대신 그 자리에 복잡한 고민이 채워졌다. 수상은 양손을 모아 턱을 괸 채 깊은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칼비티움은 앙겔루스에게 시간을 줄 생각이 없었다.


“정보국은 이데아 출신의 암살자가 범인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필시 콘트라 같은 움브라의 망자가 고용한 청부업자겠군. 그나저나 이데아 출신이란 건 어떻게 확신하지?”


“영상의 시간을 계산했을 때 범인이 목표물을 방에서 데리고 나온 시간은 짧았으며, 목표물의 태도 또한 순순했습니다. 범인과 목표물 간에 의사소통이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부하의 논리적인 의견에 수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늙은 여우는 상대의 이야기에서 바로 허점을 집어냈다.


“그런데 국장, 이데아의 범죄 조직 관리는 말만 경찰청의 소임이지, 실제로는 정보국에서 도맡고 있지 않나? 움브라의 계획에 협조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이유로.”


역시 늙은 여우는 귀찮다고 욕을 하면서도 냉정을 유지한 칼비티움은 앙겔루스의 지적에 태연스럽게 변명했다.


“물론입니다. 당장 새벽에 모든 조직에 범인의 몽타주를 돌렸습니다. 그런데 이 여자를 찾을 때까지 법적 제재를 강화할 것이라 압박했는데도 밀고는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이상하군. 정보국의 감시망을 뚫을 정도의 실력이면 경쟁 조직이 모를 리 없을 텐데.”


변명을 완전히 받아들인 건 아니지만 더 이상 따지지 않는 앙겔루스에게 칼비티움은 기다렸다는 듯이 준비한 두 번째 보고서를 제출했다.


“따라서 허가를 받으려는 사안은 이것입니다. 생각해 보니 이데아어를 쓰는 범죄 조직들이 더 있어서 말입니다. 저희가 관리하지 못하는 곳에.”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온 아르마는 데케브토르에게 먹을 걸 달라고 요구한 뒤 콘트라의 방으로 향했다. 그는 여전히 책상에 앉아 서류 뭉치와 싸우는 중이었다.


“다녀왔어요.”


“식사는 됐어요······ 아!”


처음에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뒤도 돌아보지 않던 콘트라였지만 말을 건 사람의 정체를 알고서 태도를 뒤바꿨다. 다급히 의자에서 일어선 그는 아르마의 작은 손을 붙잡았다.


“가족들은 어때? 아마레는? 아이들은? 건강해?”


“음······ 네.”


너무나 빠른 말 속도에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아르마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암살만을 위해 훈련을 받고 살아온 그녀가 이 정도를 놓칠 리는 없다. 하지만 평소와 다르게 감정적인 콘트라의 모습이 아르마를 당황시켰다. 무엇보다 지금의 그는 겁에 질리지 않았다. 아르마가 가장 무서워하고 싫어하는 사람으로 돌아온 것이다.


한편 참으로 뻔뻔하기 그지없다. 콘트라는 아내를, 자식을 버리고 불륜을 저질렀다. 그런데도 머리를 쥐어짜 그의 가족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앞뒤가 맞지 않다. 콘트라가 처한 상황을 아는 사람이라면 입을 모아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할 것이다. 만약 또 한 명의 당사자 포에나 쿠아이스티오가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일까?


“다행입니다. 하, 일단 첫 단추를 잘 꿴 것 같습니다.”


“전 잘 모르겠네요. 우리가 감시 역할을 맡았는데 그냥 이렇게 지내면 되지, 굳이 무리해야 하는지······”


“그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입니다. 시간이 있다면 말입니다.”


현실로 돌아와 쓴웃음을 짓는 콘트라의 앞에는 세 개의 계획안이 놓여 있다. 그중 마지막 계획안에는 ‘감시망의 기존 상황 유지’라고 적혀 있다. 콘트라 또한 아르마가 제시한 방안을 고려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는 결국 첫 번째 계획안을 선택했다. 그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기에.


