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 위의 이데올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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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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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1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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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3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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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05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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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화

DUMMY

알코즈에서 온 국빈이 귀국한 직후 움브라에서는 긴급 회의가 열렸다. 직원들의 얼굴은 매우 밝다. 콘트라 도크트리나가 알코즈의 첩보 장관 나크 사드와 진행한 면담 결과가 긍정적이었기 때문이다. 오늘 부서의 명운이 결정된다고 하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화사한 분위기다. 그만 떠들라고 지적하는 대내 팀장 트라디토르의 입가에도 미소가 끊이지 않는다. 단 한 사람, 실장 파이니트 노비시메를 제외하고는.


“오랜만이군, 제군들.”


“어서 오십시오, 수상 보좌관님!”


문을 열고 들어온 남자는 다름아닌 아디우토르 데키무스, 이데아의 수상 보좌관이다. 그를 본 움브라의 직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건넸다. 친구의 등장에 파이니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 하지만 곧이어 나타난 또 다른 남자를 본 그녀의 눈동자는 뒤흔들렸다.


“지난번보다 더러운 것 같군. 열심히 일해서 그런지, 어차피 떠날 장소라 막 쓴 건지 모르겠어.”


“누추한 곳에 친히 행차해 주셔서 영광입니다, 수상 각하.”


“딱딱하게 대할 것 없네, 파이니트. 우리가 그렇게 서먹한 사이는 아니지 않은가.”


말만 보면 인자한 할아버지로 보인다. 그러나 지금 앙겔루스 디아볼리의 얼굴은 너무나 표독스럽다. 그의 입은 먹이를 씹을 생각만 하고 있다. 그의 눈은 꼬투리 잡을 준비가 되어 있다.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파이니트의 머릿속은 복잡할 뿐이다.


“그럼 자리에 앉도록 하지. 약속 이후의 성과를 들어 봐야 할 테니 말이야.”




목청을 가다듬은 콘트라는 앙겔루스에게 서류를 제출했다. 수상이 다녀간 이후,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결과를 모두 기록한 보고서다. 팔리아의 흐름뿐만 아니라 아메리고에서 진행한 작전을 알린다면 수상도 생각이 바뀔 것이다. 그렇게 확신한 콘트라는 입을 떼었다.


“가장 먼저 팔리아의 상황을 보고해 드리겠습니다. 실종된 탄투메 이우스 대외 팀장을 대신해 제가 개미 지옥 작전을 진행했습니다. 현재 리다이트는 녹지 지대를 넘어 팔리아 전역의 확보를 위해 사막 지대까지 진군 중입니다. 다만 동부는 알코즈와의 접경 지역임에 따라 최후에 공격하라고 조언했습니다.”


“흐음.”


“리다이트 상층부의 내부 문제로 진군이 다소 지연됨에 따라 주변국에서 팔리아에 개입할 시간을 주기는 했으나 큰 지장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이데아에서 필요로 하던 석탄과 인력의 1 차분을 납입 받았습니다.”


“좋아. 그런데 이게 끝은 아니겠지?”


“물론입니다. 다음은 아메리고에서 진행한 작전입니다.”


“아메리고? 갑자기 거기는 왜 언급하는가?”


콘트라는 고개를 끄덕인 후 설명을 계속했다.


“지난 전쟁으로 국력이 위축되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이민자가 끊이지 않는 아메리고입니다. 그리고 넓은 국토에서 확보되는 자원을 통해 피해 역시 금방 복구 중입니다.”


“정보국을 통해서 확인한 바일세.”


“만일 이를 그대로 좌시한다면 이데아는 위아래로 적을 만드는 셈입니다. 따라서 아메리고의 혼란을 가중시켜야 한다고 판단, 대선에 개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번 건은 흥미로운 주제인지 표정이 변한 앙겔루스다.


“보고를 받은 사안이기는 하다만 자세히 이야기해 보겠나?”


