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 위의 이데올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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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G
작품등록일 :
2023.07.1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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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0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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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화

DUMMY

정보국장의 소집하에 간부 회의가 재차 열렸다. 바쁜 업무와 일정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일이 분명하지만 그 누구도 토를 달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번에는 결국 답을 찾아냈기 때문이었다. 알코즈 국영 회사가 피기 스톤스를 이용하고 있다는 음모를.


“이 정보 확실한가, 공모부장?”


“요원들에게 받은 자료가 틀리지 않았다면 확실합니다.”


회의에 참석한 간부들은 무덤덤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남자를 못 미더운듯 계속 의심했다. 질문하지 않는 사람들도 글자 하나하나 되씹으며 두꺼운 보고서를 세심하게 읽고 있었다. 하지만 회의가 진행될수록 더 이상 지적할 부분이 없음을 깨닫는 참석자가 늘어났다.


“저번처럼 실망스럽지는 않네요.”


“감사합니다.”


“근데 저번 회의 때만 해도 감을 잡지 못했잖아요? 이게 어떻게 된 건지 궁금하군요.”


일리 있는 질문에 콘트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료에 따르면 알코즈 국영 회사의 자금은 여러 곳을 거치고 거쳐 피기 스톤스에게 흘러 들어갔습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곳은 돈세탁을 철저히 해야 하는 최종 지점인데 그중 한 곳이 아메리고의 대표적인 방산 업체 아메리 코퍼레이션입니다. 그런데 아메리 코퍼레이션에 대해 알아보니 수상한 점이 있었습니다.”


“보고서에 적힌 들어 보지도 못한 회사와 엄청난 금액의 거래를 성사시킨 거?”


“그렇습니다. 아메리 코퍼레이션 정도나 되는 대기업이 굳이 리스크가 큰 선택을 할 이유가 없습니다. 쉘 컴퍼니를 만들어서 분식회계를 하려는 의도가 분명했으며 그 목적은···”


“비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겠지.”


“보통은 그렇습니다, 감찰부장님. 하지만 조사한 결과 다른 목적이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그 근거는?”


“이 작은 회사는 단 두 기업과만 계약을 맺었습니다. 그런데 재밌게도 그 두 기업이 아메리 코퍼레이션과 아메리 오일이었습니다.”


계속 설명을 이으려던 콘트라는 누군가 손을 든 것을 보고 잠시 멈칫했다. 그러자 손의 주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에는 무슨 망상인가 했는데 이야길 들어 보니 알겠어. 아메리 코퍼레이션과 아메리 오일은 후계자 분쟁으로 갈라선 관계. 그 뒤론 어떠한 접촉도, 언급도 금할 정도지. 심지어 반대쪽에서 일한 인력이라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절대 받지 않을 만큼 적대적이고.”


“유명하잖아, 걔네.”


“그러니 쉘 컴퍼니란 중간 다리를 만들어서까지 굳이 거래를 한 겁니다. 거기다 거래 일자가 올해, 알코즈가 피기 스톤스에게 손을 뻗은 시점입니다. 이에 따라 유용 가능한 인력을 추가로 파견해 아메리 코퍼레이션과 아메리 오일을 수색했고 마침내 알코즈 국영 회사로부터 받은 지령서를 확보했습니다.”


콘트라는 약속을 지켰다는 자신감 속에서 연설과도 같은 설명을 마쳤다. 우레는 커녕 경적과 같은 박수도 나오지 않았지만 사람들의 태도가 바뀌었다는 사실이 꽤나 고무적이었다.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하다고 여긴 콘트라가 자리에 앉으려고 하는 순간 어디선가 흰 연기가 흘러 들어왔다. 매캐한 냄새에 미간을 찌푸리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 누구도 불평하지는 못했다. 하필 담배를 피고 있는 남자가 회의를 소집한 정보국장 칼비티움 라쿠스이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이상하군. 왜 사이 나쁜 것들끼리 엮은 거지? 지령서를 확보하긴 했다만 함정으로 의심해도 될 정도야.”


“저도 같은 생각을 했었습니다만 장부들을 모두 확인해 보니 문제없었습니다.”


“무슨 말이지?”


“다른 기업들의 이중 장부로는 해결되지 않을 금액이었기 때문입니다. 알코즈 역시 최대한 빠르게 피기 스톤스를 정계로 올려 이용하고 빠질 작정이었을 겁니다.”


그제야 납득된 얼굴을 한 칼비티움은 아직 반도 안 피운 담배를 재떨이에 비볐다. 하지만 아직 그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수상 보좌관이 날 찾아왔었다. 앙겔루스 놈은 날 의심하고 있어. 이건 어떻게 해야 하나, 공모 부장?”


“이번 작전 덕분에 걱정없습니다. 알코즈가 아메리고 정계에 개입하고 있다는 정황을 파악해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느라 늦었다. 암살자 또한 알코즈가 고용한 범죄 조직의 수하였으며 처리를 완료했으나 이 과정에서 상대가 우리의 활동을 알아채 항의했다. 이렇게 보고하면 당분간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입니다.”


