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 위의 이데올로기

무료웹소설 > 자유연재 > 전쟁·밀리터리

새글

백G
작품등록일 :
2023.07.10 20:20
최근연재일 :
2024.09.23 21:57
연재수 :
56 회
조회수 :
456
추천수 :
6
글자수 :
266,333

작성
24.04.22 23:33
조회
7
추천
0
글자
10쪽

40화

DUMMY

이데아가 움브라 건으로 은연중에 소란스러운 동안 아메리고의 정치계에서도 파행적인 사건들이 연이어 터졌다. 그 시작은 대선에서 승리한 여당의 내각 구성이었다. 앤드류 머레이가 당내 유력자 중 한 명인 루치아노 바렐라에게 그 어떤 자리도 주지 않자 그동안 쌓인 불만이 결국 폭발했다. 여당은 앤드류를 위시한 주류파와 루치아노를 따르는 과격파로 갈라졌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계파 갈등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결론이 났다. 재정적 후원도 그렇고, 의석수도 많은 주류파의 정치적 기반이 우세했기 때문이다. 거기다 루치아노가 주지사로 재직하던 당시의 비리에 대한 진술이 나오면서 여론이 급락했다.


하지만 루치아노 바렐라는 이 결과에 승복하지 않았다. 여전히 자신을 따르는 과격파를 이끌고 탈당해 새로운 당을 창당했고, 검찰의 소환 요구를 정치적 탄압이라고 비난했다. 또한 대선의 패배로 침체된 야당에 협조를 빙자한 보호를 요청했다. 무엇보다 주지사로 쌓은 긍정적인 이미지를 좋게 보는 화이트칼라 지지자들에게 앤드류 정부가 거짓으로 점철되었다며 심판이 필요함을 호소했다. 마침 대선 직후 내세웠던 공약들을 하나둘씩 폐기한 신생 정부는 비난의 대상이 되기에 적합했다.


이와 같은 정치권의 힘겨루기는 아메리고 국민 간의 갈등을 불러왔다. 움브라, 정확히는 콘트라 도크트리나가 뿌렸던 이데올로기의 씨앗이 혐오란 양분을 먹고 자라 지상 위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국가는 하나의 사회이며 사회는 복수의 시민으로 이루어진다. 다수가 갈라져 싸운다면 체제가 제대로 돌아갈 리 없다. 결국 아메리고는 국력을 회복할 시간을 계속 잃고 있었다. 이데아가 내부 사정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보기만 해도 복잡하기 짝이 없는 상황 속에서 힘을 키우는 중인 정치인이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피기 스톤스, 여당 대선 후보 캠프에 합류했으나 앤드류 머레이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루치아노 바렐라에 의해 쫓겨난 남자다. 그러나 이 짧은 시간 동안 피기는 독자적인 기반을 갖췄다. 이는 새로운 후원자를 확보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대표님, 락 페르 회장님께서 방문하셨습니다.”


“모셔 와.”


알겠다고 대답한 여자는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사람과 함께 돌아왔다. 기골이 장대해 정장보다는 운동복이 어울리는 갈색 머리 남자가 시원한 미소를 지으며 피기 스톤스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오랜만이군, 피기 대표. 그간 무탈했나?”


“회장님께서 후원해 주신 덕분에 별 문제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계획의 차질이 아닌 자네의 안부에 대한 물음이네만.”


여전히 일만 생각하는 피기를 보며 크게 웃은 락 회장은 안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 책상에 올렸다.


“우리 회사에서 피기 대표를 돕고 싶어하는 지지자가 10 명이나 있더군. 마침 내가 오늘 근처에 출장 갈 일이 있어 서류를 대신 전달하려고 왔어.”


“늘 감사합니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피기는 이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자연스럽게 상대의 어깨를 툭툭 친 락 페르는 대표실을 떠났다. 그가 서 있던 자리를 째려본 피기 스톤스는 주변에 들릴 정도로 이를 갈았다.


“고생하셨습니다, 대표님.”


“괜찮아. 앤드류 머레이와 루치아노 바렐라에게 복수하기 위해서라면 아무것도 아니지. 그 두 놈만 정치판에서 끌어내린다면 아메리고가 훨씬 나아질 테니까.”


