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무사가 회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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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31 20:39
최근연재일 :
2024.01.31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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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28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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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스승의 은혜 (4)

DUMMY

一.





“거절입니다.”


조휘가 딱 잘라 말했다.


“선배의 인품. 솜씨. 무엇 하나가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제가 선배를 평가하는 것도 좀 웃기긴 하다만은······.”


“······.”


“여튼 거절입니다. 저와 선배가 어떤 특별한 유대를 쌓은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사승 관계라는 것이 그리도 쉽게 맺을 수 있는 거였다면 구파가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유대란 쌓으면 되는 것이지 않나.”


“그리 물렁한 마음가짐으로 청한 사승 관계라면 없느니만 못합니다. 선배는 제가 마공을 익힌 마귀가 되어도 한결없이 같은 눈으로 저를 지켜봐주실 수 있으십니까? 제가 만 명이 넘는 민간인을 학살해도 그저 자애로운 눈으로 봐주실 수 있으십니까?”


“······.”


“그게 제가 생각하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입니다. 스승은 제자가 엇나가지 않게 길을 바로 해주며 지켜주고. 제자는 스승을 공경하고 따르지만 그릇된 것이 있으면 곧바로 일러주는. 그것이 스승과 제자의 관계입니다.”


스승이란 자리는 원래 불합리하다. 한결 같은 믿음. 하염없는 신뢰가 선결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는 존재가 바로 스승이다.


누군가를 가르치고 도야시킨다는 것에는 그만한 책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 굳건히 서서 모든 책임을 받아내고 감내하는 자리가 바로 스승이다.


그럼 바람직한 제자는 어떤 존재인가. 그런 의문이 드는 찰나, 조휘가 말을 이었다.


“제자는 스승의 책임을 덜어주기 위해 스승보다 뛰어나지고자 불철주야 노력해야 합니다. 제게는 음으로 선배를 뛰어넘고자 노력할 시간도, 계기도 부족합니다.”


비정한 말이지만 정론이었다.


문파에 들어가면 대부분 맺는 것이 사승관계라고 하지만, 진정한 스승과 진정한 제자의 관계는 그 누구도 쉬이 구축할 수 없다.


어찌 보면 부모와 자식보다도 위대한 연결고리가 바로 스승과 제자다. 나으시고 길러주신 부모에게서 벗어나, 타인을 배우기 시작하는 계기가 바로 스승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스승은 제자 삼는 데 있어서 자신의 전부를 내어 줄 생각을 해야 하고, 제자는 스승을 따르는 데 있어서 그를 넘어설 각오를 해야만 한다.


“적어도 제게 사승 관계는 가볍지 않습니다.”


“가벼이 꺼낸 말이 아니다.”


표주천의 얼굴에 작은 주름이 졌다.


“절대로 가벼이 꺼낸 말이 아니야.”


“······.”


“나는 알 수 있다. 너의 심상이 두 귀로 들려온다. 내게 말을 걸고 있어.”


“······!”


“그저 하염없이 선한 선인은 아니지만, 악인도 절대 아니다. 그 무엇보다 뜨거운 불을 지폈고 그 누구보다 빛나는 별을 품었다. 무어라 설명할 순 없지만, 내게는 들렸다. 한 순간 전해지는 확고한 뜻이.”


표주천이 자신의 심장부근을 엄지손가락으로 쿠욱 찔렀다.


“여기. 여기서 타오르는 갈망. 열망. 순수한 의지. 생을 지탱하는 기둥. 어찌 보면 노골적이라고 해도 좋을 그런 욕망. 그것을 하염없이 노려보고 있는 너의 눈이 보였다.”


“······.”


“이 강호에 나와 홀로 세상을 살아왔다. 평지풍파 다 겪고 사랑하는 사람도 많이 떠나보냈지······. 그런데 이상하기도 하지. 팔십을 살아온 뒤에서야 내 속에서 들리던 응어리진 소리가 네게서도 들려오지 뭐냐. 그래서 궁금해졌다. 조휘라는 사람이. 네가 쌓아 올린 무가 아니라. 너라는 사람이 궁금해졌어.”


조휘의 표정이 오묘해졌다. 웃는 것 같기도 했고 우는 것 같기도 했다. 어쩌면 음제라는 시대의 거인에게 인정받았다는 약간의 기쁨 때문일지도 몰랐다.


