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 위의 이데올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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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G
작품등록일 :
2023.07.1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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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3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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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04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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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화

DUMMY

이전에도 언급했지만 이데아의 아름다움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특히 노을로 물든 강변의 경치는 안주가 따로 없다. 콘트라와 포에나는 저물어 가는 강물을 보며 잔을 부딪쳤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갑자기요? 우리 하루만에 만났는데.”


“그런가.”라고 혼잣말하는 콘트라를 본 포에나는 싱긋 웃는다. 사실 그녀도 같은 질문을 하고 싶었다. 평소라면 아무것도 아닌 짧은 시간이지만 어제만큼은 달랐다. 자신들의 매개체 움브라가 해체되었다. 아무리 실적을 내도 수상의 눈 밖에 나면 소용이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지금까지 바쳐 온 시간이 아까워 괴로웠다.


하지만 포에나는 말하지 않기로 했다. 콘트라가 자신보다 훨씬 힘들 것이다. 움브라에 배속되자마자 크고 굵직한 일을 맡았다. 신입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대단한 활약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콘트라 또한 버려졌다. 그것도 본인이 가장 존경하고 따르던 남자, 수상 앙겔루스로부터.


“이 술 엄청 맛있네요.”


“웨이터에게 부탁했어. 남부의 특산품으로 달라고. 포에나는 단 걸 좋아하잖아.”


“안 그렇게 보이지만 콘트라는 은근히 자상하다니까요.”


“그렇게 보이지 않아?”


고개를 끄덕인 포에나는 잔을 비웠다. 순간 눈앞의 남자가 아이들을 보며 달콤한 미소를 흘리던 기억이 떠올랐다. 갑자기 입 안에 남은 술이 쓰게 느껴지는 포에나다. 그렇다고 해서 저 남자를 포기할 생각은 없다. 수년간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던 유형의 사람이다. 함께 있기만 해도 행복하다.


“샐러드도 맛있네요.”


“포에나 입맛에 맞다니 다행이야.”


하지만 포에나는 모르고 있다. 자신의 가정이 이렇게 망가졌다는 것을 말이다. 아니, 어쩌면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오히려 더더욱 저 남자를 갈구하는 것일 테다. 콘트라에게 버림받는다면 더 이상 그녀가 기댈 곳이 없으니까.




택시를 불러 포에나를 배웅한 콘트라는 술을 깰 겸 걸어서 호텔로 향했다. 그의 머리는 매우 복잡하다. 술기운 때문은 아니다. 그의 주량을 생각하면 이 정도로 취하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콘트라를 괴롭히는 문제는 앞으로 어떻게 할지다.


칼비티움 라쿠스 정보국장은 콘트라에게 말해선 안 될 계획을 알려 주면서 동시에 있어선 안 될 정보를 보여 주었다. 그게 아직도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앙겔루스 디아볼리는 이데아를 열강의 반열에 올렸음에도 관저를 제외하곤 청렴한 삶을 누린 훌륭한 수상이다. 대중은 그렇게들 알고 있다. 이건 콘트라도 마찬가지였다.


만약 이상에 가까운 이미지를 깨고도 남는 실상이 공개된다면 어떤 결과가 도출될까? 어떻게 되든 사회는 발칵 뒤집힐 것이다. 그 미래가 너무나 두렵다. 그럼에도 두근대는 가슴이다. 이 미묘한 감정의 정체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콘트라의 얼굴은 움브라를 살리기 위해 발버둥치던 그때와 닮아 있다.


호텔에 도착해서도 콘트라의 고민은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답은 보이지 않는다. 불빛으로 그려진 화려한 야경만 눈앞에 있을 뿐이다.


“손님, 안에 있나요?”


“그렇습니다만 누구십니까?”


“룸서비스예요.”


콘트라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기억을 더듬었다. 자신이 룸서비스를 시켰을 리가 없다. 포에나와 저녁을 든든하게 먹었다. 간단하게지만 술도 마셨다. 야근하지도 않는데 커피를 시킬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밖에 있는 저 여자는 누구일까?


의아한 상황이지만 일단 나가 보기로 한 콘트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문을 연 그의 얼굴은 바로 일그러졌다. 앞에는 룸서비스 카트가 아닌 권총 한 자루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걸 쥐고 있는 사람은 아침에 인사했던 여직원이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일단 안에서 이야기해요. 그 편이 서로에게 좋겠죠?”


불쾌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그리고 바로 죽이지 않는 것을 보면 상대는 원하는 바가 있는 듯하다. 그렇게 판단한 콘트라는 한숨을 참으며 여자를 방안으로 들였다.


“이틀째긴 하지만 깔끔하게 지내네요. 직원으로서 고마워요.”


“호텔 사원이 투숙객에게 총을 들이밉니까?”


“사정이 있어서 그래요.”


도대체 어떤 사정이길래 손님한테 총을 겨눌 수 있냐고 따지고 싶은 콘트라다. 하지만 참기로 했다. 그의 앞에는 여전히 검게 빛나는 총구가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먼저 확인 좀 할게요. 외교부와 움브라에서 일했던 콘트라 도크트리나가 맞나요?”


“······ 사람 헷갈리셨나 봅니다.”


“과연 그럴까요?”


여자는 왼손으로 안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 테이블에 던지듯이 놓았다. 미심쩍은 얼굴로 여자와 봉투를 번갈아 보던 콘트라는 어쩔 수 없이 봉투를 집어 내용물을 꺼냈다. 거기에 든 건 서류 한 장뿐이다. 하지만 내용은 전혀 가볍지 않다.