“맞습니다. 두 사람은 정치를 하려고 정치를 하는 것이지, 나라를 위해서 정치를 하는 게 아니잖습니까?”


숨을 고른 여자는 말을 계속했다.


“물론 대표님께서도 언제나 올바른 판단을 하시는 건 아닙니다. 솔직히 갑자기 세력을 키우겠다고 야당에서 갈라져 나온 이상한 무리와 손을 잡으셨을 때는 심란했습니다.”


“그땐 내 머리가 어떻게 됐었나 봐.”


날카로운 지적에 피기 스톤스는 머리를 긁적였다. 언제나 논리적으로 싸우려 드는 그로서 드문 모습이다. 하지만 여자가 말한 일은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루치아노 바렐라와의 마지막 대화에서 피기 스톤스는 자신의 정치적 한계를 느꼈다. 아무리 올바른 사상을 가지고 있어도 내세울 환경이 되지 않으면, 들어줄 사람이 없다면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기 때문에 올바른 이데올로기를 경청하고, 따라오는 이들을 선별할 필요를 느꼈다. 문제는 세력을 형성하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이를 위해 대선에서 패배한 야당에서 범인으로 몰린 몇몇과 접촉했다. 문제는 그들이 피기 스톤스가 추구하던 사상과 전혀 다른 스탠스를 취했다는 것이다. 때문에 세력 확정이라는 목적을 성취하기는 커녕 오히려 혼란만 가중되었다. 거기다 세력 강탈을 노리고 합류한 정치 원로의 심복은 사사건건 시비를 걸어 왔다.


난장판을 보다 못해 나선 사람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여자, 스카 이스노프다. 스카는 자신의 탁월한 정치력을 십분 활용해 문제를 해결했다. 피기 스톤스의 세력에 합류한 여러 계파의 복잡한 이용해 고의적으로 내부 갈등을 유발, 불필요한 인물들이 제 발로 나가도록 만들었다. 그 와중에 도움이 되는 사람들이 불만을 품지 않도록 잘 다독였다. 만약 스카가 없었다면 앤드류와 루치아노를 향한 대포는 이미 공중분해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피기의 세력에게는 그녀의 도움보다 커다란 지원이 존재했다.


“지금까지 들어온 후원금은 어떻게 되지?”


“창당은 당연하고 현 주요 회원들이 보궐 선거에 입후보할 정도는 됩니다.”


“이제 선거 운동을 위한 자금이 필요하겠네.”


“방금처럼 암암리에 지원해 주는 재력가들이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다만 외부의 시선을 의식해서라도 모금 활동을 하는 게···”


“상관없잖아. 지금도 법에 걸리지 않고.”


한순간 차가워진 대표의 얼굴을 본 여자는 죄송하다고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피기의 말대로 현재 세력으로 유입되는 후원금은 정치자금법에 어긋나지 않는다. 동시에 오늘처럼 개인의 소규모 기부를 통해 지지자 수를 과장하고 있다. 로비스트를 이용해 국회에 얼굴을 드러낼 기회까지 알아봐 주는 솜씨에 감탄을 숨길 수 없다.


“그래도 대표님, 조심하셔야 합니다. 대표님께서 재기하시면 저자들이 어떤 것을 요구할지 모릅니다.”


“내가 모르겠어? 하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잖아. 기반을 만들려면 자금과 지지자가 필수니까.”


무슨 말인지 이해하면서도 불안한 마음을 숨길 수 없는 스카 이스노프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책상에 놓인 봉투만 바라보았다. 유독 후원자 중에 석유사의 관계자가 많은 이유를 고민하면서.




“우리가 무슨 노예인 줄 알아?!”


유리창을 깨뜨릴 듯한 고함과 함께 날카로운 나이프가 낡은 나무 책상에 박혔다. 얼굴이 빨개진 채 소리를 지른 남자는 누가 봐도 험악한 범죄 조직의 중역 같다. 하지만 정보국의 요원은 범죄자의 협박 따위 아무렇지 않다는 눈빛으로 남자를 무시하며 검은 중절모를 고쳐 썼다.


“지시대로만 하면 너희 조직의 지명 수배자가 밀항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해당 조건하에 쌍방이 합의했을 텐데.”


