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 위의 이데올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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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G
작품등록일 :
2023.07.1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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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3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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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25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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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화

DUMMY

지금 콘트라 도크트리나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걸어가고 있다. 한 여자의 어깨만을 의지한 채로.


“무서워요?”


아르마의 목소리는 상냥하지만 절대 가볍지 않다. 그녀의 태도는 이어질 대답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물론 콘트라는 아르마가 어떤 의중을 가지고 질문했는지 알고 있다. 또한 이에 대한 정답도 머릿속에 계산을 마친 상태다.


“무섭습니다. 하지만 당신이나 어둠 때문은 아닙니다.”


“그럼 뭐가 무서운데요?”


다시금 물어오는 아르마에게 대답하려던 콘트라는 순간 흠칫했다. 평소라면 아무렇지 않게 내뱉을 대답이 목구멍에 걸려 나오지 않는다. 본인이 진심으로 두려워하고 있는 대상이 무엇인지 헷갈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다잡고 입을 열었다.


“앙겔루스 디아볼리는 만만한 상대가 아닙니다. 정보국에 합류하기는 했지만 계획이 성공할지 걱정됩니다.”


“그럴 수 있겠네요.”


아르마는 어둠 속에서도 길이 보이는 양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와 마찬가지로 웃음소리 역시 끊이지 않았다.


“재미있는 일이라도 있습니까?”


허망하게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메아리처럼 웃음소리만 들릴 뿐이다. 자신은 그렇게 물었으면서 타인의 질문을 무시하는 여자가 괘씸하게 느껴진 콘트라는 그녀를 부르려 했다. 그때였다.


“나는 무서운 게 딱 하나밖에 없어요. 그게 뭔지 알아요?”


“음······ 칼입니까?”


아르마는 고개를 저었다.


“총입니까?”


아르마는 또다시 고개를 저었다.


“칼과 총을 들이밀어도 버티는 사람이 무서워요. 엄청 싫어요, 그런 놈들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렇다니까요. 살면서 딱 두 놈 봤어요.”


“두 명···입니까?”


“한 놈은 저 앞에서 기다리고 있고, 다른 한 놈은······”


순간 발걸음 소리가 멈췄다. 그리고 아르마의 머리카락이 콘트라의 오른손을 스치며 지나갔다.


“지금 뒤에 있는데 오늘따라 겁이 많네요. 지난번이랑 다르게요.”




문 앞까지 안내한 아르마는 담배 냄새를 맡기 싫다며 인사도 없이 사라졌다. 그녀의 알 수 없는 모습에 쓴웃음을 지은 후 콘트라는 문을 열었다. 그러자 꼴도 보기 싫지만 앞으로 상관으로 모셔야 하는 남자, 칼비티움 라쿠스가 미소로 반겨 주었다.


“드디어 왔군. 어떤가, 정보국의 지하 벙커는?”


“솔직히 놀랐습니다. 이런 장소에 벙커의 입구를 숨겨 두었을 줄이야.”


정보국이 관리하는 지하 벙커는 모두 두 곳이다. 하나는 정보국 본부의 지하이며 이는 수상도 인지하고 있다. 정보국이 입수한 기밀을 보관하고, 정보국의 일급 작전 회의 장소로 쓰인다. 나머지 하나는 다른 케이스다. 크기도 작고, 시설도 그리 좋지 않다. 하지만 보안 하나만큼은 최상이며 수상을 비롯한 상부 그 누구도 존재를 모른다. 무엇보다 이곳의 위치는 바로 수상 관저 아래다. 괜히 콘트라가 놀란 게 아니다.


“원래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이지.”


평소보다 진하고 굵은 담배를 피우며 안락한 가죽 담배에 몸을 맡긴 칼비티움의 얼굴은 유독 평온해 보인다. 그를 지켜보던 콘트라는 문득 의문이 생겼다.


“이 정도면 수상의 암살도 가능하지 않습니까?”


“물론이네. 애초에 놈의 경호도 거의 이쪽 관할이니.”


“그러면 굳이 저를 협박하면서까지 포섭할 필요가 있습니까? 가장 간단한 방법이 있는데도.”


점점 높았지는 콘트라의 언성과 함께 뿌연 담배 연기도 천장으로 향했다. 칼비티움은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않으며 싸늘한 시선을 그의 새로운 부하에게 날렸다.


“예의를 보였으면 좋겠군그래. 이제 난 자네의 상관이야.”


“······ 죄송합니다.”


신입의 실수도 한 번까지라고 경고한 칼비티움은 중앙에 놓인 탁자를 두 번 두드렸다. 그러자 어디서 나타난 건지 모를 커다란 종이가 넓은 원목을 가렸다.


“이건 지난 선거 결과표군요.”


“맞아. 자네도 알지 않나, 지금 앙겔루스 디아볼리의 지지율은 상상 이상이란 걸.”


현 수상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콘트라가 모를 리 없다. 지난 선거에서 앙겔루스가 이끄는 정당은 상원과 하원 모두 압도적인 의석을 확보했고 당당히 수상의 임기를 연임했다. 이는 그가 올린 성과도 있지만 움브라의 대내팀이 언론을 통제함과 동시에 다른 정당을 견제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수상의 본성을 알게 된 콘트라에게는 그저 과거의 일일 뿐이다.


“현 시점에서 수상을 암살해도 어차피 그의 측근들이 자리를 이을 것이고, 이데아의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의미. 그렇게 받아들이면 되겠습니까?”


“역시 콘트라 도크트리나는 우수해. 첫 만남에서부터 눈독을 들인 이유가 있다고!”


