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 위의 이데올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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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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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1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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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3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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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화

DUMMY

예상하지 못한 싱 와튼의 제안은 모두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동시에 분노란 감정을 가져왔다. 당연한 일이다. 아무리 대통령을 역임했다고 하지만 싱 와튼은 이제 정치 원로일 뿐이다. 속된 말로 뒷방 늙은이다. 거기다 이곳에는 이 남자와 척을 진 여당 출신 정치인과 여성 우월주의자가 자리하고 있다. 당내 영향력을 확고히 하기 위해 대표로 나서려던 사우르 안디오와 루치아노 바렐라도 못마땅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함부로 입을 떼지 못했다. 반대를 하고 싶지만 여기서 함부로 나선다면 다른 계파들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반대 측은 물론이고 머릿수가 적더라도 싱 와튼을 따르는 중립파를 무시할 수 없었다. 한 번 대립각을 세우면 앞으로도 피곤해질 게 뻔하니까.


한참을 고민하던 사우르와 루치아노는 똑같은 결론을 냈다. ‘어차피 내가 노리는 건 대표가 아닌 대권이다. 그때 전까지만 척을 지지 말자.’


“공평한 처사 같습니다. 이 자리를 두고 저희끼리 싸워 봐야 여당만 좋아할 일입니다.”


“동감입니다. 앤드류도 선생님께는 예의를 지킬 거라고 봅니다.”


“노구를 배려해 줘서 참으로 고맙네.”


강요에 가까운 협상을 마친 싱 와튼은 미소를 지으며 악수를 청했다. 그러자 각 계파의 수장들은 떨떠름한 표정을 애써 숨기며 손을 맞잡았다.




알코즈 국영 회사가 보안을 복구하고, 아메리고 정부가 야당과 협의를 추진하는 동안 이데아의 수상 앙겔루스 디아볼리는 책상에 가득 쌓인 서류를 읽고 있었다. 그런데 평소와 달리 정무에 관련된 사항은 아니었다. 지금 그가 들고 있는 종이에는 ‘정보국 동향 파악 보고서’라고 적혀 있다.


“흠,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아메리고에서 범죄 조직과 접선한 건 괜찮은데 알코즈 국영 회사와 트러블까지 일으켰다는군.”


앙겔루스가 질문을 던지자 그의 옆에 서 있던 남자 아디우토르 데키무스가 고개를 숙였다.


“알코즈가 우리에게 무리한 태도를 보이는 것도 그렇고, 정보국의 독단적인 행동에도 이유가 있을 겁니다. 정보국을 포함해서 사령부의 고위층에 대한 감시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확실히 전문을 받았을 때부터 이상했단 말이지. 빈 제마 녀석, 나한테 꼬리 내밀고 도망쳐 놓고 이제 와서 명분도 없이 들이박다니.”


“일단 사정을 알아 보는 게 어떻습니까? 우리가 찾고 있는 암살자를 알코즈 국영 회사가 고용한 걸지도 모릅니다. 그 과정에서 정보국이 시급하다고 판단, 우선적으로 행동에 옮겼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것도 저의 추측에 불과합니다.”


“아디우토르가 하는 말이라면 신뢰가 가지. 다만 칼비티움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져.”


싸늘해진 목소리는 수상 집무실의 공기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정작 바로 옆의 아디우토르는 멀쩡한 얼굴이다.


“오늘 정보국장을 만나고 오겠습니다. 움브라에 관한 문제라고 하면 시간을 낼 거라고 봅니다.”


“난 우리 보좌관만 믿겠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각하.”


허리를 꾸벅 숙인 아디우토르는 천천히 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빛을 등진 입가에는 섬뜩한 미소가 그려져 있다.




한편 그 시각, 정보국의 비밀 벙커는 서류로 가득했다. 아메리고에서 도착한 새로운 장부를 비롯해 온갖 기밀 서류 확인하며 애쓰는 중인 콘트라 도크트리나를 아르마 렐릭타가 구경하고 있다. 두 눈은 옆의 남자를 향해 있지만 두 손은 검은 권총을 손질하고 있다. 놀랍다고 해야 할지, 어이없다고 해야 할지 고민되는 광경이다.


“얼마나 걸려요?”


“장담 못하겠습니다. 하루가 될지, 이틀이 될지······”


“처음이네요. 콘트라가 조마조마해하는 건.”


“그렇게 보입니까?”


아르마가 아무런 생각 없이 던진 감상은 안 그래도 복잡하던 콘트라의 머릿속을 더욱 복잡하게 어지럽혔다. 칼비티움과 약속한 기한은 일주일, 아무리 2 주 내에는 앙겔루스에게 아메리고에서의 활동 실적을 보고해야 한다. 그렇지 못한다면 수상은 정보국의 본심을 알게 될 것이다. 또한 콘트라의 가족과 동료는 모두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될 것이다.


“제가 어려운 임무에 나서기 전 모습 같아요.”


“아르마에게 어려운 임무도 있습니까? 의외입니다.”