“제자를 권한 이유는 그것 때문이다. 내가 네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내가 여지껏 쌓아 올린 음을 전해주는 것밖에 없으니. 가장 가까이서 너와 교류하기 위함이었다.”


“······.”


조휘는 무어라 답할 수 없었다.


음제가 그랬고, 그 이전에는 흑제가 그랬다. 강호를 홀로 해쳐온 거인들에게는 하나같이 결함이 있었다. 홀로 세상이란 파도를 갈라왔기에, 홀로 살아남는 법밖에 알 수 없었다.


흑제는 천성맹을 통해 그 결함을 메꿨지만, 너무나도 거대한 구멍은 완전히 메꿔지지 않았다. 그것은 음제도, 조휘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아무것도 받지 않겠다는 선배를 이렇게까지 밀어내는 것도 내 두려움 때문일지도 모르지.’


조휘라는 사람은 상실 위에서 빛을 발했다. 다 잃어봤기에 잃는 것이 무엇보다 두려웠다.


‘소중한 인연을 더 만들어 나가는 것이 두려웠었나.’


무림맹에서 하급 무사들과 친분을 트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였다. 눈을 감으면 그들의 얼굴과 이름이 주르륵 떠오르지만, 그들이 떠나간다고 해서 심장이 찢어질 것 같은 고통을 느끼지는 않을 터였다.


그러니까 나는.


‘깊은 유대를 쌓는 것이 두려웠었나. 그래서 계속해서 겉돌았던 거고. 전검대 녀석들에게서도 그렇고 입맹 동기들도 그렇고.’


회귀 전에 인연을 쌓았던 늙은이들과는 곧잘 어울리는 것을 보면 틀림없었다.


‘그러나 나는 이미 깨달았다. 사람은 인연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한 편의 이야기를 매듭짓는 것은 인연이라는 이름의 방점이다.’


당철진을 겪으며, 당가의 제일 야장이 인간적으로 완성되가는 모습을 보며 조휘는 깨달음을 얻었다.


‘나라는 사람을 만나 당철진의 이야기에 방점이 찍혔다. 그리고 그는 새로운 이야기를 써나가겠지. 그를 찾아올 새로운 인연들과 함께.’


그렇게 기다란 실이 엮이고 설켜 사람의 형태를 이뤄낸다.


‘이미 내 안에 있었다. 다만······ 부정하고 부정했을 뿐.’


일종의 불협이다.

무의식과 의식의 불협.

그리고 조휘는 그 불협을 지워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한편,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조휘를 바라보던 표주천은 조휘의 입에서 무언가 탁한 기류가 흘러 나가는 것을 들었다.


‘불협음(不協音)······?’


일종의 심마.

내지는 정신병.


그것이 조휘에게서 빠져나갔다. 그의 상단전이 탁 트이더니 쾌청한 소리를 울렸다. 키이잉─!


‘눈빛이······ 바뀌었군.’


이전보다 맑아진 안광이 눈에 뜨인다. 누군가가 보기엔 그리 큰 변화가 아니었지만, 무성십존인 음제에겐 무척 큰 변화로 보였다.


“선배.”


“······.”


“선배 덕에 잊으면 안 될 이야기를 떠올렸습니다.”


‘깨달음이 있었나.’


조휘가 표주천에게 포권했다.


“감사드립니다.”


“됐네. 내가 뭐 한 게 있다고.”


어느덧 다시 허허로운 영감으로 돌아온 표주천, 그가 조휘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참 괜찮은 청년.’


“우선······ 제자와 관련된 이야기는 가면서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 이 칙칙하고 음산한 소리만 들려오는 곳에 오래 머무는 것도 정신 건강에 좋지 않으니······. 다시 기루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구먼.”


“아········· 그게. 쓰읍. 우리가 갈 곳은 기루가 아닙니다.”


“으음?”


“이건 좀전의 내기로 건 부탁과도 연관이 있습니다만······.”


조휘가 말끝을 흐렸다. 아무래도 좋았던 표주천이 껄껄 웃으며 조휘에게 물었다.


“드디어 부탁을 말하는구먼. 그래서 내게 할 부탁이 무엇인가?”