“알겠습니다. 이번 대선은 쿠데타를 일으키고 임시 정부를 수립한 대통령 권한 대행 앤드류 머레이와 이민자 출신의 엘리트 사우르 안디오 간의 경쟁이었습니다. 양측은 서로 다른 장단점이 있었기에 지지층도 갈렸고, 지지율에서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때문에 새로운 지지층을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여기서 정보국을 통해 이데아에 유리한 후보자에게 커뮤니티를 연결해 주었고, 어제 들어온 보고에 따르면 앤드류 머레이가 당선되었다고 합니다.”


“좋은 소식이군. 사우르 그 애송이는 귀찮아. 국익만 바라는 척하지만 잇속을 챙기기 바쁜 위선자니까. 물론 칼비티움이 이미 손 쓰기는 했지만 말이야. 거기다 국민보다 아내를 무서워하는 앤드류가 다루기 수월한 건 당연한 일이지.”


“가장 중요한 성과는 따로 있습니다.”


“그게 뭔가?”


“알코즈의 개입을 막은 것입니다.”


“호오?”


“알코즈의 왕세자가 이데아를 방문한 날, 그의 심복과 접촉했습니다. 제가 알코즈에서 근무할 당시, 그 남자와 인연이 있었고, 그는 저의 제안을 받아들인다고 했습니다. 이 정도면 움브라는 유지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각하!”


콘트라는 자신감으로 가득 찬 목소리로 외쳤다. 그 모습에 포에나와 트라디토르는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전혀 아니다. 수상은 의미를 알 수 없는 웃음을 띄고 있다. 그의 뒤에 선 아디우토르는 아무 말 없이 허공만 보고 있다. 이상한 상황을 감지한 파이니트는 이어질 미래를 예감했다.


“그런데 이를 어떡하나? 자네의 말은 틀렸어.”


“예?”


“알코즈는 팔리아에 개입한다고 통보했네. 결국 콘트라 도크트리나의 발버둥은 실패로 끝난 게지.”


“그럴 수가······”


“물론 자네의 노력은 최선이었네. 팔리아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적은 앤드류 머레이를 아메리고의 대통령으로 만들었으니. 거기다 놈의 불같은 성질을 이용해 당 내부의 경쟁 구도도 어긋냈고.”


“······ 칭찬 감사드립니다.”


“그뿐만이 아니야. 피기 스톤스라고 했던가? 그자를 지지하는 젊은 남자들을 이용해 분란을 심화시켰더군. 특히 일부 멍청이들은 마치 정의의 사도라도 되는 양 행세하고 있어. 여자는 신체적으로 약하니까 경찰과 군인이 되면 안 된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그런 만큼 보호가 필요하단 주장에는 자신들을 범죄자 취급한다며 화만 내지. 뭐, 특혜란 특혜는 다 받으면서도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몇몇 아메리고 여자들 역시 뻔뻔하기는 마찬가지지만. 이래서 내가 그쪽 사상이 흘러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는 게야.”


“지극히 합당한 말씀입니다.”


하지만 내뱉은 말과 달리 콘트라의 얼굴은 어둡기만 하다. 본인도 이를 알기에 그저 고개를 숙이고서 바닥만 내려다보고 있다.


“움브라가 사라진다면 당분간 할 일이 많겠군. 번거로운 일을 대신할 자들도 뽑아야 하고, 더러운 작업을 진행할 이들을 찾아야만 해.”


“그렇다면 이대로···”


“하지만 약속이란 건 지키라고 있는 것 아니겠나? 그리고 말이야, 파이니트. 자네가 나에게 보고하지 않고 칼비티움을 찾아간 적이 있다고 하더군. 그게 사실인가?”


“······ 그렇습니다만 딱히 중요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장난하는 건가?!”



수상의 노성이 사무실을 뒤흔들었다. 움브라의 해산 결정으로 침울했던 포에나는 소리내어 훌쩍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앙겔루스 디아볼리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분노를 여과 없이 드러내기 바쁘다.


“이미 다 듣고 왔어. 자네가 정보국장에게 내건 세 가지 조건을!”


“그건······”


순간 실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언제나 평정심을 유지해 왔던 그녀지만 지금의 상황을 버티기 힘들었다. 이제 끝이란 걸 인지한 트라디토르는 아무 말 없이 눈을 감았다.