칼비티움은 껄껄 웃으면서 박수를 쳤다. 그 뒤에도 콘트라를 향한 칭찬이 이어졌다. 하지만 당사자의 기분은 전혀 좋지 않다. 오히려 들으면 들을수록 불쾌하고, 동시에 죄책감이 생길 뿐이다. 콘트라는 눈앞에서 웃고 있는 남자와의 첫 만남을 기억하고 있다. 지금 자신이 지키려는 사람, 파이니트 노비시메 실장과 함께 정보국의 협력을 요청하러 갔을 때다. 칼비티움은 그때 이미 움브라를 없애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었다. 깨닫고 보니 한숨만 나오는 이야기다.


“결국 정보국장님께서는 수상의 정당이 선거에서 패배하기를 바라시는 겁니까?”


“글쎄.”


콘트라의 질문에 칼비티움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웃음을 멈추고는 의자에 앉았다. 또다시 담배 연기가 방안을 가득 메웠다.


“선거까지 기다리기엔 시간이 너무 길지 않나? 앙겔루스 놈은 그렇게 멍청하지 않아. 적어도 일 년 내로 결판을 내야 해.”


“그 말씀은?”


칼비티움은 의자를 돌려 콘트라를 바라보았다. 지금 정보국장의 눈은 끔찍한 첫 만남보다, 억지로 권총을 쥐일 때보다, 숨을 조르던 호텔에서보다 서슬 퍼렇다.


“놈이 기어나오게 만들어야지. 그놈이 한 것처럼 인간들을 선동해서.”




대화가 끝난 후 회의실에 홀로 남겨진 콘트라는 말없이 서류 더미를 바라보았다. 칼비티움이 자신을 데리고 온 이유는 확실해졌다. 그는 수상이 움브라를 이용했듯 자신을 통해 대중을 선동하고 싶어한다. 자신의 손이 아닌 타인의 손으로 수상을 끌어내리길 바란다. 더 이상 앙겔루스의 세력이 유지될 수 없도록 뿌리 뽑길 원한다. 이를 위해 발을 빼지 못하게끔 거부할 수 없는 조건을 걸었던 것이다. 콘트라는 조직을 되찾기 위해, 상사를 살리기 위해, 그리고 가정을 지키기 위해 거미줄에 걸리고 말았다.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 속에 두통을 느끼는 순간 문이 열렸다. 그 너머에서 나타난 남자는 꽤나 왜소한 체구지만 무시하기 힘든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도크트리나 부장님.”


부장이라는 호칭을 듣자 그제야 자신이 서 있는 자리가 꿈이 아닌 현실임을 새삼 깨닫는 콘트라다.


“반갑습니다. 혹시 성함과 계급이 어떻게 됩니까?”


“오늘부로 공모부장님의 수행원 겸 연락책을 맡은 데케브토르 아젠티누스 요원입니다. 편하게 데케브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잘 부탁한다고 말하면서 손을 건네는 콘트라지만 속으로는 쓴웃음을 짓고 있다. 말로는 수행원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감시자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여기서 반발하거나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인사는 여기까지 하고 부장님께서는 계속 고생해 주십시오. 저는 아르마와 함께 보존식을 옮기겠습니다.”


“보존식이라니요?”


“왜 당연한 걸 물으십니까?”


콘트라의 질문에 데케브토르는 딱딱한 얼굴로 답한다. 도저히 상사를 대하는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하지만 이건 콘트라에게 중요치 않았다.


“어째서 보존식을 준비했는가 물었습니다.”


“여태껏 잘 드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움브라에서.”


그게 무슨 소리냐는 콘트라의 새로운 질문에 데케브토르는 한숨을 내쉬었다.


“국장님의 지시 사항입니다. 공모부장이 지하 벙커에서 장기간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난 여기에 정보국장님과 대화를 하러 왔지, 더 이상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애초에 호텔에서 투숙 중이고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해당 호텔은 우리 관할입니다. 체크아웃 처리 후 부장님의 짐을 이곳으로 옮겼습니다.”


분노를 넘는 황당함에 콘트라는 말문을 잃었다. 이를 놓치지 않고 설명을 계속하는 데케브토르다.


“여기에는 합당한 근거가 있습니다.”


“합당한 근거?”


“현재 수상실은 전임 움브라 직원들을 감시 중입니다. 외부에 노출되는 것은 실로 위험합니다.”


반박하기 어려운 의견에 콘트라는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내가 계속 숨어 있으면 내 가족들이 위험해질 텐데도요?”


실로 간단한 질문에 바로 대답하지 못하는 남자를 째려본 콘트라는 출구를 향해 성큼 걸어갔다. 그러나 역시 정보국은 만만치 않았다.


“괜찮아요. 가족들은 내가 지켜줄 거니까요.”


자신 있게 말하며 등장한 아르마의 손에는 검은 권총이 들려 있다. 군이 동원된다면 저런 건 장난감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앙겔루스도 제정신이라면 수도의 베드타운 중심가에 부대를 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으로선 아르마를 비롯한 정보국의 비호를 믿으며 최대한 빨리 앙겔루스 디아볼리를 끌어내야 한다. 그뿐이다.


한숨을 내쉰 콘트라는 두통약을 부탁하고서 탁자로 향했다. 칼비티움이 피우다 만 담배가 남겨져 있어서 그런지 역하기 짝이 없다. 불우한 남자의 모습을 바라보던 아르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직도 저러네. 뭐가 그렇게 무서운 걸까나?”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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