“그건 보스가 한 약속이지. 죽어나는 건 여기라고!”


“조직의 일원들은 목숨을 걸고 보스에게 충성한다는 맹세를 하지 않나? 역시 범죄자들이란 손바닥 뒤집듯이 약속을 어겨. 한심해. 한심하군.”


무심한 어투로 조롱하는 상대를 째려보던 남자는 반항을 포기하고 의자에 풀썩 주저앉았다. 그제야 요원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일단 니네 나라에서 뭐라 하는 건 고문이 알아서 처리 중이야.”


“이미 들었다. 내가 알고 싶은 건 이쪽의 진행 상황인데 말이지. 행동 대장답게 제대로 설명해 봐.”


“하······ 짭새들의 순찰망이 빈 시간대는 확인했어. 경비가 허술한 구멍도 발견했고.”


“예상보다 쓸모 있군.”


칭찬 같지 않은 칭찬에 대놓고 욕설을 내뱉은 남자는 지도에서 커다란 네모를 가리켰다. 그 아래에는 ‘알코즈 국영 석유 회사'라고 적혀 있다.


“문제는 여기에 들어가질 못하겠어.”


“좋은 판단이네. 어차피 범죄자 수준으로는 진입하기 힘든 곳이지. 거기다 누군가 잡힌다면 감시망이 더욱 삼엄해질 테고.”


“계속 우리를 무시하는데···”


“그렇게 불만이라면 본인들 선에서 마쳤으면 되는 것 아닌가? 만약 그랬다면 나도 할 말이 없었겠지. 하지만 본인도 실패할 걸 알았으니까 우리에게 떠넘기려고 기다린 게 아닌가?”


사실만 쿡쿡 찔러 대는 상대의 발언에 행동 대장은 반박은 못하고 입술만 깨물었다. 공연히 책상에 박힌 나이프보다 빨갛게 물든 송곳니가 더욱 날카롭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너희가 아예 쓸모없는 건 아니지.”


“뭔 말이야?”


방금까지만 해도 비난만 하던 요원이 갑자기 태도를 뒤바꾸자 행동 대장은 영문을 몰라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이내 묘한 감정에 고양되었다. 자신을 무시하던 남자가 결국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에 쾌감을 느낀 것이다. 요원은 애초부터 이때를 노리고 있었지만 말이다.


“이쪽의 머릿수가 부족해서 말이지. 밖에서 경비와 경찰을 붙잡아 줬으면 하는데.”


“그건 총알받이잖아.”


“너희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실망이 크군.”


“진짜 짜증나네······ 우리의 진짜 실력을 보여 주마, 이 썩을 놈아!”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시체 위의 이데올로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56 56화 NEW 4시간 전 0 0 11쪽
55 55화 24.09.03 5 0 11쪽
54 54화 24.08.27 4 0 10쪽
53 53화 24.08.19 3 0 10쪽
52 52화 24.08.12 5 0 13쪽
51 51화 24.07.29 5 0 10쪽
50 50화 24.06.24 4 0 10쪽
49 49화 24.06.19 5 0 10쪽
48 48화 24.06.18 4 0 10쪽
47 47화 24.06.17 5 0 11쪽
46 46화 24.06.04 8 0 10쪽
45 45화 24.05.27 6 0 11쪽
44 44화 24.05.20 7 0 9쪽
43 43화 24.05.13 7 0 9쪽
42 42화 24.05.06 7 0 10쪽
41 41화 24.05.01 6 0 9쪽
» 40화 24.04.22 8 0 10쪽
39 39화 24.04.15 7 0 10쪽
38 38화 24.04.08 6 0 10쪽
37 37화 24.04.02 6 0 10쪽
36 36화 24.03.25 6 0 10쪽
35 35화 24.03.18 6 0 10쪽
34 34화 24.03.12 7 0 10쪽
33 33화 24.03.04 6 0 10쪽
32 32화 24.02.26 8 0 9쪽
31 31화 24.02.12 6 0 10쪽
30 30화 24.02.05 7 0 11쪽
29 29화 24.01.29 7 0 9쪽
28 28화 24.01.22 7 0 10쪽
27 27화 24.01.15 9 0 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