콘트라의 입에서 청산유수와 같은 이야기가 쏟아지자 모두의 고개를 끄덕여졌다. 이를 본 칼비티움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좋아. 이제 다음 작업으로 넘어가지.”




오늘도 당내 의원을 포섭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사무실로 돌아온 루치아노 바렐라는 인기척을 느꼈다. 그가 로커를 두드리자 불쾌한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장난이 심하군.”


“걱정하지 말라고. 너인 걸 아니까 이런 거지.”


범죄자 주제에 정치인에게 덤비지 말라고 한소리 하려던 루치아노는 이내 포기했다. 그는 경선에서 패배한 이후로 지금까지 이데아계 범죄 조직과 결탁해서 정계 생활을 이어 왔다. 검은 돈을 받아, 하수인을 빌려 어떻게든 버텼다. 저들이 없다면 사우르 안디오에게 밀릴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판단한 루치아노는 갈등을 피하기로 했다.


“안 봐도 짜증난 거 같은데, 루치아노?”


“알면 적당히 장난쳐.”


“그래도 좋은 소식을 가져왔어.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거래야.”


좋은 소식이란 말에 루치아노의 귀가 솔깃해졌다. 혹시나 사우르의 약점이나 치부가 아닐까 기대하며 얼른 말하라고 독촉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생각보다 실망스러웠다.


“피기 스톤스, 그 남자를 기억하나?”


“아······ 이상에 사로잡힌 멍청이 이야기군. 관심도 없어, 그런 놈은. 정치 수완도 없이 정의나 외치는 헛똑똑이는 이쪽 세계에선 금방 죽으니까.”


“그랬지. 하지만 곧 돌아올 거야.”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잠시 멍해진 루치아노는 이내 자세히 말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로커에서 상상하기도 힘든 이야기가 쏟아졌다.


“피기 스톤스를 여기에다 놓고 싶은 사람이 있나 보더라고. 그 돼지는 너랑 앤드류에게 복수하려고 어떻게든 힘을 키우는 모양이야. 돈도 꽤나 모았고, 주변에 사람도 은근히 생겼던데 이러다 추월 당하는 거 아닐지 몰라.”


“지랄하지 마!”


비아냥에 화를 참지 못한 루치아노는 결국 로커를 내려쳤다. 안에 있는 남자는 아무런 타격도 안 받았는지 여전히 낄낄 웃고 있었다.


“피기가 널 노리면 사우르야 땡큐 아니야? 안 그래도 녀석 물주들 덕분에 요즘 국회에 들락거리면서 인사하는 모양이던데.”


“그딴 놈이야 아무런 방해도 안돼.”


“뭐, 예전이라면 그렇겠지. 근데 지금은 아니잖아. 사우르랑 같이 달리는 중에 작은 돌멩이를 밟아 넘어지면 어쩌려고?”


이 순간 루치아노 바렐라는 정치 인생에서, 아니, 인생 전체에서 가장 심한 수치심을 느꼈다. 저런 범죄자한테 반박 한마디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자신이 너무 우습기 때문이었다. 벌벌 떨던 루치아노는 결국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 달라고 빌었다.


“우리 보스가 준비한 선물을 차에다 넣어 놨어. 꽤나 좋은 거니까 다른 놈들이 모르게 하라고.”


“선물······?”


“그거만 있으면 피기 스톤스는 아무것도 아니라 했어. 우리 보스의 능력은 너도 잘 알잖아?”


남자의 질문 아닌 질문에 루치아노의 고개는 절로 끄덕여졌다. 사실 범죄 조직의 두목이 진두지휘하고 있는 덕분에 사우르와 치열한 접전을 벌이는 중이라 해도 무방했다. 적재적소에 인력을 파견하고, 필요할 때마다 자금을 보충해 줬다. 자신을 하대하는 건 맘에 들지 않더라도 두목이 엄청난 남자임을 인정하는 루치아노였다. 물론 그 두목의 조종자는 이데아에 숨어 있는 콘트라 도크트리나지만서도.




서둘러 사무실을 나선 루치아노 바렐라는 주차장으로 향했다. 조직원이 손을 썼는지 그의 차는 원래 자리가 아닌 구석에 세워져 있었다. 얼마나 귀한 정보길래 이러는지 궁금해하며 운전석에 오른 루치아노는 보조석에 놓인 봉투를 발견했다. 침을 꿀꺽 삼킨 그는 떨리는 손으로 윗부분을 찢고 안에 든 서류를 꺼냈다.


한 5 분은 지났을까? 루치아노의 손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은 아까와 달리 흥분감에 도취된 상태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루치아노가 들고 있는 서류에는 피기에게 들어간 자금의 출처뿐만 아니라 모종의 뒷배, 그의 정체를 폭로할 방법까지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피기 스톤스, 네 새끼를 내 대권의 발판으로 삼아 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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