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 위의 이데올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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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G
작품등록일 :
2023.07.1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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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3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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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26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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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화

DUMMY

지금 콘트라 도크트리나는 도심이 한눈에 들여다보이는 고급 호텔 방에 앉아 있다. 정보국장 칼비티움 라쿠스가 나중에 다시 찾아 오겠다는 말과 함께 미리 예약한 호텔로 데려다준 것이다. 과한 친절과 수상한 목적에 머리가 혼란한 콘트라지만 그렇기에 1 초라도 빨리 휴식을 취하고 싶어 방으로 올라왔다.


오늘도 이데아는 평화롭다. 미소를 잃을 줄 모르는 사람들은 활기찬 걸음으로 거리를 누비고 있다. 겉으로는 그렇다. 실제로는 조국을 위해 온몸을 바친 이들을 헌신짝 마냥 아무렇지 않게 버린다. 이를 깨닫자 한숨만 나오는 콘트라다. 그의 손가락은 피아노를 치듯이 팔걸이를 두드리는 중이다.


원래라면 바로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아내인 아마레에게 동정을 바랐을 것이다. 아들과 딸을 통해 위로를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쩐지 칼비티움과 대화를 후 그러고 싶지 않아졌다. 평소처럼 출장을 다녀와야 한다는 연락을 남긴 채 방으로 올라왔다.


“도대체 내가 뭘 위해 일했던 걸까?”


천장을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는 허망스럽기만 하다. 당장이라도 사무실로 돌아가 동료들과 다음 작전에 대해 상의를 하고 싶다. 하지만 이제 돌아갈 곳은 없다. 가더라도 맞이해 줄 이는 없다. 그게 너무나 서글프다.


콘트라는 머릿속으로 다른 사람들을 생각했다. 실장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워크 홀릭인 그녀의 성격을 고려한다면 집에서도 다른 일을 찾아서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동안 하지 못했던 딸과 둘만의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대내 팀장 트라디토르 유니우스는 여전히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술을 좋아하는 그의 성격상 홀로 술잔을 기울이며 슬픔을 달래고 있을 것만 같다.


마지막으로 포에나를 떠올리자 괜히 볼이 붉어진다. 그녀가 무엇을 하고 있을지보다는 보고 싶다는 생각만 든다. 잠시 고민하던 콘트라는 자리에서 일어나 1 층으로 향했다.


“원하시는 게 있으십니까, 손님?”


스위트룸에 투숙하고 있는 귀빈인 걸 알아본 지배인은 옆에서 서류를 정리하고 있는 사원들보다 먼저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이에 콘트라도 답례하고는 카운터로 다가갔다.


“연락하고 싶은 있습니다만 지금 가능할까요?”


“물론입니다. 혹시 연락처를 알고 계십니까?”


“여기입니다.”


주머니에서 명함 카드를 꺼낸 콘트라는 지배인에게 건넸다. 잠시 훑어보던 노인은 가볍게 웃더니 기다리라 말하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그사이 서류 정리를 마친 여자 직원이 다가왔다.


“오랜만이네요, 손님.”


“지난번에 만난 분이시군요.”


“맞아요.”


“눈썰미가 좋으십니다.”


“호텔에서 일하려면 어쩔 수 없죠. 손님이야말로 대단하시네요.”


콘트라가 아니라고 겸손하게 인사하자 직원은 피식 웃는다.


“함께 오셨던 여자분은 안 보이네요?”


“마침 연락하려던 참이었습니다.”


“따로 호텔에서 만나다니 누가 보면 불륜 관계로 알겠어요.”


뜨끔한 콘트라는 애써 웃음을 지었다. 마침 통화를 마친 지배인이 나와 연락을 마쳤으며 도심 광장에서 점심 식사를 함께 하자고 했다며 전해 주었다. 고맙다는 말을 남긴 콘트라는 어쩐지 홀가분한 걸음으로 호텔을 떠났다.


하지만 그의 유쾌한 얼굴은 얼마 지나지 않아 불쾌함으로 뒤덮였다. 군중의 얼굴은 여전히 해맑다. 그런데 어째서 콘트라는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광장 중앙에 세워진 앙겔루스 디아볼리의 동상을 향해 있기 때문이다. 용광로보다 뜨거운 존경심이 이글거리는 눈동자가 괜시리 미운 콘트라다.


그렇다고 해서 할말은 없다. 얼마 전의 콘트라 또한 마찬가지였으니까. 누구보다 앙겔루스 수상을 존경하고, 온몸을 바쳤다. 그게 이데아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보국장이 보여 준 기말 자료를 보자 생각이 변했다. 강한 권력을 바탕으로 기업가들로부터 수탈을 일삼았을 뿐만 아니라 고급 유흥가에서 아름다운 여자를 상납 받았다. 거기다 뒷말이 나오지 않도록 수상실의 직원을 시켜 처리를 하기까지 했다.


칼비티움의 서류를 떠올리자 한숨을 참기 힘든 콘트라다. 그렇지만 애써 얼굴을 관리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멀리서 포에나가 걸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번처럼 화려하게 꾸민 것은 아니지만 오히려 옅은 화장이 오밀조밀한 얼굴과 잘 어울린다.


“오래 기다렸어요?”


“방금 왔어.”


“그렇다기엔 주변 자리는 나뭇잎이 떨어져 있는데 콘트라의 자리만 그렇지 않은데요.”


