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 위의 이데올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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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G
작품등록일 :
2023.07.1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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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3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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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18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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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화

DUMMY

오한이 시릴 정도로 시퍼런 남자의 눈동자에는 원치 않는 이유로 침묵을 지키는 남자가 비춰져 있다. 칼비티움의 입가는 올라가 있지 않지만 왠지 모르게 조롱하는 것만 같다.


“난 자네에게 두 가지 측면에서 실망했다네.”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세 가지로 늘어났군.”


혀를 찬 칼비티움은 새 담배에 불을 붙였다.


“여긴 우리가 운영한다는 건 움브라도 알고 있을 텐데 말이야.”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실수를 저질렀을까?”


칼비티움은 질문과 함께 연기를 상대의 얼굴에 뱉어 냈지만 콘트라는 고민만 할 뿐이다. 어떻게 해야 이 위기 속에서 탈출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이 남자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지 자신의 안위를 계속해서 생각하고 있다. 동시에 어떻게 해야 가정과 애인 양쪽을 유지할 수 있을지 자신의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지금 자네는 비겁하고 이기적이기 짝이 없어.”


손가락으로 톡톡 쳐서 담뱃재를 떤 남자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어차피 도망갈 수 없네, 콘트라 도크트리나.”


“도망가고 자시고 사실이 아닌 것을 굳이 변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실이 아니라······ 역시 협잡꾼 집단 출신다운 태도야.”


“상급자라지만 우리 부서를 모욕하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허파까지 빨아들인 한숨을 내쉰 연기와 함께 꽁초를 버린 칼비티움은 테이블에 다리를 올렸다. 그 모습은 이미 승기가 그에게 기울었음을 보여 주었다. 콘트라 역시 이를 부정하지 못하고 무릎에 올린 손의 떨림만 애써 숨길 뿐이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건가, 만약 아내가 이 사실을 안다면?”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사실이 아니기에 설명할 게 없습니다. 정보국의 기술로 만든 조작된 사진이지 않습니까? 아무리 우리를 갈라놓으려 해도 저와 아마레는 서로 신뢰하고 있습니다.”


“사진 조작?”


턱을 어루만지던 칼비티움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일반인이 그런 걸 제대로 알겠나? 그리고 남녀 간의 신뢰를 가장 단단히 묶는 게 애정인 만큼 가장 간단하게 깨는 것도 애정이라네.”


“그건···”


“무엇보다 애초에 조작된 사진이 아니란 것쯤은 자네도 알지 않는가?”


“포에나 쿠아이스티오와는 부서 동료 관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닙니다.”


그렇게 나온다면 어쩔 수 없다며 어깨를 으쓱거린 칼비티움은 안주머니에서 또 다른 사진을 꺼내 테이블에 던졌다. 콘트라와 포에나가 강변 인근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모습, 바로 오늘이다.


“이걸 어떻게 하루도 안돼서 인화를···”


“웃대가리들이 괜히 정보국을 통제하려는 게 아니야. 정보국장이 딴 맘을 먹으면 위도 피곤해지거든. 수상조차 그런데 고작 부품 하나가 속을 썩이면 쓰나. 아, 이것도 조작이라고 할 것 같으니 하나 더 보여 주지.”


사진 위에 놓여진 종이는 오늘 콘트라가 계산한 레스토랑의 영수증이다. 저 남자가 철저하게 준비한 건지, 아니면 자신이 방심하고 다닌 건지 판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콘트라는 결국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뭘 원하시는 겁니까?”


“진작 그렇게 나오지. 그랬으면 서로 편했을 텐데.”


웃으며 담배를 찾던 칼비티움은 텅 빈 자신의 주머니를 보고서 성을 냈다. 발로 테이블을 내려치며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전화기로 향했다.


“나다. 사람을 시켜 담배를 올려. 아르마는 냄새가 싫다며 헛짓을 할 테니 제외하고.”


그제야 얼굴이 풀린 칼비티움은 통화를 마치려 했다. 하지만 콘트라와 시선이 마주치자 한 가지를 더 추가했다.


“좋은 술도 가져와. 단단한 얼음도 있으면 좋겠군. 꽤나 긴 대화가 될 테니 말이야.”




잠시 후, 차임벨 소리에 콘트라가 일어섰다. 그러자 칼비티움은 테이블을 정리하며 경고했다.


“도망가려고 해도 헛수고야. 계단과 엘리베이터에 요원들을 배치했으니.”


“······ 그럴 생각은 하지도 않았습니다.”


“역시 현명해. 움브라의 실장이 아낀 부하다워.”


조롱에 가까운 칭찬에 부들거리며 문을 연 콘트라에게 인사한 사람은 칼비티움이 호텔에 들어왔을 때 맞이한 직원이다. 이미 퇴근했는지 사복 차림인 그녀는 피곤에 찌든 미소로 방에 들어오려 했다. 그러자 콘트라는 괜찮다고 사양하며 술과 얼음, 그리고 망할 담배를 직접 챙겼다.


“얼른 퇴근해요. 피곤할 텐데.”


“어차피 못 해요. 지배인님께서 실수하신 장부를 제가 다 수정해야 하거든요.”


여러 감정이 교차한 얼굴, 거기엔 긍정적인 요소는 하나도 없다. 자신과 교제하기 전의 아마레와 닮았다고 여긴 콘트라는 씁쓸하게 웃으며 작별 인사를 건넸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나?”


“직접 안에 옮겨 준다는 것을 말리느라 시간이 지체되었습니다.”


“잘했군. 이 꼴을 보면 피곤해져. 내가 화를 낸 날에 세니쿠스 녀석이 정보국 부하를 보낼 리는 없고.”