“천성맹.”


“······?”


“저와 함께 천성맹으로 가주십시오.”


“이런 미친.”


표주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二.





아무래도 좋았던 표주천도 이번만큼은 좋지 못했다.


‘천성맹?’


갑자기 그 이름이 왜 나온단 말인가? 그런 궁금증은 차치하고, 조휘에게 먼저 물었다.


“천성맹인 이유가 있는가?”


‘이걸 뭐라고 설명해.’


명천의 수작을 사전에 방어하기 위해서가 목적이긴 한데······ 이걸 합리적으로 설명할 방도가 없었다.


‘강호의 수면 아래에서 은밀한 모략을 꾸미고 있는 미치광이들이 선배를 노리고 있다?’


그럼 미치광이는 명천이 아니라 내가 되겠지.


어찌 되었든, 오늘의 만남은 의도적으로 접근한 것이 아니었기에, 그 사건의 경위성을 납득시키는 것도 큰일이 될 터였다.


“우선 저는 그 노인네······ 아니, 흑제를 보러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겸사겸사 살문을 멸문시키기 위해 계림에 들렀고······.”


조휘는 사천성에서부터 이곳까지 이어진 여정을 쭈욱 설명했다.


“명천?”


“그렇습니다. 저도 알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으나······.”


사천성을 습격하고자 한 백련교. 그들의 본거지를 쳐들어가서 알게 된 이야기라고 각색했다.


‘거짓말은 아니니까······.’


“해서?”


“명천의 수뇌부와 마주쳤습니다. 그놈과 칼을 겨루며 알게 된 정보가 있는데.”


“놈들이 무성십존을 노리고 있다는 건가?”


“회유할지, 죽일지. 정확히는 알 수 없었습니다만, 흑제 영감도 그렇고, 선배도 그렇고······ 아무래도 홀몸인지라. 무성십존 둘이서 뭉치면 그들이 파고들 틈이 적지 않겠습니까?”


“확실히······.”


표주천은 생각했다.


조휘의 말에는 일단 구멍이 많았다. 저 말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연결이 매끄럽지 못했다.


거짓말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모든 것을 털어놓지는 않았다. 분명히 숨기는 게 있는 소리였다.


‘내가 아니었으면 절대 알 수 없었겠지.’


절대적인 경지가 표주천이 더 높기 때문에 숨길 수 없던 의념. 조휘도 그것을 알았다. 조휘에게서 미안함의 의념이 들려왔다.


‘이 녀석아.’


표주천이 작은 미소를 지었다. 숨길 거면 끝까지 뻔뻔하게 숨기든지. 녀석은 이전보다 노골적으로 미안한 의념을 폴폴 풍겼다.


“참 이상한 놈일세.”


표주천이 조휘의 말을 끊었다.


“숨기는 것이 싫지만, 어쩔 수 없이 숨겨야만 하는 것이 있나 보군. 그럼에도 거짓은 아니야.”


“······.”


“어쩌겠는가. 만일 자네의 말이 사실이면······ 진짜 죽을 수도 있는 노릇이니. 그런데 자네는 내가 무림맹에 합류하는 것은 썩 원하지 않는 것 같고. 되려 흑제의 곁에서 흑제를 지켜줬으면 좋겠다는 것처럼 들리는군.”


“하, 하하.”


“무림맹의 사람이 흑제의 안위를 걱정한다라······. 흑제의 숨겨둔 제자라도 되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조휘가 미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다 말씀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믿어주셔서.”


감정에 특히 예민한 표주천이었기에, 가능했던 설득이었다. 숨기고 있다는 것을 숨길 수 없기에, 되려 더욱더 미안한 마음을 느끼는 조휘. 그것을 읽은 표주천은 조휘를 이해했다.


무인들 중에서도 가장 무인인 족속들이 바로 무성십존. 단순히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상대의 의념을 알 수 있기에. 만난 시간이 길지 않아도, 깊은 유대가 없더라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강호인이다.


“완전히 납득한 것은 아니지만······ 자네를 믿어보겠네. 뭐······ 아니어도 흑제라는 거인과 안면을 틀 기회기도 하고. 자네랑 하는 강호 유람이라면 재밌을 것 같기도 하니······. 그리고 슬슬 나이도 들어서 늘그막에 차고 앉을 안방도 하나 필요하긴 했어. 소문대로라면 흑제의 천성맹은 과거의 흑도와는 다르다고도 하니 의탁하기에 충분하겠지.”


