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 위의 이데올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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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G
작품등록일 :
2023.07.1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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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3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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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02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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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화

DUMMY

콘트라가 보호 시설을 빙자한 벙커라는 감옥에 갇힌 지 일주일이 지난 후 수상의 주재하에 국가 안전 보장 회의가 열렸다. 국가적인 재난 혹은 안보의 위협이 있을 경우에 소집되는 회의로 상당히 큰 안건이 논의되곤 한다. 거기다 이번 회의는 각별히 내각 구성원에 비밀리에 전달되었으며 각자 간격을 두고 정보국 본부 지하에 소재한 벙커에 합류했다. 이것만으로도 보통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수상 각하, 참석 가능한 인원은 모두 모였습니다.”


“사령부 장관은?”


“이틀 전에 건조를 마친 신식 전함의 확인을 위해 남부 해안을 방문 중입니다.”


“생각해 보니 진수식이 코앞이군. 그렇다고 해도 대리인을 보내야 할 것 아닌가?”


“보안을 지키기 위함이라고 알려왔습니다. 사령부에는 ‘그쪽’에 우호적인 인사들이 많으니.”


방금까지만 해도 못마땅한 얼굴을 하던 앙겔루스는 사유를 듣고는 이내 표정을 풀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를 확인한 수상 보좌관 아디우토르는 회의의 시작을 알렸다.


“최근 국내에서 불미스러운 활동을 벌인 조직을 포착, 와해하고 체포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참석자들에게 알리고 차후 계획에 대해 논의할까 합니다.”


아디우토르의 개요를 들은 장관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의 설명에 되묻거나 반박할 생각조차 없었다. 수상 보좌관은 누구보다 수상의 신임을 사고 있는 사람이다. 거기다 방금의 대화를 봤듯이 수상의 불만도 차분히 정리할 수 있다. 굳이 저자의 미움을 사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이 자리에 앉은 모든 사람들은.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곤.


“그 조직의 정체는?”


“서열이 하나 높다지만 회의 중에 반말은 조금 그렇지 않나, 정보국장?”


“죄송합니다만 장관님,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우린 회의를 하고 있습니다. 어떤 조직이 어떤 짓을 저질렀고, 왜 와해했고, 왜 체포했는지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정보국장 칼비티움 라쿠스의 반박에 농림축산부 장관은 앓는 소리를 내며 손을 떨었다. 도저히 상관을 대하는 게 아닌 무감정한 말투지만 국가 안전 보장 회의에서 정보국장이 가지는 위치는 상당하다. 거기다 지금 저 남자의 의견은 너무나 타당하고 논리적이다. 다행스럽게도 둘 사이를 중재하는 남자가 있었다.


“자, 자, 조국을 위한 회의라지만 지나친 과열은 좋지 않아요.”


“······ 자네의 말이 옳아, 외교부 장관.”


“장관님의 말씀대로 회의에 집중하겠습니다.”


“그럼 분위기가 정리되었으니 설명을 계속했으면 하네요, 수상 보좌관.”


“물론입니다.”


고개를 끄덕인 아디우토르는 참석자들이 바라보고 있는 벽을 두 번 두들겼다. 그러자 모두가 볼 수 있을 만큼 큰 종이가 아래로 펼쳐졌는데 거기엔 움브라와 구성원에 대한 정보가 적혀져 있다.


“이번에 저희가 일망타진한 조직은 움브라라고 합니다. 보시다시피 소속된 조직원은 총 다섯 명이나 모두 화려한 경력과 능력을 갖추었고, 국내외에서 많은 사건 사고에 관여하였습니다.”


“잠깐만요, 보좌관. 하나만 질문해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장관님.”


갑자기 얼굴이 어두워진 외교부 장관은 손을 들며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곳엔 노련한 공무원처럼 말끔한 얼굴을 하고 있는 남자, 콘트라 도크트리나의 사진이 새겨져 있다.


“움브라는 수상실 직속 기관이잖아요. 거기다 콘트라 참사관은 친나즈와의 교섭에서 큰 활약을 펼쳐 외교부에서 다른 기관으로 이속되었어요. 애국심이 뛰어난 외교관이 불미스러운 일에 동참하리라곤 생각되지 않아요.”


“장관님의 말씀처럼 움브라는 수상실 직속 기관입니다. 따라서 저 또한 이번 사태에 대해 수상 보좌관으로서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하지만 움브라가 본인들의 권한과 능력을 활용해 조국에 해를 끼쳤다는 점, 그리고 그중에 핵심이 콘트라 도크트리나라는 점은 확실합니다.”


“증거가 있나요?”


“물론입니다.”


아디우토르가 고개를 끄덕이자 칼비티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외교부 장관을 비롯한 모두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눈을 감은 채 미소를 짓고 있는 앙겔루스 디아볼리를 제외하면 말이다.


“움브라가 이데아를 배신했단 것을 눈치챈 건 다름아닌 저입니다. 녀석들이 거기에 협조하고 있는 우리 요원들에게 수상한 짓거리를 시키고 있단 걸 확인했고, 바로 함정을 팠습니다.”


“그게 사실인가요?!”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특히 실장 파이니트 노비시메와 대외 팀원 콘트라 도크트리나가 워낙 영리해서 쥐새끼마냥 요리저리 피해 다녀서 골치 썩었습니다만 결국 잡아내고 말았습니다.”


“솔직히 말해 보세요. 어떻게 알아냈나요?”


여전히 수상한 눈빛을 하고 있는 외교부 장관을 째려본 칼비티움은 품에서 서류철을 하나 꺼냈다.


