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 위의 이데올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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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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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1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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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9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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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화

DUMMY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한파처럼 차가운 목소리는 이데아의 정상이 일하는 공간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쭈글쭈글한 신문을 쥔 앙겔루스 디아볼리의 얼굴에는 어떠한 감정도 실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렇기에 차렷 자세 중인 사령부 장관은 너무나도 두려웠다. 지금이 저 남자가 가장 화난 상태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죄송합니다, 각하.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할 말이 없다니? 어떤 연유로 지금의 사태가 벌어졌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논의하자고 모인 게 아닌가?”


“그게···”


“제가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장관의 말을 끊고 나선 사람은 정보국장 칼비티움 라쿠스였다. 그는 기밀 관리 및 언론 검열을 제대로 하지 못한 잘못을 묻기 위해 이곳에 불려왔다. 문책을 받아야 할 입장이면서 오히려 먼저 나선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행동이다. 하지만 앙겔루스는 아무렇지 않아 하며 발언을 허락했다.


“먼저 훈련소에서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한 것과 더불어 재빠른 대처로 원만하게 해결하지 못한 것은 사령부의 책임이라 생각합니다. 이건 사령부 장관도 인정할 겁니다. 다음으로 이번 일이 표면에 드러난 건 정보국의 관리 문제입니다.”


“잘 알면 두 사람이 책임지고 해결해야지.”


“그런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상하다고?”


크나큰 문제가 발생했는데도 불구하고 느긋한 정보국장의 태도에 수상은 의아함을 숨기지 않았다. 예상했던 반응이 나오자 칼비티움은 목소리를 낮추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정보국은 전부라고 해도 무방한 대부분의 언론사를 관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기밀을 저희의 검열망에도 없는 동네 신문이 알아내다니 가당키나 한 일입니까?”


“그것도 그래. 하지만 나도 고려하지 않은 문제가 아닐세. 이미 보좌관을 통해서 비밀 감사를 시작했으니 범인은 곧 잡힐 게야.”


수상이 입을 닫기 무섭게 아디우토르 데키무스의 설명이 이어졌다.


“이 시간부로 사령부 산하의 각 군 본부에 영관, 위관, 부사관, 병급 1 명씩 총 4 명의 감사원을 배속합니다. 특히 정보국에는 부장급을 1 명 더 추가 배치할 예정이니 참고 바랍니다.”


“예, 알겠습니다.”


“정보국도 이견 없습니다. 다만 아직 드릴 말씀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한순간 아디우토르의 눈빛이 변했지만 이를 눈치챈 사람은 칼비티움밖에 없는 것 같았다. 정보국장은 수상 보좌관의 의도를 모른 척 외면했다.


“저희는 단순한 기밀 유출이 아니라고 추측했습니다, 각하.”


“흐음, 어떤 의미인가?”


“굳이 정보를 빼내서 문제를 일으킬 계획이었다면 언론이 아닌 정치인을 찾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저런 이상한 곳이 아닌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언론사와 연결을 시켜 줬을 겁니다.”


이야기를 듣던 수상은 턱을 괴고 생각에 빠졌다. 처음에는 정보국장을 말리려던 사령부 장관도 상황이 묘하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미간을 찌푸렸다.


“범인은 내부에 있습니다. 감사가 필요한 것도 확실합니다. 문제는 놈들이 노리는 걸 모르는 이상 잡기 전까지 어떤 일이 터질지 모른다는 겁니다.”


“나도 단순히 특종을 위해 기밀을 산 건 아니라고 생각하네. 정치적인 이유라면 자네의 말대로 나와 적대하는 세력과 접촉했겠지. 근데 그게 아니라면 범인의 목적은···”


“분란이라고 봅니다.”


단호한 대답의 주인은 당연히 칼비티움이었다. 그를 바라보는 세 개의 시선은 제각기 다른 감정을 품고 있었다. 하나는 사형수를 동정하는 사령부 장관, 다른 하나는 미친 친구를 저주하는 수상 보좌관, 마지막 하나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서슬 퍼런 것이었다.


“분란이라고 함은?”


“아무래도 이데아에 문제를 일으키려는 놈들이 있다고 봅니다.”


“흐음······”


“장난이 지나쳐, 정보국장.”


“아니야.”


한층 싸늘해진 분위기를 어떻게든 무마하려는 사령부 장관의 노력은 수상의 제지에 끊겼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어. 적이 있다면 어떻게든 잡아야지. 안 그렇나, 사령부 장관?”


“마, 맞습니다.”


“해충은 박멸해야지, 집 밖에 있든, 안에 있든. 일단 둘은 감사가 끝나고 나서 잘잘못을 다시 따지세나.”


이야기가 끝나자 사령부 장관과 정보국장은 계급에 맞지 않게 각이 잡힌 경례를 하고서 집무실을 떠났다. 그들이 사라지자 앙겔루스 디아볼리는 낮고 무거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정보국에는 청부업자도 넣어 둬. 칼비티움 녀석에 대해 잘 알면서 죽일 수 있는 사람으로다가.”




수상의 호출 이후 정보국은 한동안 적극적인 행동을 자제했다. 감사원을 속이기 위해서 연예인의 스캔들이나 운동 선수의 활약으로 시선을 돌리는 행보를 보였다. 동시에 야당을 압박하는 대내 활동을 진행하면서 자신들이 절대 적이 아니란 것을 호소했다. 물론 단기간의 눈속임으로 쉽게 넘어갈 리가 없음을 그들 역시 알고 있었다.