조휘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말이었다. 스스로가 이유를 직접 말했다.


“······감사합니다. 선배.”


“감사할 것이 무엇이 있겠나. 자네가 직접 말하지 않았나? 스승은 제자를 하염없이 믿어주고 이끄는 존재라고. 내가 내 제자를 믿는 것이니 감사받을 일이 아닐세.”


“저는 제자 한다고 말한 적이 없는데요.”


표주천이 클클 웃었다.


“으음? 아니었는가?”


조휘가 머리를 긁적이다 말했다.


“일단 말부터 놓으십시오.”


표주천이 씨익 웃었다.


“그럼, 우리 목적지는 천성맹인고?”


“그렇습니다.”


조휘도 그를 보며 웃었다.


“가십시다, 사부.”


“오냐.”


두 사람이 고요히 위로 솟구쳤다. 경공을 펼치는 내내 입가에 들어앉은 것은 썩 멋들어진 미소였다.



.

.

.

.

.




“거참······ 넓기도 하네.”


동굴 저편에서 천랑이 휘적휘적 걸어왔다. 어둠의 장막을 헤치고 모습을 드러낸 그는 썩 멋들어진 미소를 짓고 있었다. 스스로에게 취했달까. 재수 없는 얼굴에 재수 없는 표정이었다.


“다 해치우고 왔다.”


전투의 여파로 눈에 잔뜩 몰린 내공. 집중된 안광으로 일행이 처음 내려 왔던 곳을 살폈다.


“다 해치우고 왔다니까.”


사람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다 해치우고 왔습니다.”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해치우고 왔습니다요.”

“해치우고 왔네.”

“해치우고 왔어요.”

“해치웠나?”


“저기요?”

“저기요?”


천랑이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뻥 뚫린 원통형의 기둥이 더럽게 높았다. 그 너머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이 보였다. 빌어먹게도 아름다웠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천랑이 미친 듯이 웃었다.


“시발.”


그가 휘적휘적 벽으로 걸어가 팔을 꽂아 넣었다. 경공을 이용해 올라갈 높이가 도무지 아니었기에 팔다리, 필요하다면 이빨까지 다 사용해서라도 벽호공을 펼쳤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


벽을 오르는 내내 천랑은 웃었다. 한시도 쉬지 않고 웃었다. 기다란 원통에 웃음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퍼졌다. 절세 고수의 육합전성과도 같았다. 스스로가 만든 육합전성을 들으며 그냥 웃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절벽을 기어 올라가니 두 사람이 술병을 기울이고 있었다. 자세히 살피니 조가놈이 늘 품에 품고 다니던 백주가 담긴 호리병이었다.


“오, 올라왔네. 제가 뭐라 했습니까. 저놈 저거, 굴리면 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싹수가 보이는 친구구먼.”


“제자야, 달려와서 사부의 사부께 인사드리거라. 네 사조시다.”


천랑은 비적비적 걸어가서 음제 앞에서 절을 올렸다.


“불초 제자가 사조를 뵙습니다.”


“오냐.”


“하하하.”


천랑이 하늘을 올려보았다.


“하하하하하하!”


“뭐야. 정신을 놨나?”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하늘은 빌어먹게도 맑았다. 아래서 보아도 아름다운 별무리였지만, 위에서 보니 더 아름다웠다. 내 처지와는 다르게 하늘을 유유히 유영하는 별들이라 그런가?


‘빌어먹을 새끼들.’


별들이 참 빌어먹게도 아름다웠다.


“하하하하하하하!”






三.





광서성의 계림에서부터 시작해 호남성 일대를 가로질러 천성맹의 본성이 있는 강서성의 남창까지 이어지는 길목 어귀에 소문이 돌았다.


아침이고 밤이고 미친 듯이 웃기만 하는 잘생긴 미청년이 얼음길을 만들어 미끄러지듯 달리고 있다는 소문이었다.