“세니쿠스라면 세니쿠스 스카이나 수석 부장 말씀이십니까?”


콘트라가 자신의 잔과 담배를 내려놓으며 질문하자 살짝 놀란 칼비티움이다.


“세니쿠스를 어떻게 알지?”


“따로 아는 건 아닙니다. 다만 마지막 근무일에 대알코즈 작전 참가 요원 조직도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녀석이 대외 작전에 관여하진 않았을 텐데?”


“대외는 그렇겠지만 유일한 대내 작전이 있지 않습니까?”


알코즈를 상대한 대내 작전를 떠올리던 칼비티움은 이내 조용히 집게를 들고 잔에 얼음을 넣었다.


“그때 이미 알코즈 왕세자와 모종의 협약을 맺으신 겁니까?”


“재밌는 질문이군.”


대답 대신 술을 따른 칼비티움은 그토록 기다렸던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돌아가 보지. 이제 자네의 불륜을 인정할 건가?”


한숨을 내쉰 콘트라는 고개를 살짝, 아주 살짝 끄덕였다.


“뭐, 능력 있는 인간이 몇 명을 만나건 알 바 아니지. 대중이 비난을 하더라도 말이야. 그러니 내가 실망한 건 도덕이니 윤리니 그딴 게 아니라고.”


“그럼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으신 겁니까?”


“첫 번째는 왜 굳이 허점을 드러내는 짓을 하냐는 거지. 자네는 이 도시에 살지 않나? 이 호텔의 직원들도 마찬가지지 않나? 자네가 아내를 데리고 다니다 직원들을 만나면 그 녀석들은 무슨 생각을 하겠나? 왜 저 남자는 지난번에 함께 온 여자가 아닌 다른 여자와 붙어 다니는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나?”


“타당한 지적입니다. 하지만 그건 일반적인 경우일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는 칼비티움의 물음에 콘트라는 설명을 계속했다.


“이 호텔은 정보국에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난번에 왔을 때도 이미 인지하고 있었고요. 따라서 프라이버시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실제로 가족과 함께 수차례 외출했지만 어떠한 트러블도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콘트라의 이야기를 들으며 술을 마시던 칼비티움은 잔을 내려놓더니 갑자기 박장대소했다. 이를 바라보는 상대의 입장에선 당황스럽기만 하다.


“그게 내가 자네에게 실망한 두 번째 이유야.”


“무슨 말씀입니까?”


빈 잔을 채운 칼비티움은 눈을 빛냈다. 얼음을 가둔 주홍빛 액체가 은은히 비추고 있어서 그런지 더더욱 날카로워 보인다.


“왜 정보국이 자네의 편이라고 생각하지?”


숨이 턱 막힌 콘트라는 대답 대신 침을 꿀꺽 삼켰다.


“우리가 움브라와 함께 작전을 진행해서?”


“그렇습니다.”


“우리가 움브라의 요청에 협조적이라서?”


“그것도 있습니다.”


혀를 찬 칼비티움은 새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술보다 붉고 진한 끝은 회색 재를 만들며 타들어 갔다. 콘트라는 눈앞의 남자가 물고 있는 담배를 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저 담뱃재가 자신의 미래가 아닐까 하고.


“미안하지만 나는, 정보국은 움브라를 위해 움직인 게 아니야, 이 친구야. 수상 앙겔루스 디아볼리가 국장 칼비티움 라쿠스를 깔볼 때까지 숨죽인 거라고!”


“언제부터였습니까?”


“글쎄. 정보국장이 됐을 때? 아니면 앙겔루스 디아볼리가 어긋났단 걸 알았을 때?”


취기가 아닌 광기에 젖은 동공에 콘트라는 두려움을 느꼈다. 예전에도 느꼈지만 저 남자는 자신이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지금 손에 총이 들려 있다 하더라도 죽일 수 없을 것만 같다. 콘트라의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히는 사이 벽시계의 바늘은 재깍재깍 계속 돌아간다.


“하나만 더 여쭙겠습니다.”


“얼마든지.”


“처음부터 움브라를 제거하려고 한 겁니까?”


이번에는 바로 대답하지 않는 칼비티움이다. 한 번에 잔을 비운 그는 새 얼음을 집었다.


“이 얼음은 잔에 딱 맞겠군.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아주 안성맞춤이야.”


“그게 지금 질문과 무슨 상관입니까?”


“움브라는 거치적거렸어. 얼음이 잔에 맞지 않으면 칼로 깎아야 하듯 가지치기를 했을 뿐. 하필 그게 자네가 속한 조직인 게지.”


말을 마친 남자는 하던 일을 마무리 했다. 그의 이야기대로 얼음은 우아한 조각처럼 좌우상하 빈틈없이 딱 맞아떨어졌다.


“그런데 내 생각보다 앙겔루스는 독하더라고. 설마 온갖 뒤치다꺼리를 해 주던 여자를 실각을 넘어 숙청까지 하다니 말이야.”


순간 콘트라의 동공이 흔들렸다. 숙청이란 단어는 도저히 넘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 눈치챈 칼비티움은 미소를 감추며 말했다.


“고집 그만 부리고 정보국에 합류해라, 콘트라 도크트리나. 그러면 네 불륜을 덮어 주지. 그리고 한 가지 더. 파이니트 노비시메 실장, 아니, 파이와 움브라를 지옥에서 꺼내 주마.”


파이는 분명 움브라 실장과 친한 수상 보좌관이 그녀를 친근하게 부르던 애칭인데 왜 저 남자가 아는 것인지 의문인 콘트라다. 그러나 더 이상 고민할 시간은 없다. 그리고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이제 남은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후······ 약속하셨습니다, 국장님.”


“물론일세.”


“이 시간부로 저는 정보국에 협조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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