“마지막 조건, 설령 첫 번째 조건과 두 번째 조건을 지키지 못하더라도 움브라를 지켜 달라. 칼비티움의 보고가 사실인가?”



“······ 맞습니다.”


“이게 중요하지 않다고? 감히 나와 약속한 걸 뒤엎는 짓을 저질러 놓고서!”


화를 주체하지 못한 앙겔루스는 책상에 놓인 화분을 들었다. 주름진 노인의 손을 떠난 낡은 그릇은 정확히 파이니트를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비명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아디우토르, 네 녀석······”


“오늘부로 수상실 직속 기관 움브라는 해산한다. 각하께서 전하러 오신 말씀은 여기까지 아니었습니까? 지켜보는 눈도 많으니 이만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제서야 주변을 둘러보는 앙겔루스다. 수상과 눈이 마주친 경호원들은 다급히 고개를 돌렸다. 마치 자신들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고, 듣지 못했다는 것고 말하는 듯이.


“그러고 보니 오늘 일정이 빡빡하던 것 같군.”


“10 시에 아메리고 대사를 만나 대통령 당선자 앤드류 머레이에게 축하 서신을 전달하기로 했습니다. 12 시에는 제1 야당 총재와 언론 점검령에 대해 논의하기 위한 식사 자리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바르타니아 국왕의 태손이 국회 의사당을 방문한다는 첩보가 들어왔는데 15 시로 추정됩니다. 마지막으로 18 시에는 친나즈에서 보내온 밀서가 도착할 예정입니다.”


메모나 수첩 없이도 또박또박 설명하는 아디우토르를 보면 감탄만 나온다. 하지만 앙겔루스는 당연하다는 듯한 얼굴로 바쁜 하루가 되겠다며 혀를 찼다.




수상이 떠난 사무실 안은 고용하다.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는다. 먼저 말을 꺼내면 벌칙이라도 있는 것만 같다. 이 상황을 보다 못했는지 책상을 쾅 치며 일어난 사람은 역시 파이니트 실장이었다.


“다들 짐을 챙겨라. 사무실을 비운다.”


“이렇게 포기할 겁니까, 실장님?”


“그러면?”


파이니트가 되묻자 트라디토르는 얼어붙은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움브라는 수상 각하와 한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그래서 해산 명령이 내려졌고, 오늘부로 사라진다. 내가 이해한 사실에 오해라도 있나?”


“그건 아닙니다만 억울하지 않습니까? 저희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지금까지 우수한 실적도 냈고요!”


“그래서?”


“그래서라니······”


트라디토르는 나름 용기를 내서 반박했음에도 파이니트가 코웃음치자 기가 꺾였다.


“움브라는 노력으로 평가 받지 않아. 그때 그때의 실적과 결과로 판단될 뿐이지.”


“하지만 그동안의 실적은···”


“지금까지 뭘 했건 상관없다. 지금 우리는 남진 정책에 큰 누를 끼쳤다. 이를 무마한 건 결국 각하를 비롯한 수상실과 외교부야. 제 몫을 다하지 못한 조직이 징계를 받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


더 이상 싸울 근거를 잃은 트라디토르는 결국 책상으로 향했다. 그간의 추억이 담긴 것들을 챙기는 남자의 모습은 애달프기만 하다.




사무실에서 짐을 챙겨 나온 콘트라는 천천히 계단을 올랐다. 아무것도 모르고 실장을 따라온 그날이 떠오른다. 하지만 그때로 돌아갈 수는 없다. 이미 움브라는 사라졌다. 자신의 허술한 계획과 잘못된 작전 때문에.


밖에 나오니 빗소리가 들렸다. 하필 우산이 없는지라 콘트라는 주변을 살폈다. 어쩌면 아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더라도 불쌍한 사람을 도울 선량한 시민이 있을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검은 차가 그의 앞에 멈춰 섰다. 감사를 표하려던 콘트라는 천천히 올라간 창문 너머를 보고서 미소를 거뒀다.


“잠시 이야기 좀 하겠나, 콘트라 도크트리나?”


“정보국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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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41화 24.05.01 7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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