그 속도가 어찌나 대단한지, 그 누구도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다. 멀리서 보아도 빛이나는 게······ 얼음이 빛나는 건지, 얼굴이 빛나는 건지 구분이 안갔을 뿐이었다.


호남의 장서에서 옷을 갈아 입은 일행은 약간의 변장까지 마쳤다. 세 사람 모두 흑의로 갈아입은 뒤, 잘 쓰지도 않는 죽립까지 썼다.


조휘는 검을 보자기로 감싼 뒤 등에 이고는 짧은 단창 두 자루를 허리춤에 맸다.


천랑이야 원래 쓰는 병장기가 없었으나, 고운 선의 미청년이 적수공권을 사용하는 경우가 무척 드물었으므로, 허리춤에 검을 꽂았다. 흑의장삼과는 다르게 백색의 검을 꽂고 있으니 어디 유명한 흑도 명문가의 자제가 강호유람을 나온 꼴이었다.


한편, 표주천은 금(琴)을 낡은 보자기로 잘 감쌌다. 워낙 크기가 커서 그런지, 아무리 보아도 거대한 붓짐 같았기에 딱히 추가적인 조치는 취하지 않았다.


그러나 백색의 수염과 눈썹은 조금 문제가 되었다. 조휘가 야릇한 눈으로 그것들을 바라봤지만, 연륜으로 쌓아 올린 회피기를 사용해 조휘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렇게 그들은 천성맹의 영역에 들어섰다.


강서성의 남창.


흑도 제왕이 기거하는 궁궐.


무(武)를 숭상하고 강자를 숭상하는 곳. 백도의 영역보다 원초적이고 보다 폭력적인 기파가 일행을 반기는 가운데.


그들이 남창의 거대한 객잔에 들어섰다.


“만두 한 접시랑 소면 세 그릇 부탁하마.”


원래(?)부터 일행의 막내였던 천랑은 능숙한 솜씨로 주문을 맡겼다. 조휘의 곁에서 손바닥을 비벼 전낭을 얻어낸 뒤, 합법적으로 사부의 돈으로 식대를 냈다.


“이곳은······ 정말 활기차구나.”


“활기찬 것보단 정신이 나간 것 같은데······.”


천랑이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바로 옆에서 중년인 둘이 뜨거운 눈으로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콰직!


입구를 등지고 앉은 사내가 비수를 탁자에 꽂았다. 두부 썰 듯 푸욱 파고 들어간 비수의 손잡이가 눈에 들어왔다.


“으윽. 때보소.”


그 말을 들은 사내가 천랑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천랑은 뜨억한 표정을 짓더니 두 손을 들었다.


다시 사내는 자신 앞의 사내에게로 시선을 고정했다.


“철두야. 우리 이러지 않기로 했잖냐. 왜 대체 본파의 영역을 침범하는 거냐. 어? 어?! 이 시발새끼야. 미쳤어?”


“땡칠아.”


“지칠이다.”


“그래 땡칠아.”


“지칠이라고.”


사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니애비가 니 이름을 땡칠로 지었는데 왜 자꾸 지칠이래. 호로새끼야? 아빠 없어?”


“없다.”


“미안.”


철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그래서 대답해라. 왜 자꾸 본파의 영역을 침범하느냐고.”


“아니······ 황제가 준 땅도 아니고, 그냥 땡칠이가 땡칠이 따까리들 모아다가. 여기 내 땅이오······ 하고 있는데 그게 왜 니땅이야. 어?”


“이 새끼가 말로만 해선 안 되겠네. 진짜 죽고 싶어?”


땡칠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남과 동시에 철두가 탁상을 밀었다. 쿠당탕. 책상에 밀려 자세가 무너진 땡칠이를 향해 철두가 달려 들었다. 순식간에 탁상에 꽂아둔 비수를 뽑아 그를 향해 내리 찍는다.


그러는 와중에 밀려나는 탁상이 의자에 부딪쳤다. 반동으로 소면 그릇이 튕겨 나가 어딘가로 향해 날아간다.


철푸덕.


“······.”


“이 새끼가. 죽어!”


땡칠이도 무공을 깨나 익힌 것인지 철두의 공격을 잘 방어했다. 부러진 탁상의 다리를 잡고 철두를 향해 휘둘렀다.