“음······ 아무리 저라도 한 나라의 정치인을 암살하는 건 쉽지 않더라고요.”


애초에 그게 가능한 일인지 따지고 싶은 콘트라지만 지금 우선할 건 따로 있었기에 넘기기로 했다. 하지만 그의 속마음을 눈치챘는지 아르마는 단검을 손질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제일 처음 한 임무는 동쪽 어떤 나라의 높은 사람을 죽이는 거였어요.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그때만 해도 엄청 떨렸어요. 제가 죽는 건 상관없는데 실패하면 다른 사람도 다 죽는다 하니까 막상 무섭더라고요.”


“상부의 흔한 손 털기 방식입니다. 제가 콘트라··· 데키무스의 자료를 은연중에 빼돌린 이유기도 합니다. 알코즈와 협상이 끝난다면 그의 죽음은 한낱 작은 사건으로 묻힐 게 뻔하니까.”


아르마지만 지금 이 순간 담담한 얼굴로 말하고 있지만 속에는 고름을 숨기고 있는 남자가 안타까웠다. 하지만 그녀로서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위로해야 할지 당최 알 수 없었다. 그렇기에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하기로 했다.


“솔직히 대장 같은 사람들이야 알 바 아니죠. 그런데 동료는 다르잖아요. 힘든 시간을 버티고 함께 살아 나온 친구잖아요. 그래서 지키고 싶었어요.”


“아르마가 그렇게 말하다니 의외입니다만 어찌되었든 지켰으니 다행입니다.”


콘트라의 입이 닫히기도 전에 아르마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결말은 예상과 다른 모양이다.


“힘들었죠, 그 정치인 죽이는 거. 차라리 총 쓰는 경호원들이면 편했을 건데 이상한 단검을 멀리서도 잘 던지더라고요. 결국 조용히 처리하는 건 포기하고 억지로 타겟을 죽인 다음 부대로 돌아왔어요. 근데 아무도 없더라고요.”


“배신 당했었습니까?”


“그렇죠. 혼자 살아 있던 대장은 동료들 탓하며 죽일 수밖에 없었다 변명했죠. 열받은 전 바로 총을 빼앗아 머리를 날렸어요. 그게 저 때문에 죽은 동료들의 복수라고 생각해서요.”


트라우마가 되기에 충분한 기억을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아르마를 보며 콘트라는 생각했다. 이 여자는 강하다. 하지만 동시에 생각했다. 이 여자는 강한 척하고 있다. 그렇다고 굳이 지적할 생각은 없었다. 자신을 도왔다고 한들 정보국장의 부하다. 거리를 두는 게 현명하다고 판단한 콘트라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원래 상관 살해는 엄청 큰 죄예요, 우리 쪽에서.”


“어디에서나 그럴 겁니다.”


“하지만 국장님이 막아 주셨어요. 자기한테 보고도 없이 우리 부대를 없앴다고 화도 내셨고요.”


“의외입니다. 그럴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았는데.”


“그렇게 안 보이겠지만 은근히 잘 챙겨 주세요.”


칼비티움에 대한 칭찬이 여전히 달갑지 않은 콘트라 도크트리나였다. 하지만 그가 한 말은 분명 진실이었다. 칼비티움 라쿠스는 사람을 도구로만 쓴다.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으면 언제든지 버린다. 그것이 콘트라의 머릿속에 자리잡은 정보국장의 이미지였다. 하지만 아르마 릴렉타의 발언에 따르면 다르다. 여기서 괴리감을 느낌과 동시에 불쾌해진 콘트라다.


“부대원이 모두 사라지고는 따로 임무를 받으면서 정보국에 남게 됐어요. 그러다 콘트라를 만나게 된 거예요.”


“절 납치하라는 임무를 받은 덕분입니까?”


“납치가 아니라 설득이죠.”


“누가 설득할 때 총을 들고 옵니까?”


“장미는 가시가 있잖아요. 여자에겐 자기를 지킬 무기가 필요해요.”


“본인을 지키는 무기와 타인을 해치는 무기는 엄연히 다릅니다.”


“말이 많은 남자는 인기가 없댔어요, 예전 동료가.”


쓸데없는 소리라고 말하면서 시선을 다시 서류로 돌린 콘트라는 의아함을 느꼈다. 아르마가 무기를 말한 탓인지 괜히 방산업체를 살폈는데 단 한 곳, 아메리 코퍼레이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업체가 모든 자금이 마지막으로 흐르는 단계 중 하나였다.


수상하다고 여긴 콘트라는 서류들 중 아메리 코퍼레이션에 관한 자료들을 찾았다. 아무리 뒤져도 별다른 문서는 보이지 않았다. 괜한 추측에 불과했다는 아쉬움을 남기며 비밀 계약서를 정리하는데 한 장이 떨어졌다. 못마땅한 기분이 가득 담긴 한숨을 내쉰 후 허리 숙여 떨어진 종이를 주운 콘트라의 입가는 이내 광대까지 올라갔다.


“드디어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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