부장 중에도 감사원이 있으니 간부 회의도 조심스럽게 진행되었고 그러다 보니 앙겔루스 디아볼리를 끌어내리기 위한 학사모 작전은 계획을 세운 콘트라 도크트리나 위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칼비티움은 못마땅해하면서도 콘트라의 통제망을 풀어 주었다. 감시를 맡은 아르마가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었지만 이 또한 괜한 변동을 감사원에게 트집 잡힐 위험이 있었기에 넘어가야만 했다.


“간만에 보는 햇빛은 어떤가요?”


“별로입니다.”


“왜요?”


“고작 햇빛 따위에 행복해하는 것이 웃기지 않습니까? 노예나 다를 바 없는 모습입니다.”


콘트라의 씁쓸한 소감에 아르마는 괜히 미안해졌다. 만약 자신이 저 남자를 호텔에서 놓아주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물론 미래는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은 정보국의 손아귀에 붙잡혔을 것이다. 그러니까 자신과 함께 햇빛을 볼 수 있는 지금이 이 사람에게 최선이라고 합리화하는 아르마였다.




예상과 달리 밖에 나온 콘트라는 정보국의 공모부장으로서 열심히 움직였다. 감사원이 배치되기 직전 교체된 코드로 피아를 식별하며 현상황을 파악했는데 다행히 대부분의 요원들은 감사원의 눈을 피한 모양이었다. 진행도 역시 만족스러웠다.


언론사에 배치된 요원들은 마르타 안젤리아의 보도를 기점으로 신속히 움직였다. 언론사의 편집국장들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었지만 ‘진실에 입을 다문 대형 언론에 대한 심판’이라는 부제에 결국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물론 끝까지 입을 다문 곳도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이데아스였다.


군부대에 배치된 요원들은 사령부가 사건 은폐를 위해 벌인 행위를 은밀히 폭로했다. 해당 부대에 배속된 장교는 해명을 요구하는 사망자의 모친을 밀치거나 합의를 강요하는 등의 문제를 일으켰다. 악담이 늘어만 가자 몇 년간 조국을 철통같이 지키면서 영토를 넓혔던 군은 국민의 신뢰를 잃기 시작했다.


콘트라는 다음 단계로 넘어갈 것을 지시하면서도 동시에 이번 사건을 장기화하지 말라는 충고를 덧붙였다. 어차피 대중과 정치인에게 있어서 괴롭고 억울한 피해자는 그저 한순간 스쳐가는 이슈로 희생될 뿐이라며. 누군가의 귀중한 목숨조차 저들의 도덕적 우월감 과시와 정치적 입지 확립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며.




모든 일 처리를 끝낸 콘트라는 그제서야 한숨을 돌리고 길가를 거닐었다. 마침 노을에 물든 강을 보고 있자니 한때의 연인이 떠올라 견디지 못한 남자는 결국 추억의 장소로 향했다.


“딱 봐도 비싼 가게 같네요.”


“당신의 봉급이라면 충분히 먹고 마시지 않겠습니까?”


“글쎄요. 돈은 딱히 신경 안 써서요.”


“저만 노예가 아니었나 봅니다.”


허탈하게 웃던 콘트라는 직원이 오자 간단한 술과 요리를 주문했다. 혹여나 의심을 사지 않을까 포에나 쿠아이스티오와 함께 왔을 때의 메뉴는 주문하지 않았다. 괜히 같은 음식을 먹은 것조차 흔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정보국과 함께 일하면서 배운 덕분이다.


식사를 마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길지도 짧지도 않았다. 일반인 속에 자연스럽게 동화되는 법을 익힌 아르마는 언제나 적절한 속도로 밥을 먹었다. 콘트라가 상대에 맞춰서 스푼을 내려놓았을 때 펑 하는 소리와 더불어 형형색색의 불꽃이 밤하늘을 수놓았다.


순간 아르마는 묘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애처로운 눈동자로 폭죽을 쳐다보는 콘트라의 옆모습에 입가가 절로 올라간다. 지금 자신의 손에는 총도, 칼도 없지만 편안하다. 그 이유를 고민하던 아르마는 이내 저 남자와 함께이기 때문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 감정이 사랑임도.




계산을 마치고 레스토랑에서 나온 콘트라는 아르마를 데리고 어디론가 향했다. 가면 갈수록 무거워지는 발소리에서 긴장감이 느껴졌다. 한참이나 걸어 외곽의 숲까지 빠져나오자 그제서야 입을 여는 콘트라 도크트리나였다.


“지금부터는 저를 지켜주셨으면 합니다.”


“걱정 마요. 늘 그랬어요.”


“다행입니다.”


빙긋 웃은 콘트라는 숨을 깊게 들이쉬고서 울창한 나뭇가지를 헤치며 걸어나갔다. 얼마 가지 않아 불길한 느낌의 조각이 새겨진 목책이 나타났다. 목적지를 발견한 콘트라는 한 발짝 더 내딛으려고 했지만 타의에 의해 멈춰야 했다.


“여긴 우리 영역이니까 썩 꺼져. 고약한 냄새 품기지 말고, 이 썩은 우유 덩어리야.”


목에 흐르는 진득하고 따뜻한 액체. 하지만 그와 상반된 차가운 금속은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콘트라는 온갖 수라장에서 살아남은 남자답게 금새 정신을 차리고 평소와 다름없는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선약을 하고 왔습니다만.”


“예약?”


“족장한테 전하세요. 움브라에서 찾아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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