“지금 정부는 저를 빠른 시일 내에 체포하길 바라고, 이를 위해 저의 가족들을 감시 중이었습니다. 다행히 가족들의 감시를 맡은 담당 부대가 정보국 소속이라 무리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이번 작전을 필수였습니다.”


“왜죠?”


“흔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굳센 요새와 같은 정권을, 그리고 그 안에 숨은 수상을.”


아르마는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때 문이 열리며 한동안 벙커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남자가 등장했다.


“오랜만입니다······”


“고생이 많다고 들었네, 콘트라. 이제는 공모부장이라 불러 주는 게 좋겠지.”


칼비티움의 불쾌한 인사는 온몸의 피를 끓게 만들었다. 콘트라는 떨리는 양손을 겨우 진정시킨 후 최종 계획안을 내밀었다. 소파에 앉아 한참이나 읽던 국장의 입고리는 천장까지 솟아올랐다.


“이런 음흉하기 짝이 없는 계획을 이 짧은 시간 동안 생각해 내다니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어. 정보국에 대한 앙겔루스 놈의 신임이 떨어질 걸 각오하고 작전 실행을 허락한 보람이 있군그래.”


감사하다고 답하며 고개를 숙인 콘트라의 얼굴은 전혀 밝지 않았다. 이를 눈치챈 아르마는 “고생했어요.”라는 부드러운 한마디를 선사하며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그제야 진정이 된 콘트라는 겨우 고개를 들었다.


“이제 아메리고의 이데아계 범죄 조직 쪽에 연락해야겠군. 정부에서 연락이 오면 협상한답시고 최대한 질질 끌면 될 테지.”


“최대한 지연시켜야 합니다. 아메리고에 파견된 요원들은 두 번째 공작 때문에 정신이 없을 겁니다. 국장님께서 약을 쳐 놓은 게 예상과 조금 어긋났지 않았습니까?”


콘트라의 지적이 불쾌한지 칼비티움은 괜히 헛기침했다.


“자네도 공범이지 않은가? 남진이 마무리될 때쯤이면 아메리고는 국력을 회복할 테니 균열을 키워야 한다고.”


“이데아계 이민자를 통해 아메리고 정치판에 개입하자고 한 장본인은 제가 맞습니다. 이데아계 자본을 이용해 성질이 상극인 앤드류 머레이와 피기 스톤스를 엮이게 하는 것, 이데아계 범죄 조직을 뒷배로 삼은 루치아노 바렐라를 이용해 피기 스톤스를 내보내는 것, 하지만 대선의 승리를 위해 야당 후보 캠프에 더 큰 트러블을 일으키는 것, 피기 스톤스에게 정치를 하려면 이데올로기보다 지지 기반이 우선이란 생각을 심는 것까지.”


“그래, 난 자네가 해 달란 건 모두 해 줬어. 안 그런가?”


“국장님의 말씀은 틀리지 않습니다. 덕분에 아메리고는 여당과 야당 모두 분열되었고, 피기 스톤스는 지지 기반을 억지로 만들기 위해 분열된 야당 일부 세력과 손을 잡았다가 자신의 기존 기반까지 잃을 뻔했습니다.”


“맞아. 그런데 왜 불만인가?”


“뻔했다는 게 문제입니다.”


콘트라는 책상에 쌓인 서류 뭉치를 뒤적거리더니 보고서 하나를 가지고 왔다. 얇지만 글자로 빽빽하다. 그걸 본 아르마는 질색했지만 칼비티움은 별다른 말없이 바로 넘겨받았다. 이번에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고작 한 장인데도 불구하고 처음의 계획안만큼이나.


“이게 정말인가?”


“저의 계산과 정보가 확실하다면 십중팔구입니다.”


콘트라가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칼비티움은 이곳에 온 뒤 처음으로 분노했다.


“빈 제마 그 자식······ 자기도 손을 써 놨다더니 이런 거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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