“이걸 어떻게···”


“참고로 전 칼비티움 라쿠스 정보국장님 직속이에요.”


하필 지금 피하고 싶은 사람의 이름을 들은 콘트라는 복잡한 심정이 되었다. 외교관 출신답게 표정 관리가 뛰어난 그인데도 불구하고 평정심을 전혀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 그걸 확인한 여자의 입가는 광대까지 올라갔다.


“국장님이 말하더라고요. 콘트라 도크트리나한테 가서 합류할지 안 할지 들어 보라고요.”


“칼비티움 국장님께서 그러셨습니까?”


“네, 그러니까 여기 왔죠. 귀찮지만 굳이 권총까지 가지고요.”


허술하게 보일 법하지만 콘트라는 느꼈다. 이 여자라면 지금 당장 자신을 죽일 수 있다. 물론 또 하나의 사실도 안다. 이 여자는 지금 자신을 죽일 생각이 없다.


“아직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이해가 안 가요.”


“왜 그러십니까?”


“누가 봐도 답이 나와 있잖아요. 우리 국장님은 무조건 이겨요. 앙겔루스 그놈은 떨어질 일만 남았다고요.”


여자가 목소리를 높이자 콘트라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단호히 말했다.


“제가 아는 앙겔루스 디아볼리는 절대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아무리 상대가 자신의 약점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적당한 크기의 목소리에는 묘한 위압감이 실려 있다. 사실 여자는 사무실에서 서류나 뒤적거리는 남자를 구슬리라는 임무에 불만스러웠다. 하지만 지금 눈앞의 남자를 보니 상사의 의도가 조금은 이해된다.


“그럼 어떻게 해야죠?”


“저라고 알겠습니까? 정보국장님께서도 그 틈을 찾기 위해 고개를 들지 않고 계시는 판국인데.”


“솔직히 짜증나요. 우리들이라면 그놈을 납치하는 건 일도 아닌데요.”


한숨을 내쉬는 여자를 보며 콘트라는 빙긋 웃는다.


“그 다음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협박해서 자리를 뺏어야죠!”


“그 남자가 협조적일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왜 국장님이랑 똑같은 소리를 하는 거예요?”


“정답이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자신을 노려보는 총구와 눈동자를 살핀 콘트라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저는 아직 입장을 정하지 않았습니다만 정보국에 합류했을 경우를 가정해 보겠습니다. 당신은 정보국의 가장 큰 전력이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싸움을 잘하는 요원들이죠.”


“물론 정보국의 요원들은 훌륭합니다. 함께 일해 본 입장에서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수상을 대적함에 있어서 더 큰 힘은 따로 있습니다.”


“그게 뭔데요?”


여자의 물음에 콘트라는 손을 들어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돋보기가 있다.


“수상실은 정보국을 통해 국내외의 정황을 파악합니다. 그 말인즉슨 정보국이 마음만 먹으면 왜곡된 정보의 보고도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속일 수 있다는 거네요?”


고개를 끄덕인 콘트라는 설명을 계속했다.


“물론 이게 반복되면 위에서도 눈치채겠죠. 결국 판도를 결정할 중요한 순간에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는 겁니다. 제가 정보국의 입장에서 말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입니다.”


콘트라의 설명을 듣던 여자는 정신이 들자 순간 아차 싶었다. 자신은 어떻게든 저 남자를 정보국에 합류시키라는 임무를 받고 왔다. 그런데 잠시지만 저 남자의 이야기에 빠져 집중력을 잃고 말았다. 힘을 쓰지 않고는 본인이 상대할 수 없다. 그렇게 판단한 여자는 권총을 안주머니에 넣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가시는 겁니까?”


“말을 너무 많이 했어요. 슬슬 교대 시간이거든요.”


“거짓말 같습니다만.”


“맞아요. 사실 근무에서 빠져도 뭐라 하지 않아요. 어차피 이 호텔도 정보국에서 운영하니까요. 그래도 높은 사람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일반인이니 신경 쓰지 말아요.”


그런 와중에 저 여자 혼자 사원인 게 걸리는 콘트라지만 따로 묻지는 않기로 했다. 또다시 권총을 볼 게 뻔하니 말이다.


“아, 그리고 제 이름은 당신이 아니라 아르마예요. 아르마 렐릭타.”




늦은 시간이지만 정보국장실은 불이 밝혀져 있다. 안에서 서류를 정리하던 칼비티움은 이내 혀를 차며 책상에 내려 두었다. 대신 권총을 꺼내 손질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누군가 방문을 노크했기 때문이다.


“아르마예요.”


“들어와.”


“네!”


방문이 열리자 활기찬 얼굴의 아르마가 서 있다. 그녀가 문을 닫자 칼비티움은 담배를 꺼내 문다.


“담배 냄새 싫다니까요.”


“그럼 떨어져 있던가.”


부하의 투정을 무시하며 불을 붙인 칼비티움은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아르마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구석으로 피했다.


“그래서 콘트라 도크트리나는 어떻게 나왔나? 우리에게 협력한다고 하던가?”


“아니요. 뭐라고 했지? 지금은 답을 정하기 힘들다던데요.”


부하의 즉답에 칼비티움은 쓴웃음을 지었다. 결국 자신이 원하던 그림은 나오지 않았다. 이렇게 되면 아디우토르의 말대로 숨겨 둔 카드를 쓸 수밖에 없다. 혀를 찬 칼비티움은 아직 반이나 남은 담배를 재떨이에 던졌다.


“아르마, 넌 기존 임무로 복귀해라. 지금부터 콘트라에 대한 협상, 아니, 협박은 내가 맡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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