“콘트라 도크트리나는 이데아를 방문한 알코즈의 왕세자와 접촉하려고 했습니다. 빈 제마 그 녀석이 수상 각하를 피곤하게 만드는 걸 알 텐데도. 해당 보고서는 그 남자가 빈 제마의 측근 나크 사드와 만난 상황이 모두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진을 비롯한 증거도 있으니 의심되면 직접 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이야기를 마친 칼비티움은 서류철을 던지듯이 외교부 장관 앞에 내려놓았다. 그걸 본 다른 장관들은 성을 내며 사과하라고 독촉했지만 정작 외교부 장관은 신경도 쓰지 않고 바로 보고서를 확인했다. 마지막 장까지 확인한 그의 손가락은 결국 서류철을 떨어뜨릴 정도로 벌벌 떨렸다.


유일하게 의견을 내던 외교부 장관마저 입을 닫자 회의는 수상 보좌관의 원맨쇼로 진행되었다. 움브라의 구성원들을 체포 중이라는 것, 체포하지 못한 이들의 가족을 감시 중이라는 것, 체포된 구성원은 당원의 비리가 잡히거나 선거가 다가왔을 때 시선을 돌리는 용도로 재판대에 올릴 것이라는 등 모든 내용이 정해졌다. 인권과 자유를 잊지 않는 열강을 목표로 한다는 슬로건 따위 이미 시체란 듯이.




“그는 어떻게 됐지?”


수상을 비롯한 모든 장관들이 떠나고 휑해진 회의실을 나서려던 칼비티움은 자신을 붙잡은 아디우토르를 보고서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모든 것을 체념한 얼굴로 혀를 차며 한숨을 쉬었다.


“설득에 성공했다. 지금은 ‘그곳'에 숨겼고.”


“좋군. 그럼 난 가 보지. 너무 늦으면 앙겔루스가 의심할 테니.”


“이미 수상하게 생각할지도.”


“정보국장에게 콘트라 도크트리나의 체포에 대해 몇 가지 사항을 지시했다고 하면 될 일이니 상관없어.”


‘나쁘지 않은 이유’라며 수긍한 칼비티움은 멀어지는 협력자에게 낮지도 높지도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너의 행동, 파이 녀석이 알면 화낼 거다. 거기다 너한텐 이런 모습 안 어울려, 아디.”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저 구둣발 소리만이 공허하게 울릴 뿐이다.


“죽일까요?”


“장난치지 마. 저 녀석이 없으면···”


“망할 앙겔루스 자식을 없앨 수 없단 거, 그만 말해요. 귀에 피딱지 생기겠어요.”


아르마의 투정에 칼비티움은 한숨을 내쉬며 문을 잠갔다.


“콘트라 녀석은?”


“뭘하는진 모르겠지만 책상에 종이를 이만큼 쌓아 놓았던데요. 밥도 잘 안 먹는다고 데케브토르가 맘에 안 들어 해요.”


무슨 상황인지 대강 이해한 칼비티움은 혀를 찼다. 정보국은 최대한 빨리 수상을 교체하고 싶다. 그 편으로 보면 지금 콘트라 도크트리나의 모습은 극찬할 만하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의 문제 또한 엄연히 존재한다. 앙겔루스 디아볼리는 쉽지 않은 남자다. 칼비티움 라쿠스과 빈 제마조차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게 만드는 여우다. 그런 자를 끌어내릴 만한 계획을 단기간에 세운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어느 정도의 식사와 휴식을 동반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녀석의 가족의 호위는 어떻게 되어 가고 있지?”


“일단 괜찮아요. 근데 지금은 경찰이라 조심스럽지, 군대로 바뀌면 강압적으로 나오겠죠.”


“뭐, 적당한 선에서 처리해라. 다 죽이면 사령부에서도 의심할 테니.”


“귀찮네요, 군인 놈들은.”


머리를 긁적인 아르마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주머니에는 권총과 단검이 걸려 있지만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얼마나 간결하게 움직였는지 보여 주는 대목이다. 곧이어 왔을 때처럼 신속히, 그리고 조용히 사라지는 부하를 보며 정보국장은 머리를 긁적였다.


“역시 저년이 배신하면 꽤나 귀찮아져. 미리 손을 써 놓길 잘했지, 쯧.”




다른 의미로 컴컴한 지하실, 빛 한 줄기조차 보이지 않는 게 이곳에 희망이란 게 존재할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연히 투쟁하는 한 명의 저항자가 있다.


“어서 잘못을 시인해!”


위압적인 고함 소리와 함께 살가죽을 내려치는 몽둥이 소리.


“······”


“이 지독한 년, 끝까지 입 한 번 뻥긋 안 하네.”


“고생이 많군.”


“댁은 누구야?!”


“아디우토르 데키무스라고 하면 알까?”


‘아디우토르'와 ‘데키무스' 두 단어를 계속 되뇌이던 남자는 이내 벌벌 떨기 시작했다. 그가 무릎을 꿇고 양손을 비는 건 5초도 걸리지 않았다.


“살려 주십쇼, 수상 보좌관님!”


“괜찮네. 이렇게 어두운 곳이면 얼굴을 못 알아볼 만도 하지.”


“감··· 감사합니다!”


남자가 안도감에 고개를 들지 못하는 동안 상대는 창살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양손이 묶인 채 손도 발도 움직일 수 없지만 두 눈만은 굳건한 여자를.


“미안하지만 잠시 자리를 비워줄 수 있겠나? 이 죄인에게 물어야 할 게 있어서 말이네. 수상 보좌관으로서.”


“예··· 예, 알겠습니다!”


다급하게 외친 남자는 바로 창살을 열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 모습을 본 아디우토르는 피식 웃으며 손을 흔들고는 옛 친구가 갇혀 있는 공간으로 들어섰다.


“이런 몰골은 간만이야, 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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