콘트라는 자신이 너무 티가 나는 거짓말을 했음을 깨닫고서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다행히 포에나는 상대를 무안하게 만드는 여자가 아니다. 배가 고프다며 가볍게 화제를 돌리며 걸음을 옮겼다. 그런 전 직장 동료의 뒷모습을 보자 어깨가 가벼워지는 콘트라다. 이미 아마레를 배신했다는 죄책감을 잊은 지는 오래인 채.




“어떻게 됐나, 칼?”


사무실에 막 들어온 아디우토르의 질문에 칼비티움은 담배 연기로 대답을 대신했다. 순간 아디우토르의 오른쪽 눈썹이 씰룩거리며 올라갔다.


“너의 그 버릇은 고치는 게 좋아. 그 늙은 여우가 눈치 못 챌 리가 없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좋아. 네 녀석이 아니고선 내 심기를 거스를 사람은 없으니까.”


틀린 말은 아니라며 껄껄 웃은 칼비티움은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도화선에 불은 붙였어. 이제 어떻게 될지 지켜봐야겠지.”


“방화범이 따로 없군.”


“누가 들으면 내가 잘못한 줄 알겠어.”


“글쎄.”


아디우토르는 짧게 굴고 답하며 빈 의자에 앉았다. 그사이 새 담배를 꺼내 무는 칼비티움이다.


“콘트라가 수상실에 신고할 가능성은?”


“많아 봐야 삼 분의 일? 설령 신고한다 해도 네가 처리할 수 있잖아, 아디.”


“반복되면 귀찮아져. 이번처럼 수석 장관과 엮인 문제는 꽤나 골치 아팠다고.”


친구의 투정이 맘에 들지 않는지 정보국장은 대답을 하지 않는다. 한동안 사무실에는 침묵만이 감돌았다. 뿌연 연기가 자욱하게 깔리며 동시에 독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지난번에 정보국을 통해 콘트라의 약점을 쥐었다고 했지 않나?”


“음? 그건 이미 움브라를 해체시키면서···”


“거짓말하지 말고 그걸로 흔들어. 정 안되면 녀석을 우리의 말대로 움직이는 충견으로 만들라고.”


애써 숨기려던 칼비티움은 알겠다고 말하며 혀를 찼다. 언젠가 그의 계획에 어긋나는 일이 경우를 대비해 가지고 있던 카드를 날리는 것이 불만스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대는 자신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아디우토르 데키무스다. 그리고 앙겔루스 디아볼리를 끌어내리려면 저 남자의 조력이 절실하다.


“아디, 네 말대로 하지. 오늘 저녁에 부하를 보내 물어봐도 확답이 없다면야.”


“진작에 그랬으면 얼마나 좋은가.”


그제야 아디우토르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띄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점심 시간도 끝나가는 터라 수상실로 서둘러 복귀해야 했다. 하지만 발을 돌리기 직전, 칼비티움의 목소리가 그의 발꿈치를 붙잡았다.


“그나저나 놀랐어. 네가 이렇게 공격적으로 나올 줄이야. 여태껏 조심스럽던 아디우토르 데키무스는 어디 갔는지 모르겠군그래. 마치 날 보는 것 같아.”


“자신을 보는 것 같으면 어서 행동으로 옮기게. 설마 이제 와서 앙겔루스 디아볼리가 무서워진 건 아니겠지?”


“딱히 그런 건 아니야.”


두 번째 담배도 재떨이에 버린 칼비티움은 마지막 연기를 천장을 향해 내뿜었다.


“누구보다 아들을 사랑하는 것처럼 보였던 남자가 아들을 이용해서 여기까지 왔어. 그리고 아들을 대신할 남자를 세심히 감싸더니 지금은 오히려 그를 겁박하려 하지. 도대체 네 바람은 뭐냐, 아디?”


질문을 받은 아디우토르는 조용히 문을 열었다. 복도에는 아무도 없다. 그걸 확인한 수상 보좌관은 정보국장을 바라보며 읊조리듯 말했다.


“언제는 우리가 서로를 이해한 적이 있었나? 나도 너희를 모르겠어. 칼, 너도 그렇고 파이도 마찬가지지.”


친구가 문을 닫고 사라지자 칼비티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참이나 방안을 걸어 다니던 그는 구석의 책장으로 향했다. 그곳에 꽂힌 서류들을 치우자 안에 숨겨진 작은 앨범이 나타났다. 앨범 안에는 낡은 사진이 여러 장 들어 있다. 그중 가장 뒤에는 세 사람이 밝은 얼굴로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왼쪽에서부터 칼비티움 라쿠스, 파이니트 노비시메, 아디우토르 데키무스다. 지금과는 언뜻 다르면서도 비슷한 모습이다.


“이때로 돌아간다면 진작에 수상을 바꿀 수 있을까? 저딴 찌꺼기 같은 남자를 이용하지 않더라도 말이야.”


씁쓸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사진을 어루만지던 칼비티움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찢어진 달력은 되돌릴 수 없지. 지금에만 집중하면 될 것을.”


그가 다시 앉았을 때, 철컥이는 금속음이 사무실을 울린다. 정보국장임을 증명하는 권총이다. 이데아의 장성으로서 조국을 지킬 의무가 담겨 있다. 그렇기에 칼비티움은 이 권총을 겨눌 것이다. 자신에게 이 총을 맡긴 남자를 향해.


작가의말

봄이 다가오는 시기입니다.

지난주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연재를 하지 못한 점 진심으로 죄송스럽습니다.

최대한 성실히 연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오늘도 독자님들의 행복한 하루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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