그러나 철두의 실력이 더 뛰어났던 것인지, 땡칠이는 철두의 다리에 걸려 앞으로 고꾸라졌다.


“어, 어?”


고꾸라지며 땡칠의 손에 들린 다리가 누군가의 머리통을 후렸다. 빠가가각! 사람 머리에서 들려선 안 될 소리가 들려왔다. 싸움을 구경하던 객잔의 모두가 얻어 맞은 사내를 바라봤다.


나무 다리에 머리를 처맞아 소면 그릇에 얼굴을 처박은 사내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이미 한 번 머리에 소면이 엎어진 것인지 머리카락은 소면이랑 구분이 가지 않았다.


“어, 어떻게. 국물에 고추기름을······.”


“어우······. 저건 좀. 가뜩이나 여기 고추기름이 엄청 매운데. 눈에 들어간 건 아니겠지······.”


시뻘건 고추기름이 얼굴에 묻어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사내는 자신의 앞에 앉은 두 사람에게 정중하게 고개 숙였다.


“사부님. 사조님. 불초 제자가 저 못된 것들을 손봐······ 아니, 계도(啓導)하는 것을 허락해주시옵소서.”


젊은 사부는 귀찮은 듯 손을 휘적였고, 사조는 안쓰럽다는 눈으로 사내 둘을 바라봤다.


“왜. 뭐. 뭘 봐! 영감탱이!”


무언가 불안해진 땡칠이가 괜히 소리쳐봤다. 반대로 철두는 빠르게 상황을 정리하고 도망갈 기미를 보였다.


드르륵.


천랑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벅. 철두가 그를 향해 다가왔다.


“뭔데, 너. 누가 거기 있으래? 이 시발새끼가. 내가 만만해? 어?!”


천랑의 얼굴에 미소가 만연했다.


“나도 반가워, 친구야.”


“뭐? 이 개새끼가!”


쩌적. 쩌저저저적.


“우리 사이좋게 지내자.”


천랑이 사내의 손을 붙잡았다. 그와 동시에 땡칠이는 냉동 땡칠이가 되었다. 얼어붙은 땡칠이보다 더 차갑게. 객잔의 분위기가 차가워졌다.


철두가 객잔 밖으로 도망쳤다.


“하하. 하하하하.”


천랑이 비적비적 걸었다. 그러길 잠시, 바닥이 쩌적 얼어붙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신형이 쏘아져 나갔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웃음소리는 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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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전해지는 것, 이어지는 것. (4) +3 23.11.20 858 17 13쪽
97 전해지는 것, 이어지는 것. (3) +2 23.11.19 906 19 14쪽
96 전해지는 것, 이어지는 것. (2) +1 23.11.18 937 17 14쪽
95 전해지는 것, 이어지는 것. (1) +1 23.11.17 951 17 14쪽
94 사천제 (2) +1 23.11.16 926 18 16쪽
93 사천제 (1) +2 23.11.15 940 17 17쪽
92 사천성 (5) +1 23.11.14 942 17 16쪽
91 사천성 (4) +1 23.11.13 948 18 15쪽
90 사천성 (3) +1 23.11.13 922 19 14쪽
89 사천성 (2) +2 23.11.11 1,016 22 14쪽
88 사천성 (1) +2 23.11.10 1,041 20 15쪽
87 청성산 혈투 (5) +2 23.11.09 1,058 20 16쪽
86 청성산 혈투 (4) +2 23.11.08 1,025 21 16쪽
85 청성산 혈투 (3) +2 23.11.07 1,063 24 14쪽
84 청성산 혈투 (2) +2 23.11.06 1,104 23 15쪽
83 청성산 혈투 (1) +2 23.11.05 1,202 20 17쪽
82 악인의 면모 (3) +2 23.11.04 1,210 22 16쪽
81 악인의 면모 (2) +3 23.11.03 1,262 21 16쪽
80 악인의 면모 (1) +2 23.11.02 1,344 23 14쪽
79 아무 일도 없었다. (3) +2 23.11.01 1,358 22 17쪽
78 아무 일도 없었다. (2) +2 23.10.31 1,361 23 14쪽
77 아무 일도 없었다. (1) +3 23.10.30 1,380 24 16쪽
76 물유본말(物有本末) (6) +2 23.10.29 1,332 2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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